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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유명 개발사의 과거와 굴욕 (1) - 동양편 보러가기 |
PC게임이나 가전제품 잘 만든다고 게임기도 잘 만드냐?: 굴욕의 3DO 프로젝트

▲ 요즘들어 잘나가는 나 같은 회사♬
최근에 가장 잘 나가고 있는 게임 기업이라면 뭐니뭐니해도 ‘EA’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그 덩치에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막강한 자금력으로 잘 나가는 개발사들을 몽땅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GTA 시리즈’의 제작사인 Take Two를 적대적 인수합병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지요. 이렇게 잘 나가는 EA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있으니, 바로 콘솔 게임계 최고의 실패작으로 꼽히는 ‘3DO프로젝트’입니다.

▲ 그러나 EA도 한 때 '3DO 프로젝트'의 일원이었으니...
3DO 프로젝트의 탄생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콘솔 시장은 닌텐도의 확고한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절대강자 닌텐도 휘하에서 세가와 기타 게임 회사들이 바둥거리는 꼴이었지요. 엄청난 수익을 내던 닌텐도를 보면서 여러 대기업이 군침을 흘렸지만 콘솔 게임 시장 진입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험도 없을 뿐 더러, 닌텐도의 지배력이 워낙 확고했던 탓이지요.

EA역시 이런 콘솔 시장에 진입하고 싶어 군침을 흘리던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EA 혼자서는 닌텐도의 막강한 지배력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한 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콘솔 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싶지만 제대로 된 게임 시장 경험이 없는 다른 대기업들과 팀을 맺고 EA의 주도로 콘솔 게임 시장에 진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1991년 말, EA는 마쓰시타, AT&T, MCA, 타임 워너와 함께 SMSG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콘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하는데 이것이 바로 ‘3DO 프로젝트’입니다. (후에 필립스, 삼성, 금성-LG전자-, 파나소닉, 산요 등의 메이저 가전 업체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쟁쟁한 대기업들의 틈바구니에 껴 졸지에 중소기업(?)신세가 된 EA였지만, EA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다른 거의 모든 참여사들이 게임에 대해서 경험이 없다시피 한 덩치만 큰 초보들이었고, 게임 시장을 ‘제대로’ 겪어본 회사는 EA가 유일했습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는 EA와 마쓰시타의 주도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게임은 잘 모르지만 기술 하나는 빵빵 하던 대기업들이라, 3DO 프로젝트의 목표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롬 카트리지 방식의 ‘슈퍼 패미컴’을 떠나 자신들이 개발한 3DO가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의 표준(그래서 이름도 3DO입니다. auDiO, viDeO, 3DO)이 되어야 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차세대 미디어인 CD-ROM을 차용한 게임기 개발에 주력하게 됩니다.
3DO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닌텐도나 세가에 비해 훨씬 낮은 로열티만 지불하면 누구라도 게임을 낼 수 있었고,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던 CD-ROM을 게임기의 미디어로 정식 채용했으며, 완성된 3DO 게임기도 타임지에 의해 ‘1994년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이었습니다. 실패할 이유가 없어 보였죠.

▲ 우리나라에 이런 것도 나왔었다. (출처는 여기)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3DO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가장 큰 문제는 3DO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초기 발매 가격이 미화 699.99달러니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엄청난’ 금액이었지요. (참고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우 미화 399달러였습니다.) 제작사들도 이를 의식하고 3DO를 ‘게임기’가 아닌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3DO Interactive MultiPlayer)’로 선전했지만, 판매량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킬러 소프트의 부재는 3DO의 실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애초에 3DO 프로젝트 에 참여 한 회사들이 EA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전회사여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전무했습니다. 유일한 게임 개발사인 EA조차도 콘솔 게임 개발 경험은 별로 없었기에 서드파티의 힘에 기대야 했지만 닌텐도의 SFC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마당에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하는 3DO로 넘어가려는 서드파티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D의 식탁’등 몇몇 명작 게임이 3DO로 나오기는 했지만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 'D의 식탁'
3DO 경영진의 실수도 3DO의 몰락을 가속화합니다. 2백만대가 팔리고 멈춰버린 3DO를 어떻게든 띄워보기 위해 3DO 주식회사는 부랴부랴 차기작인 ‘M2’를 출시한다고 발표했지만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단종될 게임기를 사려는 바보 같은 소비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M2’의 발표는 그나마 남아있던 게이머들의 3DO 구매 욕구마저 앗아가 버리고, 결국 마쓰시타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트 참여 기업은 3DO 프로젝트를 포기해 버립니다. 엄청난 돈을 들인 프로젝트가 공중에 붕 떠 버린 것입니다.
3DO 프로젝트의 실패는 쓰라렸습니다. 마쓰시타는 어떻게든 M2를 개발해 3DO의 실패를 만회해 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M2와 콘솔 게임에서 손을 뗀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나머지 업체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3DO 프로젝트의 실패 후 3DO에 참여했던 삼성, 금성, 파나소닉, 산요는 다시는 콘솔 게임 시장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 이것이 바로 '3DO M2'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다른 대기업들도 큰 상처를 입었지만, 누구보다도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바로 EA였습니다. 콘솔 시장을 지배하고자 야심 차게 계획했던 3DO 프로젝트는 날아가 버리고, 3DO 프로젝트의 회장으로 취임했던 EA의 설립자 트립 호킨스 역시 EA를 떠나야 했습니다.
3DO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주역이었던 3DO 주식회사는 가늘고 길게 살아 남았습니다. 1994년 다른 기업들이 3DO 시장을 포기한 이후에도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시리즈 등을 개발하면서 연명해왔고, PC게임개발과 유통을 맡아 어떻게든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3DO 주식회사는 누적되는 경영 악화 때문에 2003년에 파산해 버리고 3DO는 EA와 세계적 가전회사들의 굴욕적인 실패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됩니다.
3DO에 크게 데인 후 EA는 본업(?)인 PC게임으로 돌아갔습니다. 막강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웨스트우드와 오리진, 맥시스 등의 유명 PC 게임 개발사들을 슬금슬금 집어먹기 시작했고, 이 집어먹은 개발사들의 게임(‘심즈’)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회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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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애플과 반다이, 그리고 프로젝트 ‘피핀’
3DO의 실패는 콘솔 게임 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많은 대기업들이 3DO의 실패 이후 무리해서 콘솔 시장에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하드웨어 공급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콘솔 시장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러나 3DO의 실패를 뻔히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린(?) 두 대기업이 손을 잡고 새로이 콘솔 시장에 뛰어듭니다. 그것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세가의 ‘세가새턴’, 닌텐도의 ‘닌텐도64’가 나란히 갈라먹고 있는 시장에 말이지요. 두 도전자의 이름은 애플과 반다이였습니다.

▲ 애플이 개발했던 PDA의 선구자 '뉴턴' 프로젝트. 이 역시 실패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애플은 잘 나가던 컴퓨터 업체였습니다. PC시장에서야 IBM 호환 기종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지만, 출판이나 그래픽 등의 특수한 분야에서는 매킨토시 특유의 강점을 살려 IBM 호환 기종을 완벽히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애플이 이제 새로운 시장인 콘솔 게임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애플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콘솔 게임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3DO의 실패도 그렇고, 게임 시장에 대해서 초보나 다름 없는 애플이 쟁쟁한 기업들이 나눠먹고 있는 콘솔 게임 시장에 함부로 진입하면 어떻게 될지 뻔했으니까요. 그래서 애플은 지명도 있는 파트너를 찾게 됩니다.
1950년에 출범한 일본의 완구 회사인 반다이는 1990년대 당시 일본 완구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건담’이나 ‘울트라맨’시리즈 등 유명 작품의 라이센스를 따관련 상품을 생산해 엄청난 매출을 올렸고, 사업의 폭을 점점 넓혀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 반다이는 1977년에도 게임기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그런 차에 애플의 콘솔 게임기 사업 제안은 매력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애플의 기술력과 반다이의 인지도가 만난다면 콘솔 게임의 주 시장인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애플과 반다이는 협정을 맺고 콘솔 게임기 프로젝트인 ‘피핀(Pippin)’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애플이 개발한 ‘피핀’의 스펙 자체는 우수한 수준이었습니다. 66Mhz의 CPU를 장착하고, 640x480 VGA 해상도를 지원했으며, 14.4kbps 모뎀에 온라인 서비스까지 지원하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콘솔이었지요. 당연히 성공할 것처럼 보였지만…

▲ 생긴건 그럴듯 하게 생겼는데..
그러나 피핀은 말 그대로 처절한 실패를 겪게 됩니다. 1995년 반다이가 피핀을 첫 출시한 이후 1997년 단종될 때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고작 4만 2천대를 팔고 피핀 프로젝트는 끝났습니다. ‘실패한 게임기’의 대명사로 취급되는 3DO나 밑에 다시 소개할 ‘버추어 보이’와 비교해 봐도 1/50 수준의 처참한 판매량으로 말입니다.
‘피핀’은 왜 실패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서드파티가 없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반다이를 제외하면 피핀의 서드파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피핀 용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들도 ‘콘솔 게임’에 어울리는 소프트가 그다지 없었기에 게이머들이 굳이 피핀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어정쩡한 ‘피핀’의 존재도 한 몫 했습니다. 애플사에서는 소비자들이 ‘피핀’을 ‘저렴한 가격의 컴퓨터’로 인식하길 원했고, 반대로 반다이에서는 소비자들이 ‘피핀’을 ‘새로운 시대의 고급 콘솔 게임기’로 인식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피핀’의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스펙도 그렇고 미화 599달러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피핀’은 컴퓨터 게이머와 콘솔 게이머 양쪽에서 외면 받게 됩니다.

▲ 스티브 잡스왈, 때려쳐!
형편없는 판매량과 세간의 악평에 고전하면서도 ‘피핀’은 어떻게든 2년은 버텼습니다. 그러나 애플 경영에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애플과 반다이는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1997년 피핀의 생산을 공식적으로 중단합니다. 잘 나가던 컴퓨터회사와 완구회사가 만났지만 결국 어이없는 실패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피핀’의 실패 이후 애플은 더 이상 콘솔 게임 시장을 넘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킨토시 생산에 주력하면서 컴퓨터와 연관된 MP3P 등의 시장에 도전했고, MP3P‘아이팟’시리즈와 온라인 MP3 쇼핑몰인‘아이튠즈’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하지만 반다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새턴’과 ‘드림캐스트’의 실패로 고전하고 있던 세가와 합병 양해 각서를 체결했고, 세가의 콘솔 기술력을 바탕으로 콘솔 게임 시장에 다시 진출하려고 했지만 양사 직원들의 반발로 합병은 취소되고 맙니다.

▲ 반다이: 헤헤, 결국 먹었습니다!
‘피핀’도 실패하고 세가와의 합병도 무산되었지만 반다이는 끈질겼습니다. 무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후 결국 2005년 반다이는 ‘팩맨’과 ‘철권’시리즈로 유명한 남코와 합병했고, 아케이드-콘솔 게임 전문 기업인 ‘남코-반다이 홀딩스’로 거듭나게 됩니다.
끝으로 2006년, ‘피핀’은 유명 PC잡지 ‘PC World’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구린 25대 전자상품’에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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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 민영화와 ‘스타크래프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비밴디 그룹

최근 정부의 상수도 민영화 정책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상수도를 민영화 하면 한 달 수도 요금이 10만원이 넘는다는 등의 괴소문도 함께 돌면서 국민을 더욱 분노케 했지요. 결국 정부에서 ‘상수도 민영화는 없다’고 발표를 했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 상수도 민영화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게임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웬 상수도 민영화 이야기냐구요?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네, 상수도 민영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게임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와 개발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인 ‘비밴디(Vivendi, 혹은 비방디)’ 그룹이 바로 이 상수도와 하수도를 민간경영하면서 성장해 온 회사입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인 다국적 기업 ‘비밴디’의 역사는 18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낙후되어 있던 프랑스의 상수도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황제 나폴레옹 3세의 포고로 CGE라는 회사가 설립됩니다. 이 CGE는 리옹과 파리 등의 상수도/하수도 관리 사업을 운영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까지 상수도/하수도 관리 사업을 주로 하던 환경 업체였습니다.

▲ 이 사람 덕분에 '스타크래프트'가 나왔다고 하면 조금 비약일까?
이후 CGE는 사업의 방향을 바꿔 상수도/하수도뿐 아니라 쓰레기 처리, 운동, 에너지 사업에까지 뛰어들었고 1990년대에는 신문이나 방송 등의 매스 미디어 사업에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온갖 거대 회사를 집어삼키고 이름도 CGE에서 비밴디로 바꾼 후 사업은 더욱 확대되었고, 그런 비밴디의 눈에 든 곳이 바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사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복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본래 실리콘&시냅스(Silicon & Synapse)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큰 대작 없이 이 곳 저 곳에 팔려 다니던 회사였습니다. 여러 번의 합병 후 마침내 1998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비밴디 게임즈에 합병됩니다.

▲ '실리콘&시냅스'시절의 게임인 '길 잃은 바이킹'
이후의 역사는 이 곳에서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워크래프트2’와‘스타크래프트’, 그리고 ‘디아블로’의 대성공 이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비밴디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2002년, 비밴디 그룹은 본래의 업종인 상/하수도 관리나 쓰레기 처리 사업을 ‘비올리아 환경’(Veolia Environment)’으로 분리하고, 아예 업종을 종합 미디어 회사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비밴디에서 여전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 '비밴디 게임즈'의 산하에는 '액티비젼','블리자드','시에라'등이 포진해 있다.
‘비올리아 환경’은 여전히 상/하수도 운영을 중심으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993년 아르헨티나가 상수도를 민영화 했을 때 참여하기도 하였고 현재도 프랑스를 비롯해 상수도/하수도가 민영화 된 많은 나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나라가 상수도 민영화를 단행한다면 아마 이 ‘비올리아 환경’이 대한민국의 상수도를 맡아 관리하게 될 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내는 수도요금으로 블리자드의 차기작을 만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비밴디는 ‘비올리아 환경’의 대주주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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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 예고: 우리가 몰랐던 유명 개발사의 과거와 굴욕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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