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게임을 하기 위해 외국어를 공부했던 일은 게이머들에게 흔한 경험이다. 특히 일본어에 능숙한 사람들 중 “게임을 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는 사례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낯선 외국어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유저들은 좀 더 많은 외산 게임들이 한글화되어 출시되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사정으로는 외산 게임이 한글화 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외국 게임제작사, “한글화 필요성 못 느껴”
외산게임의 한글화 여부는 유저들의 호응도, 예상 판매량 또는 전작의 판매량 등에 따라 결정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상 판매량이다. 2002년도 ‘쯔바이 사태’(아래 별첨 참고)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게이머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한글화가 진행되진 않는다.
국내 게임유통사 한 관계자는 “외산게임 타이틀 하나를 한글화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적게는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라며 “한글화 비용을 고려해 이익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한글화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한글화를 거쳐 발매할 경우, 개당 3~4만원 하는 패키지 타이틀을 한글화 비용만큼 더 팔아야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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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쯔바이, RPG의 경우 텍스트를 이해 못하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또, 한글화가 결정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외산게임 한글화의 경우, 크게 텍스트 번역과 프로그램밍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이 중 프로그래밍 작업은 번역된 언어를 게임 소스에 적용하는 일로, 본사의 프로그래머들이 전담해서 수행하게 된다. 문제는 본사가 한글화 프로그램에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작업이 더뎌질 수 밖에 없다는 것.
국내 게임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발매 직후 한글판이 정식으로 발매 되기까지 2달 정도 걸렸다. 지금은 무기한 연기돼도 본사에 어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만장도 안 팔리는 한국 시장을 위해 본사의 인력을 재촉하며 한글화를 진행하기는 무리”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한 외국업체의 경우 자사 게임에 적용되는 언어를 A,B,C 급으로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급 언어(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의 경우 발매 시 기본적으로 적용시키고, B급과 C급 언어의 경우 현지의 요청에 의해 진행한다.
A급 언어만 적용해 발매해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언어의 로컬라이징 작업은 본사에게 있어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덤에 불과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른 곳에서 100만 장씩 팔리고 있는데 굳이 1,000 장 단위로 팔리는 한국에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거죠”
시장정체가 기대감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어
본사에서 한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타이틀이 많이 팔려야 한다. 하지만 타이틀 판매량의 문제만큼 한글화를 가로막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패키지 게임 시장의 정체.
외국계 게임업체의 한 관계자는 “당장 타이틀이 적게 팔려도 한국 시장이 성장세에 있다면, 한글화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의 정체가 한글화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없애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대작 게임에만 집중하는 풍토’와 ‘게임 공유 및 복사를 일삼는 게이머’를 한국 패키지 게임시장 정체의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K사 한국 지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게임 매체, 게이머들은 워낙 대작 타이틀에만 집중해 나머지 게임들이 설 자리를 잃고, 다양성을 상실한 시장은 그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P2P를 이용한 게임의 불법 공유가 점점 증가하며 실 구매층이 사라지는 현상이 덧붙여져 상황을 계속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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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의 불법공유는 이미 일상화 되어있다 |
국내 유통사들 중심으로 시장 활성화 모색 중
현재 한국의 게임 유통업체들은 게임 공유의 온상인 P2P 사이트를 제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소니 , MS 코리아 등 대형업체 중심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대첵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음악 저작권 및 복제권 전송권 침해소송에서 소리바다가 패소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음반업계에서 실효를 거둘 경우 게임사들도 공유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움직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 P2P 사이트들에 대한 제제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공유 사이트를 제재 한다고 게임을 공유하던 이들이 모두 게임을 구매할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라며 “하지만 적어도 개별 게임의 가치가 존중되는 풍토를 만들면 외산 게임 한글화에 대한 갈증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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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바이 사태? 2001년, 한국 게이머들은 일본 팔콘사의 RPG ‘쯔바이’의 국내 정식 발매를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운동의 내용은 “누구든지 쯔바이를 한글화 해 발매해 준다면 게이머들이 책임지고 팔아주겠다”는 것. 결국 국내 유통업체 중 한 군데인 메가엔터프라이즈가 쯔바이를 한글화해 발매했고, 그 후 메가는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실적으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위의 이야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명 ‘쯔바이 사태’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메가엔터프라이즈는 현재까지 멀쩡히 운영되고 있는 회사. 메가엔터프라이즈 측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쯔바이’를 발매해 어느 정도 이익을 남겼다”며 “손해 볼 위험이 컸으면 애초에 ‘쯔바이’를 발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서명운동까지 하는 등 마치 발매만하면 대박을 칠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정작 메가 쪽에서는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란 정도의 예상을 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쯔바이 사태`는 게이머들의 대의명분에 따라 타이틀의 한글화가 좌지우지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됐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냉정한 사업 논리에 따라 한글화 여부가 결정 된다는 사실을 `쯔바이 사태`는 증명한 셈이다. 대의명분보다 산술적인 수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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