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리뷰 > 리뷰 >

가뭄의 콩처럼 그렇게 다가온 게임(나르실리온)

/ 4
더 이상 비운의 개발사로 남을 순 없다
와레즈와 불법복제의 만연으로 불운의 운명을 맞아야 했던 가람과 바람. 그들이 그리곤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앉아 야심찬 각오로 개발에 착수했던 나르실리온이 드디어 따뜻한 양지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명 가바팀으로 통하던 이 비운의 개발사는 8용신전설, 레이디안, 씰까지 완성도 높은 게임의 제작에도 불구하고 불법복제와 번들 사태에 휘말려 많은 게이머와 관계자들에게 자성의 기회를 마련한 바 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들이 오랜 기간 기획해온 레이디안 사이드스토리, 나르실리온은 새로운 기회를 맞아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고 팬들의 독려 끝에 햇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패키지 게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회심의 출항을 알린 나르실리온. 게임이라는 본연의 재미를 100% 추구한 가바팀의 노력이 나르실리온을 통해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기본기에 충실한 게임 ‘나르실리온’
나르실리온은 99년도에 출시되었던 레이디안의 20년 전 이야기를 배경으로 주인공이었던 ‘엘렌’의 부모인 레이나와 엘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마도사 양성교육에 의해 전투병기로 키워진 ‘레이나’에게 용병단의 병사 ‘엘’이 따뜻한 인간의 감성을 불어넣어가는 과정이 시나리오 전체를 꿰뚫고 있는 배경 이야기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뒤쪽으로 접어두고 나르실리온의 스토리는 아군의 힘을 모아 절대악을 물리치는 일본형 RPG의 전형적인 구도를 따르고 있다. 뻔한 결말과 예정된 스토리 라인을 이어나가는 평이한 RPG이지만 게임이라는 본연의 자세(?)에 입각하여 충실한 기본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매력을 찾아볼 수 있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테미시온과 할리카르낫소스의 분쟁에서 사랑을 꽃피워나가는 과정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 하고 마도사 양성교육에 의해 전투병기로 어린 소녀가 제조되는 이야기는 마치 에반게리온의 ‘레이 양성계획’을 연상시키는 등 이곳저곳의 재미난 이야기를 짜깁기해놓은 듯한 배경일색이지만 어쨌든 게이머는 스토리 자체에 심취되기 보다는 게임 곳곳에 산재한 다양한 즐길거리를 찾아 모니터 앞에서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된다.


흔히 국내에서 출시되는 RPG라 함은 가슴을 저리게 하는 사랑이야기와 게이머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의 거듭이 일종의 관례(?)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 물론 제작사에서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나르실리온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습관을 버리고 게이머에게 다양한 서브 이벤트와 액션감 넘치는 전투, 아기자기한 아이템과 룬조합을 이용한 마법생성 등 스토리 외적인 면에서 큰 재미를 찾을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때리는 맛이 일품일세~!

우선 레이디안이나 씰에서 도입한 바 있는 실시간 액션 방식의 전투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전의 게임에서도 그랬듯이 액션감 넘치는 전투의 재미만큼은 이번 작품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효과음이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공격과 함께 뒤로 쭉쭉 밀려나는 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는 통쾌함이 느껴진다. 비록 일반공격과 마법공격 두 가지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패턴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레벨 노가다에 빠져들게 되는 게임을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의 시원한 액션이 떠오르는 전투. 나르실리온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을만한 부분이다.


게이머가 직접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동료는 A.I를 직접 설정하여 전투를 벌이게끔 되어 있다. 공격, 마법/기술 사용, 아이템 사용 빈도를 상, 중, 하로 나눠 설정하는 A.I는 캐릭터의 직업별로 특성을 고려하여 잘 선택해야 한다. 게이머가 직접 조정하는 캐릭터 역시 키보드의 숫자 단축키를 이용하여 곧바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거나 특수기술의 사용이 필요한 동료를 제어하기도 손쉬운 편이다.


단점이라면 쉴 새 없이 리스폰 되는 몬스터 때문에 자칫 초반부터 전투를 기피하다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르실리온의 전투는 결코 강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처럼 액션이 가미된 전투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게이머라면 레벨업이 부족한 캐릭터 탓에 첫 번째 보스전에서부터 엄청난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난이도는 제작사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높은 편이 아니여서 물 흐르듯 순서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무난히 엔딩을 볼 수 있지만 한 대 치고 돌아서면 등장하는 몬스터가 중․후반부터는 점점 게이머의 짜증을 유발하는 단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소 불편한 조작감

나르실리온의 조작은 100% 키보드 혹은 조이패드에 의해 이루어진다. 필드에서 곧바로 전투로 이어지는 게임진행 방식 탓인지 일반공격 및 아이템, 특수기술의 사용 또한 게이머가 직접 단축키를 지정하게 되는데 로딩이나 특정 이벤트가 지난 뒤 또 다시 처음부터 단축키를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 필자에겐 상당히 불편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고 이용방법 또한 간단한 편이지만 급박한 전투상황에 캐릭터별로 새로운 단축키를 설정하고 아이템이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이머의 편의를 고려하기 위해 조작키를 키보드 왼쪽 부분으로 몰아넣고 설정된 단축키를 표시해주는 등 여러 부분에서 제작사가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하나 기본 아이템의 사용버튼(포션, 정션 등)을 따로 제작해두는 편이 좋았을 법 하다.



누차 강조되었던 카툰 랜더링. 이것은?

필자는 나르실리온이 제작 전부터 수차례 언급했던 카툰 랜더링 그래픽이라는 점에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카툰 랜더링이란 색감이 다소 떨어지고 기계적으로 보이는 3D에 말 그대로 만화와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으로서 이미 많은 종류의 만화영화나 게임 등에 접목된 바 있다.


최종적으로 살펴본 나르실리온의 그래픽은 2D. 물론 이전부터 2D 그래픽을 이용한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기대의 카툰 랜더링은 단순히 3D 랜더링 그래픽을 2D 스프라이트로 변환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배경과의 이질감 없이 동화풍의 색채를 잘 살려냈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사양자체도 상당히 낮은 편(펜티엄2 400)이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평균적으로 이용하는 PC에서도 빠른 게임속도가 보장된다는 점 역시 대표할만한 특징.


몬스터가 급격하게 늘어나거나 화려한 비기를 사용할 때 간혹 느려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르실리온의 게임진행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게임의 진행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게임의 흐름을 끊는 최대한 적 ‘로딩’이 필드를 이동할 때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나르실리온의 세계는 약 6개의 마을과 15여개가 넘는 던전, 그리고 이들 사이를 연결하는 필드까지 꽤 넓은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이머는 이 세계를 수없이 넘나들며 시나리오를 풀어나가고 또 마을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아 서브 이벤트를 해결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시나리오 진행에는 절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서브 이벤트 해결을 위해 언제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으며 이를 해결함으로서 기존의 진행방식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정 아이템이나 기술 등을 익히게 된다. 이는 가장 큰 특징으로 부각되는 액션 전투방식과 함께 나르실리온의 재미를 한층 더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정확한 숫자가 파악된 바는 없으나 나르실리온에는 20~3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서브 이벤트가 존재하고 있으며 메인화면에 ‘서브 이벤트 달성률 35%’라는 식으로 무언가 찝찝한 느낌을 남겨줌으로서 게이머들의 도전정신(?)을 자극, 결과적으로 게임의 플레이 타임이 늘어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씰에서 도입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던 다이어리 시스템을 계승, 이 책자에 모든 이야기가 기록되어 간단하게 지나간 대화를 찾아볼 수 있는 옵션으로 제공되고 있다.


비록 분기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방통행형 RPG이지만 서브 이벤트를 비롯하여 낚시로 아이템 낚기, 삽질(?)로 아이템 파내기 등 아기자기한 재미를 듬뿍 삽입함으로서 게임의 생명력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총 평
오랜만에 거품 없는 충실한 게임을 만나본 느낌이다. 물론 그래픽이나 시나리오, 음악 등의 요소가 게임의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게임 본연의 역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르실리온은 이처럼 그래픽이나 사운드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에 있어 최근 출시되는 다른 게임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게이머를 빨아들이는 매력은 결코 이와 같은 부가요소가 아닌 ‘게임성’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나르실리온은 이와 같은 게임의 기본수칙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게임. 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가람과 바람’이라는 옛 적 이름처럼 빛을 발하길 기원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플랫폼
PC
장르
롤플레잉
제작사
게임소개
나르실리온의 모습은 이전 레이디안이나 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도 한결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비해 다소 무거운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담고 있는 나르실리온은 게임완성도면에서 수... 자세히
게임잡지
2000년 12월호
2000년 11월호
2000년 10월호
2000년 9월호 부록
2000년 9월호
게임일정
202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