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연 후기는 6일 공연을 관람하고 쓰여진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대중문화예술에 대해서 콧대 높은 예술의 전당에서 게임음악 콘서트가 열렸다. 게임 관련음악회가 열린 것이 처음은 아니다. '디제이맥스포터블'의 음악회가 홍대에서 열린 적도 있고 ‘리니지2’ 콘서트도 열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의 게임음악 공연의 ‘예술의 전당 입성’이라는 타이틀은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다. 더구나 예술의 전당은 대중문화공연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카네기홀 공연경력도 있는 가수 인순이씨는 2번이나 예술의 전당 대관에 실패한 전례도 있다. 이렇듯이 대중음악에 배타적인 자세를 보이던 예술의 전당에서 게임음악콘서트가 열린 일은 이례적인 일이다. 예술의 전당이 높은 분들 보시기에 거슬리는 ‘한낱 게임음악’ 따위에 2523석 규모의 대형 콘서트홀을 개방한 이유는 출연진이 워낙 뛰어나서 거부할 이유가 없어서라고 한다.
타임지 선정 넥스트 뮤지션 100인에 선정된 노부오 우에마츠, 그래미상을 받은 유명 지휘자 아니 로스와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그랜드합창단, 기타리스트 배장흠씨와 성악가 한지화, 김소영, 하만택, 정건채씨까지 모두 웬만한 클래식 공연에 나와도 모자라지 않을 화려한 면모였던 것이다. 그 덕택에 다른 예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예술의 전당을 빛낸 것이다.
▲ 모네,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 파판?
애초에 ‘덕후(?)들만의 파티’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관객들 중에 2.30대 남성관객들이 제일 많 아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10대와 40대, 50대까지 다양했으며 여성관객들도 많았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으며 여느 공연과 다를 것이 없는 관객구성이었다. 우리나라에 ‘파이널판타지’ 팬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현장에는 ‘파이널판타지13’ 등장인물들의 등신대가 있었고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티셔츠와 음악 씨디 등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만약 여기서 PSN ‘파이널판타지’ 다운로드권이나 전작들의 타이틀을 팔았다면 엄청나게 팔렸을 것이다. 그만큼 기념품 구매의 열기는 뜨거웠다. 엄청난 인기를 반증하듯 티켓을 받기 위한 줄이 매우 길었는데 티켓을 받기까지 약 20분이 소요될 정도로 관객들이 몰렸다.
▲ 등신대와 플래카드
‘파이널판타지’ 콘서트는 무슨 매력이 있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먼저 추억이라는 코드가 있겠다. 다음으로는 ‘파이널판타지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파워를 들 수 있다. 1987년 12월 18일 ‘파이널판타지’가 탄생한 이후 13편에 걸치도록(파생게임까지 합치면 30개 이상) ‘파이널판타지’라는 브랜드는 JRPG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역사가 오래된 게임이다 보니 전편을 다 해본 플레이어는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의 가슴을 적셨던 감동적인 스토리와 음악들은 여전했다. 그리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몇 가지 정서는 관객들을 하나로 묶었다. 초코보 테마와 승리의 테마는 관객들을 웃음짓게 했고 에어리스의 테마와 ‘Eyes on me’는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셨다. 저마다 ‘파이널판타지’와 함께 울고 웃었던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핵심은 바로 추억이었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존재한다. 추억은 아름답게 기록되고 아련하게 남는다. 지하철에서 파는 7080팝송이 생각보다 잘 팔리고 연예인들이 TV에서 추억장사를 해도 먹히는 이유는 다 마찬가지다. 디스턴트 월드 콘서트는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아련한 추억을 남들과 함께 다시 꺼내어서 닦아 볼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다음으로 화려한 공연진과 영상미이다. ‘파이널판타지 디스턴트 월드’는 '파이널판타지'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시작한 공연으로 2007년부터 월드투어를 시작해서 도쿄, 스톡홀름,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을 순회하였으며 한국에도 온다온다 말만 있다가 드디어 오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끄는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최상의 음질로 그 시절 그 감동을 불러일으켜주며 화면에는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당시의 게임화면을 띄워준다. 이러한 기획은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필자 역시 미디음악으로 듣던 그 음악을 최상의 음질로 현장에서 듣는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고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검색하며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예매했다.
▲ 중간휴식 중 무대모습이다. 실제 공연에는 약 100여명이 올라왔다
아쉬움도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관객들이 너무 많이 몰린 탓인지 공연 시작이 되어도 티켓팅이 끝날 줄을 몰랐다. 필자도 공연시작 20분전에 도착했지만 공연 1분전에 겨우 입장에 성공해서 공연전체를 즐길 수 있었다. 오프닝 곡인 ‘Liberi Fatali’이 끝나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들어왔다.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 아쉬울 뿐이었다.
▲ 공연 1분전 매표소 상황
또한 가수 이수영씨의 ‘얼마나 좋을까’도 반주와 노래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을 남겼다. 2차 공연에서는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공연프로그램이 ‘FF8’, ‘FF7’ 위주로 짜여져서 다른 작품들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듣지 못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메인테마, Melodies of Life와 Cloud Smile을 듣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2부에 걸쳐 진행된 공연의 내용이 알찼기에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 프로그램. 인기곡인 편익의 천사가 리스트에 없어서 앵콜곡으로 나오리라 예상했다
본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준비된 ‘FF6’의 Terra's Theme가 연주되고 화면에는 ‘FF6’의 저 유명한 장면 위로 엔딩스탭롤이 올라갔다. 관객들은 공연이 마무리 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 이 화면 위로 스탭롤이 올라갔다. 팬들을 고려한 실로 멋진 마무리였다
1부와 2부로 나뉜 공연은 모두 끝이 나고 관객들의 박수는 끊일 줄을 몰랐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앵콜곡을 준비하고 장내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중 최고의 인기곡이라고 할 수 있는 ‘One Winged Angel(편익(片翼)의 천사)’이 흘렀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아니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 작곡자인 노부오 우에마츠는 합창단 옆에 서서 코러스를 도왔고 세계적인 지휘자 아니 로스는 70인조 대형 오케스트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었으며 30여명의 합창단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앵콜곡을 불렀다.
공연장에 꽉 들어찬 관객들은 앵콜곡이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공연이 더 이어지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약 2시간에 걸친 열광적인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의 가슴속엔 저마다 파이널판타지와 맺었던 각자의 인연들과 추억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가슴 속에도 지난 날 그 캐릭터들, 감동들이 새삼스러이 살아났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도 파이널판타지’ 전편을 다 해본 것은 아니다. 일부분만을 접했을 뿐이다. 슈퍼패미컴으로 6, 플레이스테이션으로 ‘FF7’, ‘FF10’, ‘FF10-2’, ‘FF12’. NDS로 ‘FF3’를 해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장기를 ‘파이널판타지’와 함께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에어리스의 죽음에 눈물 흘렸고 티나의 운명에 가슴 아파했으며 티더와 유우나의 이별을 안타까워했고 초코보 레이싱에 웃음지었다.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2,30대 연령층의 관객들은 대부분 성장기를 ‘파이널판타지’와 함께 추억을 공유해 온 이들이었다. 추억의 힘은 이 많은 사람들을 이 곳으로 불러모으는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 저 문양이 얼마나 많은사람들을 설레게 했을까?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싫증이 나서 헤어지기도 하고 피천득님의 글처럼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하고 잊은 것처럼 살기도 한다. 하지만 잊은 것처럼 보이지만 첫사랑처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역사에는 지금껏 무수한 게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임이 대다수이지만 그 중에는 마치 첫사랑처럼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안긴 게임들도 있다. 어떤 이들에겐 ‘파이널판타지’ 시리즈가 바로 그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잊고 살았던 어린 날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헤어졌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추억의 앨범을 들춰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처럼. 눈가엔 눈물을 머금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첫사랑 ‘파이널판타지’를 만나러 예술의 전당을 찾게 만드는 일본의 문화적기획력이 두려우면서도 부러웠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파이널판타지6’와 만나던 날. 티나를 처음 만났던 꼬마는 어느 새 훌쩍 커버렸지만 티나는 사진첩 속의 아이처럼 그대로 있었고 여전히 눈 속을 헤치고 걸었다. 1996년에 만났던 친구를 2010년이 되어서 다시 만날 줄이야. 필자의 나이도 어느덧 27살이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10대 소년으로 돌아가서 그 시절 그 게임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실크송, 헬 난이도 열리는 ‘코나미 커맨드’ 있다
- 엔씨 명운 달린 아이온 2, 그 뒤에 펼쳐진 우려의 그림자
- 개발자 번아웃, 발라트로 1.1 업데이트 무기한 연기
- 닌텐도 '서브 캐릭터 소환해 전투하는 방식' 특허 취득
- [이구동성] 게임시장 1위 미국의 '게임 죽이기'
- 넷플릭스 시리즈 급, 실사 인터렉티브 게임 '성세천하'
- '근본'이 온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올든 에라
- 놀러와요 메타몽의 숲? 포켓몬 신작 ‘포코피아' 발표
- [오늘의 스팀] 극사실적 소방관 시뮬레이터, 판매 상위권
- 보더랜드 4, 이제 스토리 안심하셔도 됩니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