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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29살 남자 기자, 여성향 테마카페 ‘네임리스’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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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체리츠가 종로에 집사카페를 열었대.
을: 체리츠요? 그 여성향 게임 개발하는 곳?
갑: 응. 6월 1일에 열었다는군. 시간 있지?
을: 전 그런 곳 잘 몰라요. 괜찮습니다.
갑: 그래서 가라는 거야. 가서 집사체험 같은 것도 하고 오고, 미소년도 보고 와.
을: 아니 제가 왜….
갑: 가.

거두절미하고 그래서 대한민국 육군포병을 만기 제대한 예비역, 어엿한 남자 기자인 제가 여성향(!) 게임 전문 개발사 체리츠의 테마카페 ‘네임리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문화이기 때문에 걱정과 기대를 모두 안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전에 여성들을 위한 집사카페 영상을 한 번 본 적 있는데, 과연 제가 그런 대접을 버틸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에 새로운 시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체험해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 사건의 발단이 된 안내문 (사진출처: 체리츠 공식 홈페이지)
    
여성향 게임 관련 소품들과 구체관절 인형으로 꾸며진 테마카페 ‘네임리스’는 체리츠가 올겨울 출시할 차기작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종각역에서 내려도 걸어야 하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도 걸어야 하는 애매한 종로 2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자의 상징인 삼겹살과 술로 가득한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한 골목에서 카페 ‘반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네임리스’의 모티프가 된 곳이며,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 술집과 밥집들 사이로 나아가다 보면


▲ 그 사이에 있는 반쥴이 보입니다


▲ 이곳이 바로 테마카페 '네임리스'죠

체리츠는 게임 출시 전에 반쥴을 대여해 테마카페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반쥴은 평소에도 공연이나 전시 등 행사를 많이 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네임리스’는 2층부터 5층으로 구성된 카페의 3층과 4층을 대여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4층에 올라가자 제법 테마카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오늘 남성들에게 테마카페라는 문화를 소개해 줄 의무가 있으니까요.
    
테마카페 ‘네임리스’ 본격 공략

문 앞에서 손님들을 정중히 반겨주는 집사, 혹은 “아가씨, 어서 오세요”등을 말하는 희끗희끗한 중년의 지배인. 뭐, 이런 것들을 상상했는데, 제가 예상했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에서 집사카페를 하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 4층에 다다르자 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캐릭터들이 저를 반겨주더군요


▲ 하나같이 훤칠한 친구들 이었습니다

미소년 점원이나 미중년 집사가 도련님(?)을 환영해주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멋진 미남 캐릭터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더군요. 게임 캐릭터 설정에 근거해 만든 등신 대비 소품인 것 같았는데, 그 앞에서니 저 같은 건 그냥 오징어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이렇게 길쭉한 남자들을 좋아하다니, 제가 솔로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찰나의 감상을 끝내고 본격적인 카페(라고 쓰고 던전이라 읽는다)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잘생긴 직원이 갑자기 뛰어오며 도련님을 반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였을까요. 카페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 게임홍보 자료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챙기지 못했습니다


▲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계획된 시나리오지만

사실 이른 아침에 카페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다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여자가 바글바글한 카페에 남자 혼자 던져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사람이 없어서 눈치 보지 않고 카페를 둘러봤습니다. 내부는 체리츠의 첫 게임 ‘덴더라이언’과 신작 ‘네임리스’의 캐릭터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판매를 위해 전시된 상품, 일명 ‘굿즈’부터 구체관절 인형이 카페 내부를 꼼꼼히 장식했고, 한쪽에는 그랜드피아노와 하프가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반쥴의 실내장식에 체리츠 게임들의 캐릭터가 더해진 느낌인데,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 한쪽을 가득 채운 구체관절 인형부터


▲ 판매되는 기념품들 까지


▲ 생각보다 다양한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만져도 되는 베개지만, 절대 안 만졌습니다


▲ 하프와 피아노는 만져보고 싶었지만, 고장 나면 물어줘야 할 것 같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총 세 가지 물건이 제 눈길을 끌었는데요. 먼저 남자 캐릭터가 그려진 껴안는 베개와 경고문구 ‘만져 보세요’였습니다. 이 문구에서 체리츠가 고객들을 배려하는 센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딴 것은 몰라도 베개는 만져보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아, 물론 전 만지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남자 베개를 만지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니까요.

두 번째는 상품 품절 안내문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출석 스탬프 수에 따라서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열 번 찍어야 주는 인형이 동나버린 것입니다. 카페가 6월 1일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열 번 이상 온 손님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세 번 찍으면 주는 선물은 말할 것도 없었죠. 


▲ 우수에 젖은 구체관절 인형은 애플 사용자


▲ 세세한 소품들이 인상적이군요


▲ 묘하게도 뒤에 있는 장식들과 잘 어울리는 인형들이었습니다


▲ 한번 만져보고 싶었던 인형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구체관절 인형에 놀랐습니다. 특히 연주 퍼포먼스를 펼치는 인형들에 세세하게 표현된 악기가 인상적이더군요. 기타 줄을 튕기면 소리가 날 것 같은 마음에 손을 대볼까 하는 호기심이 들던 찰나, 한 묘령의 여인이 저를 막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체리츠의 이수진 대표는 저에게 란스의 추천메뉴 캔디드 레몬티를 줬습니다. 이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더군요.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는 게임에 실제로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직접 먹고 마시며 게임의 세계관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해주는 장치죠. 이런 세세한 설정에 놀라기도 했지만, 여성의 섬세함이란 것은 결국 이런 부분일까요. 남자라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입니다만, 아마 이수진 대표가 메뉴판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를 뻔했습니다.


▲ 혼자 두리번거리고 있던 나를 진정시킨 체리츠 이수진 대표


▲ 게임에도 등장하는 '란스의 추천메뉴 캔디드 레몬티'


▲ 메뉴판 하나도 세세한 이야기들이 써있습니다. 이것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일까요?

이수진 대표를 만나 카페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 물어봤습니다.

일단 카페흥행을 주도하는 것은 성우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성향 게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성우란 게임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자는 청각의 동물이라는 조상님들의 말처럼 ‘네임리스’는 이를 위해 인지도 높은 성우들을 기용했습니다.

게임 더빙뿐만 아니라 테마카페에 참여 성우들이 실제로 방문하거나 직접 웹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게임으로 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우들이 팬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니, 과연 어떤 사람들이 마다할 수 있을까요. 인기의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성우들을 만날 수 없었으니 사인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고등학생에서 직장인까지 다양했습니다. 일반 카페처럼 편안하게 즐기거나 과제, 시험공부를 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테마카페라고 해서 이곳의 특별한 이벤트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겐 한없이 포근한 공간인 것입니다. 궁금해서 잠시 구경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속 방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한, 자신의 인형을 가져와서 놀거나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하고 대화하는 오프라인 모임과 같은 포근한 느낌도 형성된다고 하는군요. 남자 기자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뿌듯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카페에 직접 오기 전까지만 해도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일반 카페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에 쉽게 동화됐고 위화감도 느낄 수 없었죠. 사람이 없는 시간에 방문한 것을 아쉬워하고, 많은 사람이 찾는 주말에 한번 와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 겪어보지 못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부 남성들이 여성향 게임을 저급하다고 바라보는 시각처럼, 여자들도 거칠게 싸우는 게임을 똑같이 바라볼 텐데 말이죠. 

서로 잘 모른 상태에서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쯤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만 낳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체험했던 테마카페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테마카페 탐방을 마치고 나와 사무실로 향하던 도중 뒤를 돌아 ‘네임리스’의 간판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여러 간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더군요. 새롭게 접하는 문화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저 어딘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딱히 찾으려 들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죠. 독특한 문화라는 생각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관심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특한 것이 되는 겁니다. 이수진 대표가 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탐방기를 마칩니다.


▲ 남자 기자의 첫 방문이라 환영받았습니다

“이곳에 오면 자신의 문화가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얻고 돌아가시는 것 같아요. 성우나 게임,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잖아요? 전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 뿌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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