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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간다] 현재의 게임업계 `바다이야기`때보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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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전세계 게임업계가 블리자드의 신작 공개를 앞두고 들썩이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충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말을 앞두고, 급하게 24시간 출장 업무가 떨어진 것은 게임사관학교에서 주최하는 여름 서밋(Summit) 행사 때문이었다. 게임 그래픽, 프로그래밍, 운영, QA, 마케팅까지 게임 개발에 관한 거의 전 부문에 걸친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자리였다.

2008 한국게임사관학교 SUMMIT는 게임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한국게임사관학교, (사)한국게임개발자협회, (사)한국게임마케팅포럼, (사)한국게임운영자협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다. 이번 세미나는 지난 6월 27일 금요일부터 28일 토요일까지 켄싱턴 리조트 충주점에서 진행되었다.

금요일 오전근무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사무실은 블리자드의 신작이 ‘디아블로3’냐, 아니냐를 두고 뜨거웠다. 메신저로 날아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는 ‘내기에 너도 걸래? ‘디아블로3’일 것 같아, 아닐 것 같아?’ ‘아뇨,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저라면 ‘디아블로3’가 나오는데 걸겠어요. 하하’

게임메카 사무실이 있는 홍대 근처 상수동과 버스가 출발하는 삼성동은 상당히 멀다. 도착하자마자 코엑스 근처에서 재빨리 햄버거 하나를 우겨 넣은 다음, 나 홀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쓸쓸한 마음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기자는 나 혼자 뿐인 것 같은데, 이런 데(?) 내가 와도 될까? 에라, 모르겠다. 이 기회에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업계 사람도 만나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배워보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볼 새도 없이 잠이 들었다.

▲ 엔씨, 넥슨 등 많은 게임업체가 위치한 삼성동 테헤란로. 물론, 게임메카는 해당 사항 없음.

이것이 워크샵 전용 호텔이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이동 시간, 문득 깨어보니 충주였다. 충주에 있으니 막연히 근처에 호반에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숙소는, 호반은커녕, 구비구비 꺾여 올라가는 산 중턱에 있었다. 고개를 돌려 둘러보아도 온통 산과 멀리 보이는 밭이 시야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숙소 사방 1km는 민가도, 편의점 하나도 구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호텔 내부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12시가 넘으면 문을 닫았고, 점심시간에도 1시간 동안 문을 열지 않는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세미나가 열린 켄싱턴 리조트는 ‘럭셔리’ 스타일로 꾸며진 로비와 공동 시설과 달리, 숙소의 삭막한 디자인 덕분에 리조트 호텔이라고 붙이기에는 2% 부족하게 보였다. (늘 여행 가기 직전까지 파김치가 되었다가 숙소에서 좀비가 되어 일어나는 나로서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름아닌 숙소를 눈 여겨 본다.)

▲ 버스를 탄 일행을 반겨주는 현수막. 리더쉽, 체인지, 희망, 등 '워크샵' 느낌이 팍팍 나는 문구들

밤을 새는 음주를 제외하면, 일체의 오락이 허락되지 않은 세미나 및 숙박 공간.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워크샵 전용 숙소’로구나 라는 것은 1박 2일을 보내고 난 다음 날이 되어서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워크샵 전용 호텔답게 메인 리셉션 룸과 함께 크고 작은 각 룸마다 프리젠테이션 장비는 매우 훌륭하게 잘 갖추어져 있었다.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을 제외한 다른 엔터테인먼트 활동이 모두 가로막힌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게임업계의 ‘사각’, 운영과 QA에 대해 생각하다

일단 메인 행사가 진행되는 첫 날, 주최 측에서 임의로 나누어준 방에 짐을 풀고 세미나 현장으로 직행했다. 현장에 모인 게임업계 사람들은 약 100여명. 무료로 진행되는 행사이니만큼 강제력도 없고, 자유롭게 ‘알음알음’으로 신청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참가한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보고서 작성을 조건으로 반차를 내고 온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인 인맥 쌓기부터, 개인적인 배움, 기분전환까지 참가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 따로 개인 휴가를 내서 올 정도로 이번 서밋에 참여한 게임업계 사람들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간단한 개회식과 게임물 등급분류에 관한 초청강연을 듣고 각자 원하는 세미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선택한 것은 운영과 QA 파트에 해당하는 두 개의 세션이었다. 네 가지 파트에 나누어진 여덟 개의 파트가 있었지만, 동 시간에 진행되는 세미니라 들을 수 있는 것은 두 개뿐이었다. ‘현업에서 보는 운영정책의 문제점’과 ‘About Game QA’를 주제로 개발부터 서비스까지 QA의 역할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는 내용이었다.

운영의 경우, 온라인 게임은 개발만큼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였다. 여기에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프로그래밍이나 그래픽 분야보다는 비교적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는 부분도 매력적이었다.

▲ 기자가 고른 세션의 강연분위기, 사진 속에 나 있다?

운영,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어느 각도에서 보기 힘든 각을 ‘사각’이라고 이른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도 인식의 확장은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운영과 QA 파트는 게임업계에의 ‘사각’에 해당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운영 파트는 전체 운영인력을 관리하는 팀장이나 파트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그나마 가장 나은 처우가 계약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운영업무에 대한 뚜렷한 매뉴얼조차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이 내부 약관이나 운영정책에 의지해 게임운영을 하고 있다. 게이머들에게는 ‘신’이지만, 게임업계에서는 3D 업종에 해당하는 것이 ‘운영’이다.

운영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던 강연자 박재훈 팀장도 게이머의 관점에서 바라본 운영 정책의 네 가지 문제점을 꼬집었다. ▲회사 보호를 위한 운영정책 ▲산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운영정책 ▲불확실한 검출 방식 및 선제재 후조사 ▲형평성의 문제였다. 이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출 수 없는 신생개발사나 소규모 개발사에 이르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회사 입장에서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아이템현금거래 등 주요 문제에 대한 법의 판단은 여전히 모호하고, 일부 이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화 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외부적 요인이다.

 ▲ 게임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서비스가 아닐까?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운영 문제

운영정책 문제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이냐’만큼이나 어려운 사안이다. 누구나 정답을 알고 있지만, 실천은 어렵다. 국내 최고의 동시접속자 숫자를 자랑하는 MMORPG 시리즈인 ‘리니지’와 ‘리니지2’의 운영인력은 백 여명을 훌쩍 넘지만, 정규직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그나마 ‘리니지’는 게임업계에서 나은 수준이다.

게임 운영과 QA, 보조적 업무로 인식 ‘역량 평가 아쉽다’

운영정책에 관한 1시간의 세션이 끝나고 10분의 휴식 후, 곧 이어 게임 QA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KGC(한국게임개발자컨퍼런스)도 참석해보았지만, 20명 정도의 인원이 작은 세미나룸에서 강연을 듣는 것도 상당히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모든 궁금증을 나누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연자와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작은 공간이 더 좋았다.

일반적으로 게임 QA(Quality Assurance)란 개발제품의 품질을 확보하고 (온라인 게임은 계속 서비스를 유지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모든 행동을 일컫는다.

▲ GSQA(Game Service Quality Assurance)는 크게 개발과 운영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게임이 개발되는 단계에서는 개발내용 테스트, 개발 프로세서 지원, 인프라 지원, 다른 유관부서와 현 상황의 개발정보 정보 공유(개발 완료 시 빌드 노트), 공유 스토리지 표준화 개발내용에 대한 보안등급 설정, 등 개발파트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게임이 시장에 나와도 QA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MMORPG를 개발하는 경우에는 내부 유관부서에 게임에 대한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하여 제대로 된 게임 매뉴얼을 작성해야 한다. 이는 다시 게임 공식 가이드북으로 이용된다. QA는 단순한 버그테스트나 게임개발의 보조가 아니다. 개발, 운영, 마케팅 전 분야에 걸쳐 게임의 품질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해야 한다.

강연을 듣는 동안 드는 생각은 QA란 전반적인 개발 및 운영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게임의 ‘매니지먼트’와도 같다는 것. 게임 개발, 운영, 마케팅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및 타부서와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내야 하는 부담까지, 가히 게임계의 ‘능력자’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 크게 개발/운영으로 이원화해서 보았지만, QA가 관여하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강연자로 나섰던 SK미디어 정웅모 팀장은 “대부분의 게임 개발이나 운영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메인 업무가 아니라 이른바 ‘사이드잡’에 해당하는 사소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공백이다. QA는 그런 부분에서 윤활유와 같은 ‘버프’ 역할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 QA 역시 운영파트에서 처리하는 하나의 업무로만 머무르는 것이 게임업계 전반의 잘못된 인식이다. 현재 운영과 QA 파트는 같은 운명에 처해있다. 게임 개발 및 서비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영향력이 게이머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조적 업무로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 끝에 누군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QA 파트가 그런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업무나 역량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성과는 연봉으로, 역량은 직책으로 돌아온다. 게임개발의 중요성을 떠나 회사적으로 보아, 정확한 업무 역량 평가 기준이 없는 한 해당 업무는 누구에게나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들이 일한 만큼의 정당한 몫은 어떤 기준으로 돌려줄 것인가? 결국 민감하고 원론적인 노동문제가 되어버렸다. 강연내용에 빼곡한 메모를 게임업계 경영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여러 개의 세션이 동시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자가 참석하지 못한 다른 세션의 모습

현재의 게임업계, ‘바다이야기’ 때보다 더 힘들다

개별 섹션이 끝나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야외 저녁 행사가 이루어졌다.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삼삼오오 테이블로 사람들은 미뤄뒀던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았다. 나 홀로 게임기자 자격으로 참석한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기대만큼 특종(?)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최근의 까칠한 기사들로 마음을 다친 이해관계자들을 두고 해명도 해야 했다. 이것이 영문도 모른 채 적진에 떨어진 일반병의 심정인가! “결코 여러분들이 혹은 게임회사가 미워서 게임이 이상하다, 회사가 안 좋다, 운영이 나빴다라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 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야만 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이런!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사람들이 어울리는 자리이니만큼, 테이블로 모인 여러 사람을 통해 최근의 근황과 이직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적은 행사였기 때문에(게임업계 여성비율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여자만 셋’이 앉아있는 우리 테이블로 찾아오는 분도 많이 있었다. 수 차례 이어지는 명함교환과 건배덕분에 사람들의 얼굴은 모자이크처럼 빠르게 겹쳐졌다. 게임업계 특유의 잦은 이직상황이나 최근의 구조조정이나 기업인수가 결정된 업체의 사정도 비교적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 흥겨운 바베큐 파티, 소박한 자리에 아이를 대동한 단란한 '게임가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누군가는 현재의 게임업계가 ‘바다이야기’ 사태로 곤혹을 치르던 당시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이나 프로젝트 축소 등으로 인해 ‘자의반타의반’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더욱 심해졌다. 이름 있는 게임업체로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갈망은 조금 더 강해졌다.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신생개발사나 소규모 개발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비율 대비 효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게임업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인원감축이었다.  

애초에 뿌리가 약한 게임업계에 고용불안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바다이야기’는 외부효과였고, 지금의 문제는 누적된 문제로 인한 내부효과다. 그 혼돈과 상처는 더욱 컸다. 오고 가는 술에는 미운 상사에 대한 원망, 나의 가치를 몰라주는 회사에 대한 아쉬움, 더 성장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섞여있었다. 밤은 파랗게 깊어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는 줄 몰랐다.

디아블로3가 공개되던 날, 서울에는 비가 내렸다

‘저질체력’으로 인해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던 나는 다음날에야 그 술자리가 방으로 이어져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위한 재교육 이외에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마지막까지 뜨거웠던 경품추천 현장. 기자도 '하나만' 하고 간절히 바랬으나, 결국 실패!

오전 9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두 번의 초청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행사 종료 인사 후에 짐을 싸서 다시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을 새워 이야기한 사람들과 아침부터 내린 비 덕분에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은 더욱 조용했다. 1박2일 짧은 여행의 뒤를 쫓는 비는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이번 서밋에 참여한 사람들 대다수가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 더 배워보고 싶은 희망과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바다이야기때보다 힘들다’라고 말한 이의 목소리는 올라가는 내내 가슴을 눌렀다. 그날, 파리에서는 ‘디아블로3’가 공개되었다. 멀리 파리에서 시작된 환호성은 온라인으로 이어졌지만, 나는 크게 감응할 수 없었다. 환호성보다 나를 흔드는 것은 한숨 소리였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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