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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대학 4장 게임산업의 미래-CHAPTER 1. 시간의 개혁과 소재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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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의 개혁

소프트의 미래를 생각해 봅시다. 이름하야 ‘게임의 미래학-소프트’입니다.

차세대 하드웨어는 이미 눈앞에 나와 있습니다. 32비트기 발매를 통해서 여러 가지 보도도 있었습니다(저자가 글을 쓴 시기는 1995년입니다 - 편집자 주). 하드에 관해서는 이제 풍부한 지식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차세대 소프트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예를 들어 가며 생각해 보죠.

우선 신랄한 비판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 나와 있는 소프트에 대해서 짚어 보겠습니다. 저는 현재 발매되고 있는 차세대 게임기용 소프트에 대해 한 가지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32비트기와 함께 데뷔한 소프트들에서 '차세대' 호흡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단순히 새로운 게임만 즐긴다면 그런 소프트들로도 충분하겠지요. 하지만 부족하게나마 '차세대'라고 큰소리치며 발매했던 게임기가 아닙니까? 그 대응 소프트 치고는 너무나도 낡은 발상의 게임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재미있는 소프트가 여러 개 있습니다. 흔한 TV 프로그램보다는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즉, 저의 본능은 이들 게임에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게임 소프트의 차세대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이성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혀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무의식 중에 차세대 게임기가 미래에도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는, 즉 놀이에서의 담보 보증과 같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해본 것들은 별로 담보가치가 없어서 미래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세가 새턴의 <버추어 파이터>나 PS의 <릿지 레이서>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소프트와 비교해서 나온 상대평가입니다. '차세대'란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미있다거나 잘 팔린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진화축이라는 큰 척도를 가지고 절대평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차세대 게임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케이드 게임이나 PC 게임의 이식 소프트가 대표작품으로 꼽혀 있는 것에 모순을 느낍니다.

이식 소프트는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게임 마니아식의 오만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식 소프트에는 그 이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회사에서는 이식 소프트는 개발기간의 단축이 가능하고 안정된 고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꿍꿍이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식 소프트는 종종 개발 자체가 안이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논법은 단순한 정신론에 불과할 뿐 정당한 비판은 되지 못합니다. '어째서 이식 소프트가 안 좋은가?'라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임회사는 20년 넘게 이런 비판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인기게임의 이식을 계속해 왔습니다. 70년대 전반에 <퐁>이 히트한 직후 <오딧세이>라고 하는 <퐁> 전용의 가정용 게임기가 발매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 아타리 VCS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80년대 초반 패미컴에는 <갤럭시언>과 <제비우스>가 역시 하드웨어 발매 직후에 이식되었습니다.

이와 똑같은 일이 90년대 중반을 거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즐기고 있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인기 게임을 이식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식이라는 발상이 가정용 게임 소프트의 가능성을 좁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아케이드 게임이란 백엔으로 3분간 즐기도록 되어있는 게임입니다. 언뜻 보기에 개성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듯한 업무용 비디오 게임이지만 난이도가 '백 엔으로 3분간'을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모든 게임이 공통적입니다. 이처럼 뜨내기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인 게임과 가정에서 즐기는 게임이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어서는 안 되며, 또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버추어 파이터>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릿지 레이서>의 자동차 움직임은 참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들 게임은 변함없이 백 엔으로 3분간 즐기는 게임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에 저는 진부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차세대이기는커녕 놀런 부시넬이 발견한-술에 잔뜩 취해서도 즐길 수 있다는-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PC게임의 이식 소프트는 정반대입니다. PC게임에는 '수십만엔이나 되는 PC를 구입한 유저에게 최저 30시간은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장시간 우선의 발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이런 낡은 발상에서 디자인된 게임이 그대로 차세대 게임기의 소프트가 되고 있는 점도 유감입니다. 요컨대 아케이드 게임이나 PC게임의 이식 소프트에는 아직 빈곤했던 시대의 발상이 남아 있습니다. PC는 고가 제품이여서 그것을 접하려면 '백엔에 3분'과 '수십만엔을 지불한다' 중에서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던 시절의 유물 냄새가 납니다. 그곳에서 차세대의 향기는 나지 않습니다.


2. 뜨내기 손님, 매니아, 그리고…

백엔짜리 동전으로 3분간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발상과 수십만엔을 지불할 머신이기 때문에 30시간 이상 즐길 수 있게 한다는 PC게임의 발상은, 바꿔 말하자면 게임이 뜨내기 손님과 마니아만의 것이었던 시대의 유물입니다. 즉, 참된 의미의 차세대 게임 소프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발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케이드 게임과 PC게임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식되고 있는 현상황이 '개혁의 포기'로 간주되어 지금까지 비판의 소리를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상황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고 지금부터는 차세대 게임 소프트에 대한 제언을 해보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 '시간의 개혁'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3분도, 30분도 아닌 놀이. 이 중간에 차세대 게임 소프트의 활로가 있습니다. 말이 길어집니다만 가정용 게임 소프트는 아케이드 게임과 PC게임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극히 비정상적인 놀이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게임은 1시간이나 반나절이면 깨끗하게 완결되는 것이 적습니다. 오히려 '3분형'이나 '30시간형' 중의 한 쪽에 치우친 소프트가 유저를 선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진귀한 현상입니다. 우리들은 마작의 '반장(半莊)'이나 장기의 1국처럼 1시간 단위로 완결되는 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바베큐 파티나 주오우 경마(中央競馬)처럼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무렵 클라이맥스를 즐길 수 있는 놀이도 휴일에는 곧잘 즐깁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시간 소비에 적합한 게임이 좀처럼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런 현상이 게임 시장에 있어서는 커다란 기회 손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차세대의 가정용 게임 소프트는 옛 습관을 버리고 더욱 더 다양한 놀이 시간을 플레이어들에게 공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곧잘 하는 "나는 서툴러서 금방 끝나 버리기 때문에 재미없다"는 말이나 "한번 시작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힐까봐 겁난다"는 불평까지도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차세대 게임 소프트라고 해서 폴리곤을 사용한 입체 CG나 대용량의 CD만을 연상하지 말고 유저의 플레이 시간부터 고려하는 게임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위에서 서술한 '시간의 개혁'이라는 개념은 수퍼패미컴 소프트의 <톨네코의 모험>이 이미 구현했습니다. 이 게임은 장시간 걸리는 것이 당연했던 롤플레잉게임을 1시간 안에 멋지게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차세대 게임 소프트라는 컨셉은 과거의 게임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의외의 부분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 계보를 계승하는 것으로도 새로운 소프트는 태어날 것입니다.


3. '우주'나 '판타지'와 결별하자

차세대 게임 소프트에게 '시간의 개혁'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소재의 개혁"입니다. 게임은 플레이 시간과 마찬가지로 좀 더 폭넓은 제재를 자유로이 취급해야 합니다.

현재까지의 게임에는 지겨울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주"와 "판타지"입니다. 항간에는 우주를 무대로 한 롤플레잉게임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게임에는 실제로 우주 로켓과 드래곤이 너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낡은 시대의 유물로 하루라도 빨리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게임은 왜 우주와 판타지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이전에 컴퓨터의 영상표현을 흑백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검은 화면에 흰점. 이 단순한 화상으로 게임을 만들었을 때, 제작자는 그것을 '우주"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게임이 <스페이스 워(우주전쟁. 왼쪽 그림)>와 <스페이스 인베이더>입니다.

또한 이것이 나중에 롤플레잉게임이라는 장르가 되었을 때 제작자는 "미궁 속"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임이 <로그>와 <위저드리>입니다. 컴퓨터가 흑백으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던 60년대나 70년대 무렵, 아직은 컴퓨터가 걸음마 단계였을 무렵, 테크놀로지에 대한 제약이 많았던 게임은 우주와 판타지에 자연스럽게 접근해갔던 것입니다.

시대는 16비트의 52색에서 32비트기의 1677만 색의 시대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숫자로 쓰면 어렵습니다만 요컨데 컬러 TV와 마찬가지로 어떤 색의 화상에서건 현재의 게임기는 재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우주와 판타지를 즐겨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90년 이후의 소프트를 전부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약 40%나 되는 게임이 우주와 판타지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축구, 야구, 레이싱… 등 현실 모방 소재입니다. 즉, 현재의 게임이 픽션세계를 다루게 되면 온통 우주나 판타지에 관한 것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요즘의 게임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판타지의 바이블 반지의 제왕 역시 게임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들은 컴퓨터의 사양이 향상되면 그 기능으로 토성의 띠나 동굴의 암벽을 아름답게 하는 것에만 열중합니다. 정말로 차세대 게임 소프트를 만들고 싶다면 흑과 백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새로운 소재, 그것도 의외성을 띠는 소재에 몰두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지고 "우주"나 "판타지"와 결별하지 않으면 차세대는 개척할 수 없습니다. 게임이여, 어서 빨리 "우주"와 "판타지"와 결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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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in Japan in 1996-2004 by Media Factory Co., Inc.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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