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의 한국 게임 베끼기’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뮤’, ‘던전앤파이터’, ‘오디션’, ‘카트라이더’ 등 유명 게임들의 ‘짝퉁게임’ 때문에 국내 게임 개발사는 여러모로 속이 타들어가지만 중국 정부의 자국 게임산업 보호정책 때문에 소송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90년대 ‘해적판 짝퉁 게임’의 천국이었던 한국의 비디오게임 시장이 떠오른다. ‘해적판’이란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고 불법으로 들여온 만화, 게임등의 컨텐츠를 일컬어 부르는 단어이다. 해적판 게임 중에는 어이없을 정도의 게임을 제작한 후 원작의 명성을 이용하여 발매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그런 짝퉁 게임도 고맙게 플레이하곤 했다. 해적판 게임이 동네 게임샵에서 당당하게 팔리곤 했으니 실로 대해적시대가 아닌가.
▲한국도 짝퉁게임계에서는 순위권 안에 든다, 스샷은 21세기형 짝퉁 게임, 와피스(실제 게임은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 보면 한숨만 나올 정도의 극악한 퀄리티의 해적판 짝퉁 게임에도 나름대로의 오묘한 매력이 숨어있다. ‘대충 짜집기했습니다’라는 조악한 게임을 보다 보면 어이 없음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어떻게든 유명 게임을 저사양 게임기에 이식해보려고 애를 쓴 제작자의 열정이 돋보이는 게임도 있다. 90년대 해적판 짝퉁 게임 속 ‘답답함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껴보자
격투게임의 로망, 스트리트 파이터와 KOF를 집에서?
90년대 초중반, ‘스트리트 파이터2’와 ‘KOF’, ‘철권’,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발매로 오락실 시장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린다. 비록 가정용 오락기기인 패미콤, 메가드라이브 등이 서서히 보급되었으나 유명 게임들을 플레이하기에는 기기의 장벽이 너무나도 높았다. 필자도 어린 시절 ‘오락실에있는 ‘스트리트 파이터2’를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던 적이 있다. 이러한 아이들의 욕구를 캐치한것일까, 실제로 오락실 게임을 저사양의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한 게임이 몇 가지 나왔으나,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의 필자가 볼 때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게임도 적지 않았다.
▲무려 스파3 터보다. 왼쪽 위의 마리오가 있는 것 부터 수상한 오프닝
필자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사촌동생 집에서 발견한 패미컴용 ‘스트리트 파이터 3(!) 터보’는 충격이었다. 바로 위에 언급한 내용처럼 ‘스트리트 파이터’를 집에서 즐긴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 당시에는 조악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플레이했지만, 지금 보면 상당히 웃긴 게임이다.
▲잘 찾아보면 희한한 놈들이 많이 보인다. 현대미술을 보는 느낌
위에서 보다시피 ‘스트리트파이터2’의 몇몇 캐릭터가 비슷하면서도 희한하게 묘사되어 있다. 캐릭터 수를 늘리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는 블랑카,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베가(실제 게임 내에서는 색만 다른 캐릭터임)를 집어넣는가 하면 슈퍼마리오까지 게임에 집어넣었다. 왜 마리오가 여기 있는가 하는 궁금증에 마리오를 고르는 순간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다. 마리오의 몸에서 이상하게 생긴 주먹과 발이 뻗어나오고, 그 자세 그대로 벌러덩 눕기까지 한다. 이건 게임성을 논하기 전에 그냥 웃긴 부분이다.
▲마리오를 왜 저리 늘려놨어?
▲마리오 킥!
▲마리오 아파
그 외에 이상하게 퍼진 류를 고르면 혼다가 나오기도 하고, 춘리의 생명인 허벅지가 꽤나 잘 표현되어 있는 등 센스도 상당하다. 특히 패미컴에서 아케이드의 느낌을 주기 위해 일일히 캐릭터를 재구성한 점은 꽤 돋보인다. 그러나 게임성을 진지하게 평가하자면 할 말이 너무 많아지니 스크린샷으로 대체한다.
▲왼쪽 가운데 저 찌그러진 류를 고르면
▲혼다가 나온다 ㅋㅋㅋ
▲다운되는 장면 도트 찍기는 귀찮았나 보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뒤를 이어 오락실의 2D 대전액션게임을 평정한 ‘KOF’시리즈를 메가드라이브에 이식하는 시도를 한 게임도 있다. 일명 ‘K.O.F 98’.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KOF98’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니, 그냥 ‘KOF’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려 KOF98
왠지 동인, 플래쉬 게임을 연상시키는 오프닝을 거쳐 아케이드 게임 모드를 선택하면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캐릭터 선택 화면이 펼쳐진다. ‘KOF’ 시리즈의 주인공 쿄와 이오리는 흔적도 없고 아랑전설 팀 3명, 용호의 권 팀 3명, 그리고 알 수 없는 팀 3명이 있다. ‘저 3명은 누구지?’ 하는 마음에 한번 골라 봤더니 그들의 정체(?)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미, 류, 가일이었다. 이 게임이 ‘SNK VS CAPCOM’의 시초인가? 당시에는 캐릭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했던 시기였으니 ‘KOF’에 왜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들이 나오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자.
▲이건... 3류 동인지...
▲KOF인데 이게 다야? 가운데 있는 애들을 골라봤다
▲캐미, 류, 가일이라니... 참고로 가일 처음 보고 폴이나 베니마루인줄 알았음
스크린샷을 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KOF’라기 보다는 ‘용호의 권’, ‘아랑전설’, ‘스트리트 파이터’를 섞어놓은 게임이다. ‘KOF’의 필살기 시스템도 구현해 놓았지만 몇몇 캐릭터에만 적용된다는 점은, 밸런스를 맞추겠다는 의지 따위는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나름대로 16비트에 KOF를 구현하겠다고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에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게임이다.
▲뭐 대충 이런 게임이라 생각하면 된다
▲필살기 있는 캐릭과 없는 캐릭의 차이가 좀 크다
▲타쿠마의 빌리 진이나 감상하자
3D격투를 8비트와 16비트로 표현하다
3D 게임계의 대표 주자인 ‘철권’을 집에서 즐길 수 있다면? 지금이야 지하철에서도 PSP를 이용해손 쉽게 플레이할 수 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의 존재도 모르던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패미컴용으로 나왔던 8비트 버전 ‘철권2’는 패미컴 유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필자도 이 소프트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억지로 ‘이것도 나름대로 재밌어’ 라며 애써 위안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프닝 화면. 글자 뒤쪽에 뭔가 눈알같은게 보이는데...
▲절망의 일러스트. 카즈야 이름이 압박이다
‘철권’시리즈의 매니아가 된 지금 다시 한번 플레이해보니, 의외로 원작 기술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 묘사에 있어 꽤 심혈을 기울인 느낌이 묻어난다. 비록 기술 자체의 효용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그래픽 깨짐 현상도 꽤 많은데다, 커맨드 인식률도 안습이지만 원작의 느낌이 나름대로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의외로 비슷하게 만들어 놓긴 했지만 사실 재미는 별로 없다
이후, 3D 대전격투계의 양대산맥인 ‘버추어 파이터’와 ‘철권’의 우열을 가리자는 논의에 마침표를 찍을 기세의 게임이 메가드라이브로 나왔다. 그 이름도 거창한 ‘버추어 파이터 VS 철권2’. 이 게임은 오프닝 화면부터 범상치 않은데, 초보 포토샵 유저가 대충 짜집기해서 만든 것 같은 합성 이미지가 이 게임의 급을 말해준다. 저걸 원근법이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다만……
▲초등학생이 그림판으로 만든것 같은 메인
이 게임은 기존에 출시된 해적판 ‘철권’과 ‘버추어 파이터’의 소스를 짜집기해 만든 게임이다. 게임 화면에서 볼 수 있듯이 ‘철권’ 캐릭터와 ‘버추어 파이터’의 캐릭터의 그래픽이 다르다. 심지어 ‘얘는 어디 나오는 캐릭터야?’ 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도 등장한다. 게다가 필살기 보다 평범한 발차기가 훨씬 효율적이라서 과연 이것이 대전격투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철권 캐릭과 버파 캐릭의 묘사 차이가 좀 크다
▲그래픽도 철권 캐릭과 버파 캐릭이 다르다
▲저 보도듣도못한 여자는 뭐야?
마리오, ‘내가 봉이냐?’ 파문
가정용 게임기 보급의 일등 공신인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엄청나게 많은 짝퉁 게임을 양산해냈다. 그 중 그나마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게임과 정말 대놓고 성의없게 만든 게임이라는 인상을 팍팍 주는 게임을 소개한다.
마리오 패러디 시리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소닉과 마리오를 합체시켜놓은 ‘소마리’이다. 물론 최근에는 마리오와 소닉이 사이좋게 올림픽에도 참가하지만, 이 당시엔 대표적 라이벌 게임이었다. ‘소마리’는 세가의 자존심인 ‘소닉’을 어떻게든 패미컴으로 옮겨보고자 만든 게임이다. 이 게임을 오락실에서도 본 사람이 있으니 짝퉁 게임 치고는 가장 성공한 예가 아닌가 싶다.
▲충격의 오프닝
▲나름 팀 이름까지 써붙여놨다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마리오가 소닉처럼 뱅글뱅글 회전한다. 뭐,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히 웃기지만 일단 기세좋게 돈 것 치고 속도가 너무 느리다. 표현하자면, 소닉이 걸어가다 살짝 구르는 정도이다. 애초에 ‘소닉1’을 바탕으로 한 게임이기에 점프해서 적을 밟으면 마리오가 죽는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는 구덩이 함정에 빠지면 차라리 곱게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패미컴이라는 기기를 고려하면 ‘소닉1’의 배경과 분위기를 꽤 충실하게 재현하였고, 범국민적 캐릭터인 마리오와 소닉이 합쳐졌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이런 식으로 합쳐져서는 안 되겠지만.
▲소닉과 마리오가 합쳐지면 이렇게 되.....는 건가요
▲여기 빠지면 그냥 한번에 죽게 해 줘
‘소마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게임이라면, 정말 대놓고 성의없게 만든 게임도 있다. 포켓몬스터와 피카츄의 인기가 높아지자, 해적게임계에서는 피카츄와 마리오를 합체시킨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피카츄 마리오’이다. ‘피카츄 마리오’는 오프닝에서부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한다. 게임을 시작해보면 기본적으로 ‘슈퍼마리오1’의 소스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몇 가지 부분만 바꿔 놓았다. 일단, 피카츄가 주인공이라는 것과 아이템 벽돌이 몬스터볼로 바뀐 것, 버섯아이템이 번개가 그려진 검은 천을 둘러쓴 정체불명의 무언가로 바뀐 것 까지는 나름대로 참신하다. 그 외에 버섯을 먹으면 피카츄가 라이츄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마리오가.... 피카츄로....
▲버섯역할의 번개두더지(?)를 먹으면 라이츄로 진화한다
▲꽃..을 먹으면 백색 라이츄가......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슈퍼마리오1’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 꽃이나 별 아이템은 바꾸기 귀찮았는지 그대로 놔 두었고, 적 캐릭터도 그대로이다. 색감을 이상하게 조정해놓아서 동굴로 들어가면 뭔가 기분이 나빠진다. 심지어 몇몇 장면에서는 어설프게 피카츄로 바꾸어 놓은 그래픽이 깨져 마리오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게임도 ‘피카츄다!’라며 산 아이들이 있겠지?
▲머리 위에서 불꽃을 소환하는 라이츄
▲여기까지 신경써서 만들진 않은듯
▲뭔가 기분 나빠지는 녹색..
위에 나온 게임들은 해외에서 수입된 것도 있고, 국내 업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금 보면 웃긴 점도 있고 기발한 면도 있지만, 원작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C급 게임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매력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게임들이라도 애써 재밌다고 플레이하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보면, 현재 우리들의 눈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시절의 너그러운(?) 마음을 조금만 살려 보면 지금까지 재미없다고 느꼈던 게임들 속에서 숨겨진 재미를 깨달을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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