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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진, 창작에 미친 사람들이 만든 ‘바람의 나라’ 12년

동명의 원작 만화에서 출발한 ‘바람의 나라’는 12년의 긴 세월을 견뎌내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산과 같다. 누군가에는 비빌 언덕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잠시 쉬어가는 초가집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추억이 서린 작은 동산이 되기도 했다.

만화가 김진에게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는 자신의 동명 원작 만화에서 출발했으나 이미 따로 창조되어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자신을 오래된 바람의 나라의 유저라고 이야기하는 만화가 김진에게서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은 원작가로서의 애정과 창작자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1983년 `바다로 간 새`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하여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굳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화가 김진. 그녀는 스스로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여 미친 사람이라는 말로 창작자를 표현하며, 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게임 바람의 나라와 만화가 김진은 모두 `쥐띠`로 띠동갑(?)이다. 얼마 전 그녀 역시 생일(4.6)을 맞았다.

게임은 만화와 전혀 다른 세계, ‘절반은 유저들의 몫’

바람의 나라 서비스 12주년을 맞이한 기념식은 넥슨 내부의 홍보실에서 개발진들과 약간의 미디어가 참석하여 조촐한 파티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바람의 나라 캐릭터로 만들어진 귀여운 캐릭터 케이크가 놓여진 테이블 위에서 마흔을 넘긴 만화가 김진과 과거와 현재의 바람의 나라 개발진들이 만났다.

1996년 4월 PC통신을 통하여 첫 상용화를 시작했던 시기의 바람의 나라는 지금과 달리 정액제였으며, 서비스 가격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4만원 대였다. 그러나 국내 그래픽 머드게임의 효시였던 바람의 나라는 널리 사랑 받으며, 넥슨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12년의 시간이 흐르고, 지난 2005년 정액제가 폐지되고 무료화 선언을 하면서 제 2의 생명을 부여 받았다.

“내 만화의 세계관을 게임이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냐고 물으셨는데, 글쎄요. 만화와 게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바람의 나라의 절반은 유저가 만들었어요. 나의 세계관과 달리 시뮬레이션된 세계 속에서 바람의 나라는 발전하고 있죠. 사람이 자라나는 것처럼, 게임도 자라난다는 생각을 생각해요. 게임을 하면서 실제로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다고 생각해요.”

만화가 김진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에서 잉태했으나 전혀 다른 사람을 바라보듯 긴 세월 동안 바람의 나라를 지켜보았다. 1992년 순정만화 잡지 ‘댕기’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원작 바람의 나라는 몇 권의 잡지와 매체를 거치며 아직도 계속되는 이야기이다. 고구려 대무신왕 무휼과 그의 차비 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질곡 많은 인생들의 이야기인 바람의 나라는 긴 시간 동안 역사와 운명, 사랑에 대한 짙은 인상을 남겼다.

 ▲ 바람의 나라는 최근 25권을 출간하고 게임, 소설, 뮤지컬, 드라마로 다양하게 영역을 확대 중이다.

나를 찾아와 게임을 만들고 싶다던 ‘눈빛이 살아있는 세 사람’

김진은 자신의 만화와 게임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초기 개발 당시 이외에는 단호히 부정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움직여나가는 작가로서 바라보는 자신의 만화와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며 만들어나가는 게임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원작 만화를 모르고 게임부터 접하는 다수의 어린 세대들을 생각하면 ‘섭섭하지 않냐’는 질문에도 그녀는 ‘내 만화는 어린이 대상이 아니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다만, 그녀에게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개발 착수 당시의 기억이다.

“당시에 바람의 나라를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세 명이 찾아왔어요. 바람의 나라 전에 ‘창세기전’의 그래픽 작업을 했기 때문에 패키지게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온라인 게임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찾아온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한 거에요. 무언가 재미있어하는 사람의 눈빛이고, 몰입된 눈빛이었죠.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그 눈빛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결정했어요.”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투, 기억 속에 젊은 김정주 대표를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의 나라의 초기 개발에 참여했던 김상범 이사는 아마 그 세 사람이 김정주 대표와 유정현 이사(부인), 송재경씨(현 XL게임즈 대표)였을 거라고 이야기를 거들었다. 김상범 이사도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송재경 이사와 같이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강의시간에 만화책을 보고 있더라. 그래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이 만화로 게임을 만들거야 라고 대답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꿈을 꾸며 행복했던 이십 대의 기억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김정주 대표가 날 부르더니 골방으로 데려가는 거에요. 김정주대표는 학교 때부터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친구였어요. 자기가 게임을 만들고 있다면서, 당시 유행하던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 같은 거라고 하면서 보여줬어요. 그 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어요. (웃음) 지금은 네오위즈에 가 있는 정상원 본부장과 서민 이사가 같이 만들었는데, 코딩하고 서로 자랑하느라고 ‘이 부분은 내가 코딩’이라고 주석 같은 걸 달아놓고 그랬죠."

초창기 게임은 바람의 나라가 기반이 되었지만, 현재는 개발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진들은 세계의 ‘어머니’로서 김진 작가를 정기적으로 찾아 뵙는다고 말했다. 황인준 기획파트장 역시 로그인 화면만큼은 김진 작가가 직접 그린 바람의 나라 원화 이미지를 꼭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진 모두 ‘타협하지 않는 창작자이자 자신의 주관을 가진 예술가’로 김진 작가를 추켜세웠다.

 ▲ `만화광`이라는 넥슨 김상범 이사와 김진 작가

3D로 만드는 바람의나라2 유저들이 원하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었던 것일까? 김진 작가는 지금도 다른 게임은 하지 않으며, 짧게는 하루 2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바람의 나라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이사는 김진 작가가 가장 무서운 유저 중에 하나라고 털어놓았다.

“초창기에 게임에서 렉이 너무 심해서 회사로 전화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전화를 김정주 대표가 직접 받아서 ‘아 내가 이 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게임을 오랫동안 하면서 참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동받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게임 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화면에 ‘미어터집니다’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옛 말투가 미묘한 감동을 주더라고요. 새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도 좋지 않나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개발진들에게도 있었다. 넥슨 클래식RPG 1실 김영구 실장은 바람의 나라 역시 3D로 렌더링된 후속작을 기획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가지 않았지만, ‘바람의 나라2’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었던 것. 그러나 후속작은 단순히 캐릭터 리모델링 차원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무엇보다 유저 대부분이 2D로 이루어진 지금의 게임에 많은 애착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3D화 계획에 대해서 원작가인 김진도 같은 입장이었다. 상상력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지금의 2D 그래픽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 1983년 처음 만화가로 데뷔하여 긴 시간 동안 바람의 나라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김진에게 게임은 또 다른 애착의 대상이다.

 ▲ 바람의 나라 초창기 인터페이스. 오는 7월에는 대규모 업데이트 `지옥`을 준비 중이다. 10대 지옥 월드와 던전이 추가되고 퀘스트 도우미 시스템도 도입된다.

달라진 세계, 달라진 만화와 게임의 위상 ‘자연스러워’

“오래된 유저들은 아이디만 봐도 알아보죠. 제가 잠시 게임을 안 한 적이 있는데 누가 저보고 ‘군대 갔다 왔느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게임을 하면서 유저들이 직접 쓰는 게임이야기를 읽는 것도 즐겨요. 유저들이 흔히 게임을 하면서 ‘옛날이 좋았는데’라고 잘 이야기해요. 실제로 예전에는 유저도 순수하고 개발자도 순수했던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게 마련이죠. 변하는 것은 당연해요. 지나고 나면 힘들고 어려웠던 것도 다 좋은 것이 되죠. 되도록이면 지금 즐겁게 오순도순 지냈으면 좋겠어요. 싸우고 욕하지 말고(웃음). 늘 보고 있으니까, 게임에 문제가 있으면 개발자에게 제가 바로 이야기할게요.”

게임 속 세상만큼이나 현실 속 만화의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에 만화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러나 이 같은 만화와 게임의 위상은 오래 전에 뒤바뀌고 말았다. 아이들은 만화를 보기 보다 게임을 즐기고, 더욱 축소된 만화시장 때문에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의 발걸음도 게임업계로 돌려졌다.

김진 작가는 만화가 어려운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라지만, 게임밖에 길이 없는 다음 세대의 선택도 존중했다. 다만 골방에서 자신만의 창작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게 지원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만들어내는 오리지널, 그녀는 그것이 바로 ‘원소스’라고 말했다.

“게임이나 만화처럼 원소스(One source)는 미쳐서 하는 것이고, 멀티유즈(Multi-use)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죠. 작가나 개발자나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미친 사람들이죠. 그들이 중간에 도태되지 않도록 해줘야 해요.”

 ▲ 좌로부터 김상범 이사, 김진 작가, 클래식RPG 1실 김영구 실장, 황인준 바람의 나라 기획파트장

‘골방’에서 창작하는 사람들 절망하지 않게 해줘야 해

창작자로서 그녀는 이른바 ‘멀티유즈’의 작업보다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창세기전’이 성공하고 만화화에 대한 제의가 왔었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이미 세계관이 확립된 작품을 새롭게 하는 것은 패러디일 뿐,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작가 김진에게 만화가는 그림만 그릴 줄 아는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했다.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12주년을 맞이해 이루어진 자리였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김진 작가의 기자간담회를 연상시켰다. 현장에 있는 사람 대부분의 유년 한자리에 게임보다 한발 앞서 만화가 자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거대한 역사와 내밀한 인간의 속 사이를 가볍게 오가는 김진의 세계를 ‘순정만화’라는 좁은 카테고리 안에서 정의하기에는 어렵다.

한 때 만화기자를 꿈꾸었던 기자도 지금은 만화를 사서 보는 것만으로 꿈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도, 원작 만화도 아직 끝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다. 출발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와있으나, 나아갈 길의 끝은 만드는 사람의 손을 떠났다. 가장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았다. 선생님, 만화의 완결은 언제 나나요?

“옛날에는 내가 끝을 내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엔딩은 정해두고 시작했죠. 하지만, 이제는 자기(만화)가 스스로 끝을 내야 끝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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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넥슨
게임소개
'바람의나라'는 1996년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상용화된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극한 게임이다. 만화 '바람의나라'를 기반으로 개발된 '바람의나라'는 수만 가지의 커스...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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