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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과연 국산게임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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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아크, 과연 국산게임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 (사진제공: 스마일게이트)

2014년 지스타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약 2년, 오랜 기다림 끝에 스마일게이트 야심작 ‘로스트아크’가 유저들 앞에 섰다. 사실 한국의 ‘듀크 뉴켐 포에버’를 꿈꾸는 ‘페리아 연대기’나 ‘리니지 이터널’에 비하면 그리 늦은 편도 아니지만, 영상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던 탓에 1차 테스트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사이 국내 게임계는 많은 부침을 겪었다. 당시에도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PC 온라인게임 시장은 더욱 암울해졌고, 특히 MMORPG의 몰락이 가속화됐다. 국산게임에 대한 인식도 악화일로를 걷다가 ‘서든어택 2’로 정점을 찍었다. 이제 막 나설 채비를 갖춘 ‘로스트아크’ 입장에선 난감할 법도 하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로스트아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산게임의 마지막 희망’쯤으로 추대됐다. 비록 외산 AOS와 FPS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기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국산 MMORPG의 부흥을 고대하고 있다. 과연 ‘로스트아크’는 제목처럼 우리들의 방주가 되어줄 것인가? 기대와 우려 섞인 심경으로 5일간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 2014년 지스타 영상,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트레일러는 솔직했다,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비주얼

솔직히 말해서, 많은 게임이 영상으로 사기를 친다. 유저가 직접 이것저것 만져보고 확인하는 시연과 달리 영상은 정제된 환경에서 얼마든지 의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니까. 이쪽 방면의 상습범으로 U모사가 악명 높고, 국내에도 N모사가 영상의 마술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니 ‘로스트아크’의 2014년 지스타 영상에도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는 노릇.

다행히 ‘로스트아크’는 솔직했다. 당시 뭇 게이머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영상은 실제 게임 속에 거의 그대로 구현됐다. 모바일게임에도 언리얼 4 엔진이 쓰이는 시대에 언리얼 3와 다이렉트X 9.0c를 채택해 우려를 샀지만 전체적인 비주얼과 효과 모두 훌륭하다. 2년 전만큼 놀라운 광경은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동종 장르에서 최고봉이다.



▲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비주얼, 찍으면 그 즉시 월페이퍼가 탄생한다

단순히 그래픽 기술이 뛰어나는 뜻이 아니다. 기자가 느낀 ‘로스트아크’의 비주얼은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인지 게임 속 디자인이 지나치게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멋지고 아름다우면서도 조잡해지지 않는 선을 잘 지켰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배경 묘사 또한 매우 세밀하고 자연스럽다. 소담한 꽃송이 하나부터 웅장한 성채까지 전부 세계와 잘 융화되어 있다.

직업마다 튜토리얼 지역의 콘셉트를 상이하게 꾸며 다양한 환경을 보여준 점도 인상 깊고, 여기에 적절한 BGM이 어우러져 몰입감을 배가 시킨다. 개발진도 배경에 자신이 있었는지 일종의 조망 시스템을 갖춰놓기도 했다. 이러한 담백한 고급스러움은 스킬 효과는 물론 각종 GUI 하나하나에서까지 깨알 같이 배어있어 플레이 내내 좋은 인상을 받았다.


▲ 하나의 게임 내에서 이처럼 다양한 환경을 보여준다, 튜토리얼 뿐이지만...

다만 환경과 상호작용에 있어선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무릇 길가에서 나무통을 보면 부수고 싶은 것이 게이머 마음인데, 캐릭터가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물이 거의 없다. 작동 가능한 물품이 있더라도 특정 위치에서 G키를 누르면 정해진 연출이 나오는 극히 제한적인 방식이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몇몇 주요 지역과 달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일반 필드는 다소 심심하게 구성된 것도 유저의 집중을 흐린다.


▲ 정작 오랜 시간을 보내는 초중반부 필드는 상당히 무미건조하다


▲ 항아리 깨고 싶어!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핵 앤 슬래시? 정통 MMORPG? 어중간한 정체성

수년 전 블리자드의 쿼터뷰 액션RPG ‘디아블로 3’가 발표된 후, 비슷한 모양새의 국산 게임 3개가 연이어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리니지 이터널’과 ‘뮤 레전드’ 그리고 몇 년 늦게 대열에 합류한 ‘로스트아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세 작품은 MMORPG를 표방하며 ‘디아블로 3’와 선을 그었지만, 근래에 잘 쓰이지 않던 쿼터뷰를 채택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테스트를 진행한(그리고 곧 또 진행할) ‘뮤 레전드’는 자잘한 UI부터 큼직한 시스템까지 ‘디아블로 3’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다. 그것도 ‘더 많은 적을, 더 호쾌하게 쓸어버리고, 더 많은 아이템을 챙기는’ 핵 앤 슬래시(Hack & Slash, 자르고 베기) 쾌감을 집중적으로 계승 및 발전시켰다. 정체성이 확실한 만큼 콘텐츠도 노골적이다. 전투, 전투, 전투, 파밍, 파밍, 파밍…


▲ 이러니 저러니해도 '줍는 재미' 하나는 확실한 '뮤 레전드'

반면 ‘로스트아크’는 예상과 달리 ‘디아블로 3’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핵 앤 슬래시라기에는 이동과 전투의 템포가 너무 처지고, 테스트 중반부까지 파밍의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쿼터뷰 MMORPG에 더 가깝다. 최대 8개 스킬을 구사하며 펼치는 전투는 일견 현란하지만 조금만 해보면 깊이가 매우 얕음을 알 수 있다.

각 스킬은 화려하긴 하지만 연계를 통한 상승 효과가 전혀 없고, 각종 상태이상으로 전투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중반부터 볼 수 있는 보스 몬스터는 그나마 특정 스킬로 경직시키는 ‘무력화’ 기믹이 있지만, 그 외에는 그저 QWER, ASDF를 연타할 뿐이다. 스킬 조합이나 강화 선택지도 전무하여 초반 스킬은 덧없이 버려지는 구조다. 덕분에 진입장벽은 낫지만 하면 할수록 단조로움이 강해진다.


▲ 한정된 스킬 포인트로 선형적으로 강화시키는 스킬, 약한 것은 금새 버려진다


▲ 시각 효과가 뛰어나 그나마 덜 지루하지만, 결국 무념무상 스킬난사

핵 앤 슬래시의 또 다른 매력인 파밍도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필드에 깔린 몬스터는 그저 ‘~를 ~마리 잡아와라’식 퀘스트를 위해 존재할 뿐이고, 뭐라도 얻으려면 인던에 가야 하는데 초반부에는 이게 아예 없다. 어찌어찌 인던에 도달한다고 아이템을 퍼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테스트 최고 레벨을 찍고 나면 갑자기 무한생성 던전과 대형 보스 레이드과 같은 반복 사냥 및 파밍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굳이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택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들여 얻은 아이템에서 보람을 찾기도 어렵다. 현재 ‘로스트아크’의 아이템은 다분히 숫자 만능주의를 따르고 있다. 독특한 옵션이나 효과, 외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장비에 붙은 능력치가 더 높은 걸로 갈아 끼우면 끝이다. 심지어 이 수치가 무작위로 주어져 원하는 능력치가 아닐 경우 찝찝한 기분으로 다시금 레이드를 뛰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네임드 아이템은 확정적인 성능이 보장되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 마치 초창기 ‘디아블로 3’를 보는 듯 하다.


▲ 아이템이 죄다 숫자 만능주의다, 개성적인 옵션은 찾아보기 어렵다


▲ 힘겹게 보스 몬스터를 잡아도 보상은 무작위 능력치가 붙어 허탈하다

이제 겨우 1차 테스트인 시점에서 이러한 지적이 과도한 트집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투와 파밍 콘텐츠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촘촘히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로스트아크’의 어중간한 정체성이다. 짧은 테스트 기간 대비 풍부한 콘텐츠와 고운 때깔로 잘 넘어가긴 했지만, 현재 ‘로스트아크’는 핵 앤 슬래시로도 MMORPG로도 불완전한 작품이다. 어느 한쪽에 집중하질 못하고 있다.

핵 앤 슬래시라기에는 전투도 너무 단조롭고, 아이템 파밍 및 강화 등의 요소가 미완성이다. 퀘스트 보상으로 얻는 장비를 갈아 끼우며 스토리를 따라 필드를 전전하는 것은 MMORPG의 방식이지 핵 앤 슬래시에 통용되는 문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연한 MMORPG라기에는 전투 외에 보여준 콘텐츠가 없다시피 하다. 물론 채광과 같은 생활 콘텐츠를 일부 선보였고, 앞으로 무역과 항해도 추가된다고 한다. 결국 2차 테스트가 되어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4차 테스트까지 콘텐츠를 차례로 검수할 예정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박력 넘치는 연출, 갈수록 맥 빠지는 전개

이제는 다소 공허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본디 RPG의 최대 미덕은 스토리와 캐릭터에 있다. ‘로스트아크’도 모처럼의 대형 MMORPG이니만큼 범람하는 모바일게임과는 다른 웅대한 세계관과 깊이 있는 서사를 기대해봄 직하다. 그리고 실제로 프롤로그를 지나 초반 마을 ‘레온하트’까지는 꽤나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개된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악마와 대적하게 되는 영웅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본격적인 모험을 시작하는 부분까지. 세계관의 주요 사건인 ‘사슬 전쟁’을 유적 조사 과정에서 자연스레 들려주는 방식도 세련됐고, 마을 주민들이 주는 자잘한 퀘스트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납득할만하다. 경비병이 짝사랑하는 아가씨에게 대신 꽃을 전해주고 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NPC들과 면식도 익히고 몰랐던 시스템도 배우게 된다.


▲ 힘을 잔뜩 준 프롤로그는 세 직업 모두 재미있다, 영웅이 되어가는 당위성도 충분하고


▲ 세계관을 구구절절 읊는 대신 퀘스트 사이에 껴넣은 방식은 세련됐다

그런데 이 구간을 넘어서며 전개가 급 지루해진다. 필드로 나아가 병사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다음 필드로 건너가 병사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단순 반복 플레이. 이런 류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구성이다. 퀘스트 내용조차 천편일률적인 ‘~를 ~개 ~해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조금씩이나마 거대한 사건이 펼쳐지긴 하는데 그래 봤자 어디서 본듯한 악당이 어디서 본듯한 악행을 벌이는 것이 전부다. 이게 후반부 ‘영광의 벽’까지 계속된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고민을 안 했나 싶을 정도.


▲ 초반을 벗어나는 즉시 '~를 ~마리 잡아와라' 퀘스트가 게임을 잠식하다니

반면 스토리를 보여주는 연출 방식은 놀랍도록 박진감이 넘친다. 보스와의 이벤트 전투에서 돌진해오는 적과 주인공이 간발의 차로 스쳐가는 것을 슬로 모션으로 잡아주고 이어서 카메라를 당겨 치열한 접전을 속속들이 비춘다. 쓰러진 주인공이 깨어날 때는 1인칭 시점으로 전환하여 현장감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무언가를 타고 내려가거나 떨어질 때 캐릭터 등 뒤에 바짝 붙는 신들린 카메라 워크를 선보인다. 그야말로 ‘로스트아크’의 백미.





▲ 연출에 박수를, 쿼터뷰 RPG에서 이렇게 신들린 카메라 워크는 처음 본다

나쁘지 않은 첫 출발, 허나 축배를 들기는 많이 이르다

어찌됐든 ‘로스트아크’ 1차 테스트는 성황리 종료됐다. 만족스러운 비주얼과 역동적인 연출, 5일간 즐기기에 부족함 없는 콘텐츠와 앞으로의 비전 제시까지, 사실상 첫 테스트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국내 유저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우세하고, 이만하면 스마일게이트도 모처럼 축배를 들고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아직 샴페인을 따기에는 많이 이르다.

현재 쏟아지는 칭찬은 어디까지나 1차 테스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직은 핵 앤 슬래시인지 정통 MMORPG인지조차 분명치 않고, 장기적인 플레이를 유도할 핵심 콘텐츠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만듦새는 뛰어나지만 그것이 꼭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난해 ‘메이플스토리 2’가 좋은 회례가 되지 않을까.

1차 테스트의 피드백을 수렴해 반영하고, 나아가 다음에 선보인다는 생활 콘텐츠까지 매만지려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이왕 완성도 하나보고 달려가는 게임이라면 부족한 부분을 모두 채워서 나와주길 바란다. 첫 출발은 나쁘지 않다. 국내 시장이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되려 무혈입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외산과도 경쟁할만한 작품성을 갖추는 것이다. ‘로스트아크’가 훗날 정말로 국산게임의 방주가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 호평 속에 막을 내린 1차 테스트, 허나 축배를 들기는 이르다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김영훈
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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