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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 ―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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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발중인 게임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은 제작 프로젝트명이다. 하지만 시드마이어의 문명, 피터몰리뉴의 블랙&화이트 2, 코지마히데오의 메탈기어 솔리드 3 등 유명 개발자의 이름을 내세운 게임이 아닌 다음에야 게임에 대해 흥미를 가질 여유를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초기 컨셉을 그린 원화와 포스터 등의 게임 일러스트가 공개된 이후에는 이야기가 틀려진다. 게이머들이 게임과 처음 관계를 맺는 것은 데모버전도 아니며 스크린샷도 아닌 이른바 원화, 컨셉아트라 불리는 게임 일러스트다.

▲A3의 경우 게임이 등장하기도 전에  레디안 한명으로 주목받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해당 일러스트에 나타난 캐릭터와 배경 분위기 등이 게이머에게 얼마나 강한 첫인상을 남기는가에 따라서 기대작이될 수도 있고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게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게임의 원화는 어느 정도 그림 실력이 있는 사람이 구색을 갖춘 정도의 모습으로 대부분 러프스케치를 통해 도트 작업으로 게임에 반영하거나 일부 만화가나 애니메이터의 부업 정도로 진행해왔다.

게임전문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포지션이 생긴 것은 얼마되지 않았고 그나마 제대로된 원화와 일러스트를 공개한 시점도 2000년이 되서야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호응과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최근 게임개발사들은 초기 게임의 컨셉을 잡을 때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를 기용하거나 아예 개발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키우며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러스트로 더 유명해진 게임과 캐릭터를 만든 사람들

◆창세기전 시리즈 (일러스터: 김형태)
게임 일러스트로 이름을 알리고 게임보다 더 많은 유명세를 치루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소프트맥스의 김형태 씨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소프트맥스 콘솔개발팀 캐릭터 아트 디렉터’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김형태 씨는 2000년 발매한 창세기전 3 캐릭터 디자인으로 일반 게이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게임 일러스트를 담당했었고 과거에는 만화가로 입문을 한 이력이 있다.

▲아마 국내에서 가장 알려진 일러스터라면 김형태 씨가 아닐까?

김형태 씨도 만화를 연재하던 만화가는 아니었지만 그가 그림으로 처음 입문한 계기는 97년 학산문화사의 만화공모전을 비롯해 서울문화사의 신인상 공모전 입상을 통해서다. 그리고 처음부터 소프트맥스와 같이 일한 것도 아니었다.

98년 만트라에 입사해 랩서디안 어컬텔러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담당하다가 소프트맥스에서 창세기전 외전으로 제작한 템페스트의 엔딩파트 일러스트를 외주로 받아 작업하면서 소프트맥스와 연을 맺게됐다.

이후 99년 소프트맥스에 입사해 창세기전 3 오프닝 무비 캐릭터 모델링 및 메인 캐릭터 디자인, 창세기전3 파트 2 메인 캐릭터 디자인 및 일러스트를 비롯해 마그나카르타 등의 작업과 이 작업의 결과물인 화보집 'Oxide' 출간했고 최근에는  PS2용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화보집 ‘Oxide 2'를 발간했다.

김형태 씨의 그림을 얼핏 보면 묘한 이질감을 갖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정형적인 인체비례를 일부러 무시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실제 마그나카르다 - 진홍의 성흔의 캐릭터를 보면 허벅지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외의 작품에서도 캐릭터의 특징을 위해 특정 부분을 좀 과장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경우 성숙미가 넘치다 못해 선정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그림체가 오히려 게이머들에게 인정받고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세를 치루고 있는 일러스트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그의 현재와 과거의 그림을 비교 해보면 컨셉을 느낄 수 있다

◆A3 (일러스터: 이소아)
성인전용 온라인게임을 표방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 전선에 온몸으로 뛰어든 캐릭터 ‘레디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온라인게임 마케팅 사상 가장 성공적인 평가를 받게 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레디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캐릭터를 만들어낸 사람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A3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담당한 ‘이소아’ 씨의 이름을 ‘이수아’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혹시 사이버 캐릭터 아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아담의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수아 씨가 아닌 이소아 씨라는 것을 상기하자

이소아 씨가 레디안을 창조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이었으며 이를 위해 레디안의 복장을 판타지계열 작가들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냈다. 그 결과 레디안의 장식들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화려함과 열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했으며 금빛을 띠고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레디안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컨셉이었다면 또 다른 캐릭터인 라벨르의 경우는 섹시하고 차가운 이미지였다. 간단한 예를 들어 라벨르의 입술이 두꺼운 것은 섹시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것.

또 레디안의 경우에 이소아씨는 수많은 전세계 여배우들의 사진을 뒤졌다고 한다. 여배우의 얼굴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잡아내기 위한 것으로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와 느낌, 컨셉을 골고루 갖춘 여배우의 사진을 통해 영감을 얻고 스케치의 베이스로 잡아냈다.

보통 레디안의 얼굴이 우리나라 배우 김정은 씨를 닮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자벨 아자니의 얼굴을 토대로 삼았다. 지금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다르지만 최초의 모습은 이자벨 아자니를 무척 닮았다고.

그러나 성인전용 게임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살색이 많이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게임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레디안도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태생적 특성(?)상 화려하고 강해보이는 갑옷을 입히기 어려웠으며 다양한 포즈를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부위가 이상하게 노출되는 등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레디안, 네 의상은 강해 보이는 게 아니라 오로지 노출이 컨셉이었어... 라고 이소아 씨는 홈페이지에.......

◆엔에이지, 리니지 2(일러스터: 정준호)
엔에이지를 접한 뒤 리니지 2를 접한 게이머가 있다면 뭔가 ‘어디서 많이 본 일러스트 인데...’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엔에이지의 컨셉 일러스트와 리니지 2 메인 캐릭터 디자인 및 일러스트를 담당한 사람이 정준호 씨므로 비슷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 그렸으니까 말이다.

안티 리니지 게이머들도 ‘그림하나는 정말 잘 그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정준호 씨의 그림으로 일러스트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러스터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팬클럽을 결성할 정도로 유명인이다.

그의 그림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정확하고 과장없이 묘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김형태 씨가 과장된 표현으로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었다면 정준호 씨는 사실적인 극화의 이미지로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

▲아는사람은 팬클럽 결성,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정준호 씨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라고는 하지만 그림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일류 모델을 앞에 두고 찍은 고급 포스터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왼쪽이 엔에이지 오른쪽이 리니지 2

가장 많이알려진 그림 2개를 비교하면서 자세히 살펴보자. 엔에이지의 바이크를 타고 있는 여성 라이더의 모습은 리니지 2의 다크엘프의 이미지와 상당히 흡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정준호 씨가 그리는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청바지 로 유명한 L사의 잡지광고의 럭셔리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주로 8등신에 가까운 캐릭터로 실제 인체비례와 가장 가깝게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음...과거의 그림으로 빠져 들어봅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정준호 씨는 김형태 씨와 10년간 같이 동고동락한 인물로 서로의 작품에 평가와 충고를 해주면서 자기개발에 힘쓰고 있다.

예고: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下)에서는 게임캐릭터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일본게임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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