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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간다] 놀 곳이 없다! 그 많던 오락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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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보기 힘들지만 9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에 한 두 개씩 오락실이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오락실 대부분이 영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지하에 위치해 있던 동네 오락실은 중고등학생들의 실질적인 ‘놀이터’였다. 당시 밖에서 활동적으로 놀지 않고 어두컴컴한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치던 아이들을 우려하던 기사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가 버린’ 오락실을 추억하는 기사를 쓰게 되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많던 오락실은 어디로 갔을까? 90년대 중 후반 PC방과 컴퓨터의 대량보급으로 오락실은 그 지위를 급격하게 잃어갔다. 특히 가정용 콘솔게임기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며 비디오 게임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자 아이들은 더 이상 오락실을 찾지 않고, 코 문은 돈으로 그나마 가게를 경영하던 업주들은 PC방이나 다른 유희시설로 업종 변경을 서둘렀다. 일부 업주들은 아케이드 경품장으로 업소를 변경했고, 아이들의 눈길과 시선을 빼앗았던 오락실은 성인들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2008년 순수 비디오게임을 취급하는 오락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2007년 간행된 ‘2007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의하면 비디오 게임장 사업은 국내게임 산업에서 0.4%(2006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6년 한 해 276억 원의 산업규모를 기록해 -22.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게임메카는 이번 취재를 위해서 서울지역 총 다섯 군데의 오락실을 방문해 보았다. 정말 오락실은 죽어버린 것일까? 만약 저 수치대로 빈사상태라면 이제 더 이상 오락실 문화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안고.    

동호인들의 오프라인 커뮤니티 ‘오락실’

최근 오락실의 뚜렷한 경향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인근 지역에서 특정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말에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기고 대결도 펼친다.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팀을 짜기도 하고 다른 팀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대전게임에서 두드러지는데 특히 최근 국내에 들어온 ‘철권6’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팀 대전을 즐기는 ‘모임’들은 스스로 토너먼트를 만들어 대전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모임장소가 바로 오락실이다. 대전격투게임 매니아 사이에서 유명한 대림동의 한 오락실은 주말이면 인근에서 몰려든 ‘철권’ 매니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취재진은 이 오락실을 두 번에 걸쳐 찾았는데 평일과 주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평일에는 거의 손님이 없을 정도로 한가한 곳이지만 주말에는 사정이 달랐다. 주말 매장 안에 비치된 30대가 넘는 ‘철권6’는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적어도 이 곳에서 만큼은 ‘오락실은 죽었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이렇게 주말에 손님이 몰리는 이유는 주로 학생층이 매니아 층을 구성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운 주말을 이용해 게임을 하러 오기 때문이다. 이 날은 이곳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팀 대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확 드러나는 오락실

사람이 많아서 팀 대전을 할 수 없으면 기계를 통째로 빌리는 방법이 있다. 이수에 위치한 한 오락실에서는 대당 비싸게는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아케이드 게임기를 대여해 주고 있었다. 기계 앞에 쓰여진 ‘대여요금’ 안내문을 읽던 기자는 순간 대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이 육중한 기계를 어떻게 밖으로 내간단 말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팀 대전을 위해 기계를 전세내면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 동안 기계를 독점할 수 있는데, 대결에서 진 팀이 이긴 팀에게는 술이나 밥을 쏘는 정겨운 장면이 합의하기에 따라 나올 수도 있다.

이같이 오락실의 오프라인 커뮤니티로서 역할은 고수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난다. 예를 들어 “저번 주말에 어디 오락실에서 태고의 달인(일본 북을 치는 리듬게임)을 혼자서 2인 플레이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더라.”라는 소문이 퍼지면 매니아들이 그들을 보기 위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고수들의 플레이는 신격화 되어 확대 재생산되고 그들이 출몰(?)하는 오락실은 거의 성지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온라인으로 확장→다시 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고수들의 플레이는 온라인으로 확장된다. 일부 오락실에서는 개인 인터넷 방송인 ‘아프리카’로 게임플레이를 중계할 수 있도록 장비를 마련해 놓았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가 온라인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순간이다. 규모가 큰 오락실에서는 24시간 아케이드 게임기에서 돌아가는 플레이가 생중계 된다. 관심만 있다면 방에서 편하게 앉아 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확장된 커뮤니티는 다시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돌아온다. 인터넷 방송으로 오락실 플레이를 보는 이들은 최소한 그 게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잠재적인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여 오락실로 찾아올 가능성이 많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커뮤니티가 선순환 하면서 소비자 층을 확보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락실은 줄었지만, 비디오 게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의 움직임은 가능하다.

이런 경향은 유명 오락실을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 비디오 게임 사이트에는 유명 오락실에 대한 정보를 묻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오락실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데다가 유명세까지 더해지면 인근지역은 물론이고 먼 곳에서 ‘원정’을 올 만큼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는 커뮤니티      

  

매니아 커뮤니티로서 집약된 역할

현재의 오락실 문화는 한마디로 말해 ‘매니아 집약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많지는 않지만 게임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이들이 열정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공간이 오락실이다. 동네 오락실이 번성하던 90년대와는 다르게 현재의 오락실은 희귀하지만 원정을 와 밤을 셀 만큼 가치가 집중되어 있다. 이런 매니아 집중현상은 ‘대전게임은 어디, 리듬게임은 어디’와 같은 공식을 만들어낸다.

앞서 예로 든 대림동의 오락실이 대전 격투 게임으로 유명하다면, 압구정에 위치한 한 오락실은 리듬게임의 성지다. 구비된 게임기의 종류로 결코 이런 성격이 결정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중은 다르지만 리듬 게임으로 유명한 오락실에도 대전격투 게임이 있고, 대전격투 게임으로 유명한 곳에도 리듬 게임기는 마련이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오락실을 찾는 핵심 매니아들이 어떤 층이냐는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의 기능 때문에 오락실은 점점 매니아에 집중된 형태를 띌 수 밖에 없다.

다시 ‘압구정 오락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리듬 게임으로 유명한 이 오락실을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밤 11가 넘은 시간. 취재진은 새벽 1시까지 이곳을 관찰했는데 매장이 문을 여는 새벽 6시까지 이곳은 불야성을 이룬단다. 리듬게임 매니아들은 이 곳에서 약속을 정하고, 모이고 또 게임을 플레이하고 헤어진다. 서로 다른 지역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리듬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가 밤 늦은 시간 이곳에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인천에 사는 김 모군(24세)는 “주말이면 가끔씩 리듬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다. 밤을 세서 게임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그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취미생활이다.”라고 말했다. 김군은 “실제로 하지 않더라도 잘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매니아들의 소통의 창구로서 현재의 오락실은 존재한다. 예전의 오락실이 아무나 와서 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면 이곳은 일종의 자격제한이 있는 ‘클럽’과 같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 놀거리를 재생산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 곳이 지금의 오락실이다.

▲주말이 되면 이 기계 앞은 사람들로 꽉 찬다

 

외줄 생명선을 잡은 오락실이여 ‘커플’을 공략하라?  

사실 지금의 오락실이 이렇게 매니아 지향적이 된 것은 결코 의도된 바는 아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 대 초를 거치며 어쩔 수 없이 생존전략으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암울한 배경이 있었다. 오락실이 인기가 식어가는 상황에서 업주는 소수의 매니아를 공략할 수밖에 없었고, 오락실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매니아들은 오락실에 대한 선택권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 남은 오락실들은 이런 전투적인 상황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승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승자들은 매니아들을 독식하고 있다. 그리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매니아를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오락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굉장히 빈약하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철권’이 없었으면, ‘태고의 달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EZ2DJ’나 '비트매니아'가 없었다면? 오락실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이런 약점에 대한 보완책을 지금으로선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외줄 생명줄에 의해 버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함부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일단 따로 잡을 것이 있어야 갈아탈지 말지를 고민할 것 아닌가.

하지만 여기 또 하나의 작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신촌에 위치한 이 오락실은 일명 커플 오락실로 알려져 있다. ‘커플 오락실’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연인들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가 일단 기존의 오락실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곳에는 ‘철권’과 리듬 게임기들 이외에도 몸으로 할 수 있는 기계들을 많이 구비하고 있다. 굳이 매니아가 아니라도 지나가다 한번쯤 들러 스트레스를 날리고 갈 수 있는 컨셉이다.

이 오락실의 특이한 점은 올드게임 존을 따로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1987년 출시된 던전앤 드래곤’부터 2002년에 나온 ‘킹오브파이터즈 2002’까지 스펙트럼도 넓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올드게임 존 옆에는 최신식 스티커 사진기가 마련되어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이 오락실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올드 게이머와 일반인이 공존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장!

물론 이 오락실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에 깔끔하게 매장을 갖춰 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업소는 아직까지 한국에도 ‘오락실’의 가능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업소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 게임을 즐기는 커플들

▲ 밝은 분위기의 매장

▲ 클래식 게임과 공존하는 최신식 스타커 사진 판매기

이제 결론을 지어보자. 심각한 자세(?)로 오락실 문화의 회생가능성을 타진했던 물음에 대해 아무래도 명확한 답을 얻기 힘들 것 같다. 오락실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직접 확인해 본 바로는, 2008년 오락실은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오프라인 매니아 커뮤니티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매니아라는 희소한 가치는 유명 오락실들을 만들어냈고 그들만으로도 매니아를 흡수할 수 있는 그런 슬림한 시장이 현재 비디오 게임장 시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오락실’의 몸짓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촌의 오락실이 그러했고, 인터넷 방송을 통한 커뮤니티 확대의 노력을 보았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빼놓고 마칠 뻔했다. 오락실은 어둡고, 음침하며 사회부적응자들이 찾는 곳이 아니다. 오락실의 기능은 단어 그대로 즐기는 곳이다. 노는 데에 있어 이상하리만치 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 오락실이 제 의미대로 평가 받을 날을 과연 올 것인가? 여전히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취재후기>

다섯 군데의 오락실을 돌았지만 기사에서는 네 군데의 오락실만 언급이 됐다. 빠진 곳은 강남역 지하에 위치한 오락실. 이곳이 선정된 이유는 최근 1~2년 사이에 강남역 주변에 있던 오락실 4~5 군데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당초 이곳 사장님과 인터뷰를 해 그 원인을 짚어 볼 예정이었지만 불발되었다. 후에 다른 경로로 강남역 주변 오락실들이 문을 닫은 이유에 대해 꽤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강남의 임대료를 버틸 수 없어서’였다. 하긴 유동인구가 많다 해도 죄다 업무에 바쁜 직장인 투성인 강남에서 오락실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해 오락실에 들러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좋을텐데. 이래저래 놀 곳은 점점 줄어간다.

▲ 이수역에 위치한 오락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신나게 게임을 하고 유유히 사라진 직장인.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은 걸로 봐서 직장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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