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대형업체 인재 사재기, 업계 양극화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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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처럼 행해져 온 대기업의 ‘개발자 사재기’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개발사 간의 양극화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한국 게임시장의 그늘에는 인력난이라는 늪 속에 빠져들어 가는 중소 개발사가 있었다.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둔 메인 기획자 A는 최근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한 업체에서 1억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단 그가 맡을 프로젝트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회사만 옮기면 적당한 프로젝트 팀에 넣어준다는 말을 들었다. A는 자신이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걱정됐지만, 어마어마한 연봉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A의 사례처럼 관행처럼 행해져 온 대기업의 ‘개발자 사재기’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개발사 간의 양극화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한국 게임시장. 하지만 그 그늘 속에는 `인력난`이라는 늪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소개발사가 있었다.

◆ 중소개발사 “가서 썩힐 거 왜 데려가나요?”

"제발 중소 게임업체 살게 대기업에서 개발자들 좀 데려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한 중소개발사 관계자는 최근 심각한 인력난에 대해 이 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써 키워놓은 개발자들은 대기업에 빼앗겨 버리기 일쑤이며, 새로 뽑는다 해도 대기업에서 받는 연봉보다 2배 이상의 액수를 제시해야 겨우 ‘모셔올 수’ 있다.

물론 열악한 중소개발사보다 더 많은 연봉과 자신의 능력을 크게 펼칠 수 있는 대기업을 선택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중소개발사의 살을 깎아가며 비싼 돈 들여 데려 온 개발자들이 대기업으로 들어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사장(死藏)’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국내 한 대형게임 업체에는 ‘인력풀’이라는 제도가 있다. 천여 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동시에 십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그 중 기획단계에서 취소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없어진 프로젝트의 경우 팀 전체가 인력풀로 넘겨진다. 그곳에서 자신을 불러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3개월이 지난 후에도 갈 곳이 없다면 그땐 스스로 나가야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인력풀 제도로 인해 회사측은 큰 비용 부담 없이 쉽게 검증받은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개발사의 관계자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개발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보이지도 못한 채 대기업의 인력풀에서 사장되는 건 게임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경력을 위해서라면 ‘빛 좋은 개살구’라도 좋다

“경력 4~5년 차인 개발자 B는 이직 준비 중에 새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부르는 연봉보다 중소개발사에서 제시한 연봉이 1천만원 가량이나 더 높았던 것이다. 그런 작은 개발사에서 주기에는 부담스러운 연봉.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이직시 유리한 대기업을 선택하고 말았다.”

한국의 중소개발사를 울게 만드는 건 비단 대기업의 ‘개발자 사재기’ 뿐만이 아니다.

2~3년 단위(한 프로젝트 완료시기)로 움직이는 게임 개발자들의 경우, 소위 잘나간다는 대기업이나 성공한 프로젝트에 몸 담았던 개발자들이 연봉협상시 훨씬 유리하다.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위의 사례처럼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함에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큰 대기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성공여부가 불확실한 중소개발사에서는 “능력있는 개발자를 데려오는 건 이미 포기했다”며 “아예 처음부터 데려다 키울 생각으로 신입을 뽑는다”고 말한다.


▲ 게임잡에는 매일 수십건의 구인광고가 올라오지만 중소개발사의 인력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신입들의 연봉은 1500만원 이하. 그들에게 A급 게임을 요구하는 건 힘든 일이다. 때문에 중소개발사들은 아예 처음부터 적당히 돈을 벌 수 있는 B급 게임을 목표로 하는 곳도 많다.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더욱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건 성공한 프로젝트의 기준이 개발자가 만든 게임의 ‘게임성’보다는 ‘대중적인 성공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게임업계에서는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단지 성공한 프로젝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경우도 상당하다.

언리얼 시리즈와 언리얼 엔진으로 유명한 미국의 에픽게임즈에서는 6개월간의 심층면접을 통해 개발자를 뽑는다고 한다. 긴 시간을 통해 그들의 ‘실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사의 인터뷰에 응한 모든 개발사에서는 인력채용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의 개발자 사재기에 중소개발사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는 지금, 오늘도 실력있는 게임 개발자들이 정처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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