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한 둘째 왕자,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책만이 유일한 그의 즐거움이었다. 기이한 운명의 장난으로 떠밀리듯 마계로 떠났고, 1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렀다. 구하고 싶은 왕국도, 구하고 싶은 목숨도, 구하고 싶은 명예도 없었던 왕자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끝없는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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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찾은 100년 뒤의 세계에는 그를 기억하는 누구 하나 남아있지 않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귀환병’이라 부른다. 1997년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에 ‘귀환병이야기’를 연재, ‘드래곤라자’ 이영도, ‘세월의 돌’ 전민희와 함께 한국 판타지 소설의 장을 열었던 작가 이수영, 그녀가 돌아왔다. ‘귀환병 이야기’, ‘쿠베린’ 등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와 강렬한 문체의 판타지소설을 선보이던 이수영 작가가 ‘루나온라인’을 모델로 한 소설 ‘루나’ 연재를 시작한다. 오는 10월 중 첫회를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2회 업데이트 되며, 에피소드1이 완료 되는 시점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하이콤에서 패키지 ‘코룸3’와 외전의 시나리오를 쓰며 게임계와 처음 인연을 맺은 지 이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
숨막히는 햇살이 작열하는 늦은 오전, 홍대 앞 카페에서 이수영 작가를 만났다. 파란색 티셔츠에 짙은 색 선글라스, 시원시원한 말투. 그녀의 첫 인상은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작가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이런 차림을 즐기세요? 잘 어울리세요. 혹시 사진촬영을 생각하시고 입으셨어요?
: 사진 찍는 건 굉장히 싫어해요. 남아있는 사진도 십 년 전에 처음 소설을 출판했을 때 찍은 사진이 유일해요. 언론에서 찍은 사진 하나도 아는 후배가 잡지사에서 일한다고 사정해서 인터뷰할 때 찍은 게 전부죠. 오늘도 평소처럼 입고 나왔는데. 얼굴에 뭐 작가라고 써 있나요?
필명으로 로맨스, 무협 집필 ‘은둔 아닌 은둔’
오랜만에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아니에요. 오랜만에 활동하는 게 아닌데. 판타지소설 말고 무협소설도 쓰고, 로맨스소설도 쓰고. 계약된 게 두 개인데… 어머니가 삼 년 동안 편찮으셨어요. 지금 원고만 쌓여있어요. 이번 달에만 네 권이 나와요. 판타지 로맨스와 라이트 노벨도 나오고요.
한 동안은, 일은 많이 들어왔는데 할 마음이 안 생겼어요. 어머니는 병원에 왔다 갔다 하시고 아이들도 어려서 장편은 손대기가 더 어려웠어요. 수정작업만 하면 끝인데도, 어머니가 편찮으셔 손을 못 댔어요. 이제는 생각을 바꿨어요. 돈을 벌어야 병원비를 낼 거 아니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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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필명으로 로맨스소설도 냈어요. 로맨스소설 쓰실 때의 필명은? : 아이들 이름으로 내고 있는데, 굳이 밝힐 필요는 없죠. 이미지가 깨지니까. 제 소설은 강한 편이에요. 의외로 로맨스가 쓰기가 힘들어요. 차라리 사건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면 편한데, 감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로맨스소설이거든요. 성격적으로 아기자기하게 여성적인 감수성을 풀어내는 편이 아니라 더 힘들어요. 제가 쓰면 로맨스소설이 스릴러, 범죄 심리소설처럼 되어가기도 하고. 로맨스소설치고는 피가 너무 튄다. 과하지 않느냐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역사, 판타지 등으로 퓨전된 로맨스소설도 많이 나와서 다양하게 나와서 좋아요. |
소설 `루나`는 어두운 분위기의 정통 판타지
‘루나온라인’을 모델로 한 게임소설도 판타지 로맨스가 되는 건가요?
: ‘루나온라인’ 소설은 정통 판타지가 될 거에요. (게임소설을 쓰는데) 인연이 있었어요. 이야인터렉티브 사장님이 하이콤 부사장님으로 계실 때, 제가 코룸시리즈 게임 시나리오를 썼었어요. 그리고 십 년 만에 연락이 와서 하라고 하셔서, “해야죠”라고 했죠. 사실은 ‘코룸온라인’과도 이야기가 있었는데, 중반에 그만뒀어요.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연재중단을 했죠.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소설 `루나`에 대해 미리 얘기 좀 해주세요.
: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세계는 한 가지뿐이지만, 소설 속에는 세 개의 세계가 나오죠. 전체 세계관은 역사가 긴 거에요. 게임상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맵은 그 이야기의 일부에요.
이야기의 맨 처음의 시작은 땅 위의 작은 왕국이에요. 현재 땅 위의 세계의 사람들은 떠 있는 대륙(블루랜드)의 존재를 몰라요,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전설로만 남아있어요. 이 때, 작은 왕국의 왕자 하나가 출생의 의심을 받아요. 마족이냐, 인간이냐, 이종족이냐 하는 의심 때문에 왕자가 박해를 받아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왕자는 왕위에서 축출을 당하고, 마녀의 도움으로 떠 있는 대륙으로 가게 돼요.
그런데, 이제까지 주인공이 살아왔던 세계는 인간이 중심이었는데 이 세계는 모든 게 달라요. 왕자는 마족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박해를 당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요. “안녕, 마족이세요?”라고 물어보죠. 왕자는 이 곳 블루랜드에서 나름대로의 야망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 시작하죠.
이야기의 분량은 어느 정도로 나올까요?
: 에피소드 여섯 개 정도로 놓고, 여섯 권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에피소드 3~4까지의 시놉시스는 모두 나와있는 상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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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온라인` 이미지. 공중에 떠 있는 전설의 대륙 `블루랜드`가 게임의 배경이자 왕자의 모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
게임의 밝은 분위기에 비해 소설의 이미지는 어때요? 비슷한가요?
: 소설의 분위기는 굉장히 어두워요. 개발사 쪽에도 어두운 분위기를 원해요. 사실 게임과 소설 분위기가 같을 필요는 없어요. 게임이나 소설 중에 어느 하나만 좋아할 수도 있죠. 서로 보완적인 관계가 필요해요. “겉으로는 밝아 보이는 세계인데 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상상할 수도 있고. 유저들이 잘 적응해주면 좋죠.
소설이 게임보다 조금 앞선 방향으로 나갈거에요. 소설과 게임 분위기가 다른 면도 있고요. ‘게임소설’이라고 해서, 게임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 나온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디아블로’도 소설이 나왔지만, 소설하고 게임은 다르잖아요.
온라인 연재는 오랜만이시죠.
: 계속 하고는 있었어요. 연재 사이가 길었죠. 하다 말다 악명이 높았죠.
판타지 소설의 게임화, 왜 성공하기 어렵나?
작가 입장에서 온라인 연재가 힘들지 않아요?
: 아니요, 오히려 활기가 돼요. 저는 온라인으로 연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소설이 더 피가 튀기죠. 삼 년 동안 조마조마했더니 이제는 좀 벗어나자 하고 마음 먹고 있어요. 차라리 열심히 글을 써서 어머니 병원비라도 보태자. 하하.
특히, 요즘은 온라인에 대한 부담이 적어요. 온라인으로 연재하다, 연재 중단하고 출판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고요. 좋은 리플도 많아요. 기분이 우울할 때 글을 올리면, “기운 내셔야죠. 어느 병원이세요? 제가 가서 도와드릴게요, 글을 쓰세요.”라는 리플도 받아요. (게임메카: 가끔, 안 좋은 리플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런 글을 씹죠. (웃음) 연재를 벌써 10년을 넘게 하고 있는데, 내공이 있죠. 그런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은 연재를 못 하죠. 안 좋은 반응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라고 나오는 사람들도 다 개인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수백 만의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춰줄 수는 없잖아요.
저는 초고를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오, 탈자 지적도 기분 좋게, 고맙게 받아들여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그런 부분에 막 화를 내고 대응하면 안티가 생기죠. 저는 오히려 로맨스소설을 쓰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면 무협소설을 쓰죠. 아, 이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은 말을 안 들어? 여자주인공 왜 이렇게 히스테릭 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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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영 작가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패키지 `코룸 3`와 코룸 외전, 후에 `코룸 온라인`으로 이어진다. |
우리나라 게임 개발 초기에 판타지소설들도 게임화가 많이 이루어졌잖아요. 그런데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라그나로크’같이 만화를 게임으로 만든 경우는 크게 성공했는데, 소설은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만화나 게임으로 모두 비주얼로 보이는 장르잖아요. 소설을 게임화 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기존 팬들의 반발이에요. 소설팬들은 머릿속으로 저마다 상상을 해요. “내 머릿속에 저 캐릭터는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자였는데,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은 귀여운 미소년이더라.”라면서 싫어하죠. 영화 ‘반지의 제왕’도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들을 쓴 게 아니라, 소설에 잘 어울리는 유럽적인 얼굴들이 많이 나와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소설은 게임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제가 예전에도 그랬는데 “이런 저런 몬스터를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귀환병 이야기’나 ‘쿠베린’도 게임화 제의가 몇 번 들어왔는데, 문제는 소설 속에 몬스터들을 게임으로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거에요. 제가 만든 몬스터들은 모두 제 상상으로 만든 거라서 게임으로 만들 경우에는 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게임 그래픽이나 레벨 디자인을 다 새로 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소설을 완벽하게 게임으로 구현한다는 게 어려워요. 만화도 2차원의 그래픽이니까 구현하기가 좀 더 쉬어요. ‘루나온라인’ 소설도 그런 차원에서 서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소설대로, 게임은 게임대로, 즐기자고 생각해요.
판타지란 무엇인가?
‘판타지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장르는 SF였어요. 딱히, 판타지 장르만 쓴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요즘은 장르가 많이 무너졌어요. 로맨스소설에서도 옛날 같이 남녀 이야기만이 아니라 판타지로맨스, 무협로맨스, SF로맨스 다양하게 나와요. 지금은 장르도 다양하고 독자도 다양해졌어요.
‘판타지’ 자체가 소설을 기반으로 한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모든 게 ‘판타지’죠. 무협도 오리엔탈(동양) 판타지, 로맨스도 러브판타지라고 하잖아요. ‘판타지’라는 말 안에 다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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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국 작가가 이야기했어요. “판타지란 무엇인가? 작가가 독자한테 그것을 믿게 하면, 그것이 판타지다.” 사실 판타지가 어려워요. 완전히 생소한 세계관을 사람들한테 “이게 사실 이런거야”하고 가르쳐줘야 하니까요. 작가가 말했을 때 독자가 그것을 믿어야 하거든요. 이수영 작가는 자신만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시부모님을 모시는 며느리, 아프신 친정 부모님을 돌보는 딸로 스물 네 시간을 아낌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왕성한 창작열’이라는 말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 열정적인 낙천가, 넘실거리는 생의 에너지와 긍정성, 그녀의 소설 속에 주인공이 바로 이수영 자신이었다. |
이수영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먹구름이 참았던 것처럼 소나기를 토해낸다. 이 비가 그치면, 거짓말 같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 같다. 그녀가 보여줄 또 한 번의 ‘환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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