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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 연대기 (상), 90년대 중후반 오락실을 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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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오브? 그거 아직도 나오냐?”

“2002 이후로 끊었는데”

“13은 뭐야? 2010년도면 ‘KOF10’ 아냐?”

90년대 중반 이후 오락실 2D 대전격투의 지존으로 군림해 온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이하 KOF)’시리즈의 최신작인 ‘KOF 13’이 발표된 직후 지인들에게 들은 말이다. 꾸준히 ‘KOF’시리즈를 플레이해온 매니아층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은 현재 ‘KOF’시리즈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옛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현실이다. 이렇게 된 원인이 오락실 시장의 축소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철권6’와 ‘스트리트파이터4’의 선전을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몇 군데의 오락실을 가 보니 ‘KOF’ 최신작이 아예 없거나, 한 기 정도 쓸쓸히 오프닝 무비만을 비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 여름에 나올 KOF13 스크린샷

‘KOF’ 시리즈는 1년 단위로 꾸준히 출시되면서(비록 후반부엔 늦어졌지만) 수많은 시스템을 도입, 개발해가며 2D 대전격투게임의 발전에 공헌했다. 한 때는 국민 게임으로도 불리우던 ‘KOF’시리즈의 몰락은 언제부터였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KOF’시리즈 전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KOF의 발생 (94~95)

94년 10월, 해적판 게임 등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서로 다른 게임 캐릭터끼리의 대결을 정식 구현한 ‘KOF94’가 등장한다. ‘KOF94’가 보여준 ‘용호의 권’, ‘아랑전설’, ‘싸이코 솔져’ 등의 캐릭터가 3명씩 팀을 이루어 서로 싸우는 방식은 격투게임계에 큰 충격이었다. 한 캐릭터가 아닌 한 팀, 세 명의 캐릭터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이었지만, 서로 다른 게임의 캐릭터들이 ‘KOF’라는 게임에서 자연스레 표현된다는 점은 매우 획기적이었고, 결과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용호의 권, 아랑전설, 싸이코 솔져 등 SNK 게임의 총집합체 KOF94

▲용호의 권에 적용되는 옷 찢어지는 효과도 인기몰이의 한 축을 담당했다 후훗

‘KOF94’는 ‘용호의 권’에 나오는 파워 게이지 시스템을 적용하였으나 ‘용호의 권’과는 달리 일반 장풍 등의 필살기를 쓸 때는 파워 게이지가 소모되지 않았다. 또한 ‘아랑전설’에 나오는 ‘회피’ 시스템도 간략하게 재현하여 점프를 사용하지 않고도 원거리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KOF’만의 오리지널 캐릭터 ‘쿄’, ‘베니마루’, ‘고로’ 등이 주인공 팀을 구성한다는 점도 단순한 기존 게임의 집합체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

▲오리지널 캐릭터이자 주인공인 쿠사나기 쿄와 그 팀

이러한 ‘KOF94’의 게임성은, 다음 해 후속작인 ‘KOF95’에서 방향을 확실히 한다. ‘KOF95’는 주인공 ‘쿄’의 라이벌인 ‘이오리’를 등장시키며 ‘KOF’만의 독자적인 캐릭터 라인을 잡아감과 동시에 정해진 팀이 아닌 임의의 팀을 구성하여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팀 에디팅 모드’를 구현했다. 이로 인해 일부 성능이 좋은 캐릭터의 편중 현상이 일어난다. ‘팀 에디팅 모드’는 분명 친유저적 시스템이지만, 덕분에 성능 좋은 캐릭터 외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볼 때, 가끔은 ‘팀 에디팅 기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회피 후 공격’이 구현된다. ‘KOF94’에도 몇몇 캐릭에 국한되어 회피 후 공격이 가능했지만 지금의 방식과는 달랐다. 이 ‘회피 후 공격’ 시스템은 유명한 ‘칠십오식 개’ 무한 콤보로 유명해진다.

▲이오리, 첫 등장!

▲팀 에디트 기능으로 원하는 캐릭터만 쏙쏙 빼 올 수 있다

▲유명한 한방 콤보

‘KOF95’에는 전작의 라스트 보스였던 ‘루갈’이 재등장한다. ‘루갈’은 전 세계 격투가들을 석상화 시켜 수집하는 악취미를 가진 ‘KOF’대회의 창시자로, 전작에서 최후를 맞았으나 사이보그화(스토리 상으로는 오로치의 힘을 얻은) 된 신체로 재등장한다. 결국 ‘KOF95’에서 ‘루갈’은 스토리상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스토리가 없는 시리즈인 ‘KOF98’, ‘KOF2002’에서 계속 등장한다. 이쯤 되면 ‘KOF’의 마스코트 캐릭터로도 손색이 없다.

▲이 아저씨야말로 KOF의 원점

‘KOF94’와 ‘KOF95’를 거치며 ‘KOF’시리즈는 독자적 시스템을 탄탄히 다졌고, 유저층이 무섭게 넓어졌다. 특히 ‘KOF95’는 이후 출시되는 ‘KOF96’이 살짝 주춤할 정도의 인기를 얻는다. 바야흐로 ‘스트리트 파이터2’로 대표되던 2D 대전격투계의 왕좌가 ‘KOF’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시스템이 확실히 인기몰이에 큰 힘이 되었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KOF시리즈의 황금기, 오로치 편 (96~97)

‘KOF95’에서 스토리가 일단락 되는 듯 하지만, 엔딩 부분에 뿌려놓은 떡밥 덕에 스토리가 계속해서 확대되면서 ‘KOF96’이 출시된다. ‘KOF96’은 시리즈 상 가장 성공적이라고 불리우는 ‘오로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비주얼적으로나 시스템상으로나 상당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 ‘KOF’의 대중화를 이끈다.

▲옷 찢어지는 효과가 사라진 96

‘KOF96’에서는 ‘레오나’를 비롯하여 ‘기스’, ‘크라우저’, ‘카스미’ 등 신캐릭터가 등장함과 동시에 모든 캐릭터의 모델링이 깔끔해졌다. 이때 확립된 캐릭터 외형은 ‘KOF2002’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많은 캐릭터의 원거리 공격이 삭제되어 더 이상 장풍류가 남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전 시리즈에 장풍이 남발했다는 건 아니다.) 또한 ‘회피’ 시스템을 대신하여 ‘구르기’가 구현되는데, 상대방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호응을 받는다. 이후 ‘KOF97’과 ‘KOF98’에서는 ‘회피’와 ‘구르기’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KOF99’부터는 ‘회피’ 시스템은 사라지고 ‘구르기’로 전격 대체된다.

▲레오나 첫 등장,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이제 장풍은 버려

▲데굴데굴

‘KOF96’은 본격적으로 궁극 초필살기(Max 초필살기)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체력이 2/5정도 남은 시점에서 궁극 초필살기는 파워 게이지를 전부 채운 후 초필살기를 쓰면 발동되는데, 보통 초필살기보다 위력이 세다. 이전 시리즈에도 궁극 초필살기의 대미지적 효과는 존재했지만, ‘KOF96’에서는 한 눈에 보기에도 ‘궁극 초필살기다!’ 라고 할 만큼의 비주얼적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면, ‘쿄’의 궁극 초필살기는 시전 전에 온 몸이 불타오르고, ‘이오리’의 경우 광기를 드러내는 공격을 보여준다. 일부 캐릭터의 경우 초필살기가 두 개씩 생기는 등 초필살기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또한, 초필살기 커맨드가 조금 편리해졌고, 시전 시 작은 이펙트가 표시되는 등, 초필살기 부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화려한 궁극 초필살기, 이펙트만이 아니라 공격 효과도 달라졌다

▲쿄 나와!!! 으어어어어!!!

또한 ‘KOF’를 비롯해 2D 격투게임에 널리 쓰이게 되는 ‘소점프’가 구현된다. 이전까지는 높은 점프만이 존재해서 점프 시 대공기에 쉽게 노출되었지만, ‘소점프’와 ‘대쉬 소점프’의 구현으로 좀 더 스피디하고 전략적인 대전이 가능해졌다.

▲대쉬 점프와 소점프는 이제 빠지면 섭한 요소가 되었다

▲인기의 정점을 찍은 KOF97

‘오로치 스토리’의 마무리를 짓는 작품인 ‘KOF97’은 ‘KOF’시리즈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한다. 비록 몇몇 캐릭터의 사기적으로 강한 성능 탓에 밸런스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대중성과 스토리 측면에서는 시리즈 중 단연 최고로 뽑힌다. 실제로 ‘철권 태그 토너먼트’, ‘스트리트 파이터2’ 등 꾸준한 인기를 얻는 대전액션 게임 대부분은 밸런스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많은 유저들이 ‘밸런스’ 보다는 ‘강한 캐릭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파워 챠~' 이거 한 방 당하면 암담해진다

‘KOF97’에는 ‘오로치 팀’을 비롯하여 ‘신고’와 ‘이오리’가 개인 출전하고, ‘마리’, ‘야마자키’ 등이 새로 등장한다. 또한 숨겨진 캐릭터인 ‘불꽃 숙명의 크리스’, ‘메마른 대지의 야시로’,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벼락의 쉘미’, ‘달밤에 오로치의 피에 미친 이오리’, ‘어둠 속에서 오로치의 힘에 눈 뜬 레오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이오리’와 ‘레오나’의 공격력과 스피드는 사기적이었다. 거기에  무한 ‘파워 차지’를 사용하는 ‘테리 보가드’까지 포함하면 실로 사기캐릭의 전성기라고 할 만 했다. (물론 다른 사기 캐릭터들도 많았지만) 참고로 ‘쿄’의 경우 스타트 버튼을 누른 채로 선택하면 원거리 공격을 사용하는 옛 버전 (94~95)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오락실 의자를 부르는 캐릭터 조합

또한, ‘KOF97’부터 연속기의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었다. 대쉬 점프에서 이어지는 기본기-필살기-초필살기라는 ‘KOF’시리즈 특유의 연속기가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후에 ‘스트라이커즈’ 시스템과 결합되며 라이트 유저들이 떠나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파워 게이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게임 중 ‘A+B+C’를 누르고 있으면 파워 게이지가 충전되는 기존 모드인 ‘엑스트라 모드’와 더불어, 상대방에게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거나 필살기 등을 방어하면 파워 게이지가 차오르는 ‘어드밴스드 모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어드밴스드 모드’는 파워 게이지가 가득 차더라도 세 개까지 충전할 수 있고, 원하는 순간에 파워를 개방시킬 수 있기에 고급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엑스트라 모드’는 ‘KOF95’까지의 시스템인 ‘회피’를, ‘어드밴스드 모드’는 ‘KOF96’의 ‘구르기’를 각각 구현하여 플레이어가 회피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대다수의 유저들이 ‘어드밴스드 모드’와 ‘구르기’를 사용하면서 ‘엑스트라 모드’는 자연스레 사라지게 된다.

▲어드밴스드 모드는 역시 진리

▲공격을 하거나 공격을 당하거나 기술을 쓰거나 막거나.. 어쨌든 게임 하다 보면 차는 게이지

오로치 편은 방대한 스토리와 강한 캐릭터, 간단하면서도 매력있는 게임 시스템으로 ‘KOF’의 국민게임화를 이루어낸다. 라이트 유저도 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난이도와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들, 방대하면서 매력적인 스토리 전개. 가히 ‘KOF’의 황금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였다.

▲캐릭터의 광기가 이렇게 확실히 드러난 시리즈도 처음

최초의 논스토리 드림매치 시리즈 (98)

‘KOF97’에서 오로치 스토리가 완결된 후(나중에 2003으로 이어지지만), 뒤이어 나온 ‘KOF98’은 그 동안 나왔던 캐릭터 대부분이 총 출동한 일종의 드림 매치이다. ‘KOF98’에는 스토리상으로 죽음을 맞이했거나, 출전을 포기하고 KOF와 작별을 고한 캐릭터 등 반가운 얼굴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최종보스로 ‘루갈’이 재등장하며 마스코트 캐릭터의 저력을 보여준다.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미국팀 오랜만이야

‘KOF98’의 가장 큰 특징은 시리즈 중 가장 밸런스가 완벽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전작에서 사기적이었던 캐릭터들의 성능이 낮아져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좋아하던 캐릭터가 약해진 것에 실망한 라이트 유저들은 ‘KOF98’이 비해 재미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KOF98’은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이러한 탓에 ‘KOF98’은 비교적 높은 연령대에서는 환영을 받았지만 라이트 유저들은 ‘KOF97’을 더 마음에 들어하며 유저층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캐릭터 사용 범위가 다양해지는 시리즈

라이트 유저들이 ‘KOF98’을 외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간편 커맨드 입력 방식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필살기 중 (↓↘→)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 기존 시리즈에선 대충 입력해도 손쉽게 발동되었지만, ‘KOF98’에선 방향을 정확하게 입력하지 않으면 필살기를 쓰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대충 조작해도 손쉽게 기술이 나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라이트 유저들은 ‘KOF98’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결국 ‘KOF98’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일반 유저들 사이에선 혹평을 받는 시리즈가 되었다.

▲뭔가 하고 싶은데 자꾸 필살기는 안나가고 기본기만 나가!!

‘KOF98’은 전작에서 호평을 받았던 ‘쿄’의 ‘KOF94’버전 선택기능을 좀 더 확대하여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 캐릭터(일부 제외)들에도 적용시킨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아랑전설’, ‘용호의 권’ 캐릭터를 선택하면 예전 시리즈의 클래식 캐릭터를 고를 수 있다. 또한 랜덤 선택기능을 도입했는데, 한 번 선택하면 캐릭터를 바꾸지 못하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스테이지마다 랜덤 선택한 캐릭터가 계속 바뀌는 시스템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커다란 스토리 라인이 종료된 후 스토리가 없는 드림매치 시리즈가 나오는 방식은 이후 ‘KOF2002’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번에 출시되는 ‘KOF13’도 스토리의 마지막 장이니만큼, 다음 시리즈에서도 드림매치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랜덤 선택, 스테이지마다 바뀌는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루갈, 랄프, 앤디가 선택되었다! 다음번엔 또 다른 조합이 나온다! 으하하핫

KOF의 황금기에서 대전격투의 방향성을 보다

‘KOF’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보면 2D 격투게임의 역사가 보인다. 필자가 느낀 것은, 게임의 완성도와 인기도는 항상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저층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매니아들의 요구를 따라가다 보면 게임의 심도는 깊어지지만, 범국민적인 게임이 되기는 어렵다.’ 라는 말은 분명 ‘KOF’의 황금기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후 ‘KOF’는 점점 매니악한 게임이 되어간다. 하편에서는 ‘KOF’가 어떻게 일반 유저들에게서 멀어져 갔는가에 대해 다루겠다.

▲KOF99부터 유저들이 많이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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