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김동수와 조용호가 은퇴를 했다. 또 최근 SK T1은 주훈 감독, 서형석 코치, 이효민 코치 등 팀의 코칭 스텝들을 전면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한국 e스포츠 초창기부터 현장에 있어 왔던 이들이다. 연초 들어 고참선수, 스텝들의 ‘자의반, 타의반’ 퇴진이 속속 이어지면서 e스포츠계가 꽤나 시끄럽다.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4월 한국에 발매된 이후로 단일게임으로 숱한 족적들을 남겼다. 그 중에 한국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을 꼽으라면 e스포츠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일일 것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발매됐던 1998년에는 그 누구도 10년 후에도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현재에도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여전히 관심을 받는 존재다. ‘스타크래프트’가 10년 인기를 구가한 비결은 바로 고수들의 플레이가 주축이 되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다. 게임이 ‘하는 재미’ 이외에 ‘보는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또 경기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타크래프트’는 알려주었다.
한국에서 e스포츠는 곧 ‘스타크래프트’와 다름없다. ‘스타크래프트’ 1세대들의 퇴진이 이어지는 이 시점에서 프로게이머 데뷔 양상을 중심으로 한국 e스포츠의 흐름과 현주소를 총 2회에 걸쳐 짚어봤다.
프로게이머= ‘스타크래프트’를 특별히 잘하는 아이들
한국에서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스타크래프트’ 이외에 몇 개의 공인 종목(게임)이 있긴 하지만 주목을 받고 매스컴을 타고 인기를 끄는 것은 ‘스타크래프트’ 밖에 없다. e스포츠의 ‘스타크래프트’ 편중에 대해서는 타 종목의 전략적 육성 등 몇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터운 팬 층이 존재하고, 보는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이 프로 스포츠 종목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어떻게 스포츠라는 ‘장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또 ‘스타크래프트’ 고수들은 어떻게 ‘프로’라는 명칭을 달게 되었을까?
‘스타크래프트’는 98년 발매 이후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매우 빠르게 확산됐다. 플레이어 사이에 대결을 기본으로 한 RTS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이 인기를 끌자 토너먼트 형식의 게임대회도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게임이 워낙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동네 PC방 중심으로 개최되던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전국적인 규모의 대회로 성장하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서서히 ‘프로게이머’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98년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신주영이 미국의 프로 게임리그인 PGL(Pro Gamer League)에 등록되면서 게임팬들의 뇌리에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벤트 형식의 군소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98년과 99년을 거치며 전국적으로 매우 활성화 되었는데, 99년에 들어서면서 (홍보를 목적으로)기업들이 후원하는 리그들이 등장했고, 이런 대회들을 통해 전국 규모의 리그와 전국구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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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모 통신업체 공중파 광고에 등장한 이기석 |
99년을 대표하는 전국규모의 스타리그로는 KPGL(Korea Pro Game League)을 꼽을 수 있다. 99년 1월에 1회 대회를 치룬 KPGL은 ‘쌈장’ 이기석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기석은 KPGL 1회, 2회(하이텔 후원)우승을 연거푸 차지하며 공중파 광고에도 등장하는 등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KPGL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게이머’란 용어는 이미 게임팬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기석은 98년 8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했지만,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16강에 오른 선수의 아이디로 플레이를 했다는 승부조작설에 휘말리게 된다. 당시 이 사건은 공중파 뉴스에서까지 다뤄지는 등 사회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이미 게임 매니아의 영역을 넘어서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프로’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프로’가 되기 위한 기준이나 자격제한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 활동했던 한 전직 프로게이머는 “프로게이머에 대해 정립된 개념이나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방송에서 리그중계를 할 때 그냥 게이머라고 하는 것보다는 앞에 ‘프로’라는 단어를 붙여주는 것이 더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고, 이들을 통칭해서 프로게이머로 불렀다는 이야기다. 동네에서 ‘스타크래프트’ 좀 한다는 게이머들은 누구나 한번씩 전국구 스타 프로게이머 이기석을 꿈꿀 수 있는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스타크래프트’ 리그에는 단체전도 있었기 때문에 배틀넷 클랜을 중심으로 단체전 연습을 하는 게이머들도 생겨났다. 99년 중반부터는 KIGL, KGL 등 지금의 프로리그처럼 팀 단위로 진행되는 리그도 활발하게 개최됐다. 99년 말이 되면 중소기업의 후원을 받는 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기업들은 홍보의 목적으로 특정 팀에게 일정 비용을 후원했다. 하지만 기업의 후원은 지금처럼 ‘게임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고 대부분 우승상금으로 팀을 꾸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존재했던 ‘스타크래프트’ 팀들은 줄잡아 40~50개(합숙 없는 클랜 형태의 팀까지 포함)에 이르렀으며 이 중 20-30개 정도의 팀은 매우 활발하게 단체리그에 참여했다. 2000년에 이르면 삼성전자, n016(현 KTF)등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팀들도 등장하게 된다.
e스포츠 관련 협회 창설, 자격요건 마련
2000년 2월에는 21세기 프로게임협회(이하 한국 프로게임협회, 현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설되었다. (편집자 주: 21세기 프로게임협회는 2001년 한국 프로게임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한국 프로게임 협회는 ‘스타크래프트’의 한국 유통사 한빛소프트가 주축이 되어 설립됐는데 한빛소프트의 김영만 회장이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프로게임협회의 창설목적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정착과 프로게이머를 전문직업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당시 붐을 일으키던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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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당시 프로게이머 관련 기사들 |
한국 프로게임 협회는 2000년 8월 12일, ‘프로게이머 등록제’를 문화관광부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프로게이머가 정부로부터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 ‘게임만 하는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다.’라는 개념은 대중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은 연봉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겉만 화려한 전문 직업인이었다.
프로게이머 등록제를 계기로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게임에서도 프로게이머가 배출될 수 있게 되었는데, ‘피파2000’, ‘레인보우6’, ‘퀘이크3’, ‘에이지오브엠파이어2’ 등이 정식종목으로 선정되었다. 당시 프로게이머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협회가 인정한 대회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협회의 소양교육을 받으면 됐다. 또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법적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했다. 한국 프로게임협회는 등록제 시행 이전에 활동하고 있던 게이머들에 대해서는 규정을 소급 적용해 한꺼번에 프로게이머로 등록 시켰다. 이때 이기석, 임요환 등이 대거 프로게이머로 일괄 등록이 된다.
등록제가 시행된 첫 해 2001년에 프로게이머로 등록된 이는 모두 131명이었다. 또 2001년에는 전국 규모로 개최되는 게임대회는 91개로 100여 개에 육박했다. (출처: 한국 프로게임협회, 현 한국e스포츠 협회) 1999년 7개 에 불과하던 전국 규모 게임대회가 불과 2년 사이 10배가 넘는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이 대회의 대부분은 ‘스타크래프트’ 대회였다.
29일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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