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PSP용 `천지의 문` 캐릭터 디자인 맡은 만화가 고진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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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활동 중인 고진호 씨를 직접 만나 그간 만화가로서의 활동해온 이야기와 천지의 문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된 계기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만화가 고진호. 1975년에 태어나 1995년, 약관 20세에 스크램블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자기 이름을 알렸으니 벌써 10년 차 중견(?) 만화가다. 스스로는 실력도 모자라고 유명하지도 않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견습 만화가라지만 그 치열하다는 일본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연재를 게재했을 정도니 이 말들은 그저 겸손일 뿐일 것이다.

고진호 씨가 PSP용 게임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화제다. 일본 SCEI에서 PSP용 오리지널 게임으로 제작한 무협 롤플레잉게임 ‘천지의 문’이 그것. 고진호 씨는 이 작품에서 남, 녀 주인공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아 한국인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동양의 신비한 분위기를 마음껏 펼쳐보였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고진호 씨를 직접 만나 그간 만화가로서의 활동해온 이야기와 천지의 문 캐릭터 디자인을 맡게 된 계기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만화가 고진호 씨는 어떤 사람?

1994년 부산의 만화동아리 ‘태극’에서 활동하다가 천랑열전의 인기 만화가 박성우 문하에서 처음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1995년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샤크에서 ‘스크램블’을 연재하면서 정식으로 등단, 삼양출판사의 코믹 엔진에서 ‘플러스 어게인’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 학산문화사의 ‘부킹’에서 크로키 팝을 연재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연재는 잊지 못할 경험

무지하게 비가 쏟아지던 30일 오후, 고진호 씨는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날씨가 화창한데 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져 난처했다며 웃는 고진호 씨를 보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수함이 묻어났다.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일까? 순수함과 소탈함이 묻어나는 그의 말투에 처음 만나는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국내 만화가 중에서 일본의 메이저 잡지에 연재를 게재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의 한 명이 고진호 씨. 미디어웍스의 전격 코믹 가오를 통해 딘 블러드 테페스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한국 만화계가 많이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일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죠. 메이저 시장에 대한 진출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열망이니까요. 다행히 전격 코믹 가오의 편집장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어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 소탈하고 꾸임없이 인터뷰에 응한 고진호 씨. 주변의 먹을거리는 애교로 봐주시길

하지만 고진호 씨를 발탁한 편집장은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깜찍한 미소녀풍의 작품을 중시하던 후임 편집장이 오면서 작품의 연재는 중단됐다. 그러나 고진호 씨는 일본에서 일하며 한국 만화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을 배웠다.

“과거 한국에서 작업할 때에는 담당기자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도 떨어져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의논이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담당기자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수정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혀주어 작업하기가 편합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일본에서 직접 작품을 연재하고 일본 만화가들의 작업 과정과 발전된 제작 시스템을 몸으로 익히고 한국으로 돌아온 고진호 씨는 의욕적으로 작품창작에 매진, 현재 크로키 팝을 호평리에 연재하고 있다.

다행히 현재 일하고 있는 출판사는 일본의 선진 제작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작업하기에 편하다고. 일본에서 연재했던 작품을 높이 평가한 일본 출판사들이 계속해서 연재를 의뢰하고 있지만 당분간 일본에서 활동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아직 젊은 만큼 한국에서 좀 더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 인터뷰하기가 무척 부끄럽다며 사진 찍는 것도 극구 사양했다

 

게임 일러스트는 아주 매력적인 일
만화가가 게임 일러스트를 그린다? 일본에서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자국게임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의뢰를 받아 작업을 시작하는 건 더욱 드문 일. 그럼 고진호 씨은 어떻게 PSP용 ‘천지의 문’ 작업을 맡게 된 것일까?

“서울문화사를 통해 제가 데뷔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문화사의 높으신 분이 그림을 몇 장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워낙 신세를 진 분이고 해서 그림을 보내드렸더니 얼마인가 지나서 일본의 한 게임개발사가 캐릭터 일러스트를 의뢰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번번이 신세를 진 셈이죠(^^).”

▲ 천지의 문의 남, 녀 주인공. 파란색과 빨간색의 조화가 태극을 연상시킨다

일본 개발사 SCEI는 천지의 문을 만들며 일본, 한국, 중국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동양풍의 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만들게 되면 일본 유저에게만 한정될 수 있는 그림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를 구하기로 한 것. 그 의뢰가 서울문화사로 온 것이고, 고진호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샘플을 평가한 SCEI가 최종적으로 고진호 씨를 낙점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3년 11월 경 의뢰가 왔으니 벌써 2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고진호 씨도 게임 일러스트를 처음 맡았고 SCEI 역시 해외에 처음 의뢰한 것이라 진행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캐릭터 일러스트가 최종 완성된 것이 2004년 9월 경. 보통 3~4개월 정도면 작업이 끝나지만 당시 연재를 진행하던 것도 있어서 10개월 정도로 작업기간이 늘어났다. 당초 천지의 문을 소재로 한 만화가 먼저 나온 후 게임이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만화 출시가 캔슬된 것도 스케쥴 조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과 코믹을 그리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게임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것인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고진호 씨가 말하는 게임 일러스트와 코믹의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동양풍의 무협 캐릭터를 그리다 보니 나풀거리는 복장을 그리고 싶었는데, 과연 게임에서 이 나풀거리는 모습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 염두에 두고 그려야 했다는 점이다. 게임 관련 일을 처음 하다 보니 게임기의 스펙을 알 수 없었고, 이에 대한 문의를 일본 측에 하다 보니 작업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 게임 속 주인공을 그려달라는 즉흥적인 부탁에 슥삭슥삭 그려주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고진호 씨는 게임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은 정말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타이틀 롤이 올라갈 때 ‘캐릭터 디자인: 고진호’라는 글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라고. 앞으로 게임 일러스트 의뢰가 다시 들어오면 또 하겠느냐는 질문에 “게임 일러스트에 대해 더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맡을 생각이 없다”면서도 “정작 의뢰가 들어오면 해보고 싶어질지 모른다”며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고진호 씨는 중간에 스토리 작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교체되어 마무리에 힘을 쏟을 수 없었던 플러스 어게인을 가장 아쉬운 작품으로 여긴다. 크로키 팝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도 플러스 어게인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크로키 팝을 꼽는다.   

11월에 크로키 팝 단행본 3권이 나오고 프랑스와 미국에도 수출이 결정됐다. 일본에서도 코믹 연재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고진호 씨의 만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계속 뻗어나갈 예정이다. 만화가로서 고진호 씨가 뜻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게이머들로서는 고진호 씨가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은 게임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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