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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인에 게임의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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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대한민국 게임포럼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주식회사 북팔 최재원 이사,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김윤명 박사, 법무법인 정명 이헌욱 변호사,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김규철 위원장, 게임물관리위원회 여명석 위원장, 한국게임학괴 이재웅 학회장,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소 김형렬 박사,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정정원 박사,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전성민 교수, 한국소비자원 송민수 박사,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윤지웅 교수

한국게임학회는 28일(화), 숭실대학교 베어드홀에서 제5회 대한민국 게임포럼을 열고 ‘대한민국 성인에 게임의 자유를 허하라’는 주제로 발제 및 토의를 진행했다. 성인의 게임 이용 제약에 대한 문화적 분석은 더 미디엄 유원준 대표, 제도적 분석은 한양대 법학연구소 정정원 박사, 산업적 분석은 가천대 경영학과 전성민 교수가 발표했다.

게임의 자유를 허하라니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꼭 완력으로 강제해야만 ‘불허’인 것이 아니다. 성인 게이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가시 돋은 선입견이야말로, 사실상 성인들의 ‘즐길 자유’ 억압하는 최악의 규제라고 발제자들은 입모아 말했다.

유원준 대표는 “한국에서 성인 게이머로 산다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리고, 심하면 ‘패배자’의 멍에까지 뒤집어써야 한다는 뜻”이라며, 설령 업무를 모두 마치고 여가시간을 이용해 게임을 즐기더라도, 얼마 안가 부모나 배우자의 편견 어린 쓴소리가 날아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인의 놀이에 관대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게임은 유독 다른 취미에 비해 혐오 받는 점을 지적했다.


▲ '한심한 40대'라는 예제로 성인 게이머의 고충을 절절하게 묘사한 더 미디엄 유원준 대표 

언제부터 게임의 입지가 이 지경이 됐을까?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김규철 위원장은 “국내 게임업계 호황기였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은 혜성처럼 등장한 신규 산업으로 각광받았다”라며 “IT, 디지털 같은 표현이 ‘쿨’하게 여겨지고 PC방과 프로게이머 등 새로운 사업과 직업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2005년 하나의 사건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부 게임업소가 일본 ‘파칭코’를 모방한 사행성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서비스한 것이다. 정정원 박사는 “이른바 ‘바다이야기’라 불린 사행성 콘텐츠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져, 차츰 외연을 넓혀가던 게임산업에 먹칠을 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뇌리에 ‘게임=도박’ 공식을 새겼으며, 정부 정책이 진흥에서 규제로 돌아서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 2005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급속히 냉각됐다

정 박사는 대한민국 성인에 게임의 자유가 박탈된 것도 이 즈음부터라 보았다. 게임업계가 근 10년간 ‘바다이야기’의 망령을 피하느라 분주한 사이 성인 게이머들은 온갖 편견에 시달렸으며, 성인이 콘솔 게임패드를 잡는 것은 도박판에서 화투패를 쥔 것과 진배없는 취급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게임문화는 꿈같은 얘기가 됐을 터이다.

유원준 대표는 “게임에 대한 뿌리깊은 부정적 인식은 10년이 지나도록 그다지 나아지질 않았다”며 “언론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흉악범죄에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했고, 내제된 예술성과 체험 매체로서 가치를 배제하고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평가절하했다”고도 했다. 이에 따르면 그나마 청소년과 게임을 둘러싼 문제는 여러 차례 논의가 되었지만, 성인 게이머의 권익은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법무법인 정명 이현욱 변호사는 “성인이 게임을 하는 것은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의 연장이다. 물론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가책임의 원칙도 전제된다. 따라서 결제한도 등으로 성인의 게임이용 방식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와 충돌한다”라며 성인 게이머의 권익 문제를 거론했다. 일상적 소비 영역에서 소비자에게 월별 소비한도를 제한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를 ‘바다이야기’가 남긴 막연한 불안감의 발로라 설명했다.


▲ 성인은 자가책임의 원칙 하에 주체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임을 주장한 이현욱 변호사

정정원 박사 또한 “포커, 고스톱, 장기와 같은 웹보드게임을 겨냥한 ‘사행성 게임물’이라는 개념도 납득하기 힘들다”다고 지적했다. 국내 법률은 ‘사행행위’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물을 모아 우연적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하여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게임물’은 ‘정보처리 기술이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또는 기기 및 장치’일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포커’를 통한 사행행위와 ‘포커’ 웹보드게임은 같은 진행방식을 차용했을 뿐 전혀 다른 콘텐츠다. 전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고 환전이 가능’하나, 후자는 ‘오락 등을 목적으로 하며 환전이 불가능’하다. 즉 사행행위면 사행행위고 게임물이면 게임물이지 ‘사행성 게임물’이란 표현 자체가 불법과 합법이 혼재된 불합리한 멍에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정원 박사의 요지이다.


▲ '포커'를 통한 사행행위? 단순한 게임? 웹보드게임에 대한 애매모호한 규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렇다면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악재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유원준 대표는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불합리한 규제는 성인 게이머 개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범위를 벗어난다. 오랫동안 공고히 쌓인 게임에 대한 몰이해를 단시간에 해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제도적 문제를 쉬이 손댈 수도 없다”라며 정부 주도하에 게임법 전면 개정과 인식 개선 캠페인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행성 게임물’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규제를 받는 웹보드게임 관련 조항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필요하며, 청소년 문제를 나머지 게이머와 분리하여 성인들이 주체적으로 게임을 소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발제자 공통의 결론이다. 무엇보다 게이머의 과소비를 강제로 규제하기 보단 소비자가 시장의 주권자로서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한 역량을 육성시키는 온건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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