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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의외로 빨리 쫓아온다 - 대학살을 권하는 좀비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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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A. 로메로’ 감독의 1968년작 영화 ‘살아 있는 시체의 밤’ 이후로 영화는 물론이고 게임, 만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대활약하고 있는 좀비. ‘좀비’란 부두교의 마술사들이 조종하는 시체로서, 일반적으로 지능이 거의 없거나 매우 낮고 흐느적대는 움직임으로 천천히 걸어 다닌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 때문에 수많은 게임에서 주로 초반에 볼 수 있는 하급 몬스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캡콤’의 1996년작 ‘바이오 하자드’의 대히트 이후 좀비 자체가 주역이 되는 게임들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 좀비물의 시초 ‘살아 있는 시체의 밤’

▲ 최근 다시 떠오르고 있는 소재, 좀비

나이트 슬래셔즈(데이터 이스트)

‘B-WING’, ‘미드나잇 레지스탕스’ 등의 명작 이외에도 ‘트리오 더 펀치’, ‘파이터즈 히스토리’ 등 추억의 괴작들도 다수 만들어냈던 과거의 명가 ‘데이터 이스트’. 그들이 만들어낸 횡방향 진행 액션 게임이 바로 ‘나이트 슬래셔즈(1993)’다. 이 게임에서는 아케이드에서 거의 최초로 좀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좀비 호러 영화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또한 오락실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징그럽고 끔찍한 연출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수많은 게이머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 피범벅 좀비 게임의 여명기를 장식한 게임

▲ 오프닝에서부터 좀비들을 시원하게 갈아버린다

‘나이트 슬래셔즈’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주로 스테이지 초반에 주인공들의 몸을 풀어주러 오는 것이 목적이다. 2D 액션 게임이지만 좀비의 패턴은 다양하고 물어뜯기, 수상한 액체 뱉기, 강력한 앞차기 등 공격 방법도 다채롭다. 특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끈적한 효과음과 함께 내장을 쏟으며 녹아내리는 사망 연출은 많은 90년대 오락실 키드들의 마음에 개성적인 취향을 깃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게임에는 좀비 외에도 늑대인간, 드라큘라, 골렘 등 다양한 적들이 등장하지만 막상 어떤 게임인지 떠올려보면 좀비를 죽인다는 것 말고는 잘 생각이 안 나는 것이 특징이다.

▲ 좀비 머리 터뜨리기 보너스 게임에서는 좀비에 대한 제작사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 스토리는 옛날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유치뽕짝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캡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좀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1996년에 최초로 등장한 1탄 이후로 시리즈 합계 350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전 세계적인 인기 호러 게임이다. 비디오 게임으로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끔찍한 표현, 리얼한 총기류 묘사, 영화적인 연출 도입 등으로 화제를 불렀으며 호러 게임 자체의 인기를 크게 상승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헐리웃에서 3편의 영화까지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히트하기도 했으며, 오는 3월에는 PS3와 Xbox 360로 5편이 출시될 예정으로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좀비 게임의 역사에 남을 시리즈 1탄

▲ 최근에 와서는 세계적인 인기 시리즈가 되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저주나 마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인공으로 만들어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단순한 좀비뿐만 아니라 좀비 개, 좀비 까마귀, 좀비 벌레는 물론 돌연변이 괴물 수준의 변종 좀비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좀비들은 팔을 들고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공포영화 좀비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왠지 친근하기까지 하다.

조작에 익숙해지면 느려터진 좀비들을 상대로 마음껏 사격 연습을 하거나 나이프로 난도질을 하기도 하고 로켓 런쳐, 바주카까지 동원해 불바다를 만드는 등 람보 수준의 액션이 가능해 수많은 이들에게 파괴와 학살의 희열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쓰러진 좀비에게 다리를 붙잡혔을 때 구둣발로 그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쾌감은 매우 각별하다.

▲ 멍청한 좀비를 마음껏 학살하자

▲ 최신작인 5편이 발매를 준비 중이다

오네찬바라 시리즈(D3퍼블리셔)

비키니 복장의 소녀가 칼을 휘둘러 좀비들과 싸운다는 정신 나간 설정의 액션 게임 ‘오네찬바라’ 시리즈. ‘D3퍼블리셔’의 저가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SIMPLE 2000’ 레이블로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는 완성도를 높여 다른 게임들과 비슷한 가격으로 신작이 나오고 있고 2008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04년에 PS2로 처음 등장한 1편이 요상한 설정과 은근한 섹시함으로 일부 계층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자 4편까지 제작되었고 2006년에는 Xbox360 버전 ‘vorteX’가, 2008년에는 Wii 버전 ‘Revolution’이 발매되었다. 최근에는 Xbox360 및 Wii 버전이 ‘비키니 사무라이 군단’이라는 제목으로 유럽과 북미 지역 정복을 준비 중이다.

▲ 피 튀기는 언니 액션. 아따 그 아가씨 힘도 좋다

▲ 최근에는 점점 캐릭터 게임으로 변하고 있다

‘오네찬바라’의 좀비들은 한 마디로 ‘베이기 위한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초기의 ‘바이오 하자드’ 좀비들보다 약간 더 호전적일 뿐, 무리지어 다가와서는 주인공의 칼에 쓰러지는 것이 유일한 존재의의다. 이 게임에서는 좀비들이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녹색이 아니라 붉은 피를 뿜는데, 그 뿜어져 나오는 자태가 황홀할 뿐만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흩날려 주인공의 몸에 도포되기까지 한다. 게다가 엉성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각종 콤보 시스템이 도입된 칼부림 액션만은 매우 뛰어나다는 평판을 받았다. 비키니를 입고 칼을 휘두르는 비정상적인 소녀와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일체감으로 비정상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묘한 달성감까지 느껴지는 무한 칼부림의 향연

▲ 말 그대로 화면을 피로 물들인다

데드 라이징 시리즈(캡콤)

‘바이오 하자드’로 좀비 게임의 신기원을 이룩한 ‘캡콤’이 지치지도 않고 새롭게 만들어낸 좀비 게임계의 문제작 ‘데드 라이징’. 게임의 폭력성 덕분에 독일에서는 판매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1편이 2006년에 Xbox360 버전으로 발매된 직후 발매 2주 만에 50만 개가 팔려나가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총판매량은 100만 개를 돌파했으며, 2월에는 Wii로 ‘데드 라이징 좀비의 제물’이 발매될 예정이다. PS3, Xbox360, PC의 멀티 플랫폼으로 정식 2편도 개발 중이다.

▲ 이 게임의 모든 것이 함축돼 있는 한 장면

▲ 좀비들의 개채수로는 게임 사상 최다가 아닌가 한다

이 게임은 심플하게 좀비들을 학살하는 쾌감을 극대화시킨 게임으로, 한 화면에 200마리 이상의 좀비들이 등장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말 그대로 물량으로 승부하는 게임이다. 게임의 무대가 쇼핑몰이라는 점을 살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무기들을 얻어 좀비들과 싸울 수 있다. 무기의 종류는 약 250개에 달하며, 전기톱이나 야구배트 같은 평범한(?) 것에서부터 잔디 깎는 기계, 선인장 화분, 심지어는 잘려나간 좀비들의 팔다리까지 무기로 쓸 수 있다. 옷가게에서 자유롭게 복장을 갈아입을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의 매력. “지금 머리에 록맨 헬멧을 쓰고 팬티만 걸친 채 정원용 가위로 좀비들을 토막 내고 있어”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록맨 옷을 입고 싸우러 가자. 미국에선 메가맨이던가?

▲ 좀비 떼를 냅다 자동차로 깔아 뭉개버릴 수도 있다

▲ 이상할 정도의 자유도가 가져다주는 이율배반적 카타르시스

스텁스 더 좀비(와이드로즈 게임즈)

‘와이드로즈 게임즈’에서 제작한 2005년작 ‘스텁스 더 좀비’는 놀랍게도 자신이 직접 좀비가 되는 게임이다. 제작진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무언가를 뒤집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참신한 게임플레이로 인해 언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단점이 있다면 내용이 짧다는 것이다. 그래픽도 당시 기준으로 훌륭했음은 물론 전반적으로 게임에 유머가 넘쳐흘러 이벤트 영상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구 Xbox 버전으로 처음 등장해 이것을 지금 구하기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PC 버전으로도 발매가 되어 있다.

▲ 담배 물고 부활하는 좀비 스텁스

▲ 좀비를 소재로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텁스 더 좀비’에서는 인간들을 죽여서 뇌를 먹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무한한 힘이 숨어있기 때문에 뇌를 먹으면 체력과 마력이 차오른다. 또한 인간들을 좀비로 만들어 조종할 수도 있는데, 동료 좀비들은 총기류를 사용할 수도 있어 보다 쾌적하게 인간들을 학살할 수 있다. 좀비들의 군대를 이끌고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인간들을 뒤쫓는 쾌감이란 흔히 맛볼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일 것이다. 동료 좀비들은 한데 뭉쳐서 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총알받이로도 쓸 수 있으니 동료라고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장래 희망으로 좀비를 생각해봤던 적이 있다면 꼭 한 번쯤 즐겨봐야 할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 카니발리즘의 떨리는 유혹에 빠져보자

▲ 좀비 소대 앞으로~!

▲ 입장은 역전됐지만 변함없는 유혈낭자

천하 좀비지계를 꿈꾸며...

최근에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멀티플레이 게임에 ‘좀비 룰’이라는 규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좀비 멀티플레이 슈팅 ‘레프트 4 데드’나 하프라이프 모드 ‘브레인 브레드’ 등등, 재미있는 좀비 게임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를 떠나서 피를 원하며 끊임없이 쫓아오는 좀비 본연의 매력이 잘 드러나 있는 게임은 아직까지도 그 수가 많지 않은 현실이다. 앞서 소개한 게임들은 그러한 좀비들과 함께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일 수 있는, 좀비 게임의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이다. 좀비 게임 마니아들이 이런 양질의 좀비 게임들을 꾸준히 즐기며 주위에 널리 알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더욱 참신하고 피비린내 짙어진 좀비 게임들이 계속 등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죽음으로써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자들, 좀비

▲ 게이머들의 좀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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