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상 최초의 30대 프로게이머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E-스포츠의 아이콘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임요환 선수다. 프로게이머란 직군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또 프로게이머의 선수생명이 얼마나 될 것이냐는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프로야구, 축구와 달리 E-스포츠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물음은 아직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데뷔부터 2009년까지 햇수로 10년을, 게다가 앞으로도 프로게이머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떤 직업이든 10년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프로’의 세계에서 말이다. 그는 '나만큼 미쳐봐'라는 자서전에서 30대까지 프로게이머를 하고싶다고 밝혔었고 결국 최초의 30대 프로게이머란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랐다. 그 동안 E-스포츠를 알린 임요환의 업적은 분명 평가 받을 만하며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버텨낸 실력에 대해서도 역시 높은 평가를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인지도가 높다 해도 실력이 없다면 버텨낼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다른 프로게이머들은 요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비록 요즘은 어린 선수에게 다소 밀리는 감도 없지 않지만 전성기의 강렬함을 길게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업적이다. 그와 비슷하게 한때 최강 혹은 무적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선수들은 여럿 있다. 그러나 그 실력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점에서 임요환은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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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1호였던 신주영, 쌈장으로 이름을 떨친 이기석, 게을렀지만 너무도 잘했던 기욤 패트리까지 잠깐 정상에 있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임요환만은 17개월 연속 케스파 랭킹1위라는 기록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제 우승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활약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만은 여전하다. 마치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 선수를 보는 느낌이랄까. 분명 전성기 때의 폭발적 기량은 보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공군 에이스 팀에서조차 ‘5할 본능’이라는 별명처럼 승률 5할을 유지해온 그이다. 필자는 그런 그가 E-스포츠의 아이콘이자 ‘영원한 에이스’로 오랜 기간 활동하기를 바란다. 그 뿐만 아니라 ‘올드’로 분류되는 다른 게이머들도 오래오래 활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것이 바로 E-스포츠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
대표적 올드게이머 임요환
어느 누군가는 에이스의 조건으로 ‘기분 좋을 때 누구도 못 건드리는 것’을 뽑는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진정한 에이스란 컨디션 좋고 기분 좋을 때 올킬을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분도 나쁘고 컨디션도 바닥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지지 않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진정한 에이스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완전히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졌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임요환의 견고함은 에이스의 능력이라고 부를 만하다. 2003년 광복절날 벌어진 마이큐브배 스타리그 16강 대(對) 도진광 전에서의 보고도 못 믿을 대역전극과 통산승률 57.9%가 그 견고함을 잘 말해준다.
▲ ‘대도진광전’ 최강의 역전극이라 해도 될만한 명승부였다
임요환하면 마린 한 기로 럴커 한 기를 잡아내는 현란한 컨트롤, 드랍십을 활용한 빼어난 전투지휘, 벙커링 등 오늘날 사용되는 다양한 전술전략들을 실전에서 사용한 전략가이자 월드사이버게임즈 2년 연속 우승자이며 메이저 개인리그 우승 3회 및 준우승을 4회나 해낸 실력자이다. 한 마디로 그는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0년 데뷔 이후 2005년까지 매우 강렬한 족적을 남겼으며 이후 2009년에 이르기까지 보통 프로게이머들을 확실히 능가하는 활약을 펼쳐왔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임요환은 자타공인, 명실공히 최강자이자 E-스포츠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아침마당에도 나가게 되고 공중파 방송에도 몇 차례 출연해서 E-스포츠를 알려왔다. 이로 인해 그 인지도는 여타의 프로게이머들이 차마 넘볼 수 없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프로게이머의 무덤인 군대라는 벽마저도 그를 위해 창단된 듯한 ‘공군 에이스’팀을 창단하며 그로 하여금 감을 잃지 않게 하였다. 사실 임요환이 30대 프로게이머가 되는 데에는 ‘공군 에이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그 ‘공군 에이스’ 창단에 임요환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E-스포츠가 정식스포츠냐 아니냐라는 논란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마당에 가장 보수적인 국방부에서 가장 진보적인 상무팀을 설립한데는 임요환이라는 스타와 그 이름값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군으로서도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이미지 개선의 효과를 보긴 했다.
▲ 그 인지도는 상상이상이다
▲ 공군 에이스를 마치고 제대
프로게임의 롱런, 그 열쇠는 올드들의 손에
필자는 언젠가 참여했던 KESPA 회식자리 건배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야구를 넘어, 축구를 넘어!”
대단한 야망이고 포부다. 언뜻 불가능할 것처럼도 여겨지지만 그 들의 건배사에는 진정성이 있었으며 낭만이 들어있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성적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며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이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승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드라마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 프로야구가 그랬던 것처럼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가 맹활약을 펼친다든지 굴곡 많던 선수가 다시 돌아와 좋은 플레이를 보인다던가 하는 일들 말이다. 힘든 재활의 시간을 이겨낸 선수의 눈물에 자연스레 팬들은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많은 시간에 걸쳐 기회를 주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20대 초반에서도 은퇴를 고려하게 된다. 낭만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이런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팬들이 ‘불사조 박철순’, ‘무등산폭격기 선동열’, ‘고무팔 최동원’, ‘선린상고 노준 오빠’와 같은 옛날 선수들의 이야기와 ‘양신 양준혁’, ‘바람의 아들 이종범’, ‘회장님 송진우’, ‘송집사 송지만’과 같은 현역선수들 전성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처럼 E-스포츠의 팬들도 언젠가는 같이 늙어가는 올드게이머들의 이야기들을 그 들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날이 와야 야구를 넘고 축구를 넘는 상황을 기대라도 할 수 있다. 물론 전제는 그 올드게이머들이 오래오래 활동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종범, 양준혁 선수처럼 말이다.
▲ 필자가 어릴 때도 이종범은 잘했으며 지금도 잘한다. 팬들에게 있어서 그는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은 어떨까? 과연 10년 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올드플레이어 한 명을 가리키며 저 선수가 어떤 선수였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때까지 플레이 하는 선수가 있기는 할지 의문이다. 말로는 “야구를 넘어, 축구를 넘어” 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런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30대가 아니라 40대 프로게이머까지 나와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올드게이머들이 계속해서 활약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바로 E-스포츠의 존재와 관련된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내용은 올드 게이머들이 언제까지 플레이 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언제까지 스타판이 유지될 것인가, 곧 언제 망할 것이냐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올드게이머들이 쥐고 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군이 생겨나게 한 이들과 그 직업을 계속해서 유지해내는 이들. 이들이야 말로 그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일 것이다. 올드들이 30대를 넘어 40대까지 계속해서 활동을 해야 하고 은퇴 이후에도 게임 관련 업무를 하며 큰 틀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약 10여년 간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산업적으로 가치있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야하는 역할은 바로 올드들에게 지워진 책임이다.
야구나 축구가 국민스포츠로 자리잡는 과정에는 수 많은 스타들이 있었다. 그 들은 선수시절에는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을 즐겁게 하였으며 또한 잠시 잠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팬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오랜 현역을 마친 후에는 그럴듯한 은퇴식을 가졌으며 은퇴 후에도 지도자로, 관계자로 자신의 종목에 이바지하며 국민스포츠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올드 선수들이 해내야 한다.
지난 6월 20일 올드게이머 중 한명인 홍진호 선수가 735일만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것도 김택용 선수를 상대로 거둔 값진 승리다. 이 승리에 팬들은 열광했다. 동시간대 시청률도 1위를 했고 검색어 순위도 1위로 상승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드라마이다. 내가 좋아했던 선수가 노쇠함에 따라 기량이 쇠퇴하는 것을 어쩔 수없이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이 들 수록 관록과 여유가 넘치며 이따금씩 강렬한 한방을 날려주는 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다.
▲ 장내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홍진호의 승리!
게임은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팬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안다. 아깝게 지더라도 다음 번에 이기면 된다며 선수를 위로하는 게 바로 팬이라는 존재이다. 팬이 없으면 모든 스포츠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 팬들을 오래 유지시키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게 만드는 것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최근의 풍토는 그런 선수들을 너무도 빨리 은퇴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임요환을 비롯한 올드게이머들은 남아있다. 필자는 올드들이 ‘황제’나 ‘폭풍’, ‘본좌’가 아닌 ‘불사조’로서 더 이상 마우스 클릭할 힘조차 남지 않게 완전 연소한 이후 그럴 듯한 은퇴식을 하며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 시점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것이 E-스포츠가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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