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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1촌’ 되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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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지에 변태

얼마 전 일이다. 취재를 마치고 잠시 서점에 들러 책을 사려는데 웬 여고생 2명이 큰 맥주병 모양의 저금통을 책장위에 올려놓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어 저금통에 넣었다.

아저씨 뭐에요?”

“어, 그냥… 저금통이 여기 있길래…”

“웃기는 아저씨네. 야, 너 디카 있지?”

여고생 둘은 나의 의견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고 내 사진을 한컷 찍었다

“사진은 왜 찍는데?”

“내 미니홈피에 올리려구요”

‘하늘에 맹세코’ 이 나이에 무슨 여고생을 꼬시겠다는 수작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여고생들의 미니홈피에 ‘쪽’ 이 팔리게 되었던 것이다(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500원 짜리 동전하나 가지고는 고등학생 2명과 원조교제를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_-;;).

보나마나 사진 제목은 [서점에서 만난 또라이] 나 [500원으로 수작 걸던 변태] 쯤이 되었을 테고 그 밑에 리플은 음… 더 생각하기도 싫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홈피 주소라도 따오는 건데.

2. 그런 건 내 홈피 와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예전 하이텔 시절부터 같이 통신하던 친구를 만났다.

야, 오랜만이다. 정훈이 장가갈 때 보고 첨인가?”

“응. 어떻게 지내냐? 마눌님하고 모두 건강하시고? 회사 옮긴다더니? 참 네 동생 유학간다더니 어떻게 됐냐? 아 이러지 말고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할까?”

“그런 건 내 홈피가서 보고. 홈피 주소 가르쳐 줄께”

아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같이 소주나 한잔 하면서 세상사는 이야기하자라는 말은 못할망정 ‘그런건 내 홈피가서 봐라’? 그래 얼마나 대단한 홈피인지 가서 봐주마.

친구의 미니홈피에 가 봤더니 무슨 놈의 퍼온 엽기 사진들과 1촌들의 방명록 러시와 별 의미없는 사진 폴더가 그리도 많던지 정작 내가 알고 싶은 가족들의 안부는 둘러보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다. 내가 “잘 보고 간다”라는 방명록 글을 달았더니 불과 30초도 안 되어서 “또 놀러 와라”라는 답글이 달렸다. 뭐냐, 램상주 바이러스냐…

다음에 또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내 홈피 와서 봐” 라는 소리를 할라치면 “닥치고! 어떻게 살았는지 말로 하라고!” 라고 할 예정이다.

3. 전국적으로 변태될 뻔

어찌어찌 하다 나도 미니홈피라는 것을 만들었다. 하도 휑~ 하니 썰렁해서 해외 출장갔던 사진도 올리고 우리집 강아지 사진도 올리고… 1촌신청도 하고 1촌신청도 받아주고… 남의 방명록에 가서 글도 쓰고... 나도 1촌친구들도 많이 확보하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홈피 업뎃이고 뭐고 1촌 확보고 뭐고 다 때려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해외게임쇼에 출장가서 가슴이 멜론만한 반라의 모델과 다정히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을 내 1촌 친구가 가져가서 나의 동의는 전혀 구하지 않고 모 인기 디카 사이트의 사진 자료실에 올려놓은 것이다(이 이야기는 쪽팔리게도 신문에도 실렸다. 개인 사생활 무차별 침해라는 제목으로 -_-;).

나와 그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II’ 반라의 모델은 이제 본격적으로 악플러들의 대대적인 영접을 받으려는 찰나였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삭제시키고 나도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려고 그 친구 홈피에 들어갔는데 이 쥐새끼같은 인간이 문제가 될 만한 자기 사진은 전혀 올리지 않아서 결국 실패했다.

결국 1촌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이미 여러명이 본 그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흘러 흘러 언젠가는 “이거 너 맞냐?” 라고 하면서 내 MSN 메신저로 전송될 것이다)

▶ 온라인커뮤니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노출증과 관음증을 동반한 사생활 침해의 대표 케이스인가. 분명한 것은 온라인게임과 연계되면 대단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은 확실하다는 점이다

내 개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두번은 있을 정도로 이 모 커뮤니티 사이트는-이게 싸이월드인거는 삼척동자도 다 알테니 그냥 의뭉 떨지 말고 싸이월드라고 밝히자-철옹성이라고 여겨지던 DAUM의 페이지뷰를 순식간에 넘어서서 사상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메일서비스와 까페, 지식인 서비스, 아바타를 거쳐 진화한 인터넷의 ‘대세’가 이제는 블로그를 내세운 미니홈피까지 간 것 같다

1인 미디어를 지향하는 블로그와는 다르게 철저하게 개인신변잡사 위주로 이루어지는 미니홈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 같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셀러브리티’의 미니홈피도 많아 연예인, 정치인, 재벌집 딸네미의 홈피는 찌라시를 타고 전국민에게 공개가 되기도 한다.

도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다. 홈피개설-친구방문-업뎃좀해라 성화-업데이트-친구방문러시-1촌확보-업데이트-친구방문증가-업데이트-무한반복… (뭐 아닐 수도 있다).

업데이트 대행사라도 쓰면 모를까 개인이 직접 제작한 컨텐츠만으로는 막강한 방문자들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킬 재간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자기 사진, 자기 글을 올리다가 나중에는 별로 맛있을 것 같지도 않은 직찍 음식사진, 스크랩, 불펌 등으로 컨텐츠를 꾸역꾸역 채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도토리(현금)를 쓰면서 자기의 홈피를 형형색색으로 꾸미고 음악을 사서 돌리는 것을 오로지 ‘자기만족’ 이라는 말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결국은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함 아닌가

또 클럽에 신규회원이 가입하면 그 사람의 홈피에 가서 어떻게 생긴 인간인지 기를 쓰고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약간의 훔쳐보기 심리를 만족시키는 측면도 있다(이러니 정말 내가 변태같다. 덕분에 요새는 부푼 기대를 안고 번개모임에 나가서 폭탄에 실망하고 만취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_-;;).

에로틱한 코드만을 제거한 관음증과 노출증에 다름없는 이 같은 미니홈피 열람은 이것이 인관관계로 이어지기 시작하면 피곤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냥 오다가다 게시판과 방명록으로 인사만 몇번 나누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1촌신청을 하고 내가 그다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진을 기어이 보겠다고 나서면 대략 난감하다. 신청을 받아들이자니 ‘우리가 대체 서로에 대해서 뭘 안다고?’ 라는 생각이 들고 신청을 거부하자니 ‘난 댁같은 인간하고는 친하게 지내기 싫소’ 라고 면박을 주는 것 같아 힘들다.

‘그 바닥에서’ 나름대로 인맥을 구성하고 있는 그 1촌신청자에게 [1촌신청거부]라는 버튼을 누르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건 그냥 “같이 뚜껑 열까?” 라고 물어보는데 “저 왕뚜껑 싫어하는데요?” 라고 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수익모델을 찾는 데는 천재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이 거대한 커뮤니티를 놓칠리 없다. 이미 몇몇 업체가 자사의 온라인게임과 이 사이트를 연계하기 위해서 물밑 접촉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인티즌의 군주같은 게임은 자체의 미니홈피와 온라인게임을 노골적으로 접목 시키겠다고 대놓고 나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니홈피와 메신저, 온라인게임의 연계는 대박날 확률이 90% 이상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도 별 무리는 없겠다. 어떻게라도 사용자를 끌어들여야만 다음 스토리가 진행되는 온라인게임 퍼블리셔들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는 1촌을 맺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온라인게임에서 파티도 맺기 힘든 날이 오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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