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마다 가격이 왜 이렇게 달라요?”
“물건이 없으니까 그렇죠. 솔직히 시장이 개판 됐어요.”
10일 찾은 용산전자상가는 활력이 없어 보였다. 오전 10시. 쇼핑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다가 게임소프트 판매로 유명한 ‘두꺼비 상가’는 정기휴무로 문을 열지 않았다. 주변의 게임판매상점을 몇 군데 돌아보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게임소프트 총판 한 곳에 들어갔다. “스트리트파이터4 있나요?”. “아뇨 지금은 물건이 없어요. 좀 더 기다리셔야 돼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역수출 때문에 물건이 없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저흰 그런 부분은 잘 모르겠고 물건 들어오면 다 풀어요. 지금은 1차 물량이 다 풀린 상태라서 저희도 물건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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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게임소프트웨어를 취급하는 소매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트리트파이터4 있나요.” 점원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몇 군데에서 허탕을 치고 겨우 물건이 있는 상점을 발견했다. “7만원 주세요.”. “정품 원래 52,000원이잖아요.”. “그 가격으로는 지금 못 구해요. 저희도 이거 비싸게 사가지고 왔거든요.”
‘스트리트파이터4’가 발매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게임메카는 게임소프트웨어 총판과 도/소매점이 몰려있는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발매 직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던 ‘스트리트파이터4’의 역수출 문제를 현장에서 짚어보기 위함이었다. 지난 2월 12일 캡콤 코리아를 통해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4’는 2만장이라는 예외적으로 많은 1차 발매물량에도 불구하고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상유례 없는 원화 약세 속에서 판매자들이 일본 등지로 ‘스트리트파이터4’를 역수출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스트리트파이터4’의 일본 발매정가는 8,390엔. 캡콤코리아를 통해 한국에서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4’의 정가는 52,000원이다. 원당 엔화 환율을 1500원으로 잡는다면 한국판이 절반 이상으로 싸다. 실제로 얼마 전 일본의 한 인터넷쇼핑 사이트에는 한국에서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4’가 상품으로 올라와 역수출의 꼼짝없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소매점들 “받은 물건이 4~5장. 단골 챙기기도 바쁘다”
용산 소매점들을 돌아본 결과 현재 오프라인에서 유통되는 ‘스트리트파이터4’의 가격은 58,000원에서 70,000원까지 다양했다. 같은 게임 소프트의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소매점들의 구매루트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미 총판과 도매점에서 공급받은 물건을 소진한 소매점들은 대형마트나 인터넷 등을 통해 ‘스트리트파이터4’를 구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일부 상점에 국한 되어있고 대부분의 상점은 ‘스트리트파이터4’를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소매점들의 입장은 공통됐다. 애초에 받은 물건이 적었다는 것. 가게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었지만 대부분 총판이나 도매업자로 넘겨받은 물건이 채 5개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부터 물건이 없었어요. 여기 대부분이 다 그럴걸요. 저희도 한 4개 받았나? 역수출이요? 받은 물건 단골들 챙겨주면 끝이에요. 솔직히 보따리상한테 팔면 더 남기야 하겠지만 그거 몇 개나 된다고.”
노골적으로 ‘윗 선’의 역수출을 이야기하는 상점도 있었다. 이들은 국내에 ‘스트리트파이터4’가 2만장 공급됐고 전량매진 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들은 국내에서 판매되었다고 알려진 2만장 중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아직 풀리지 않았거나 역수출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가격을 그 근거로 들었다.
“스트리트파이터4가 아무리 대작이라고 해도 2만장 풀렸으면 절대로 지금 이 정도로 가격이 형성되지 않아요. (단정적인 어투로) 50%도 안 풀렸어요. 위에서 ‘뭉태기’로 넘긴 거지. 중국 애들이나 일본 애들한테.”
보다 구체적으로 수치를 제시하며 역수출을 이야기하는 곳도 있었다.
“중국 때문이에요. 원래 걔들이 홍콩에서 물건 가져다가 팔았거든. 자국에 정식으로 수입이안 되니까. 근데 환율 때문에 한국이 제일 싸졌거든요. 막 쓸어가는 거지. 여기 위(Wii)를 우리 매장에서 22만원에 팔거든요. 근데 중국 애들은 25만원씩에 사가요. 그리고 자기네는 40만원에 파는 거야. ‘스트리트파이터4’. 이거 우리가 46,000원에 떼어오거든요. 근데 중국 애들은 이걸 막 6만원씩 사 가는 거에요. 장사꾼들이 누구한테 팔겠어요. 국내에 팔면 46000원에 줘야 하지만 중국 애들은 6만원에 가져가는데. 나 같아도 국내에 안 뿌리죠.”
대부분의 소매점들이 ‘스트리트파이터4’ 물량부족의 이유로 ‘윗선’의 역수출을 꼽고 있는 가운데 루머를 부정하는 일부 소매점들도 있었다. 역수출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오프라인으로 풀린 물량자체가 적었다는 이야기다.
“총판이랑 친해서 잘 아는데 거기도 물건이 없어요. 일단 오프라인에 풀린 물량 자체가 적다니까. 게다가 이번엔 지방으로도 많이 내려 보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부족현상이 일어나는 거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소매점은 ‘윗선’의 역수출을 ‘스트리터파이터4’의 물량부족의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소매점들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애초에 받은 물량이 적었고 그나마도 단골들을 챙겨주느라 다 소비했다. 물량이 적었기 때문에 역수출 자체에 대한 이점이 별로 없다. 물량이 이렇게 없는 것은 앞선 유통과정에서 누군가가 대량으로 물건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판 사람은 없는데 물건이 시장에 나온 이유는?
소매점들이 이렇게 ‘스트리트파이터4’의 품귀현상에 대해 ‘윗선’의 역수출이 주요원인이라 지목하는 것에 대해 총판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총판 상인들은 일부에서 제기하는 역수출 문제에 대부분이 “할 이야기가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화살이 총판에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스트리트파이터4’를 52,000원 정가로 판매하는 한 총판은 ‘도대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곳이 어디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캡콤 코리아랑 정식으로 비즈니스 하는데 그런 짓(역수출)하면 계속 거래할 수 있겠습니까? 총판은 절대 못합니다. 도매업자들이면 모를까.”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총판 관계자는 “도매업자들에게서 보따리상들이 물건을 매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추가물량이 안 풀리는 것도 (캡콤 코리아가) 이런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라고 귀띔했다. 보통 한국에서 패키지 유통은 발매사-총판-도매-소매의 과정을 거치는데 발매사나 소비자들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지 않는 중간 유통 상인들(도매업자)이 ‘스트리트파이터4’의 역수출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또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역수출 업자들이 소매단계에서 물건을 매집 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도매, 소매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역수출에 가담한 것이 된다. ‘역수출의 주범’으로 지목된 ‘윗선’들이 역으로 ‘중간선’과 ‘아랫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꼴이다. 사실 몇몇 일부 소매점의 경우 ‘들은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매우 상세한 증언을 하는 곳도 있었다.
역수출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역수출에 가담할 수 있는 상인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쉽게 말해 판 사람은 없는데 물건이 시장에 나온 꼴이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기는 것일까?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장에서 패키지가 유통되는 과정을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앞서 게임소프트가 유통되는 과정에 대해 발매사(퍼블리셔)-총판-도매-소매로 설명했다. 이런 단계 분류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런 ‘선문답’이 성립 할 수 있는 이유 각 단계에 해당하는 상점들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총판이 도매상인 경우 그리고 도매상이 소매상인 경우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타이틀, 발매사 별로 총판이 다르기 때문이데 총판과 도매상은 딱 분리해서 지목하기 힘들다. 각 유통 단계의 주체들을 딱 구분 짓는 것이 애초에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도매가 그랬다’, ‘소매가 그랬다’, ‘총판이 그랬다’라는 주장은 떠 넘기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패키지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종전의 방식은 주로 보따리상을 통해 역수출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화가치가 하락하며 국내 정발 타이틀이 가격 면에서 이점이 생기자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역수출이)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양심적인 곳도 많지만 (유통단계에서)누구라고 할 것 없이 (역수출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스트리터파이터4의 경우는 워낙 인기가 많아 수요가 높았다. 그동안 역수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찾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역수출 등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더 티가 난 것이다. 물량이 없으니 시장에서 도는 물건의 값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한국 패키지 시장에서 2만장이 풀렸는데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2차 물량 풀렸지만 여전히 품귀 현상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키를 쥐고 있는 캡콤 코리아의 입장은 어떨까. 캡콤 코리아는 ‘스트리트파이터4’의 물량부족 사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다. 국내 유통망을 쥐고 있는 상인들과의 마찰을 우려해서다. 캡콤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그런 일(역수출)이 있다는 것도 알고 실제로 항의전화도 많이 온다. 매우 민감한 문제라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역수출)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 ‘보따리상’이 중국 등지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제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1차 물량만 풀렸다는 시장의 이야기들과 달리 캡콤 코리아는 지난 3월 초 ‘스트리트파이터4’의 2차 물량을 풀었다. 또 3월 말에서 4월 초 3차 물량을 풀 계획이다. 지금까지 캡콤 코리아가 시장에 풀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스트리트파이터4’ 물량은 2만 장(1차, 2차 합산)이 넘는다. 캡콥 코리아 측에 정가로 판매된 예약판매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문의했지만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대작이었기 때문에 예약판매 물량 또한 다른 타이틀에 비해 많았다는 답변만 얻을 수 있었다. 예판 물량은 보통 리스크를 감안해 판매를 확신할 수 있는 물량만 푸는 것이 관례다. 오프라인에서 사라진 물량이 꽤 컸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해 총 판매량 1만장을 넘기는 게임소프트웨어가 아예 없거나 손에 꼽을 정도의 시장. 그런 시장에 한 달도 안 돼 2만장이 넘는 ‘스트리트파이터4’가 뿌려졌지만 제 값에 구하기는 힘들다.
“시장이 개판이 됐어요. 아마 바이오하자드5나 앞으로 나올 대작들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정가에 사고 싶으시면 예약판매할 때 사세요. ”
불법복제로 이미 초토화된 패키지 시장에도 아직 망가질 것이 있었다는 것을 한국 게이머들은 감사해야 할까. 왜곡된 시장구조와 빗나간 상술. 피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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