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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판 블리즈컨은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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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가 블리자드 마이크모하임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블리즈컨을 한국에서 하실 계획은 없습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내 개발사는 왜 게이머를 위한 자체 게임쇼를 진행하지 않을까? 매년 실적발표에서 사상최고 매출을 돌파하고 팡파레를 터트리면서 정작 돈을 벌어다 주는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그만한 잔치를 벌이지 않는 것일까? 합당한 의문이다. 하지만, 이내 이해하고 말았다. 국내 게임쇼를 보기 위해 17만 원짜리 입장권을 구매하는 게이머들이 몇이나 있을까? 돈이 쌓이고 넘친다고 하더라도 국내 개발사에 그만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가 몇이나 될까? 게이머가 아닌 개발사와 회사도 마찬가지다. 현장을 찾을 2만 여명의 관중 앞에서 ‘for the horde’를 외치며 얼라이언스 게이머들의 야유를 받아냈던 크리스멧젠과 같은 배짱을 가진 개발자가 국내에 몇이나 될까? 없다. 국내 개발자들은 그만한 힘도 권력도 용기도 없다. 그럴 의지가 있더라도 회사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팬들 앞에서 오프닝세레모니를 진행하고 있는 마이크모하임 대표

현재 정체기에 들어섰지만 국내 게임업계는 매년 기록할만한 성장률을 보여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추산 2010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약 8조원 시장으로 2011년에는 9조 6천억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은 이미 2003년부터 영화와 음악 시장을 합쳐도 2배 이상 차이가 날만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뚜렷한 성장폭을 기록한 산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업계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와준 팬들을 위한 행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록을 뒤져보면 그라비티가 ‘라그나로크 페스티벌’에서 이름을 바꾼 ‘그라비티 페스티벌’로 06년과 07년에 팬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08년에 그라비티가 겅호온라인에 인수되면서 RWC(Ragnarok World Championship)로 행사로 바뀌어 이제 국내가 아닌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열리고 있는 형편이다. 넥슨도 07년부터 ‘던파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지만 넥슨에서 진행하는 게임쇼라고 하기 보다는 단일 IP의 팬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일 뿐이다.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개발중인 게임도 일정 수준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

이처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이름값을 떨치고 있는 개발사들이 자체 게임쇼에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 일단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돈의 논리’다. 사실 자체 게임쇼라는 것은 상업적인 논리로 해석하자면 한마디로 ‘남는 게 없는 장사’다. 블리자드 마이크모하임 대표는 블리즈컨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블리즈컨과 같은 규모의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자원과 노력이 소모되며 개발자들도 잠시 본업에서 손을 놔야 하기 때문에 블리자드도 일년에 1번 밖에 열 수 없다.”고 말했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각종 부대시설을 준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날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깜짝 소식도 준비해야 하고, 시연을 위한 게임의 완성도도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가 되었을 때 뭔가를 공개하는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신작 출시 보다 까다로운 일인 셈이다. 요컨대 앉아서 돈 까먹는 행사가 바로 ‘블리즈컨’이다.

두 번째는 충성도 높은 고객의 확보 부재다. 동시접속자 수는 그대로인데 매출이 증가하는 회사에서는 뜨끔한 말일 것이다. 일시적인 매출효과를 기대하기 위해 각종 이벤트로 수익은 올리지만 팬들의 충성심은 그만큼 떨어지는 법이다. 또, 매출 증진을 위해 퍼블리싱 사업을 펼치면서 자체 개발 IP가 부족한 것도 하나다. 특히 이렇게 사들여온 게임들은 대부분 초반 강력한 마케팅과 함께 유저를 끌이다가 분위기가 시들하면 서비스를 종료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저 충성도를 깎아먹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단일 게임쇼 개최는 단순히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괜히 돈 퍼부어 게임쇼를 열었는데 팬들이 아니라 돈 뜯긴 강성유저들이 쇠파이프라도 들고 오면 어쩌나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비정상적인 매출이 낳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게임쇼는 홍보보다 팬들에 대한 보답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 번째는 프렌차이즈 IP의 부족이다. 두 번째와 맥락은 같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까지 매니아와 대중을 아우르는 강력한 IP를 보유하고 있다. 팬들 역시 현재 블리자드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은 물론 잠재적 팬 층까지 전세계 각지에 깔려있다. 17만 원짜리 블리즈컨 입장권이 e-bay에 30만원~ 50만원에 매물로 올라오더라도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돈이 남아서가 아니라 블리즈컨에서 어떤 소식이 나오든 역사적 현장에 몸을 담고 싶다는 팬들의 갈망 때문이다. 국내도 이런 프렌차이즈 IP를 가지고 있는 개발사가 있고, 웹젠, 소프트맥스, YNK, 그라비티, 게임하이 등이 특정 IP에 대한 게임 페스티벌을 주최한 이력이 있지만 역시나 단기 이벤트였을 뿐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게임쇼는 없다. 이유야 개발사 마다 다르겠지만, 들인 공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렇듯 성과위주의 기업 분위기 때문에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은 그저 되도록 돈은 덜 들이고 수익만 얻으려는 ‘캐시카우’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패키지로 판매되었던 디아블로2는 현재 10년째 배틀넷이 열려있다. 패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으며 팬사이트를 대상으로 커뮤니티는 아직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블리자드가 단지 수익만 좇아 게임을 개발했다면 벌써 서버를 내려야 했을 것이다. 충성유저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윤 추구를 1순위로 하는 기업에게 팬들을 위한 게임쇼를 강요하는 것은 기자의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전세계 어디도 블리자드 만큼 단일 게임쇼를 이렇게 알차게 준비하는 개발사는 없다. 굳이 스케일을 따지고 든다면 게임이 아니라 어떤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블리즈컨’ 규모로 매년 행사를 진행하는 곳은 없다. 때문에 ‘한국판 블리즈컨은 왜 없을까?’라는 질문은 흡사 이슈만 터지면 “한국의 XX은 왜 안 나오는가?”라고 부르짖는 그분의 말씀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럽다. 단지 이만한 규모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블리자드 스케일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17만 원짜리 입장권이 불과 30초 만에 다 팔려나갈 정도의 팬들의 충성심과 이런 팬들의 기대를 매년 충족시켜주는 블리자드의 팬사랑이 부러운 것이다. 만약 국내에서도 블리자드급 규모의 회사가 나온다면 블리즈컨과 같은 스케일의 게임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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