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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 연대기 2부, 임진록 형성과 스타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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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스타리그 연대기 1부, e스포츠의 태동기를 말하다

e스포츠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한국e스포츠협회와 블리자드의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 필자는 지난 10년간, 울고 웃었던 ‘스타리그’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곱씹으며 그 때의 영광을 회상하는 때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오랜 기간 ‘스타리그’를 사랑해왔던 팬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e스포츠의 태동기를 그렸던 1부에 이어 ‘스타리그’의 최초이자 최대의 라이벌 구도 ‘임진록’의 형성 과정과 스타 플레이어들의 등장 배경 및 특징을 동시에 다뤄볼 예정입니다. 2001년,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통해 결성된 임요환과 홍진호의 라이벌 관계는 9년이 지난 지금에도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표적인 대진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강력한 피지컬 능력을 바탕으로 한 차세대 선수들의 활동 역시 주목할만한 내용이라 사료됩니다.

스타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임진록’의 등장

지난 1부를 통해 소개된 ‘테란의 황제’ 임요환,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꼭 빼놓지 말고 언급해야 할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을 통해 인연을 맺은 ‘폭풍저그’ 홍진호입니다. 일명 ‘임진록’이라 일컬어지는 두 선수간의 대결은 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의 팬들에게도 회자가 될 정도로 큰 임펙트를 남겼습니다. 또한 ‘스타리그’ 사상 최초로 형성된 본격 라이벌 구도라는 점 역시 주목할만한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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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리그 세기의 라이벌, 임요환과 홍진호

이 두 선수가 첫 대결을 펼친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임요환과 홍진호는 5세트 접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칩니다. 당시 결승전에서 가장 명경기로 손꼽히는 것은 ‘네오 홀 오브 발할라’에서 펼쳐진 1경기입니다. 초반 임요환의 드랍 실패 이후, 홍진호 쪽으로 흘러가던 승기가 단 한 번의 드랍 플레이에 다시 뒤집히고 만 짜릿한 경기였죠. 본진을 수비하고 있던 다수의 병력을 소수 병력을 활용해 제압한 임요환의 화려한 컨트롤 능력은 경기를 직접 관람한 8천 여명의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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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관계는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결승 이후, 임요환과 홍진호는 대결 성사만으로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대표적인 라이벌 구도로 부상합니다. 이 두 선수의 대결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게 증명된 경기는 일명 ‘3연벙 사건’이라 불리는 2004년 에버 스타리그 4강전에서였습니다. 신예 선수들에게 밀려 좀처럼 큰 대회에서 맞붙지 못한 두 선수가 오래간만에 결승을 앞두고 팬들에게 경기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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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연속 벙커링, 30분만에 3:0으로 마감된 에버 스타리그 2004 4강전
(해당 이미지는 특정 경기와 관련이 없습니다)

두 선수의 대결을 기다리던 팬들은 양 선수간의 치열한 혈전을 감상하기 위해 피자, 치킨 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간식을 마련해놓은 채 느긋한 감상을 위한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임진록’의 결과는 3:0, 그것도 임요환이 3경기 연속으로 벙커링을 성공시키며 전 경기를 30분 이내로 마무리했습니다. 과거의 흥미진진함을 잃어버린 허무한 경기 내용에 당시, 많은 팬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분노로 돌변해버리고 말았죠.

2004년에 발생한 대사건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임진록’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두 선수의 대결 구도 자체가 지난 10년 간의 스타리그 역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9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을 통해 성사된 ‘임진록’, 승리를 거둔 홍진호, 악수를 청하며 승리를 축하하는 임요환의 모습은 옛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앞마당 먹은 이윤열, 스타리그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다!

임요환에 이어 스타리그계의 ‘4대 본좌’로 손꼽히는 이윤열은 4명의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윤열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을 상징하는 ‘골든마우스’와 MSL 3회 우승의 상징 ‘금배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수입니다. 또한 2003년, 한 번에 3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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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본좌 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이윤열

이윤열의 가장 큰 강점은 ‘앞마당’ 자원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물량이었습니다. 당시 테란은 임요환을 필두로 본진 위주의 플레이를 주로 즐기며 컨트롤을 통해 상대의 다수 병력을 상대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윤열은 더블커맨드 전략을 통해 테란 역시 다른 종족과 마찬가지로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이윤열의 강력한 물량은 스타리그계에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절대로 못 이긴다.”는 문구까지 남겼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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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스타리그에는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이길 수 없다'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었다

이윤열의 풍부한 물량 확보 비결은 뛰어난 피지컬 능력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세대 선수들의 활약으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기 시작한 ‘스타리그’에 많은 고등학생들이 도전장을 던지며 이윤열을 비롯한 강력한 어린 선수들이 2002년부터 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어린 선수들은 병력을 생산하는 왼손과 컨트롤을 담당하는 오른손의 조작을 더욱 빠르고 정교하게 다듬고, 보다 효율적인 자원 운용을 통해 병력 생산을 극대화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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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끈한 '불꽃테란'으로 명성을 날린 변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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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크 따윈 필요 없다....순수 바이오닉으로 성큰콜로니를 제압하는 강력한 '불꽃러쉬'

물량의 극대화를 통해 이득을 보고자 한 이윤열, 그러나 후반 도모보다는 초반에 힘을 실어버리는 화끈한 전략을 선보이던 선수 역시 존재했습니다. 바로 ‘불꽃러쉬’의 대명사 변길섭이죠. 변길섭은 다수의 성큰콜로니가 건설된 저그의 진영을 탱크 한 대 없이 마린/메딕/파이어뱃을 동반한 순수 바이오닉으로 빠르게 뚫어버리는 시원스러운 전략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변길섭의 전략은 이윤열의 더블커맨드에 비해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초반에 저그를 압박하는 데 뛰어난 효율을 보입니다.

3대 저그, ‘조진락’ 라인이 결성되다!

앞서 소개한 피지컬 능력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물량 추세는 저그와 프로토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홍진호의 가난한 폭풍스타일과 정반대의 전술로 높은 성적을 거둔 조용호의 ‘목동 체제’가 팬들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죠. 저그 최강의 조합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 조합(일명 울링 조합)을 구축해낸 조용호의 ‘목동 체제’는 타 종족을 상대할 획기적인 전술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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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형 저그의 약점을 극복해낸 '목동저그' 조용호

조용호의 ‘목동체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부자저그의 약점을 극복해냈다는 점입니다. 기존 ‘부자저그’ 체제에는 확장 시 다소 병력이 부족해지는 타이밍이 발생한다는 점과 테란의 드랍 플레이로 확보한 멀티를 효율적으로 지키지 못한다는 약점이 부각되어 있었죠. 그러나 조용호는 꾸준한 멀티 확보와 섣부르게 상대 병력과 대적하지 않으며 병력을 보존하는 인내심 있는 플레이로 ‘확장형 저그’의 단점을 극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러한 조용호는 추후 2003년 저그를 대표하는 일명 ‘조진락’ 라인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조진락’이라는 명칭은 ‘조’용호와 홍’진’호, 그리고 박경’락’의 이름들을 하나씩 따서 지은 새로운 별명이죠. 조진락의 마지막 자리 차지하고 있는 박경락은 대규모 드랍을 통한 견제플레이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습니다. 3방향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동시다발적인 드랍 플레이는 팬들에게 ‘경락마사지’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막강함을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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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랍을 통한 능수능란한 견제에 능했던 박경락

박경락은 드랍을 통한 견제를 통해 상대의 효율적인 병력 생산 및 테크 구축을 방해하는 한편, 자신은 빠르게 테크를 올려 상성상 앞서는 유닛 조합을 갖춰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러한 박경락의 전략은 특히 타 종족에게 높은 승률을 바탕으로 ‘공공의 적’이라는 인상적인 별명까지 얻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주 종족인 저그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 같은 종족인 홍진호와 조용호에게 번번히 4강에서 무너지며, ‘4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에 이릅니다.

박정석, 암울한 프로토스에 한 줄기 빛을 던지다

테란과 저그가 이처럼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던 2002년, 프로토스는 이전보다 더욱 심해진 암울한 분위기에 허덕입니다. 특히 당시 유일한 프로토스의 희망이었던 김동수가 군복무 문제로 잠정 은퇴를 결정하며 그 암울한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죠. 당시 김동수는 주목할만한 프로토스 신예선수로 이재훈과 박정석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이재훈은 탄탄한 기본기와 센스를 동시에 갖춘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자주 역전패를 당하며 부각할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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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울한 프로토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진 박정석

그러나 김동수가 주목한 또 다른 신예 선수 박정석은 안정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게이트웨이 기반 유닛인 질럿/드라군 만으로 저그의 병력을 상대하는 놀라운 물량 능력을 선보입니다. 초창기, 물량으로 주목받던 박정석은 팀 내 김동수의 도움으로 전략성을 보강하고, ‘하이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며 프토토스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상대 병력의 움직임을 읽어 예상 이동 경로에 정확하게 ‘사이오닉 스톰’을 명중시키는 플레이 덕에 박정석은 ‘무당토스’라는 별명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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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 머리 위로 정확하게 떨어지는 '사이오닉 스톰'은 박정석의 트레이드 마크로 떠올랐다

이러한 박정석이 프로토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2002년 SKY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의 우승입니다. 김동수의 16강 탈락으로 리그 내의 유일한 프로토스로 남은 박정석은 4강에서 당시 한 번도 꺾어본 적 없는 홍진호에게 3:2로 승리를 거둡니다. 또한 임요환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토스의 힘을 몸소 증명했죠. 박정석의 우승은 당시 프로토스 진영에 짙게 깔려있던 암울한 분위기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3대 프로토스, 스타리그를 점령하다!

박정석의 약진은 이후 2003년 물량, 견제, 전략으로 대표되는 3대 프로토스 라인을 구축해 종족의 부활을 알리는 데에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선 3대 프로토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악마토스’ 박용욱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동수의 하드코어 질럿 체제를 계승한 박용욱은 소수 유닛을 활용해 극도로 정밀한 견제 플레이를 선보입니다. 특히 초반 정찰에 나선 프로브를 활용한 견제는 박용욱에게 ‘악마의 프로브’라는 별명까지 선사했죠. 박용욱은 탄탄한 전투 능력과 견제를 통한 초반 이득을 중후반의 안정적인 플레이로 이끌어가는 탁월한 운영 능력으로 프로토스의 강력함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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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도로 정밀한 초반 견제와 안정적인 후반 운영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박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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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꾼에 불과한 프로브...그러나 박용욱이 컨트롤하면 최강의 초반 견제 유닛으로 다시 태어난다

마지막으로 몽상가 ‘강민’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초반 다수의 포토캐논을 활용한 방어 플레이로 얻은 ‘꽃밭토스’라는 별명과 함께 등장한 강민은 김동수 이후 최고의 프로토스 전략가라는 찬사를 얻습니다. 페러럴라인즈에서 펼친 이병민과의 경기에서 할루시네이션으로 다수의 아비터를 복제해 리콜을 성공시킨 플레이는 강민의 전략 중에서도 단연 획기적이라 손꼽히고 있죠. 또한 당시 많은 프로토스를 울렸던 ‘저그’에 대해 현재의 ‘수비형 프로토스’인 ‘더블넥서스’ 빌드를 창시해 안정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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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같은 획기적인 전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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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의 '더블넥서스'는 저그를 무너뜨릴 새로운 빌드로 발전했다

박용욱과 강민의 약진은 2003년 그 빛을 발합니다. 2003년 가을에 개최된 마이큐브 스타리그는 온게임넷 사상 최초로 프로토스 VS 프로토스의 결승전 대진을 탄생시켰습니다. 해당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 박용욱은 이후에도 중요한 경기마다 강민의 발목을 잡으며 무서운 천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온게임넷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강민은 동일한 시기에 진행된 2003 스타우트 MSL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죠.

전설의 계보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다

지금까지 다양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스타리그’가 전성기 구도로 올라가는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스타리그’’의 역사를 만들어온 선수들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저절로 감개가 무량해지는군요. ‘스타리그’의 규모가 확대되며 등장한 많은 선수들은 국내 e스포츠 문화가 완전하게 정착하는 데에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승리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경기를 하길 바랐던 올드 선수들의 ‘프로 정신’은 추후 ‘스타리그’에 뛰어든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큰 귀감으로 작용했습니다.

다음 스타리그 연대기에는 임요환, 이윤열, 서지훈, 최연성을 필두로 구성된 4대 테란의 강세부터 팀 단위 프로리그의 창단, 그리고 4대 본좌 라인의 완성 과정과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일명 ‘3.3’ 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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