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특수하거나 전문적인 언어가 일상언어로 들어와 일반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언뜻 이해가 안되는 분들을 위해 예를 들자면 본래 탄광에서 쓰이던 ‘막장’, 증권시장에서 쓰이던 ‘상한가, 하한가, 블루칩’, 의학계에서 쓰던 ‘브이텍(심장질환의 일종, 드라마 뉴하트 방영 당시 유행했다) 등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금방 되시리라.
게임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게임에서 유래한 어휘들도 심심치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다.(우리나라 사전은 신조어에 대단히 인색한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상으로 들어온 게임언어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상당부분 우리 생활에 녹아들었다고 볼만한 어휘들로 골라보았다. 지금부터 게임에서 탄생한 일상언어 속으로 들어가보자.
얼마 전 뉴스에서 흥미로운 신조어가 등장했다. 바로 ‘빵셔틀’이란 단어였다. ‘빵셔틀’이란 학교폭력의 한 형태로 일진, 즉 소위 잘나가는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 빵심부름을 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외에도 숙제셔틀, 자장셔틀, 담배셔틀 등 각종 ‘셔틀’이 난무한다고 한다. 의미를 살펴보자면 셔틀=심부름 정도로 보면 무방하겠다. 물론 매우 잘못된 행위이다.
▲ 대한민국빵셔틀연합회라는 카페이다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도 잘 나가는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종종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그냥 심부름이라고 했지 ‘셔틀’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이 도대체 ‘빵셔틀’이란 단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답은 국민게임의 반열에 오른 스타크래프트에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3개 종족 중 프로토스 종족에는 ‘셔틀’이라고 하는 수송선이 있다. 게이머는 이 ‘셔틀’유닛에 병력을 실어서 적진에 실어 나르거나 전략적 행동을 취한다. 흔히 셔틀에 리버를 태워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바로 여기서 쓰이는 ‘셔틀’유닛이 심부름을 가리키는 ‘셔틀’이라는 말로 바뀌어 쓰이게 된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셔틀’은 공격력이 없고 대미지를 입더라도 원하는 명령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반에서 만만하고 말 잘들으며 반항하지 않는 학생들을 일컫게 된 것이다. 여기에 빵을 빨리 잘 사오면 ‘속업셔틀’, 중간에 빵을 뺏기면 ‘셔틀추락’이라고 한다. 이 쯤되면 뉴스에도 나온 ‘빵셔틀’이라는 말의 유래는 '스타크래프트임'이 확실해 보인다.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오른 스타크래프트인만큼 다른 용어들도 배출했다. 'GG친다’와 ‘버로우탄다’가 그것이다. 먼저 ‘GG친다’에 대해 알아보자. 이해하기 쉽도록 예문을 보도록 하자.
사례1
남: 이번 시험 너무 어렵지 않았니?
여: 문제가 말도 안돼. 시험범위에서 나온 거 맞아? 나 완전 GG치고 나왔잖아.
사례2
여1: 너 아직도 그 남자 좋아해?
여2: 이제 GG쳤어. 안되겠더라구.
금방 감을 잡으시겠는가? 위 사례에서도 보듯이 GG는 항복, 포기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용어는 게이머들 사이의 채팅관습에서 유래되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경기 막바지에 패배를 직감한 게이머가 상대에게 ‘좋은 승부였다’라는 의미로 ‘Good Game’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행위가 프로게이머들간에 패배를 인정하는 메시지로 널리 쓰였다. 이러한 모습이 스타중계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파를 탔고 이로 인해 ‘GG친다’라는 말은 항복과 포기를 뜻하는 말로 유행하게 되었다. 비단 남성들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도 ‘GG친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은 ‘스타크래프트’가 낳은 또 하나의 게임용어인 ‘버로우’에 대해 알아보자. ‘버로우’는 영어단어 burrow(구멍을 파다, 숨다 등으로 번역한다)에서 온 단어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종족 중 하나인 저그 종족은 땅 속에 숨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적들의 눈을 피해 매복이 가능한 것이다. 그 중 럴커 유닛은 버로우를 통해서만 공격이 가능하기도 하다.
아무튼 버로우라는 단어는 흔히 숨는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고 ‘잠수를 타다’라는 말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다가 논리에서 밀린 경우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고 잠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를 통칭하여 ‘버로우를 탄다’고 칭한다.
예를 들어 한 음악관련게시판에서 어떤 유저가 레드제플린의 인지도가 FT아일랜드와 비교해봤을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다면 순식간에 맹공격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욕설과 격한 표현을 섞어가며 원색적인 비난을 받을 경우 본래 글 작성자도 대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목조목 납득할만한 근거를 대가며 비판할 경우 반박할 의지를 잃고 게시판에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게시자가 ‘버로우 탔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에서도 논쟁이나 실력경쟁 등에서 밀린 경우를 ‘버로우 탔다’로 지칭한다. 정도가 심할 경우 ‘캐버로우’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접두사 ‘개-’(ex: 개망나니, 개망신)를 강하게 발음하여 ‘캐-’가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예문을 보자.
예문1
남1: 너 어제 축구봤냐?
남2: 어. 어제 호날두 완전 캐버로우 타던데.
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어제 축구경기에서 호날두가 보통 못한 것이 아니라 아주 못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대단히 뛰어난 무엇인가를 내세우며 그보다 못한 다른 이들은 나서지 말라는 의미에서 ‘버로우’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문2
병장1: 소녀시대 각선미 앞에 모두 버로우!
병장2: 각선미는 유이! 소녀시대야 말로 유이 앞에 버로우 타야지.
위 예문에서 ‘버로우’는 일종의 명령형으로 가장 뛰어난 실력자 앞에 패배나 열세를 인정하라는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만약 상대가 패배나 열세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의 왈가왈부를 거부하는 명령어인 ‘닥치고’를 첨가한 ‘닥치고 캐버로우’라는 거친 표현이 등장할 수 있다. 보통 ‘닥치고 캐버로우’라는 표현은 우위에 있는 논쟁 당사자가 쓸 수도 있지만 방관하던 제3자가 논쟁 당사자를 대신해 “이만 닥버 하시죠?”란 표현을 대신 써주기도 한다.
▲ 유이 앞에 닥치고 캐버로우는 점차 현실이 되가는 듯도 하다
다음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게임들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특정게임에서 유래한 경우가 아닌 경우 출처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예로는 ‘득템’, ‘현질’ 등이 있다. 위 용어들 같은 경우 간결한 축약을 주로 하는 게임용어가 가장 잘 드러난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득템’이란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얻을 득(得)자에 item을 합친 합성어로 아이템을 얻었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이 용어는 게임 속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10대, 20대 계층에서 활발히 사용한다. 필자의 경우 50대인 어머니께서 필자에게 이 용어를 사용하셔서 놀란 적도 있었다.
예문1
필자: 어제 길 가다 천원 주웠어요.
어머니: 그래? 득템했네?
필자: .......!?
예문2
남1: 벼룩시장에서 득템했어요.
남2: 그래? 뭔데?
남1: 삼국지 한질을 만원에 샀지요.
위와 같이 ‘득템’이란 용어는 예상치 않은 물건이나 금전 등을 무료로 얻거나 쓸모있는 물건을 구입하다 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 이런 걸 득템이라고 해야 하나요.
다음 용어는 ‘현질’이다. 이 용어 같은 경우는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현금을 주고 구매한다는 의미로 ‘현금으로 지르다’의 약어라고 보면 되겠다. 보통 캐시아이템(유료아이템)이 없던 예전에는 게임유저 개인 간 아이템 거래를 ‘현질’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캐시아이템이 만연한 요즘에는 캐시아이템을 구매하는 것도 ‘현질’의 범주에 넣는다. 현재 게임생활에서 현질이란 개인간 아이템 거래와 캐시아이템 구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 용어가 현실로 들어오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참지 않고 사버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예문1
여1: 어제 저녁에 마음에 드는 구두 발견했어.
여2: 그래서 샀어?
여1: 바로 현질해버렸지 뭐야. 이번 달도 또 적자야.
감이 오시는가? 실생활에서 ‘현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사실 필자는 이 기사를 쓰는 도중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을 옷 4벌을 ‘현질’했다. 실생활에서 현질을 하게 되면 실생활에 유용한 물건이나 얻게 되겠지만 게임 내에서 강한 현질의 욕구를 느끼게 되면 곤란하다. 현질을 한 이후 밀려오는 후회감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잘한다고 무슨 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닌데 승률을 높이고 싶다 내지는 멋져보이고 싶다라는 욕구 때문에 현실의 돈을 게임 내에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란 것이 한번 빠지면 답이 안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리가 오더라도 ‘현질’을 하고야 만다. 요즘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PVP를 적극 권장하고 아이템의 효과가 매우 커서 약한 능력의 캐릭터라도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면 나보다 강한 적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런 고급아이템을 정상적인 플레이를 통해 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 마당에 현금을 들이면 쉽게 그런 고생을 접을 수 있다. 이러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게임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현질을 조장하는 요즘 게임의 행태에는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 일상언어 속으로 들어온 게임용어에 대해서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분들은 저런 말을 얼마나 쓰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지만 이 단어들은 분명히 온라인이나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신조어들이다. 현대 신조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언어학적 관점에서 분명 필요한 일이다. 외국의 경우 ‘옥스퍼드 영영사전’의 경우에는 지속해서 신조어들을 사전에 등재한다. 비록 그것이 속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신조어에는 당시대인들의 생활과 사상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게임에서 파생된 신조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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