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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추억이 방울방울, 일본 체감형 게임기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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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오락실에 가면 자동차나 오토바이 혹은 비행기의 모습을 본 딴 대형 체감 게임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보통 이를 체감형 게임기라고 칭하는데, 가장 유명한 체감형 게임기로는 세가의 오토바이게임 ‘행온’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행온’에 얽힌 아픈 사연을 하나 소개하자면, '행온'을 국내에 들여 온 퍼블리셔가 기계를 개조하여 배경음악을 트로트로 바꾼 버전이 많다는 것. 한때는 ‘행온’을 플레이할 때마다 오락실에 쩌렁쩌렁 트로트 곡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유행도 지나 체감형 게임기를 CGV나 메가박스처럼 대형 멀티플렉스에 입점한 게임센터에서나 볼 수 있고, 일반 오락실에는 찾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락실의 천국인 일본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게임센터의 꽃은 대형 체감형 게임기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게임기들이 게임센터를 장악했다. 게임센터뿐만 아니라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한편에 체감형 게임기를 모아둔 코너를 두어 가족들끼리 쇼핑을 끝내고 게임을 즐기거나 하는 것이 일상 풍경이었다.



▲ 일본에서는 굳이 게임센터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백화점에도 대형 게임코너가 있었다

(사진출처: 뉴 아칸 호텔 공식 홈페이지) 


요즘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카드 게임, 온라인 대전 게임들이 오락실 주류가 됐으며, 단순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던 체감 게임기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사실상 건 슈팅과 레이싱 게임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체감형 게임들은 그 발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인기가 떨어진 대형 게임기의 운명은 대부분 폐품처리장이다. 거대한 덩치 때문에 가장 먼저 처분 대상이 되어 폐품처리장으로 직행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일본의 열혈 게이머들이 주축이 되어 고금동서의 대형 체감게임기들을 수집하고 대형 체감게임기만의 매력을 게이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아케이드 게임 박물관 계획"이다. 좋은 취지이기는 하나, 프로젝트 설립 후의 야망도 한때였다. 박물관 계획은 거대한 체감형 게임기를 보관할 부지가 부족하여 좌절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방법은 생겼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일본 아케이드 게임의 시작을 알렸던 명가 타이토에서 이 계획을 지원하게 된 것. 지금은 도쿄에서 자가용으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사이타마 현 쿠마가야시에 위치한 타이토의 아케이드 게임 창고에 다양한 체감 게임기들을 보관하고 있다. 현재 게임박물관 계획은 일반 기업의 창고를 빌리고 있는 상황이라 상시 공개는 불가능한 상황. 대신 비정기적으로 2~3개월에 한 번씩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필자는 3월 24일 일요일 올해로 두 번째로 열린 일반 공개에 취재를 가게 됐다. 요즘 주류인 스마트폰게임이나 온라인게임과는 사뭇 다른 체감형 게임기의 다양한 매력을 알아보자.




 아케이드 게임 박물관 입구


아키하바라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약 1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JR 쿠마가야 역. 그리고 거기서 또다시 1시간에 1번 오는 버스를 타고 약 15분이 걸려서 겨우 임시 아케이드 게임 박물관에 도착했다. 아케이드게임 박물관이자 타이토의 쿠마가야 사무소인 이곳은 과거 타이토가 운영하다가 폐업한 게임센터를 사무실과 창고로 개조한 장소다. 알록달록한 외관이 과거 게임센터였던 시절을 쉽게 떠올리게 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자 마치 90년대로 돌아간 듯, 추억의 게임기들이 가득 놓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것도 대부분이 명작으로 꼽히던 체감형 게임기들.





 슈팅, 레이싱... 다양한 체감게임기들이 한자리에


사실 필자가 박물관에 방문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이번에 박물관에서 초거대 체감형 게임인 ‘갤럭시안3’를 공개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 방문한 대부분 관람객들은 ‘갤럭시안 3’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 역시 거대한 입구를 보니,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 박물관 공개 게임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갤럭시안3

입구에서조차 포스가 느껴진다


‘갤럭시안3’를 플레이하기 위해 바로 돌격했으나, 아쉽게도 아직은 기기 조정 중이라 플레이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게임들을 일단 플레이하기로 하고 이동했다.



 조정 중...


첫 번째로 즐긴 게임은 사실상 체감형 게임기의 유행을 선도한 세가의 히트작 ‘스페이스 해리어’였다. 시연 전에 스태프이 직접 게임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전했다. 그의 설명을 따르면 ‘스페이스 해리어’ 체감 버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날 준비된 버전은 따로 움직이거나 하지 않는 소형 버전이라고 한다. ‘스페이스 해리어’는 기계가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격렬하게 움직이는 별도의 버전도 있으나, 현재 일본에서도 굉장히 희귀해서 수소문하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비행기게임 같은 독특한 조종간이 특색


다음으로 소개할 게임도 세가의 타이틀로 ‘타임트레블러스’ 라는 작품이다. 1991년에 등장한 '타임트레블러스'는 굉장히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무려 홀로그램이라는(당시에는 첨단) 방식을 이용하여 게임 영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 생긴 모니터가 특징



 사진으로는 전하기가 어렵지만 실사 인물이 입체로 등장한다


게임 플레이 방법은 간단하다. 실사 동영상을 감상하면서 적이 등장하면 그에 맞춰 조이스틱을 적이 등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동영상을 보여주는 단순한 방식이다. 게임성은 거의 없는 작품이었지만 홀로그램을 사용한 입체 3D 영상은 지금 봐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즐긴 게임은 비록 체감형 게임기는 아니지만 희귀한 타이틀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악마성 드라큐라'(국내명: 캐슬바니아)의 아케이드 버전. 패밀리, MSX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최신작 시리즈가 발매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악마성 드라큐라’는 콘솔 게임으로만 알려졌지만, 실은 아케이드로 제작된 적이 있다. 운 좋게도 이번에 공개돼 플레이할 기회를 얻었다. 실제 즐겨본 결과, 커다란 캐릭터의 박력은 25년이 지난 지금 봐도 멋지다고 느껴졌다.




 88년에 발매된 아케이드판 악마성 드라큐라


다음은 세가의 명작 3D 슈팅게임인 '애프터버너 2'. 운 좋게도 가동하는 버전을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게임에 대해서는 다른 부가설명보다 동영상으로 직접 관람하는 것이 좋다.


 '애프터버너 2'의 플레이 영상


비행기의 움직임에 따라 기체가 좌우로 움직인다거나, 스피커의 진동이 좌석으로 전해지는 부분은 실제 비행기를 조종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 밖에도 '릿지레이서'나, '전차로GO!'같은 비교적 최신 체감형 게임기부터 '아이돌 마스터' 아케이드 버전 같은 현재 보기 어려운 희귀 기종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모두 게임기를 직접 플레이 하며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게임 공략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남코의 스타블레이드. PS2용 철권5의 로딩게임으로 알려져있기도



 남코의 아이돌마스터



 타이토의 메탈호크. 매우 강렬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메탈호크의 플레이화면



▲ 열심히 이곳저곳을 보며 게임을 즐기는 관람객들


개장 후 약 1시간이 지나자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 왔다. 스태프이 "갤럭시안3 플레이 가능합니다!"라고 외치자, 박물관에 모인 유저들의 눈길이 한군데로 쏠린 것. 



 어느새 장사진을 이룬 '갤럭시안 3'의 앞


여기서 간단히 '갤럭시안 3'에 대해 설명하자면 1990년 남코가 내놓은 초거대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으로, 최대 28명까지 동시에 플레이가 가능한 3D슈팅 게임이다. 어마어마한 대형 스크린에 나타나는 적들을 빔으로 쏘아 떨어트리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약 10분 정도의 짧은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화려한 화면과 세련된 스토리가 일품으로 많은 게이머들을 매료시켰다. 


어찌 보면 게임기라기보다는 롯데월드 같은 유원지의 놀이기구와 같은 개념이지만, 이후 대형 게임센터에서도 플레이 가능한 6인용 버전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아케이드 게임 박물관에 전시된 버전도 바로 이 6인용이 즐길 수 있는 '갤럭시안 3'이다.



 건너즈 게이트라 불리는 출입구를 들어가면...



 거대한 화면이 펼쳐진다.



 게임의 조종간


실제로 조종간을 잡고 플레이하고 나니, '갤럭시안 3'의 명성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많은 유저들이 매료된 게임기가 아니었다. 한 플레이에 약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박력 넘치는 그래픽과 사운드는 절대 온라인이나 스마트폰 게임으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전달했다.

 

1990년 당시에 이 게임을 즐겼던 적이 있는 유저들은 아직도 '갤럭시안 3'를 잊지 못하고 중년이 돼서도 다시 찾아와서 이 게임을 즐기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 또한, 이런 거대한 게임기를 잘 보존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박물관 계획의 스태프들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갤럭시안 3'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 없이 플레이를 했다


플레이 후 잠깐 점검 시간을 가졌는데, 스태프의 호의로 게임기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게임기 내부 또한 놀랄만한 장치로 가득해 있었다. 



 게임의 배경은 폴리곤 그래픽이 아니라 LD 플레이어를 통해 동영상으로 출력하고 있었다고 한다

LDP와 사운드를 출력하는 앰프가 설치되어 있다



 화면 역시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으로 쏘아 거대한 화면을 출력한다고 했다.



 각종 제어장치들


희귀한 체감형 게임기도 장관이지만, 사실 이번에 게임기 박물관을 탐방하면서 감동했던 것은 이곳 스태프들의 열정이었다. 사라져가는 게임을 보존하기 위한 스태프들의 노력과 열정이 참으로 대단했다. 이곳의 스태프들은 게임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청소나 각종 점검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게임들이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온라인게임 강국답게 그 수도 만만찮을 것이다. 한때는 유저들이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도 이처럼 사라져가거나 서비스 종료한 온라인 게임을 보존하고, 다시 한번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 박물관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드림캐스트를 이용한 모금함

모금함에 모인 금액은 박물관 운영 및 새 게임의 구매에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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