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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고질적 약점 스토리에 골머리 앓는 '배틀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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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배틀필드’ 시리즈 최신작 ‘배틀필드 5’가 거센 논란 속에 발매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PC)’이다. 제2차 세계대전 특유의 암울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바란 팬들의 기대와 달리, 처음 공개된 트레일러부터 완전히 고증을 포기한 채 기계 의수를 장착하고 못 박은 방망이를 휘두르는 여전사와 일본도를 찬 영국 코만도를 등장시킨 것이다. 이를 두고 팬 층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의 사실적이고 진지한 서사를 포기했다는 불만을 표했고, 제작진의 대응은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배틀필드 5’를 둘러싼 문제는 결국 게임의 분위기와 줄거리, 그리고 서사에 대한 불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스토리’ 문제다. 사실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에서 스토리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언제나 ‘배틀필드’ 약점 중 하나는 스토리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둔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상 ‘배틀필드’ 징크스는 스토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스토리가 ‘배틀필드’ 감점 요인으로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한 번 스토리로 비판에 직면한 ‘배틀필드’, 이번 기회에 그 스토리에 대한 징크스를 확인해보자.

제2차 세계대전 게임 넘치던 시기, 멀티플레이로 차별화 시도했던 ‘배틀필드 1942’

제2차 세계대전 콘텐츠 붐을 일으킨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제2차 세계대전 콘텐츠 붐을 일으킨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2000년대 초반, 전세계에 제2차 세계대전 콘텐츠 붐이 일었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필두로 2001년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비롯 여러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나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시기다. 이에 게임업계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게임이 속속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인기를 끈 장르가 FPS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개인의 시점에서 전쟁을 대리체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배틀필드’ 시리즈 첫 작품인 ‘배틀필드 1942’도 바로 이 시기에 나왔다. 2002년 EA가 출시한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무대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을 그린 FPS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이 시기에 이런 FPS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EA 전작이었던 ‘메달 오브 아너’는 제 2차 세계대전 FPS 선구자에 가까운 작품으로, 당시 이미 탄탄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비슷한 작품이 하나 더 나오면 자기잠식만 일어날 것은 뻔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큰 영향을 받은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큰 영향을 받은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에 ‘배틀필드 1942’는 ‘메달 오브 아너’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묘사하기로 했다. 그 차이점은 바로 다양한 병기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전차, 전투기, 함선 등 다양한 신무기가 등장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점에 착안해 각종 병기를 플레이어가 직접 운용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이는 플레이어가 보병이 되어 전선을 뚫고 전진하는 영웅적 싸움을 다룬 ‘메달 오브 아너’와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특징이었다.

사실 각종 거대 병기를 직접 운용한다는 특징은 ‘배틀필드 1942’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코드네임 이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틀필드’ 시리즈를 개발한 DICE는 과거 리프랙션 게임즈라는 사명으로 몇 가지 작품을 개발했는데, 그 시절 만든 작품 중 하나가 제 1차 세계대전 바탕의 대체역사를 다룬 FPS ‘코드네임 이글’이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각종 병기를 몰아 전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독특함을 내세운 바 있었다.

‘배틀필드 1942’에서는 여러 병과의 합동이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배틀필드 1942’에서는 여러 병과의 합동이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배틀필드 1942’는 바로 이러한 ‘코드네임 이글’의 특징을 이어받았다. 실제로 ‘배틀필드 1942’는 ‘코드네임 이글’을 만드는 데 쓰인 리프랙터 엔진을 사용했고, 각종 전차, 전투기, 함선에 이르는 다양한 병기를 직접 타고 조종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배틀필드 1942’는 한 가지 특징을 더했다. 싱글 캠페인이 없는 멀티플레이 중심 게임이라는 점이었다. 여러 플레이어가 실제 전쟁처럼 역할을 나누고 합을 맞추어 플레이 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멀티 플레이 지향은 각 병기 특징에도 여실히 반영됐다. 예를 들어 탱크는 충분히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는 보병을 상대로 무적에 가까운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방 장갑만 믿고 혼자 돌진하다가는,사각으로 접근한 적 보병들이 후면에 폭탄을 장착해 폭파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전차가 전진할 때는 반드시 아군 보병들의 호위를 받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적이 전투기를 끌고 나오면 아군 중 누군가는 대공포를 잡고 지상군을 보호해야 게임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었다.

‘배틀필드 1942’에서 대공포로 적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모습 (사진출처: Play Archive)
▲ ‘배틀필드 1942’에서 대공포로 적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모습 (사진출처: Play Archive)

플레이어들 사이 유기적인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지는 멀티플레이는 실제로 전쟁을 치르는 듯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반면 빈약하다 못해 아예 없다시피 한 싱글플레이는 약점으로 남았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FPS는 주로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그가 겪는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전장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영웅심과 전우애를 묘사했다. 특히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오마주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레벨로 큰 인기를 얻었다.

반면, ‘배틀필드 1942’는 싱글 플레이를 지원하기는 하나 멀티플레이 모드를 NPC들과 함께 하는 방식이었기에 이렇다 할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없었다. DICE가 싱글 캠페인을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불명확하다. 다만, 게임 핵심 묘미를 여러 플레이어들의 유기적 합동에 두다 보니, NPC만 나오는 싱글 캠페인에는 애초에 큰 투자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배틀필드 1942’의 인기에 힘 업어 출시된 후속작 ‘배틀필드 베트남’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배틀필드 1942’ 인기에 힘 업어 출시된 후속작 ‘배틀필드 베트남’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멀티플레이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축한 ‘배틀필드 1942’는 2002년 발매 이래 4년 동안 미국에서만 68만 장 이상 판매됐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배틀필드’는 EA 주요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잡고 ‘배틀필드 베트남’, ‘배틀필드 2’ 등 시리즈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들 또한 초기에는 ‘배틀필드 1942’와 마찬가지로 싱글 캠페인에는 비중을 두지 않은 멀티플레이 위주 게임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배틀필드’라는 프랜차이즈가 성장하면서 DICE는 점차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출 것을 요구 받았다. 싱글 캠페인도 그 중 하나였다. ‘메달 오브 아너’와 ‘콜 오브 듀티’ 등 비슷한 FPS는 모두 영화 같은 시퀀스 연출을 바탕으로 ‘감상하는 재미’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 흐름에서 ‘배틀필드’만 빠진 상태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배틀필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EA와 DICE는 ‘배틀필드’ 프랜차이즈도 결국에는 싱글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키운 싱글 캠페인, 부진한 평가 이어지다

시리즈 최초로 싱글 캠페인을 도입한 ‘배틀필드 2: 모던 컴뱃’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시리즈 최초로 싱글 캠페인을 도입한 ‘배틀필드 2: 모던 컴뱃’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배틀필드’ 시리즈 싱글 캠페인 도전은 ‘배틀필드 2’ 성공에 힘입어 발매된 ‘배틀필드 2: 모던 컴뱃’부터 시작됐다. 이 게임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벗어나 현대전으로 넘어온 ‘배틀필드 2’ 외전 작품이었는데, 시리즈 최초로 스토리가 있는 싱글플레이를 지원했다. 그러나 스토리가 있을 뿐 진행 방식 자체는 인공지능 봇들과 하는 멀티플레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고, 실시간으로 전장에 있는 캐릭터들의 시점을 바꿔서 플레이 하는 ‘핫 스왑’ 시스템이 독특 했을 뿐이었다.

이후 DICE는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강화한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온 것은 미래전을 다룬 ‘배틀필드 2141’이었다. 이름 그대로 2141년에 벌어지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배틀필드 2141’ 스토리는 전세계에 빙하기가 도래해 북반구가 얼어붙은 가상 역사를 바탕으로, 국토 대부분이 황량한 동토가 되어버린 러시아, 중국, 한국 등이 ‘범아시아 연합’이라는 연맹을 조직해 아직 얼어붙지 않은 유럽과 아프리카 땅을 노린다는 줄거리였다.

‘배틀필드 2142’는 흥미로운 설정을 내세웠지만, 게임 내 스토리텔링은 전무했다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배틀필드 2142’는 흥미로운 설정을 내세웠지만, 게임 내 스토리텔링은 전무했다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이 작품 또한 싱글 캠페인에 비중을 둔 게임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가상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스토리 측면에 전보다는 힘을 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설정상 그렇다는 이야기로, 실제 싱글 캠페인 내에서 보여지는 스토리는 여전히 취약했다. 멀티플레이 중심 게임이라는 프랜차이즈 정체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채 약간의 새로운 시도를 한 정도였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배틀필드 2141’은 싱글 캠페인이 크게 거론될 새도 없이, 다방면에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열악한 최적화와 잦은 오류, 그리고 미래전 콘셉트 자체에 대한 팬덤의 부정적 태도 등이 주요한 문제였다. 비록 이후 업데이트를 통해 문제를 개선하며 안정화된 플레이를 보여주긴 했으나, 여러 모로 야심찬 시도를 한 작품 치고는 다소 아쉬운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업데이트 이후 주요 콘텐츠도 멀티플레이 모드인 ‘타이탄’으로, 싱글 캠페인은 부각되지 않았다.

스토리에 힘 썼지만, 코믹 분위기에 호불호가 갈린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사진출처: Tyrant Geek)
▲ 스토리에 힘 썼지만, 코믹 분위기에 호불호가 갈린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사진출처: Tyrant Geek)

2008년 발매된 다음 작품인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는 심기일전하고 아예 싱글 캠페인에 크게 집중한 게임이었다. PC가 아닌 콘솔로 발매된 데다, 콘텐츠도 스토리 중심 싱글 플레이에 무게를 뒀다. 줄거리도 여러 부대에서 문제아들만 차출해서 만든 부대인 ‘배드 컴퍼니’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 러시아 금괴 보관소를 털어버린다는 코믹한 내용이었다. 그만큼 등장인물 개성도 강하고 스토리도 풍성했다.

묘한 점은, 싱글 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또한 결국 멀티플레이 중심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힘을 주고 만든 싱글 캠페인은 특유의 코믹함이 썩 큰 인기를 끌지 못한 데 비해, 멀티플레이 모드인 ‘골드 러쉬’가 상당히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2010년 발매된 후속작인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2’는 아예 PC 멀티플레이 중심 게임으로 회귀했다. 게임 자체 성과는 좋았지만, 당초 목적이었던 싱글 캠페인에서는 큰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싱글 캠페인에 집중한 ‘배틀필드 3’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다시 한 번 싱글 캠페인에 집중한 ‘배틀필드 3’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이후에도 DICE는 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싱글 플레이 중심 ‘배틀필드’를 내놓았다. 2011년 나온 ‘배틀필드 3’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작품은 아예 영국 특수부대 SAS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앤디 맥넵을 기용해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게임 스토리와 연계된 소설책 ‘배틀필드: 더 러시안’을 발간하는 등 스토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배틀필드 3’ 또한 멀티플레이는 좋은 점수를 얻은 반면, 싱글 캠페인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얻었다.

‘배틀필드 3’ 시나리오는 ‘인민해방혁명운동’이라는 세력의 공작에 의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전쟁 직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다루었다. 시나리오 자체만 보면 준수한 첩보 스릴러지만, 문제는 스토리텔링이었다. ‘배틀필드 3’ 싱글 캠페인은 스토리는 미국과 러시아 여러 특수부대원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진행되는데, 그 탓에 스토리텔링이 다소 정신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분량까지 짧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소설까지 나왔지만, 게임 내 스토리텔링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공식 홈페이지)
▲ 소설까지 나왔지만, 게임 내 스토리텔링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의 싱글 캠페인 도전이 줄줄이 기대 이하의 성과만을 거두자 EA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데드 스페이스’로 유명한 비서럴 게임즈에게 새로운 ‘배틀필드’ 제작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 야심찬 시도는 아예 비서럴 게임즈를 공중분해 시키며 처참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의 최대 흑역사로 꼽히는 ‘배틀필드 하드라인’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에 출시된 ‘배틀필드 하드라인’은 프랜차이즈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를 꾀한 작품이었다. 우선 배경부터 달랐다. 전작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든, 현대전이든, 미래전이든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그리고 이것은 ‘배틀필드’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배틀필드 하드라인’은 국가간 전면전이 아니라 L.A. 시내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범죄조직 사이 전투를 그렸다. 팬들은 무대가 전장이 아니라는 데서 크게 반발했고, 여기에 콘텐츠 부족 및 총기 밸런스 문제가 불거지며 메타크리틱 기준 71이라는 저조한 점수를 기록했다.

갑작스러운 경찰 드라마를 보여준 ‘배틀필드 하드라인’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갑작스러운 경찰 드라마를 보여준 ‘배틀필드 하드라인’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안타까운 점은 ‘배틀필드 하드라인’이 싱글 캠페인 하나만큼은 역대 ‘배틀필드’ 중에서 가장 볼륨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전작에 비해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중요 분기점에서 보여주는 컷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몰입을 높인 데다, 게임을 중단했다 이어 할 시 드라마처럼 이전 에피소드를 짧게 보여주는 등 스토리텔링에 상당히 힘쓴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전작들의 고질적 문제였던 분량도 대폭 개선해 8시간 이상의 싱글 캠페인이 제공됐다.

그러나 크게 진일보한 싱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배틀필드 하드라인’은 ‘전장’이라는 ‘배틀필드’ 정체성을 버린 탓에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이것도 어디까지나 ‘배틀필드’ 치고 괜찮아진 싱글 캠페인이지, 다른 싱글 캠페인 위주 게임들에 비하면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해외 게임전문매체들에서는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캐릭터 성격 변화가 드러나지 않고, 진부한 내용으로 점철된 줄거리에서는 특별함을 찾을 수 없다는 매서운 비판이 연이었다.

‘배틀필드 하드라인’ 실적 부진으로 인해 비서럴 게임즈는 다시는 ‘배틀필드’ 프랜차이즈를 맡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거듭하다 2017년에는 아예 스튜디오가 폐쇄되고 말았다. ‘데드 스페이스’로 인기 개발사 반열에 올랐던 비서럴 게임즈가 ‘배틀필드’에 손 한 번 잘못 댔다가 말 그대로 공중분해 당한 꼴이다.

방향 선회한 ‘배틀필드’, 드라마틱한 멀티플레이 서사에 집중

멀티플레이에서의 드라마틱한 체험을 강조한 ‘레볼루션’ 시스템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멀티플레이에서의 드라마틱한 체험을 강조한 ‘레볼루션’ 시스템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이러한 싱글 캠페인 약점을 ‘배틀필드’는 어떻게 메꿨을까? 그 해답은 2013년에 발매된 ‘배틀필드 4’에서부터 찾을 수 있었다. 답은 멀티플레이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발생하는 드라마틱한 상황 연출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플레이어가 쏜 대포로 댐이 무너지고 물이 차올라 적이 기동을 방해 받거나, 시설을 파괴해 수로를 막아 함선을 좌초 시키는 식으로 게임 자체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이러한 ‘배틀필드 4’ 지물변화 시스템은 이른바 ‘레볼루션(Levolution)’이라 지칭됐다. 스테이지를 뜻하는 레벨(Level)과 진화를 뜻하는 에볼루션(Evolution)을 합성한 말로,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레벨이 변화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레볼루션’ 시스템 덕에 ‘배틀필드 4’ 멀티플레이는 전작들에 비해 훨씬 몰입 강한 체험을 선사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자신의 행동으로 상황이 크게 바뀌고 전세도 변화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레볼루션’ 시스템을 설명한 개발자 영상 (영상출처: 배틀필드 공식 유튜브 채널)

2016년 발매된 ‘배틀필드 1’도 비슷한 기조를 이어갔다. ‘배틀필드 1’은 역대 작품 중 시간상 가장 앞선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작품인데, 전작인 ‘배틀필드 4’가 ‘레볼루션’으로 개인적 체험을 크게 강화한 것처럼 이 작품도 고유 시스템으로 플레이어에게 매우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나만의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바로 거대한 비행선이나 장갑열차를 이용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베히모스’ 시스템이었다.

‘베히모스’는 그 자체로 거대한 전략무기다. 이를 탑승한 측에서는 ‘베히모스’를 잘 활용할 시에 게임을 크게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고, 불리한 판세를 뒤집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상대 측은 ‘베히모스’의 지나치게 거대한 크기와 사각을 이용한 공작으로 이를 파괴하는 것이 가능했다. ‘레볼루션’이 파괴나 조작을 통해 전장 환경을 바꾸는 수동적인 요소였다면, 새로운 ‘베히모스’는 보다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이러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배틀필드 4’와 ‘배틀필드 1’은 미리 짜인 스토리 없이도 특별한 서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방향을 다소 선회한 모습을 보였다.

‘베히모스’ 중 하나인 거대 비행선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베히모스’ 중 하나인 거대 비행선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배틀필드 1’은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싱글 캠페인에서도 쾌거를 이루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야만적이고 처참한 전장의 모습을 절묘하게 연출해낸 고유의 내러티브는 여느 게임에 비해서도 우수한 수준이었다. 특히나 첫 스테이지인 ‘강철의 폭풍: 여명’은 플레이어가 직접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발버둥치지만 끝내 덧없이 죽어가는 병사들의 시점을 연달아 플레이하게 해 제1차 세계대전의 잔혹함을 보여준 것으로 극찬을 받았다.

기존에도 ‘배틀필드’는 여러 캐릭터 시점을 번갈아 가며 플레이 하는 싱글 캠페인 구조를 택했다. 그런데도 ‘배틀필드 1’ 첫 스테이지가 유독 충격을 준 이유는 내러티브의 차이였다. 전작들은 그저 여러 특수부대원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활약하는 내용을 플레이 하게 해준 것이지, 플레이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배틀필드 1’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전장의 참상을 플레이어가 여과 없이 느낄 수 있게 기획한 것이다.


▲ ‘배틀필드 1’ 스테이지 ‘강철의 폭풍: 여명’ 플레이 영상 (영상출처: 배틀필드 게이밍 유튜브 채널)

이렇듯 ‘배틀필드 1’은 싱글 캠페인과 멀티플레이 양쪽에서 철저히 개인화된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기존 스토리의 약점을 메꿨다. 다만 볼륨 문제만은 그대로 남았다. 싱글 캠페인 전체 분량이 기껏해야 3~4시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 작품 덕분에 ‘배틀필드’는 드디어 기존 핵심 콘텐츠였던 멀티플레이에서의 서사성 강화는 물론이고, 싱글 캠페인에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약간 아쉬운 점도 남았지만, 그렇기에 후속작에 더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20일, 드디어 ‘배틀필드 1’ 후속작 ‘배틀필드 5’가 출시됐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은 이 게임은 출시 전부터 큰 소음에 휩싸였다. 문제는 과한 ‘정치적 올바름(PC)’ 요소가 게임에 삽입돼 감정이입을 해친다는 반발이었다. 공개 초기 제 2차 세계대전에 기계 의수를 장착한 특공대 여성 전사가 못 박은 방망이로 독일군을 두들겨 패 잡는 장면이 나왔고, 팬 층에서는 당시 시대에 너무 맞지 않아 분위기를 해치는 장면이라고 반발했다.

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킨 ‘배틀필드 5’ 초반 공개 이미지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 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킨 ‘배틀필드 5’ 초반 공개 이미지 (사진출처: EA 공식 홈페이지)

문제는 이에 대한 개발자들의 대응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증이 맞지 않는 스킨을 숨기는 기능을 만들어줄 수 있냐는 유저에게 개발진 리드 애니메이터는 ‘모두를 백인으로 만들기 버튼을 어디 두면 좋겠냐’며 상대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비꼬았다. 그런가 하면 DICE CEO인 패트릭 쇠더룬드는 반발하는 팬 층을 ‘교육받지 못한(Uneducated)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여성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면 게임을 사지 말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분위기와 서사성을 놓고 개발진과 팬들 사이에 적대감이 잔뜩 고조된 가운데 나온 ‘배틀필드 5’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 모든 콘텐츠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틀필드 5' 싱글 캠페인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이 중 지금 공개된 것은 총 세 개로, 마지막 에피소드인 '최후의 티거 전차'는 오는 12월 중 업데이트 에정이다. 

다만 이미 공개된 세 개의 에피소드에 대한 반응은 다소 미지근하다. '배틀필드 5'는 웅장하면서도 암울한 분위기로 대표되는 기존 제2차 세계대전 전쟁물과 달리,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사건들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싱글 캠페인 구성도 전면전보다는 잠입과 첩보 등에 집중했다는 점도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정리하면, 제 2차 세계대전의 웅장함을 기대한 팬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여기에 플레이 분량도 총 서너 시간 정도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도 줄어든 모습이다. 추후 마지막 에피소드 업데이트가 되어야 총평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배틀필드 1'에서 걸었던 일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시리즈 최신작 ‘배틀필드 5’, 스토리 징크스 깰 수 있을까?


▲ 출시 직전 공개된 영상은 논란을 의식한 듯 조금 바뀐 분위기를 보여줬다 (영상출처: 배틀필드 공식 유튜브 채널)

앞서 살핀 것처럼 ‘배틀필드’ 프랜차이즈는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으로 시작했고, 사실상 싱글 캠페인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프랜차이즈 규모와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배틀필드 2’ 이후 양질의 싱글 캠페인을 도입하고자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전통적인 스토리 감상 방식 싱글 캠페인을 벗어나 독특한 내러티브로 싱글 캠페인을 대체하고자 했지만, 아직까지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발매된 ‘배틀필드 5’에 관심이 쏠린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과연 ‘배틀필드 5’는 전작 ‘배틀필드 1’에서 슬슬 기틀을 잡던, 드라마틱한 개인적 체험을 내세운 멀티플레이 내러티브를 얼마나 계승했을까? 아직까지는 콘텐츠 양이 너무 부족하다는 비판이 우세하지만, 아직 마지막 에피소드가 남았다. 과연 ‘배틀필드 5’가 스토리의 징크스를 깰 수 있을 훌륭한 마무리를 지을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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