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에 족쇄가 풀리는 것일까? 게임물등급위원회 출범 이후, 그 동안 금기시되던 게임들이 속속 심의를 통과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2년 11월부터 4회 연속으로 영상물등급위원화로부터 90일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던 ‘홍색관~와인빛 광시곡(이하 홍색관)이 지난 22일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심의위원으로부터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이용불가는, 기존 18세 이용가에 해당하는 등급. 이는 지난 14일 시리즈 최초로 국내에서 정식으로 등급판정을 받은 ‘그랜드 세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모탈컴뱃’에 이은 파격적인 조치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홍색관은 지난 2002년 동원마도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프린세스 나이츠’와 함께 한글화해 심의에 제출했지만, 선정적인 성 묘사 등으로 인하여 여러 차례 심의가 반려된 바 있다. 이에, 지난 5월의 심의에 제출하여 심의 불가 사유를 명백히 파악한 후,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요청했던) 일부의 장면 삭제 및 재수정 작업을 거쳐 다시 심의를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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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색관은 주인공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엔딩을 보게 되는 비주얼노벨. 주인공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 홍색관에서 집사, 비서, 네 명의 시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과관계를 풀어나간다. |
홍색관을 유통한 해피팩토리 측은 “홍색관의 심의신청을 낸 것은 두 달 전이다. 그 동안 게임위 측 요청에 의해 약 네 차례에 걸쳐 전체적인 게임 스토리 및 캐릭터 별 스토리에 관한 추가적인 게임설명서를 보내며 의견을 교환했다”며 “자기기술서 이외에도 게임에 관한 추가적인 질문이 많아서, 게임위가 게임 심의에 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 게임위의 ‘햇볕정책’, 업계 얼린 마음 푸나?
이번 홍색관의 등급판정으로 심의위원회가 폭력성뿐만 아니라 선정성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상당 부분 인정해 준 것이 아니냐며 관련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한층 강력해진 사행성게임 규제조치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의구심을 드러냈다.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서 게임법의 테두리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게임물등급위원회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규제 일변도의)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터져 나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게임위 측은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는 사행성 게임은 강력하게 규제하겠지만, 폭력성과 선정성 등 또 다른 기준들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가능한 한 존중하겠다며 부드러운 태도를 취했다.
특히, 업계가 환영하고 있는 대목은 ‘자기기술서’의 작성 및 세분화된 게임물 내용정보 표시 등으로 게임콘텐츠 심의에 보다 체계적인 기준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현재, 달라진 게임법에서 등급심의는 세분화된 등급분류규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게임물 등급은 크게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으로 나뉘어지며, 신청인의 요청에 의해 12세이용가, 15세이용가 게임으로 세분화된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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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도입된 게임물 내용정보 표시제도 |
또한, 폭력성과 선정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의 등급표시에 나아가 게임물 내용정보 표시와 관련해 약 7가지 항목(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공포, 언어, 약물, 범죄)에 걸쳐 그 여부와 정도에 별표로 표시하게 했다. 이는 게임물의 유해성을 판정하고 등급을 내는 전문 심의기관으로서, 유저에게는 게임의 주요 내용을 미리 알려주도록 하고 업계에는 심의 기준의 지침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구체화한 것이다.
실제로 게임위 측은 심의기관으로서 체계 및 전문성 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에 대해서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의 따로 통지를 보내 알리는 등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게임위 파격적인 조치, 시대를 앞서 나가는 판단인가?
한편, 게임위의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 심의에 관해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는 곳도 있다. GTA, 모탈컴뱃, 홍색관은 일부 게임내용이 폭력성이 지나치고 성폭력, 성매매 등 반사회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GTA: 산 안드레스’가 호주에서 등급철회 판정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총기난사 사건 이후 신체훼손게임에 대해서는 등급거부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한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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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게임위로부터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부여받은 PSP 타이틀 ‘GTA: 바이스 씨티 스토리즈’ 한글화 등 정확한 정식발매 계획은 아직 미지수. |
학부모정보감시단 측은 “게임위가 사행성게임에는 단호하게 규제하고, 이와 비교해 성인용 게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하는 것 같다”며 “청소년들이 해당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재 환경에서, 보완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내린 지나치게 빠른 결정이었다”고 등급 판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게임위의 등급 심의는 업체 측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우려를 보내는 단체들의 입장이다. 만약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 다시 국가청소년위원회에 재심의를 거쳐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을 경우, ‘이중심의’ 논란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결국 업계의 불신만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학부모정보감시단을 비롯한 관련 게임업계는 게임위의 등급 판정 조치에 대해 좀 더 두고 보자는 입장이다. ‘처음이기 때문에 세밀하게 조사하고 처리했다’와 반대로 ‘(실망스럽지만) 출범 초기라서, 업계의 입장을 들어주었다’는 의견이 나란히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등급판정과 관련한 다양한 보완책을 내놓겠다는 게임위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게임위는 달라진 게임법을 통해 게임콘텐츠는 정신적 창작물로써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의 대상으로 인정한다고 재천명했다. 실제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분명 게임위는 진보하고 있다. 이것이 업계와 유저, 그들의 엇갈린 기대와 실망 속에서도 게임위의 다음 발걸음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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