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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마감 펑크 탓에 최고에서 최악으로 전락한 ‘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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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펑크 탓에 최고에서 최악으로 전락한 ‘미스’


“잡지사 마감 펑크!!!”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명작이라는 한 마디에 무작정 원고를 잡았던 나는 결국 잡지사 마감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 속에 ‘미스’와 3일간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를 상당히 우수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의 생사를 넘나드는 데드라인의 압박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좍좍 돋을 것만 같다.
 

민간인으로의 적응을 위한 첫 제물 "미스"

때는 바야흐로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로 기억된다. 제대 후 얼마간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입사하라는 여러 회사의 권유를 마다하고(-_-;) PC활용지 및 게임지 필자생활로 용돈을 벌던 시절….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과도기적인(?) 헤어스타일로 한창 게임과 원고로 밤샘을 거듭하던 시기였다(사실 입대 전에 있던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은 바람에 게임밖에 할 게 없었다. (-_-;)
내가 최악의 게임 ‘미스’를 만나게 된 계기는 다른 잡지사보다 다소 원고료를 많이 준다는 PC활용지 H사의 H기자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당시 페이지 당 6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됨). 입대 전부터 몇몇 PC활용지 및 게임지에 원고와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지라 H기자와의 첫 만남은 다른 기자의 소개를 거쳐 순조롭게 이어졌다. 의례히 그렇듯 같이 밥 먹고 편집실 가서 얘기 좀 나누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H기자. 얼마 뒤 나타난 H기자는 ‘미스(Myth)'라고 매직펜으로 써놓은 CD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정식버전이 출시되기 전에 나온 최종 마스터 버전. 남들보다 빨리 해볼 수 있다는 유혹도 강했고, 처음에는 뭐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흔쾌히 공략을 승낙했다. 문제는 그 뒤의 일. 마감 기간이 너무 짧은 탓에 불과 3~4일 만에 원고를 끝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말이 3~4일이지 웬만한 게임 하나 엔딩보려면 넉넉잡아 일주일, 밤샘을 해도 3~4일은 걸릴 텐데 그 시간에 원고와 스크린 샷까지 찍어 보내라는 얘기였다. 더욱이 나중에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스‘는 하루 이틀 만에 끝낼 게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 게임은 정말 끝내준다. 그러나?




[스페셜리포트]
마감 펑크 탓에 최고에서 최악으로 전락한 ‘미스’


우쒸! 재미는 있는데, 장난 아니게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미스를 받아들고 집에 돌아왔다. 이럴 때는 집에 있는 PC의 사양이 낮았으면 좋으련만(쉽게 거절할 수 있다. 게임이 안 돌아가니까-_-;), 당시 현란한 3D그래픽을 자랑하던 부두 카드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H기자의 정보력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조차 없던 입장이었다.
인스톨하고, 게임 실행시켜보니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의 3D 그래픽이 눈을 자극한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기존의 실시간 전략게임과는 다른 형태의 전략과 기획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유니트만 죽어라고 뽑아서 러시 들어가는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었다. 유니트 생산 기능은 없고 단지 주어진 유니트로만 전략을 짜내야 하며, 당시 몇 안 되는 풀 3D게임이었던지라 지형의 고저와 위치 선정 등도 승패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처럼 게임에 감동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제는 이 게임을 적어도 내일까지는 끝내야 하루 종일 원고 쓰고, 스크린샷 잡아서 넘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져 스테이지를 거듭할 수록 난이도가 장난 아니게 높아진다는 점이다. “따르릉” H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몇 페이지는 펑크 메웠으니 스테이지 구성을 홀수로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홀수로만 진행한다 해도 결국 짝수를 깨야 홀수를 볼 것 아닌가? “우쒸~ 원고료만 절반 가까이 날렸다 -_-;”


▶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3D 그래픽




[스페셜리포트]
마감 펑크 탓에 최고에서 최악으로 전락한 ‘미스’


우정은 무색이라 영원히 변치 않으니...

결국 모니터 때문에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새벽 별보기 운동’에 참여하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만에 엔딩을 보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역부족이다. 밥도 굶었더니 배도 고프고, 허리도 아파오고, 컴퓨터 또한 알 수 없는 에러발생으로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앗! 그때였다. 친구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삐삐(당시에는 삐삐도 비쌌다-_-). 모 통신사 게임 동호회의 전략게임 시삽을 맡고 있던 친구였다. 잽싸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 그 친구 왈 ‘미스’가 어떤 게임인데 하루 이틀 만에 엔딩을 보냐는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같은 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싶었다. 그때 친구가 남긴 한 마디.
“나 3일전에 그 게임 엔딩 봤는데 도와줄까? 그런데 내가 요새 삐삐 요금이 2달 연체됐거든?”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얼마 전 사설 BBS, 지금으로 얘기하면 와레즈 통신에서 ‘미스’를 받은 뒤 엔딩을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내 입장은 앞 뒤 가릴 것이 없다. 2달 삐삐요금 몇 만원이 문제인가? H기자에게 큰소리 뻥뻥쳤던 자존심과 업계에 알려진 ‘성실한 소년’이라는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친구는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방을 급습, 친구는 게임진행하면서 설명과 스크린샷을 찍고 나는 옆에서 노트북으로 얘기 들으며 원고를 작성하는 처지가 되었다. 친구는 자기 시간도 마다 않고 이틀 동안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결국 3일 만에 게임 공략 완료! 하지만 지금까지 잡지사에 원고를 쓰면서 이토록 고생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상상력을 덧붙여 공략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공략을 끝낸 친구의 한마디 “나중에 여유갖고 다시 한 번 해봐! 미스 정말 괜찮은 게임이야.”
“우웩! 네가 내 입장이라면 다시 하고 싶겠냐? 필자 생활 6년 만에 이런 고생 처음이다”
예전 다른 잡지사 게임프리뷰 기사를 쓸 때 ‘새로운 전략게임의 역사를 창조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엄청난 찬사를 보냈던 나는 그날 이후 게임의 작품성과 상관없이 ‘미스’를 내 인생 최악의 게임 1순위에 올려놓고 말았다. 게임은 재미있어도 지금껏 나를 그토록 고생시킨 게임은 없었으니 말이다.


▶ 우웩! 스크린샷만 봐도 속이 울렁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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