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 유저의 상당수가 ‘게임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꼽는다. 언젠가부터 ‘게임’은 컴퓨터를 통해 부수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컴퓨터의 존재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컴퓨터 게임은 컴퓨터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컴퓨터의 역사가 곧 컴퓨터 게임의 역사인 것이다.
70’s ~ 90’s : 네트워크의 발달과 게임
많은 게이머들이 온라인 게임의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온라인 게임은 컴퓨터 게임이 태동하던 초기부터 개발되어왔다. 애초부터 컴퓨터 게임은 혼자서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최초의 컴퓨터 게임인 브룩헤븐 연구소의 ‘테니스 게임(Tennis for Two)’은 두 명이 한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대전 게임이었고, 스티브 러셀(Steve Russel)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스페이스워(Spacewar)’도 우주 공간에서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에게 어뢰를 발사하는 대전 게임이었다. 초기의 게임 개발자들도 게임은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컴퓨터의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최초의 온라인 게임은
스페이스워의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최초의 온라인 게임은 1969년에 릭 블룸(Rick Blomme)이 개발한 스페이스워의 온라인 버전이다. 1961년에 스티브 러셀이 처음 발표한 스페이스워는 이후 여러 개발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기능이 개선되었는데, 릭 블룸은 여기에 네트워크상에서 즐길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릭 블룸의 스페이스워는 일리노이 대학의 돈 비처(Don Bitzer) 교수가 개발한 플라토(PLATO, Progr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 네트워크에서 구동되는 게임으로, 플라토의 다른 컴퓨터와 연결해 즐길 수 있었다.
플라토는 대학 내의 교육 전산화를 위해 개발되었으나, 학생들은 이 시스템을 활용한 게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1972년에 개발된 ‘엠파이어(Empire)’는 당시 유행하던 TV 드라마인 스타트랙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최대 32명까지의 플레이어가 우주선에 탑승해 팀을 짜서 행성의 자원과 군대를 공유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1973년에 데이비스 R. 울리(David R. Woolley)는 ‘Note’라는 대화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이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받아, 플라토 용으로 ‘토크 오 매틱(Talk-O-Matic)’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발표되었다. 최대 5명의 인원이 자신의 이름과 성별을 임의로 설정해 채팅을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이후 IRC 등으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채팅의 효시가 되었다.
최초의 MUD(Multi User Dungeon) 게임은 1978년에 영국의 에섹스 대학의 로이 트럽쇼(Roy Trubshaw)와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이 PDP-10용으로 개발했다. 후에 이 게임은 ‘조크(Zork)’라는 이름으로 인터콤에서 상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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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크 오 매틱은 현재의 채팅 시스템의 기본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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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발달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ARPANET(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NETwork)’이다. 2차 세계대전 중 군대의 지휘 통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개발된 DOD(Department of Defense) 네트워크를 개선한 ARPANET은, 패킷 단위로 데이터를 전송해 여러 명이 하나의 회선으로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이러한 데이터 전송 방식은 이후 꾸준히 개선되어 1978년에 TCP/IP 프로토콜로 확립된다. 이후 1983년에 ARPANET의 모든 컴퓨터에 TCP/IP 프로토콜이 적용되면서 본격적인 인터넷의 시대가 열렸다.
▲ ARPANET에서 군사용인 MILNET이 분리되면서,
남은 부분이 현재의 인터넷이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용한 게임이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데이터 전송 방식인 TCP/IP는 획기적이기는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네트워크 회선의 보급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대학교나 연구기관, 군사기관을 위주로 설치된 ARPANET는 가정에서 PC를 쓰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 전화선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모뎀은
90년대 말까지 PC 통신 수단의 전부였다.
80년대 들어 일반 가정에 널리 퍼져있던 전화선을 활용한 네트워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전화선을 통해 전송되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방식의 ‘모뎀’으로는 초당 최대 64킬로비트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었다. 당시 가정에서 쓰이던 PC의 성능에 비추어보면 그다지 느린 속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전화비였다.
전화선의 비싼 사용료는 90년대 말까지도 골칫거리였다.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수백 달러의 전화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될 지경이었다. 한국도 별다를 게 없어서, 수십만원에 달하는 전화비로 부모님의 속을 태운 학생들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기 이전, 전화선과 모뎀을 통한 PC통신은 그 자체가 BBS(Bulletin Board System, 게시판 시스템)였다. 최초의 BBS는 미국의 크리스텐슨(W. Christensen)이 1978년 자신이 속한 클럽 회원 간의 통신수단으로 만든 ‘컴퓨터 BBS(Computer BBS, CBBS)’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최초의 BBS인 ‘The First’가 발표되었다. 1988년 이후, 조합형/완성형 한글과 멀티 채팅 등을 지원하는 Empal BBS를 시작으로 사설 BBS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하이텔 등 기업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국내 PC 통신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 90년대 중반까지 천리안과 나우누리, 하이텔은
국내 PC 통신 시장을 주도했다.
텔넷을 활용한 70년대부터 80년대 초 사이의 게임들은 대부분 텍스트만을 위주로 서비스되었지만, 그 이후의 게임들은 텔넷 상에서 지원되는 사용자 지정 폰트인 ‘ANSI 아트(A~ arts)’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게임들은 대부분 MUD 게임이었다. 한편, 게시판과 채팅을 활용한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and Dragons)’ 등의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도 큰 인기를 끌었다.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플레이어 간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이러한 게임들은 텍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 대표적인 TRPG인 던전 앤 드래곤은 PC 통신상으로 크게 유행했다.
80년대 후반에는 텍스트 위주의 텔넷에서 벗어나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들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은 퀀텀링크(QuantumLink)용으로 발매된 ‘래빗 잭스 카지노(Rabbit Jacks Cassino)’이다. 1986년 케스마이(Kesmai)에서 발표한 ‘에어 워리어(Air Warrior)’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최초의 다자간 온라인 게임(MMOG,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Game)으로 기록되었다.
1988년에 루카스아츠에서 코모도 64 PC와 Q-Link 네트워크를 쓰는 유저를 대상으로 발표한 ‘클럽 카리브(Club Caribe)’는 최초로 그래픽 캐릭터를 채택한 인터렉티브 게임이다. 매우 간단한 게임이었음에도, 아바타와 그래픽을 이용한 채팅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울티마(Ultima)’ 시리즈의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아바타라는 캐릭터는, 이후 온라인상에서 유저를 대표하는 캐릭터의 대명사로 떠오르게 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온라인 게임은 사실상 큰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는 애플과 MSX 등의 8비트 컴퓨터가 몰락하고 16비트의 386, 486 PC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DOS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은 네트워크 기능에 매우 취약했다. DOS는 TCP/IP 등의 네트워크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고, 텔넷 프로그램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해도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그래픽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ANSI에서 제공하는 텍스트로 그림 비슷한 표현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DOS상에서 구동되는 게임에서 네트워크를 지원하려면 게임 개발사에서 따로 프로그램을 짜서 넣어야 했지만, 서버 운영비 등을 고려할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따라서 네트워크 기능이 지원되는 소수의 게임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매겨지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전화비까지 포함하면 게이머들의 등골이 휘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90’s 후반~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
온라인 게임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은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6년부터였다. 윈도우 95에서 기본으 지원하게 된 TCP/IP 프로토콜로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고, 느려터진 전화선에 질린 유저들이 ISDN등의 초고속 네트워크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였다. 대형 게임 업체들이 개발비와 서버 유지비를 아끼지 않고 TCP/IP를 지원하는 게임들을 싼 값에 내놓기 시작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게임 중에는 Id 소프트웨어의 ‘퀘이크(Quake)’가 있었다. 당시 하드웨어의 한계를 넘는 뛰어난 3D 그래픽과, 쉽게 인터넷에 접속해 여러 명이 대전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레이 기능으로 무장한 이 게임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도 FPS 게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 퀘이크는 3D 가속 기능을 지원하는 게임으로도 유명했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멀티플레이 기능으로 더 인기를 끌었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Warctaft)’ 시리즈와 3DO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Heroes of Might and Magic)’은 온라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특히 1997년 블리자드에서 내놓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배틀넷 서버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온라인 대전 시스템으로, 블리자드는 단번에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로 등극하게 되었다.
▲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IT 시장을 활성화시킨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것은 MMORPG(Massively Multiplay Online Roleplaying Games, 다자간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시장이었다. 최초의 그래픽 MMORPG는 디자이너인 돈 대글로우(Don Daglow)와 프로그래머인 캐서린 마타가(Cathryn Mataga)가 만든 ‘네버윈터 나이츠(Neverwinter Nights)’였다. AOL을 통해 PC 유저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되었던 이 게임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서비스되었다. 네버윈터 나이츠는 비록 최초의 MMORPG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했지만, 한 달에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까지 달하는 엄청난 요금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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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MMORPG였던 네버윈터 나이츠는 2000년에 3D 그래픽으로 무장해 다시 출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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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온라인이 1996년에 만든 ‘렐름 온라인(Realm Online)’은 초기 인터넷 MMORPG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게임은 전부 애니메이션화된 2D 게임으로, 이전의 게임들보다 플레이어들이 훨씬 접근하기 쉬운 방식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던전 앤 드래곤 류의 캐릭터와 턴 방식의 전투, 기본적인 유저 인터페이스만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당시의 패키지 게임들에 비해 여러모로 수준이 떨어졌다.
▲ 현재도 서비스되고 있는 렐름 온라인은 전형적인 던전 앤 드래곤 스타일의 온라인 RPG 게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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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던 MMORPG 시장에 돌을 던진 것은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과 ‘에버퀘스트(EverQuest)’였다. 1997년에 발표된 울티마 온라인은 MMORPG라는 장르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이전의 게임들처럼 무지막지한 액수의 시간당 가격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월별 요금을 적용한 것이었다. 월당 10달러만으로도 즐길 수 있던 이 게임으로 인해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늘어났다. 1999년에 Verant Interactive에서 개발해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서비스한 에버퀘스트는 이후 5년 동안 미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의 왕좌를 차지했다.
▲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울티마 시리즈의 인기는
그대로 울티마 온라인으로 이어졌다.
한편 국내에서는 1996년에 넥슨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바람의 나라’가 1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로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바람의 나라 개발자였던 송재경이 1998년에 만든 ‘리니지’는 300만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면서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온라인 게임으로 등극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한국을 세계적인 IT 국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는
독특한 시대 배경과 게임 진행으로 유명했다.
그동안 5회에 걸쳐 PC와 PC 게임의 발전사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PC 게임은 PC라는 특정한 하드웨어의 발전과 그 맥을 함께 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게임들은 PC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하드웨어와 연계될 전망이다. 특히 플래시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들과, X-BOX, PS3등의 콘솔 게임기와 연결되는 PC 게임들이 게임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놓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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