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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실화! 섬머레슨 하러 떠난 막내의 지스타 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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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게임기자를 하면서, 국내 최대 게임쇼 한 번 안 가봐서야 면이 서질 않죠. 풋풋한 막내인 필자에게도 드디어 생애 첫 지스타가 찾아왔습니다. 직전에 블리즈컨 출장을 다녀오느라 몸도 마음도 노곤했지만, 그간 기대해온 신작들을(사실 섬머레슨) 시연해볼 생각에 한달음에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11월 11일(수)부터 14일(일)까지 5일간의 지스타 2015 기행기, 함께 보시죠.


▲ 지금부터 다사다난했던 4박 5일 지스타 출장을 되돌아 보겠습니다

서울역에서 선배들과 접선은 아침 9시, 4박 5일치 짐이 만만치 않았지만 튼튼한 캐리어에 담아놓으니 다니기도 좋고 여행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실 블리즈컨 취재로 미국에 갈 때는 캐리어가 없었는데, 워낙 짧은 일정이라 가방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거든요. 현지에서 짐이 늘어나리란 당연한 생각조차 못한 실수였죠. 결국 귀국길에는 온 몸에 기념품을 매달고 고통 받으며 비행기에 타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언제 캐리어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나쯤 꼭 장만하세요.

10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부산에 도달하는데 딱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확실히 이제는 서울과 부산이 하루 생활권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곧바로 벡스코로 향했죠. 상술했듯 필자는 지스타가 처음인데, 첫인상은 그야말로 웅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1, 2 전시장으로 나뉜 벡스코의 크기는 블리즈컨이 열린 애너하임컨벤션센터보다 훨씬 크더군요.


▲ 작년 기행기에서 멘탈 붕괴를 제대로 보여준 북맨 기자는 이제 포스가 남다릅니다


▲ 반면 지스타 초행인 필자는 부산행 열차 안에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쿰척쿰척

매년 지스타 전야에는 게임대상 시상식이 있기 때문에, 짐 풀고 취재 준비도 할 겸 대부분의 기자가 하루 전에 부산에 도착합니다. 필자는 선배들이 시상식을 주시하는 사이, 행사 전야 풍경을 찍어오라는 특명을 받았죠. 현장에서 발급받은 기자증을 목에 걸고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장 안쪽으로 향하자, 운영위원회 직원분이 자연스레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자격증을 내보이고 통과하는 건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지스타의 전야는 어떤 모습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야말로 공사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뭇 게이머를 맞아들이기 위한 마무리 작업에 열심이었죠. 어떤 부스는 아직 뼈대만 올랐고, 또 어디는 컨테이너만이 겹겹이 쌓여있는데 이걸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나 걱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기자실로 되돌아가 선배에게 물었더니, 어떻게든 다 만들어 놓는답니다. 실제로 이튿날 개장 때쯤에는 귀신같이 완성돼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컨테이너는 원래 부스가 그런 모양이더군요.


▲ 이걸 내일까지 완성시킬 수 있어? 싶었지만 어떻게든 다 끝내더군요


▲ 손님을 맞이하려면 우선 간판부터 달아야죠, 뚝딱뚝딱


▲ 나무는 왜 심나 했더니 '트리 오브 세이비어'라... 아...


▲ 처음에는 무슨 건설 지휘소(?)인 줄 알았는데 원래 부스 콘셉이 이렇다고

12일(목), 결전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날부터가 본격적인 지스타의 시작이죠. 언론 및 VIP는 개막 한 시간 전에 미리 행사장을 둘러볼 수 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곧장 소니 ‘섬머레슨’ 시연대로 향했습니다. 비록 필자에겐 피앙세가 있지만, 주위에 모태 솔로들이 지스타에 가거들랑 꼭 자신들의 여자친구를 보고 오라고 성화였죠. 덕분에 마치 결혼정보업체 직원마냥 ‘섬머레슨’ 속 그녀를 면밀히 살펴봤습니다.

혹시 몰라 설명하자면 ‘섬머레슨’은 플레이스테이션 VR로 구동하는 가상현실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가정교사가 되어 귀여운 여학생과 한 방에 있게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이 영상으로 보는 것만큼 그래픽이 좋진 않습니다. 그래도 현장감 하나는 나무랄 데가 없더군요. 하늘에 맹세코 기자로서,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구현돼 있나 고개를 숙여 확인하려 했지만 안내원이 곁에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 좋았냐고요?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섬머레슨'을 하기 전까지 제 인생은


▲ 생각만큼 그래픽이 좋진 않았습니다, 뭐 사랑은 외모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섬머레슨’과 함께 한 짧은 특혜의 시간이 끝나고, 수많은 관람객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첫 날 임무는 넥슨 행사장를 촬영하고 체험기를 몇 개 쓰는 것이었는데, 그 규모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그냥 사진 많이 찍고, 게임 좀 해보면 되겠지 싶었는데 넥슨 부스가 생각보다 너무 컸던 것이죠. 올해 지스타 넥슨 행사장은 총 300부스로, 벡스코 제1전시장의 삼분의 일 가량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야외 부스까지 냈으니 사진을 찍어도 찍어도 모자라더군요.

필자는 과거 ‘키리’와 ‘퍼거스’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넥슨을 괜히 미워하곤 했지만, 이렇게 지스타에 큰 투자를 하고, 홀로 어떻게든 견인하려는 모습은 든든하더군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모바일의 비중을 높이면서도 온라인 라인업도 나름 탄탄하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슈퍼 판타지 워’, ‘야생의 땅: 듀랑고’ 등 모바일 신작 하나하나가 개성적인 작품들이라 좋았습니다. 모바일게임도 시간이 흐를수록 개발력이 여무는 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년 게임대상은 3대 N의 각축전이겠다’ 싶더군요.


▲ 넥슨 부스가 정말 으리으리했습니다, 전체의 3분의 1 정도를 독식했죠


▲ 내부에서는 '서든어택 2'를 위시한 각종 온라인 기대작 시연은 물론...


▲ 모바일 부스도 잘 마련됐습니다, 처음에 보고 성가대인줄 알았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넥슨 부스 내 ‘팬파크’였습니다. 유저들이 넥슨 IP를 활용해 만든 각종 2차 창작물을 직접 사고 파는 공간으로, 서브컬쳐 마니아에겐 ‘코믹월드’로 익숙할 풍경이었죠. 넥슨 부스에 워낙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도 했고, 이러한 장터 문화를 신기해하는 사람도 많았던 덕분에 매상은 괜찮아 보였습니다. 첫 날에 벌써 ‘매진’를 써 붙인 상품이 즐비했죠.

“압도적인 규모로!”를 외치는 넥슨이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시도는 아주 좋아 보입니다. 지스타가 해외 게임쇼에 비해 아쉬운 점이 바로 변변한 기념품점이 없다는 점인데, 이 부분을 유저들이 직접 채워나가는 거죠. 업체들이 비용을 대기 부담스럽다면 주최측에서라도 한번쯤 고민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 어릴 적 서코 다니던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이곳이 바로 넥슨 팬파크


▲ 아무나 입점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만큼 상품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 역시 입지가 좋아서인지... 첫 날인데도 여기저기 '매진' 스티커가 한가득

어느덧 넥슨과 함께한 지스타 첫날이 저물고, 이튿날은 가장 즐거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스타의 꽃! 부스걸 촬영이죠. 블리즈컨은 대부분 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 직원들이 안내를 맡기 때문에 부스걸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어요. 사진으로 볼 때는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니 사심보다는 일종의 존경심이 들더군요. 눈을 쪼는 강렬한 조명 바로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포즈를 취해주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부스걸을 꼽자면, 역시 ‘니드 포 스피드 엣지’ 시연대 옆에서 아벤타도르와 함께 있던 레이싱걸이었어요. 이제껏 모터쇼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왜 그렇게들 레이싱걸을 연호하는지 단박에 알겠더군요. 남자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슈퍼카와 미녀가 함께 있으니 몇 배는 상승 효과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사진 기술이 어설픈 필자가 찍어도 곧잘 좋은 그림이 나왔습니다.


▲ 하루 종일 미소를 잃지 않으며 관람객을 맞아주던 엘프양


▲ 우스갯소리로 지스타가 아니라 걸스타라고도 하는데, 인포데스크마저 미녀가


▲ 아벤타도르를 두고 다른 곳에 눈이 가다니, 레이싱걸의 매력이 어마무시합니다

13일(금)의 하이라이트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블레이드 앤 소울’ 행사였습니다. 우선 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이 상연된 후 곧바로 ‘블소 토너먼트’ 결승이 이어지는 일정이었죠. 설마 게임기자를 하면서 뮤지컬을 볼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필 우산도 없는데 저녁부터 비가 쏟아져 홀딱 젖었지만, 그럼에도 이번 지스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묵화마녀 진서연’은 다채로운 볼거리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가득 채워진 거대한 문화예술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과한 나머지 다소 번잡했고, 내용 전개에 있어서도 여기 저기 허술한 점이 눈에 띄웠습니다. 그럼에도 공연 전체에서 열정이 느껴졌고, 게임이 이러한 공연을 창출했다는 것만으로 벅차 올랐습니다. 필자는 어디까지나 게임기자일 뿐, 뮤지컬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자질은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살짝 눈물이 흐를 정도로 좋았습니다.


▲ 여기서 처음 들은 '바람이 잠든 곳으로',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 랩, 탭댄스, 풍물놀이, 마샬아츠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 찬 공연이었어요

e스포츠 취재는 다른 선배 기자가 도맡았으므로 이어진 ‘블소 토너먼트’를 여유롭게 관람할 순 없었습니다. 올해 지스타는 ‘블소 토너먼트’ 외에도 ‘피파 3 아시안컵’, ‘리그 오브 레전드 KeSPA 컵’이 동시에 진행됐죠. 경기 사이사이 축하공연도 화려해서 최근 인기절정인 ‘언프리티랩스타’는 물론 ‘원더걸스’, ‘마마무’ 등 걸그룹이 총출동했습니다. 전체적으로 e스포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하겠습니다.

3일째에는 드디어 지스타 취채에도 완전히 적응해서 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날 주어진 임무는 아케이드관과 보드게임관을 두루 둘러보고 소개하는 것. 게임쇼라 하면 휘황찬란한 부스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곳은 사뭇 의외였습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둘러 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연인이 함께 농구공을 던지거나 펀치 머신을 두드리고 있었죠. 연이은 출장으로 피앙세를 못 만난 지 어언 수십일.. 옆구리가 급격히 시려오고 있었습니다 (기행기를 쓰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 첨단 게임쇼의 또 다른 일면 보드게임관, 단체 관람객에게 딱 맞았습니다


▲ 필자를 괴롭게 한 농구공 커플, 부디 예쁜 만남 이어가세요~


▲ 우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다행히 길었던 지스타 출장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행사는 일요일까지 진행되지만, 기자들은 보통 3일차에 모든 취재를 마감하죠.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상경 채비를 갖춰야 하니까요. 게임메카 취재진도 모두 11시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치던 사람들이 거의 초주검이 된 채로 말이죠.

뭐랄까, 일정 자체가 빠듯하기도 했지만 행사장를 가득 매운 인파를 헤쳐나가다 보면 절로 지치는 것 같습니다. 4박 5일 일정이다 보니 피로가 점차 누적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신입기자로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온라인 대작이 확- 줄었다고 아쉬워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필자는 새로운 시대로 내딛는 지스타의 첫 발을 곁에서 지켜본 듯 해 기뻤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지스타 2015, 필자가 내년까지 짤리지만 않는다면 한층 성숙한 기자가 되어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 길고도 짧았던 지스타 2015와의 4박 5일, 안 짤리면 내년에 또 보자


▲ 그렇게 해운대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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