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대담] 창업신화? 아직 배가 고프다. J2M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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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게임 보죠.” 기자의 요청에 방 대표는 빼지 않고 바로 게임을 보여줬고, 그렇게 처음 ‘레이시티’를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기자가 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올해 1월이었다. 기억으로는 넥슨 출신의 개발자들이 ‘MMO드라이빙’ 이란 장르의 게임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J2M이란 개발사를 찾아갔었다. 사실 당시에는 넥슨 ‘카트라이더’ 팀에 있던 개발자가 있다는 이야기에 제일 흥미를 느꼈었다.    

‘넥슨 출신 3인방’은 실제로 만나보니 이제 30살 혹은 29살이 된 ‘청년’들이었다. 많지 않은 나이에 대표라는 명함을 가진 ‘J2M’의 방경민 사장은 한 회사의 대표라기보다는 그냥 대학생 같았다. 짧지 않은 서울생활에도 변하지 않은 그의 대구 사투리가 더욱 그런 느낌을 줬다.

“바로 게임 보죠.” 기자의 요청에 방 대표는 빼지 않고 바로 게임을 보여줬고, 그렇게 처음 ‘레이시티’를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32명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신에 의한’ 게임을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J2M 방경민 대표, 박종흠 이사, 최영민 이사는 그런 의미에서 게임 개발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메카(이하 G): 넥슨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성공’을 하셨습니다.     

방경민 대표(이하 방): 2004년 12월 처음 창업할 때는 5명이었죠. 저희 3명이랑 디자이너 2분이랑 선배 오피스텔 빌려서 컴퓨터 놓고 개발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32명 정도 식구를 거느린 가장이 되었네요.

박종흠 이사(이하 박):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게임 프로젝트 하나 런칭했고 아직 제대로 결과도 나오지 않았거든요

G: 처음에 세 분이 어떤 계기로 뭉치셨나요?    

최영민 이사(이하 최): 사실 두 형이 꼬셨어요(웃음).

사실 저는 처음에 형(최영민 이사는 방대표, 박 이사보다 한 살이 적다)들이 ‘레이시티’ 제안을 하길래 만들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을 그대로 옮기자는데 가능할 것 같지 않더라구요.    

방: 사실 그전부터 내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어요.

종흠이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둘은 대구 과학고등학교 동창)였기 때문에 넥슨 안에서도 터놓고 이야기를 했었고, 영민이를 잘 구슬려서(웃음) 프로젝트에 합류 시켰죠.

▲ 방경민 대표

창업초기, 김정주 사장 격려가 힘이 돼

세 사람은 넥슨 안에서도 인정을 받던 게임 개발자들이었다. 박종흠, 최영민 이사는 지금은 서비스되지 않는 불운의 명작 ‘텍티컬 커맨더스’의 메인 프로그래머들이었고, 방경민 대표 역시 ‘크레이지 아케이드’ PM, ‘프로젝트 MG’ 개발 팀장을 맡았던 인재. 방 대표와 박 이사는 넥슨 안에서 독립된 프로젝트를 맡았을 만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게임을 개발한다고 짐을 쌌을 때 말리는 사람은 없었을까?          

방: 아니요. 사장님(김정주 대표)은 ‘잘할 수 있을 거다’, ‘아이디어가 괜찮다’ 이렇게 오히려 격려해 주셨어요. 창업할 때는 직접 찾아오셔서 선물도 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 선물이요? 복합기 해주셨습니다. (웃음) 그 밖에도 이승찬 대표(현 시메트릭스 대표, 메이플스토리 개발자) NHN 김병관 대표님도 오셔서 격려해주시고 선물도 주셨어요. 주변 분들의 격려가 초창기 때는 큰 힘이 됐죠.

G: 세 분 모두 창업 당시 결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정이 있다는 점에서 좀 부담스럽진 않으셨는지?

최: 세 명 모두 부인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창업에 대해)어느 정도 이해해줬어요. 저 같은 경우는 와이프가 “당분간은 내가 먹여 살려줄게 하고 싶은 거 해 봐”라며 용기를 줬죠.

방: 종흠이 하고 저는 창업을 결심하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미 그런 부담에 있어서는 감수하고 있는 상태였죠.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과정, 생각보다 힘들었다  

막상 내 게임을 만들겠다고 창업을 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안정적인 직장을 나오면서부터 험난한 가시밭 길은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 개발만 하던 개발자들이 하나의 회사를 경영하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시련들이 있었으리라.

G: ‘레이시티’를 개발하면서 가장 큰 벽에 부딪혔을 때는 언제인가요?

박: 처음 6개월 동안은 마냥 즐거웠고 그 다음부터는 고생의 연속이었죠.

개발초기에 서울시내 맵을 게임 내에 구현할 때 진짜 진척 속도가 느렸거든요. 건물 하나 만드는데 하루씩 걸리는 거에요. 계획대로라면 만 개 이상의 건물을 구현해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프로젝트 하나에 한 20년 걸리겠더라구요(웃음).

그래서 2005년 여름에 같이 MT를 갔는데 굉장히 우울한 상태로 갔죠(웃음). 차 타고 가는데 한강 건너면서 펼쳐지는 광경에 “아 ~ 큰일났다”라는 생각뿐이었죠.   

▲ 최영민 이사

최: 처음엔 이게 실현 가능한 것인지 감이 안 잡혔어요. 서울을 아무런 멈춤 없이 달려야 한다고 하고(웃음). 벽이라고 까지 말할 것은 없지만 그런 생각들이 좀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옆에서 자꾸 부담주고(웃음)또 이게 내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니까 진짜로 실현이  되더라구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배웠어요.         

G: 방 대표님은 경영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어야 했는데 어렵진 않았나요?

방: 사실 경영을 하다 보면 돈 문제가 제일 크죠. 2004년 처음 J2M을 세웠을 때 자본금이 1억원 이었거든요.

자본금만으로는 도저히 무리니까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며 투자를 받았습니다.

박: 사실 경민이 같은 경우에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개발자 이외의 모습도 있어요. 그런 부분이 회사를 꾸려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외의 개발자들이 개발에만 집중하면 됐으니까요.   

내 프로젝트란 생각에 초기계획대로 갈 수 있어  

G: 회사에 소속되어있는 개발자와 자기 프로젝트를 하는 개발자.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방: 저희가 ‘레이시티’를 만들면서 자동화를 많이 시켰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초반에 작업 속도가 하도 안 나와서 종흠이랑 제가 한 반나절 동안 디자이너들 작업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어요.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거에요. 넥슨 때였으면 “그냥 디자이너 10명 더 채용하지” 이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근데 이게 내 프로젝트가 되니까, 그게 그렇게 쉽게 안되더라구요. 일단 사람 쓰면 돈이 들잖아요. 그래서 자동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툴을 만들었죠. 지금 ‘레이시티’ 디자이너를 위한 툴만 200개 정도에요.

박: 효율성을 극대화하게 되는 거죠. 이런 시도들이 자극이 돼 창의성이 좀 확장이 되는 면이 있어요. 회사 안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이죠.

‘레이시티’를 만들 때도 좀 벽에 부딪히면 내부에서 ‘야 꼭 서울일 필요있냐. 딴 게임처럼 트랙 정해서 달리고, 뭐 그냥 그렇게 만들자’ 이런 말도 나왔거든요. 그런데도 초기 컨셉이 유지됐던 것은 ‘내 프로젝트다’란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 프로젝트. 수많은 개발자들이 꿈을 꾸지만 대부분 꿈으로만 끝나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이들은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었다. 박 이사는 “그때는 좀 힘들었지만 그 단계가 지나니 뭐든지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얻은 진짜 수확은 바로 그 자신감이리라.

레이시티는 작은 시작일 뿐, 더 큰 완성을 위해

G: 회사 안에 있을 때와 회사를 이끌어갈 때, 어느 때 스트레스를 더 받으세요?  

방: 양적인 측면보다 스트레스의 양상이 다르죠. 양으로 따지면 예전보다 훨씬 많이 스트레 스를 받을지 모르나 다 감수할 수 있거든요. 재미도 있고,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보람도 크고.

최: 저는 지금이 좀 덜한 것 같아요. 딱 한가지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올인’ 한다는 측면에서 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죠.

G: 모든 개발자들이 자기 프로젝트를 선망하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경험자로서 볼 때 창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최: 저 같은 경우에는 믿을 만한 사람 두 명이 같이 있다는 게 편안함을 줬어요. 경민이 형이 전체적으로 잘 총괄하고, 종흠이 형이 뒤에서 받쳐주니까 든든했죠.

두 사람 중 한명만 없었어도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G: 아마추어들이나 프로들이나 사람이 하는 일은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 한 것 같습니다.

박: 맞아요. 저희도 사실 친하긴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또 하나의 회사를 꾸려가는데 대화가 안되면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저희는 그래서 창업하기 전에 계약서에 지장 찍었어요.

 

▲ 박종흠 이사

‘우리 중 한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 라고 생각되면 나머지 둘이 그 사람에게 경고를 주죠. 경고 3번이면 퇴출입니다. (웃음) 이건 잘해야지 하는 부담을 주는 동시에 서로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였거든요.

방: 그걸 기억하고 있네(웃음). 친한 사람들끼리지만 일 적인 면에서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일종의 ‘의식’이였죠. 사실 창업 하면서 동업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주변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실력도 있고 서로 관계도 좋은데 일 적인 부분에서 양보를 안 하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 중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중간에 이도저도 아니게 되죠.

그래서 법인 설립 전에 최악의 경우도 생각했죠. ‘우리가 대판 싸웠다’ 그럴 경우 사무실집기를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지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정했어요.     

박: 무작정 시작하거나, 냉정해지지 않으면 중간에 해이해지기 쉬워요. 당연히 불만이 쌓이죠.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레이시티’에 서울시내 전체를 구현하고, 중국 대륙으로 게임의 맵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내를 상대유저와 경쟁하며 질주하는 모드 등 그동안 머릿속으로 생각만해 왔던 것들을 하나씩 구현할 예정이다.       

초반부 건물 하나 구현하는데 하루가 걸렸던 작년에 비해 J2M의 3인방은 확실히 더 ‘좋은 개발자’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이들이 ‘넥슨’이란 안정적인 둥지에만 머물렀다면, 아마도 ‘레이시티’ 란 독특한 컨셉의 게임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껍질을 깨는 아픔을 겪으며 세상과 직접 부딪히는 젊은 개발자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 게임계의 큰 희망이 아닐까 ?                 

▲ 투자사가 가져다준 축화화환을 들고 웃는 J2M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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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레이싱
제작사
EA코리아
출시일
게임소개
'레이시티'는 다양한 지역을 배경으로 레이싱을 즐기는 게임이다. 서울 시내의 도로는 물론 주변 건물의 간판까지 구현하여 실제 서울을 달리...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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