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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용단] 10배의 연봉을 준다 해도 동료들이 있어 못 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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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사를 통해서 게임사에 남을만한 위대한 인물 3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허나 어찌 대인이라 불릴만한 분이 그 분들 뿐이겠는가. 게임계에는 어느덧 혈겁의 폭풍이 불어와 난신적자(亂臣賊子)와 사문난적(斯文亂賊)들이 복사와 불법다운을 일삼는 오늘날 그 분들을 높이 기려 그 업적을 높이 휘날리지 않는 다면 과연 무엇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후손을 가르치겠는가? 필자는 높은 사명감으로 게임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업적과 덕을 지니신 분들을 독자여러분께 널리 소개시켜드리며 성현의 덕을 널리 펴고자 한다.

근성의 대인 윌라이트 그리고 뤽 베테렉의 안목

“심시티는 개발형 게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게임은 나의 게임인 레일로드 타이쿤과 문명시리즈에 큰 영감을 제공했다.” -시드마이어

타임지가 뽑은 <디지털리더 50인> 선정

윌라이트. 위에 언급한 코멘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개발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혁신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게임으로 전세계 게이머들의 뇌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은 게임메카 유저분이라면 누구나 아실정도로 유명한 ‘심시티’나 ‘심’ 시리즈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호의적이다. 경쟁이 없는 창의적 게임. 미국내 3만개 이상의 기관에서 교육용으로 채택. PC게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문명시리즈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 게임.

▲ '심시티'에 재앙은 필수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심’시리즈의 외향은 매우 화려하다. 윌라이트 역시 스타 제작자로 명성과 인기도 높다. 그러나 이 위대한 업적도 처음에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아서 빛조차 보지 못하고 묻힐 뻔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러한 위기 속에서도 근성의 대인 윌라이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를 믿어주는 든든한 동반자들과 함께 이 빛나는 공적을 이뤄내기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윌라이트가 만든 근성의 로얄로드를 따라가보며 우리의 근성도 함께 업그레이드시켜보기로 하자.

▲ 근성가이들은 필독이다

1960년 미국의 애틀란타 조지아에서 태어난 윌라이트는 애초에 그렇게 근성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지도 모른다.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내성적으로 자라난 그는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루이지애나 기술대학, 뉴스쿨 대학 등을 차례로 다니지만 졸업장은 어느 한곳에서도 받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근성의 ‘근’자도 몰랐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보고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비로소 근성가이로 거듭난 그는 몰두해야 할 것을 이제야 찾은 듯 단독으로 ‘반겔링만의 습격’을 제작하여 브로더번드사를 통해 유통시키는데 성공한다. 결과는 처참하게도 3천장에 그치지만 근성가이로 변신한 그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작품에 확신이 있었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을 카트리지 방식의 게임기로 출시하여 750000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자신의 근성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한다.

여세를 몰아 도시역학자 ‘제이 포레스터’의 책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 게임개발에 착수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심시티’이다. 무려 5년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치며 개선에 개선을 거듭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일까? 경쟁형 게임에만 익숙해져있던 당대로서는 그의 게임을 유통하겠다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근성가이에겐 피할 수 없는 고난. 그는 강경책을 택한다. 직접 회사를 차려서 게임을 유통하는 방식. 결코 쉽지않은 길이었다. 전전긍긍하던 그가 운명처럼 만난, 또 다른 근성가이 제프 브라운과 함께 ‘맥시스’란 이름의 회사를 차리고 자비까지 써가며 드디어 ‘심시티’를 발매한다. 1989년 ‘심시티’가 발매되자 각지에서 호평이 잇다르며 300만장을 판매. 일약 업계의 기린아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다.

▲ 육체는 단명이나 근성은 영원한 것

그러나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던 맥시스도 만화가 김모 선생처럼 ‘찍어대던’ 심시리즈의 여파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게된다. 특히 ‘심콥터’의 엄청난 버그는 팬들을 아연실색케 하며 “이게 무슨 망하는 테크트리냐”라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다. 맥시스의 명성은 완전히 무너졌고 2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 EA에 인수합병되는 굴욕의 계기가 되고야 만다.

이제 EA의 감독 아래 일해야하는 윌라이트는 회심의 일격인 ‘심즈 프로젝트’를 기획하지만 내부적으로 심한 반대에 부딪쳐 기획자체가 어려워지고야 만다. 벼랑끝에 몰린 윌라이트는 프로그래머 1명만 지원해달라는 호소를 하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프로그래머 제이미 둔보스를 지원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제이미 둔보스의 대활약에 힘입어 1년만에 프로토타입까지 나온 ‘심즈’.

그러나 EA의 취향이 ‘심즈’를 받아들일만큼 혁신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언제나 있는 법. EA에서 맥시스의 책임자로 온 뤽 베테렉은 윌라이트의 근성에 감화된 덕분인지 EA의 수뇌부를 설득해서 결국 일을 성사시킨다. 한번 밀어주면 끝까지 밀어주는 것이 대장부와 대인들의 도리. 역시나 뤽 베테렉은 실제로 회사의 경영과 프로그램 코딩을 맡으며 든든한 후원자로서 확실하게 밀어준다. 그 덕분에 심즈는 ‘세계에서 가장 새롭고 독창적인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5년간 54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린다.

▲ 우여곡절 끝에 광명을 쏜 심즈

이 모든 것은 윌라이트의 근성, 그리고 뤽 베테렉의 안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윌라이트는 평소 게임개발자의 제일가는 덕목으로 인내심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즉 참고 또 참으며 최고의 게임을 향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 것이 그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력과 근성을 가진 그에게 그를 믿어주는 여러 명의 동료들이 모여 오늘날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창의적인 개발자가 된 것이다.

돈보다는 의리! 발매일 엄수보다는 퀄리티! 진정한 장인 미야모토 시게루

“미야모토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 빌 로퍼

2007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1990년 일본문화디자인포럼 주최 ‘일본문화디자인상’ 수상

1993년 일본소프트웨어대상 실행위원회 주최 일본소프트웨어대상 '92MVP 수상

1996년 아사히신문사주최 아사히디지털엔터테인먼트 대상 ‘홈부문 개인상’ 수상

1997년 일본소프트웨어대상 실행위원회 주최 제5회일본소프트웨어대상 MVP 수상

1998년 ACADEMY OF INTERACTIVE AND SCIENCES 주최

The First Interactive Achievement Awards ‘THE HALL OF FAME AWARD’ 수상

1998년 제 13회 멀티미디어그랑프리 1998 MMCA 회장상

2003년 영국 Golden Joystick Awards 2003 ‘Hall of Fame Industry Personality of the Year Award’ 수상

2004년 이시카와현 카나자와시 주최 eAT’04 KANAZAWA명인상 수상

2006년 프랑스정부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장

화려한 수상경력과 빌로퍼의 극찬. 게임계의 스티븐 스필버그. 현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 그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동키콩’이라는 내놓으라 하는 작품으로 게임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마리오의 친아버지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그는 성에 차지 않으면 발매가 임박한 게임이라도 뒤집어 엎어 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개발자이다. 때문에 그의 손을 거쳐 발매된 게임이라면 확실히 재미가 있다고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대표작인 ‘젤다의 전설-시간의 오카리나’는 패미통 사상 최초로 만점, IGN에서도 만점, 게임스팟 만점(역시 최초)을 받아 당대의 화제가 되었다. 또한 게임이 유희에서 예술의 단계로 진일보했음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게임 시간의 오카리나

이만큼 미야모토 시게루는 장인정신을 가지고 게임을 대하기로 유명하며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덕분에 슈퍼패미컴의 L, R버튼과 닌텐도 64의 아날로그 스틱 역시 그의 아이디어라고 전해진다. 기술력, 창의력이라는 게임개발자로서의 최고의 재능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한다고 할까.

▲ 사실 최초로 아날로그 스틱을 장착한 게임기는 닌텐도 64가 아니라 아타리 5200이다.

이렇듯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무장한 그는 처음부터 지금껏 닌텐도에서 그의 젊음과 열정을 다 바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생일대의 대제안이 그에게 날아든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를 사장님으로 둔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업계에 뛰어들 때 그들은 남다른 씀씀이를 유감없이 과시하려고 한다. 아예 게임업계의 거목 닌텐도를 통째로 사들이려고 하며 그 핵심 중의 핵심인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현재 연봉이 얼마건 간에 우리가 그 열배를 주겠다.”라는 듣고도 못 믿을 제안을 한다. 미야모토 시게루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면 제안의 액수가 가볍게 억엔 단위를 넘었을 것이라는 것은 대략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가운데 미야모토의 반응은 놀랍게도 거절이었다.

▲ 10배정도면 괜찮겠어?

우리가 더 놀랄만한 것은 거절의 이유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동료들이 (닌텐도에) 있어서.”라는 야구만화 후반부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날리며 MS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금전에 구애되지 않는 대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범인들이라면 현재 연봉의 10배라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직을 감행할 것인데 그에게는 돈보다는 보다 재미있고 예술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스탭과 환경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 덕분일까? 닌텐도 DS와 Wii라는 혁신적인 게임기도 역시 그의 지휘아래 탄생했다. 앞으로도 전세계 게이머들은 그의 혁신과 도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미야모토 시게루', 그의 행보를 지켜보자

전 기사에 이어 두 번째로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대인들의 은근과 끈기, 용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인들의 분투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니 앞으로도 그들의 업적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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