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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많은 역사 게임, 왜 한국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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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고대 그리스까지 온 '어쌔신 크리드' (사진출처: E3 2018 플레이 영상 갈무리)

게임과 역사는 친하다. 글로벌은 물론 한국에서도 ‘문명하시겠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낳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는 27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유비소프트 대표작 ‘어쌔신 크리드’도 10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롱런 중이다. 밀리터리 FPS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콜 오브 듀티’나 ‘배틀필드’에서도 2차 세계 대전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사용되었다.

한국과 가까운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나오는 게임 절반 이상이 삼국지’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삼국시대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많고, 일본은 게임은 물론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사무라이, 닌자를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서양에도 발을 뻗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흐름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 자체가 많지 않으며 괄목할 성과를 달성한 게임은 더 찾기 어렵다. 다양한 나라에서 ‘역사 게임’은 주류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사는 아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사 강사와 한국사 게임 개발자, 그리고 문화 평론가가 모여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게임인재단은 23일, 경기창조경제센터에서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를 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사 게임이 왜 많이 없고, 게임과 한국사가 만났을 때 어떠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강연에는 한국사 강사로 유명한 최태성 강사와 ‘충무공전’, ‘임진록’, ‘천하제일상 거상’, ‘군주’ 등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온 조이시티 김태곤 CTO가 참석했다. 토크콘서트 좌장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맡았다.


▲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 현장, 조이시티 김태곤 CTO와 최태성 한국사 강사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게임 개발자가 직접 말하는 ‘한국사 게임’이 없는 이유

조이시티 김태곤 CTO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중세 유럽 스타일 판타지다. 여기에 신화가 일부 가미되는 형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세 유럽 판타지가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끈다. 역사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개발자들은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있는 소재가 훨씬 좋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 개발자 중에는 이례적으로 ‘한국사 게임’을 파고든 김태곤 CTO의 말에는 한국 게임사가 만든 ‘한국사 게임’이 많이 없는 이유가 담겨 있다. 국내 콘텐츠 수출 50% 이상을 맡을 정도로 게임은 수출 산업이다. 특히 게임산업이 발전하며 제작비도 덩달아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시장 하나만 보고 게임을 만드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한국 역사를 게임에 담는다’는 의미는 있지만 게임사도 ‘회사’이기에 수익을 아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곤 CTO는 “일본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을 통해 서구 문명에 사무라이와 닌자를 알렸다. 그 결과 이제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고 하는 것처럼, ‘한국사’를 해외에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무조건 ‘한국사 게임’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여기서 ‘인식’이란 비단 해외만이 아니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부터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이러한 사람들을 노린 게임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김태곤 CTO는 “게임에서의 역사는 단독으로 성장할 수 없다. 기반이 되는 문화나 저변이 같이 성장하고, 유저 수준이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 많은 한국사 게임을 만들어온 김태곤 CTO는 업계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 한국 역사도 ‘팔리는 콘텐츠’가 됐다

하지만 김태곤 CTO는 최근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 CTO는 “최근에 역사물을 다시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역사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였다는 것이다”라며 “옛날처럼 연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숨어 있는 이야기, 그 시대 사람들의 인생에 주목할 정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아졌다”라고 밝혔다.

역사강사로 유명한 최태성 강사도 ‘한국사’가 가장 핫한 소재라고 말했다. 그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한국사가 최근 ‘팔리는 콘텐츠’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으로 만들면 좋을 ‘한국사 소재’는 무엇이 있을까? 최태성 강사가 몇 가지를 제시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겨뤘던 한국 ‘삼국지’, 조선시대 아이들이 즐겨 했다는 벼슬놀이 ‘승경도’, 영화 ‘암살’, ‘밀정’ 주역으로 떠오른 독립단체 ‘의열단’ 등이 있다. 여기에 역사학계에서는 비주류로 여기는 단군 이전 역사 ‘환단고기’도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시대는 ‘고증’이라고 할만한 기록이 거의 없기에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도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소개한 최태성 강사 (사진: 게임메카 촬영)

최태성 강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고조선’이라고 하지만 더 올라가면 환인이 세운 환국과 환웅이 세운 배달국, 단군이 세운 조선이 있다. 그리고 환웅이 세운 배달국 제 14대 천왕이 치우천왕이다”라며 “이 치우천왕은 눈이 4개, 손이 6개이고, 손발에는 발굽이 있다. 머리는 구리, 입 안은 쇠다. 치우천왕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황제와 맞서 싸우게 된다. 이 전투가 바로 ‘탐록전투’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예시는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이다. 최태성 강사는 “내가 정도전이라면 커다란 종이를 펼쳐놓고 그 위에 선을 쭉 그었을 것이다. 이 선이 우리가 지금도 쓰는 종로다”라며 “이후 4개 점을 찍는다. 정도전의 꿈 중 하나는 조선을 유학이 꽃피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양에도 유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의예지신’을 넣어 사대문과 보신각을 만들었다. 최근 도시를 재생하는 과정을 다룬 게임도 있던데 ‘정도전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정도전이 꿈꿨던 도시를 하나씩 그려 넣는 과정을 그리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 역사에 자리한 매력적인 소재를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김태곤 CTO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고증이다. 이는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태곤 CTO는 “과거에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우리 팀이 아닌 캐릭터는 한 등급 아래인 것처럼 표현했다. 일본 장군은 항상 묘사가 희화적이고 극단적인 반면 이순신 장군은 흠 하나 없다”라며 “하지만 현재 우리의 내공은 높아졌다. 2014년에 개봉한 ‘명량’은 이순신도 그렇지만 적장 하나하나가 주연급 배우로 등장한다”라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객관적인 표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태곤 CTO가 공개한 이순신, 일본 고니시 유키나가, 중국 이여송 콘셉 아트,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객관적인 이미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고증’은 사람들에게 게임 속 이야기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몰입감을 준다. 하지만 너무 ‘고증’에 치중하면 ‘상상력’이라는 게임의 강점이 죽는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융통성이다. 김태곤 CTO는 “우리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지 역사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유저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고증에 노력을 기울이되 ‘상상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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