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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닮아 있는 게임 문화, 대만 시장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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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리 쏘리 쏘리 쏘리~ 내가 내가 내가 먼저~♪"

 

`아시아의 슈퍼스타`란 수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슈퍼주니어가 `쏘리, 쏘리`로 대박을 치고, `가을동화`와 `여름향기`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 붐이 일고 있는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대만(타이완)입니다. 한류 열풍은 굳이 대만이 아니더라도 아시아권에 속한 나라라면 대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대만은 조금 더 `특별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단례로 한 여중생이 한국 기자분에게 갑자기 확 달라 붙어 팔짱을 끼더니 사진을 함께 찍자고 요구하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만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선망의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특별하고 신비롭게 생각한다고 하는군요.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안 붙고 이씨... 네, 아무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장제스 총통 기념관,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다죠~

 

 

사실 대만은 이번에 처음으로 가본 나라였습니다. 기자와 같은 성(姓)에 이름까지 비슷한 장제스 총통 덕분에 어린 시절이면 어른들로부터 `이녀석 장제스 총통이네!`라고 자주 불렸던 터라, 그분의 나라를 직접 방문하니 뭔가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장제스 총통의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는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진 그런 곳 같은 기분도 슬며시 들었으니까요. 하핫, 농담입니다. 농담

 

출장의 목적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 출시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스포츠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 와우 투기장 토너먼트 대회(챔피언스 카니발)와 톰 칠튼의 `대격변` 설명회만 있었을 뿐, 커다란 이슈는 없었기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행사임이 분명하나, 대만에서는 꽤 커다란 축제로 여겨지는 거 같았습니다. 몇 천 명이나 되는 와우저들이 행사장을 방문해 실컷 놀다 갔을 정도니까요. 아리까리했지만 한국과는 다른 문화나 인습의 영향 때문이겠지요.

 

어이쿠, 서두가 길었네요. 긴 말 필요없이 닷새 동안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대만의 문화, 행사장 이슈, 대만 게임 시장의 규모와 게이머들의 입장 차이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여러분께 지금 바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봐주세요.

 

 

여러 나라의 문화를 잘 흡수해 나가고 있는 나라, 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만에서 기억나는 것이 뭐가 있더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그럴만한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생각없이 돌아다녀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여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건물이 좀 낡긴 했지만 동행한 기자 분의 말을 빌리자면 `부산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위기였고, 교통수단의 대부분이 오토바이(스쿠터)인데 이 부분 역시 아시아권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요컨대, 그렇다할 특징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지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대만은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지배를 오래동안 받아 왔기에 그들만의 전통적인 문화가 부족한 편이라고 하네요.

 

▲ 스쿠터가 주 교통수단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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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 가지 특이한 부분은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일단 대만은 365일 중에 50~100일 정도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다른 나라에 비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국민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저도 마음이 가라 앉는 듯한 우울한 그 느낌이 좋아 흐리거나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데요,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지면 좀 피곤할 거 같긴 하네요.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대만은 건물을 설계할 때 반드시 보도를 두 가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의 일반 보도처럼 하늘이 뻥 뚫린 형태, 하나는 건물로 막아두는 형태로 말이죠. 후자는 사각형에 1층만 살짝 깎아 낸 모양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스쿠터가 대중 교통이 된 이유도 바로 비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비만 입어주면 먼 길을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가족 구성이 네 명이면, 네 명 모두 개인 스쿠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고 하는군요.

 

여기서 놀라운 점은 스쿠터를 이용하는 국민들 모두 헬맷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헬맷을 쓰지 않고 운전하다 걸리면 한화로 약 3~4만원 정도의 벌금을 물게 되는데, 이 돈이면 핼멧 두 개는 살 수 있다고 하는군요. 출퇴근 시간에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스쿠터 몇 십대가 정차돼 있는 장면, 그리고 한꺼번에 출발하는 장면은 정말로 장관이더군요.

 

▲ 여름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 때문에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네요

 ▲ 기후에 맞게 변형된 대만의 건축 양식

 

 

미신을 약간 추앙한다는 점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부분이네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절대 줍지 마세요. 장가가야 할지도 모르니까요"라는 다소 아리까리한 가이드의 말이 기억에 남기 때문인데요, 이는 죽은 처녀를 결혼시켜 주기 위한 일종의 관습(결혼을 해야만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으로 가족들이 처녀의 물건을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려 두는데, 이를 남자가 주으면 그 사람은 죽은 처녀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네요. 이해되지 않지만 대만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남자가 수락하면 가족들은 그에게 약간의 사례금을 주고, 남자는 1년에 1~2번 정도 그녀를 위해 제사를 지내준다고 하네요.

 

 ▲ 대만의 전통 도교 사찰(이라고 하지만 다 모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욕 문화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 넘어 가겠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다는 미신 때문에 목욕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인파가 몰리면 시큼한 오이냉국 냄새가 사방에서 솔솔 풍깁니다. 꼭 목욕뿐만 아니라 머리도 잘 감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히 집에서는 머리 감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신 미용실이 머리 손질을 해주는 것 외에도 `머리를 감겨주는 일`을 병행하고 있어, 이틀에 한 번 정도 찾아가 머리를 감는다고 하네요. 조금 더럽긴 해도 꽤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밖에도 귀뚜라미 튀김, 개구리 뒷다리 수프, 오리발 별미 등 독특한 음식이나 길거리의 모습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이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은 제우미디어 게임메카를 방문해 주세요.

 

 

대만의 게임 문화,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네~

이번 행사의 메인 이벤트인 `챔피언스 카니발`이 있기 하루 전, 한국 기자단은 경기에 출전하는 대표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이미 e스포츠 문화에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경기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특정 전략으로 이렇게 이겨보겠다`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와우` 투기장이 e스포츠 종목으로 정착되면 어떻겠느냐라는 질문에도 굉장히 전문적인 사견을 들며 답변을 이어나갔죠.

 

하지만, 대만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과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오프라인 경기 자체를 굉장히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소감을 묻자 "굉장히 흥분된다"며 현재의 기분을 표현했고, "우승은 반드시 대만이어야 한다"는 호기 넘치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게임 대회 같은 것들이 없어 관심 받지 못하는 현실에 아쉬워 하더군요.

 

대만 선수들이 이렇게 흥분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한정원 북아시아 총괄 대표의 "대만에서는 PC방 문화가 발전해 있지 않아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죠. IT가 잘 구축돼 있어 오히려 집에서 하는 유저들이 많습니다."라는 말이 힌트가 됐죠. 대만 선수들도 이번 대회가 "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기쁜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같은 게임, 즉 `와우`를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었죠.

 

 ▲ 대만 선수(좌), 한국 선수(우) 흥! 너 따위 내가 이겨주지~

 

 

그리고 `국가 대항전`이라는 말은 대만이란 나라에 있어 의외로 크게 작용하는 듯싶습니다. 참 가슴 아프게도 대만은 중국의 간섭 때문에 올림픽 등의 경기에서 중국 국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대만 국기를 걸 수 있는 몇 가지 종목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WCG와 같은 `게임 올림픽`입니다. 지난 04년 WCG에서 대만이 `워크래프트3`로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소년은 대만에서 영웅 취급을 받았다고 하네요. 총통과의 만찬은 물론, 군대까지 면제받았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니까요.

 

더군다나 대만은 한국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조금 특별하다고 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한국에 4:0으로 패배했을 때,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에 "장하다 대만! 강호 한국에 4:0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라고 개제될 정도라니 참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챔피언스 카니발`에도 당연히 대만 국기가 걸렸는데요, 원래 중국어 발음이 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살짝 흥분한 해설진의 대화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시끄럽더군요. 그만큼 이 경기를 `중요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 같았습니다.

 

 ▲ 시연을 해보려는 와우저들로 북적거렸던 `대격변` 시연존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국가 대항전`이란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행사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들이 몰렸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개최된 WWI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었죠. 메인 무대와 서브 무대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계속 진행됐고, 내부에서는 즐거움을 유발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사장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중학생,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청소년들이었죠. "대만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인정하는 편입니다. 한국처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죠. 집에서 게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현상이라 PC방으로 갈 필요도 없는 거구요."라는 한정원 대표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더군요.

 

 ▲ 다채로운 이벤트가 사방에서 펼쳐 졌습니다~ 오닉시아 시스터스의 공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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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행사에서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챔피언스 카니발`에서 대만 팀이 1차전에서 모두 탈락했다는 점입니다. 실력과 경험의 차이 때문인지, 대만 선수들이 맥을 못추더군요. 경기에서 패하면 무대에서는 굉장히 슬픈(?) 음악이 깔리고, 해설자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힘없이 진행을 이어 나가더군요. 어쩌다 한번 이기기라도 했을 때 `타이완! 타이완! 타이완`을 내지르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마치 월드컵에서 한국이 한 골 넣은 것과 맞먹는 수준의 아우라가 뿜어지더군요. 한 팀 정도 결승까지 올라갔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흐흐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와우`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한정원 대표는 양 국가 유저들이 어떤 차이점이 있냐는 질문에 "대만 유저들은 매우 특이하게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게시판 등을) 꼼꼼하게 찾아본 뒤에, 정말로 못 찾겠으면 그제서야 문의를 하는 편입니다. 일단 내지르고 보는(웃음) 국내 유저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죠"라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빨리, 빨리`를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흥미로운 답변이었죠.

 

▲ 한정원 대표와의 기자 간담회도 잠깐 이루어 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실제 게임 플레이는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는 `골드 입찰제`의 경우, 대만에서도 서서히 나타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골드 입찰제`란 파티로 대빵을 잡고 나온 아이템을 주사위로 굴리는 것이 아니라 게임내 화폐인 `골드`로 그것을 경매하여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미국/유럽쪽 게이머들은 이 룰을 듣고 매우 놀랐지만 대만은 너무 자연스럽게 `아 그거! 우리도 하고 있어`라는 반응을 보여 오히려 제가 더 놀랐습니다.

 

가장 즐겨하는 콘텐츠도 레이드로 같았습니다. 투기장같은 PvP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양 대표 선수들의 답변을 기준으로 한국은 5%, 대만은 10% 정도가 되는 거 같다고 하네요. 그리고 파티를 모을 때 `조건을 보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파티 대장이 파티원들의 아이템 수준, 경험 등을 꼭 체크한다는 거죠. 처음에는 조건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양심없는 유저들이 많아 너무 싫다면서 꼼꼼하게 조건을 본다고 하네요. 전체적으로 게임 플레이 방식은 한국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에 응해준 `그분`, 유명한 길드의 길드마스터라고!

 

 

가까운 나라 대만? 가깝지만 먼 나라 대만?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대만은 딱 부러지게 이렇다할 특징이 없어 보입니다(비록 5일 정도 밖에 지내지 못했지만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게임 문화가 한국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섞어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국의 게임 문화나 습성에 꽤 영향을 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인구수는 작지만, IT가 발전해 게임 시장이 꽤 거대하다는 기본 바탕도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죠.

 

이 상태로 간다면 몇 년 뒤의 대만은 분명 지금의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이 오히려 기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게임 문화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표점’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한국 게임 시장의 영향력에 대해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요컨대, 저는 대만을 가리켜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냥 ‘가까운 나라’, 이게 가장 올바른 표현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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