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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배·이상균·P의 거짓, 라운드8이 말하는 내러티브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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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8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네오위즈)
▲ 라운드8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네오위즈)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 짓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내러티브는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액션이나 조작감, 게임성 등이 아무리 좋아도 내러티브가 그렇지 않다면, 게임 전체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치기 쉽다

그만큼 내러티브 창작은 개발자에게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라운드8 스튜디오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검은방 제작자 '수일배' 진승호 디렉터, P의 거짓 디렉터 최지원과 권병수, '마비노기 영웅전' 이상균 전 내러티브 디렉터가 입을 열었다. 이들은 지스타 2025에서 열린 '감정을 설계하다-현대 게임의 내러티브 아트와 창작 철학'이라는 강연을 통해 본인들이 가진 내러티브 창작 철학을 전했다.

▲ 최지원 디렉터(좌)와 권병수 디렉터(우)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이상균 디렉터(좌)와 진승호 디렉터 (사진: 게임메카 촬영)

좋은 내러티브는 '숙성'된 아이디어에서 온다

네 디렉터는 가장 먼저 '좋은 게임 내러티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의 정의를 내놓았다. 최지원 디렉터는 "지속적으로 동기나 목표가 제공되어야 한다"며, 플레이어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갖지 않도록 작은 행동에도 명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병수 디렉터는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구심력'을 가진 캐릭터와 이야기가 좋은 내러티브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승호 디렉터는 게임 시스템을 통한 조작이 어떤 감정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꼽았다. 마지막으로 이상균 디렉터는 게임 규칙 자체는 건조하지만 "그 규칙이 건조한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내러티브"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20의 숫자를 0으로 만드는 규칙보다, '20의 체력을 가진 기사'와 '롱소드'라는 설정을 입혀 '롱소드로 기사를 공격해 체력을 깎는다'라는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내러티브의 역할이라고 비유했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를 실제로 곧장 적용하기보다는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디렉터들은 입을 모았다

진승호 디렉터는 "살면서 겪는 인생의 큰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며, '나 혼자만 당할 수 없다'는 욕구가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실현시키는 시작점이 됐다"고 전했다. 또한 아이디어가 개발 과정의 고생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는 숙성 과정을 거친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지원 대표는 "생각을 많이 할수록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며, "진짜 좋은 아이디어는 언젠가 다시 한번 생각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 진승호 디렉터의 베리드 스타즈 (사진: 게임메카 촬영)

권병수 디렉터는 아이디어를 숙성하는 과정에서 '거리두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1인칭 시점이 아닌 제3자 시점으로 그걸 바라볼 수 있을 정도까지 거리를 한번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P의 거짓 개발 당시 최지원 디렉터가 던진 '거짓말'이라는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며칠 뒤 운전 중에 다시 떠올라 발전시켰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특히 팀 작업 시 아이디어 숙성 과정은 조직 문화와도 직결된다. 최지원 디렉터와 권병수 디렉터는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바로 판단하거나 즉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안을 받은 즉시 평가하기보다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하며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동료의 사기를 꺾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개발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소설과는 다르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이점

그렇다면 게임 내러티브가 가진 고유한 특성은 무엇까? 네 디렉터는 이에 대해 '시점'과 '비선형성', '플레이 시나리오'를 꼽았다. 이상균 디렉터는 "소설이나 영화는 선형적 경험을 제공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의 일반적 경험'을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문 아래에 열쇠를 숨겨놓았을 때, 이를 자연스럽게 찾아내는 플레이어가 있는 반면 찾지 못하는 플레이어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게임은 다른 매체가 갖지 못한 '시점'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이상균 디렉터는 영화 '세븐'과 2010년 출시된 인터렉티브 어드벤처게임 '헤비레인'을 예시로 들었다. '세븐'을 볼 때 관객은 브래드 피트의 살인에 '연민'을 느끼지만, '헤비레인'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직접 트리거를 당기기에 '죄책감'을 느낀다. 영화나 소설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행동하기에 생기는 특징이다.

헤비레인 스크린샷 (사진출처: 게임 스팀 페이지)
▲ 헤비레인 스크린샷  (사진출처: 게임 스팀 페이지)

진승호 디렉터는 '다회차 플레이' 구성을 통해 내러티브를 강화한 경험을 공유했다. 첫 회차에 무조건 모든 캐릭터가 죽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 뒤, "이제 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보세요"라며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경우 플레이어는 평범한 대사조차 '이 사람의 마지막 말'임을 알기에, 초회차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몰입하게 된다.

진승호 디렉터의 대표작 '검은방'은 이러한 내러티브 특징이 잘 나와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진승호 디렉터 대표작 '검은방'은 다회차 플레이를 통한 내러티브 강화 적용된 좋은 예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최지원 대표는 '플레이 시나리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내러티브가 게임의 환경이나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게임은 영화나 소설과 달리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가 행동한다. 내러티브가 게임 속 환경이나 상황과 조화를 이뤄 몰입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P의 거짓에서는 전투 중이 아닌 안전한 상황에서만 이야기 노트를 발견할 수 있게 배치했는데, 이는 전투를 하는 플레이 시나리오 가운데 그런 내러티브가 들어왔을 경우 몰입이 크게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단순한 서사 전달 장치같지만, 배치부터 내러티브에 대한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P의 거짓 속 이야기 노트, 단순한 서사 전달 장치같지만 배치부터 많은 고민이 담겼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상균 디렉터는 과거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 초기, 반복되는 퀘스트 디자인에 의문을 가졌다고 밝혔다. 당시 대부분의 MMORPG에서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스토리를 진행해도, NPC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그는 로그아웃 후 다시 접속하면 무조건 여관에서 '티이'를 만나게 하는 지루한 일상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이후 스토리 진행을 통해 티이가 떠나게 되면, 다음 날 접속 시 여관에는 티이도, 배경 음악도 사라지고 '떠나기' 버튼만 남게 된다. 이는 '영원한 상실'을 의도한 설계였으나, 너무 많은 유저가 이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현 개발자들에게, 라운드 8이 전하는 조언

라운드 8 스튜디오는 최근 진승호 디렉터와 이상균 디렉터를 영입하며, 내러티브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이는 단순히 게임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발 문화 증진이라는 목적도 있다. 최지원 디렉터는 "좋은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면 개발에 있어서도 창의력 발휘에 유리하다"며, "내러티브가 제대로 구축이 되면, 팀원 간 '왜'라는 대답하는 일이 줄어들고 뼈대에 살을 붙이는 피드백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권병수 디렉터 역시 "핵심 가치를 초반에 공유하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으며, 다들 같은 방향으로 한 게임을 바라보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좋은 내러티브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네 디렉터는 각기 다른 조언을 남겼다. 이상균 디렉터는 "지식의 지평이 곧 상상력의 지평"이라며 다양한 매체를 접할 것을, 진승호 디렉터는 "게임 개발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있다"며 경험과 사람을 관찰할 것을 조언했다. 최지원 디렉터는 "개발자 이전에 게이머가 돼야 한다"며 플레이 경험의 중요성을 전했고, 권병수 디렉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작품을 끝까지 완성시켜 볼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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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거짓 2023년 9월 19일
플랫폼
PC, 비디오
장르
액션 RPG
제작사
네오위즈
게임소개
'P의 거짓'은 네오위즈가 개발 중인 소울라이크 액션 RPG로 블러드본은 물론 바이오쇼크, 디스아너드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성인 취향의 잔혹동화로 재해석한 스토리가 특징이다.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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