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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2, 지능을 +10 해주는 퍼즐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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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퍼즐 투성이 액션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던 와중에 엉뚱하고 조잡한 퍼즐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흐름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상당히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돌을 옮기고 스위치를 내리고, 왔던 길을 다시 왕복하고 버튼을 밟고… 대체 게임에 이런 머리 아픈 퍼즐을 왜 넣어 놓은 것일까? 의문은 곧 짜증으로 바뀌고, 결국 게임을 접어버리기 일쑤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포탈’ 만은 상당히 즐겁게 플레이했다. 영화 ‘큐브’ 를 연상시키는 흰색 투성이의 인공적이고 이질적인 공간에 갇혀 테스트 대상이 된다는 배경 설정도 꽤나 좋고, 멀리 떨어진 두 곳의 벽에 포탈 게이트를 쏘면 공간이 이어진다는 독특한 시스템도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 포탈 게이트를 마음대로(열 수 있는 벽면이 따로 있긴 하지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일반적으로 갈 수 없는 다양한 장소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기분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비행 슈팅 게임에서도, 순간이동을 일삼는 ‘드래곤 볼’ 같은 게임에서도 느끼지 못 하는 쾌감을 제공해준다. 괜히 ‘올해의 게임’ 상을 수십 개씩 수상한 것이 아니다.

그런 ‘포탈’ 의 뒷이야기를 다룬 ‘포탈 2’ 가 지난 19일 드디어 발매되었다. 대놓고 속편을 암시한 전편의 엔딩으로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애피쳐 사이언스 시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또 다른 공간퍼즐 FPS, ‘포탈 2’ 를 만나보았다.


▲ '포탈 2' 의 플레이를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TV 광고 영상

전작에서 더욱 진화된 공간퍼즐 FPS

‘포탈 2’ 의 배경은 낡고 부서진 애퍼처 사이언스 건물이다. 인공동면에서 깨어나 보니 깨끗하던 방 안은 어느 새 낡아 부서져 있고, 이어 전편에 등장했던 추억의 장소(튜토리얼 맵)를 ‘포탈 2’ 만의 폐건물틱한 느낌으로 다시 만나보며 추억과 적응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보스 역할을 하는 메인 컴퓨터 ‘글라도스’ 와 귀여운 비명만 질러대던 터렛들 외에 다른 캐릭터를 만나볼 수 없었던 전작에 비해 ‘포탈 2’ 에는 각양각색의 개성을 갖춘 신 캐릭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플레이어를 도와주기도, 위기로 몰아가기도 하며 다양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게임적인 부분 외에 재미있는 스토리적 재미가 추가된 덕분에 ‘포탈 2’ 의 엔딩을 보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한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 이렇게 깔끔하고 아늑한 방이...


▲ 짜잔~ 누구라도 뛰쳐나오고 싶어질 만큼 끔찍하게 변했네요


▲ 아아.. 내 추억의 스테이지 1이....

물론 이런 점들을 제외한 게임 본질적인 면으로 파고들더라도, ‘포탈 2’ 는 플레이어를 실망시켜주지 않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의 백미는 퍼즐 추리 과정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고 통쾌한 해결을 도와주는 퍼즐 요소들의 추가다. 전작에서는 2개의 다른 장소를 한 곳으로 연결해주는 포탈 건을 비롯하여 전력을 공급하거나 물체를 파괴하는 레이저 광선, 레이저 볼, 빛으로 만든 직선형 다리 등의 퍼즐 요소가 등장했다. 여기에 ‘포탈 2’ 에는 각종 젤 페인트와 빛의 파이프라인, 통통 점프대 등이 추가되었다.

파란색과 주황색의 젤 페인트는 각각 높은 점프와 광속 미끄러짐을 가능하게 해 주며, 통통 점프대는 밟음과 동시에 매우 빠른 속도로 플레이어를 저 멀리로 날려준다. 전작을 해 본 유저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높은 점프와 빠른 속도 등이 포탈 게이트와 결합되면 수 백 미터를 날아다니는 스펙타클한 액션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얀색의 젤 페인트는 일반적으로 포탈 게이트를 열 수 없는 벽면에 발라 포탈을 열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빛의 파이프라인은 일정 파이프라인을 따라 흐르는 기류를 만들어 그 안에서 유유히 흘러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전작보다 포탈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벽면이 적고 떨어지면 게임 오버가 되는 추락 지점이 많은 ‘포탈 2’ 의 각종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추가 요소들은 기존의 퍼즐 요소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포탈 2’ 의 스테이지 스케일은 전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크다. 단순히 문을 열고 출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 백 미터를 뛰어넘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출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 전작에 등장했던 퍼즐 요소들을 포함하여...


▲ 통통 개구리 점프대와


▲ 울렁울렁 빛에너지 파이프, 그리고


▲ 퉁퉁 점프 젤(파랑), 광속 미끌 젤(주황), 아무데나 포탈 젤(하양)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추가 요소와 스케일 업(공간만이 아닌 스테이지 수까지 포함해서) 덕분에 ‘포탈 2’ 퍼즐 공략 경우의 수는 꽤나 늘어났다. 더불어 퍼즐 자체의 전체적인 난이도도 약간 상승했다. 얼핏 보면 ‘이거 복잡해서 게임 하겠어?’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특히 전작을 꽤나 고생하며 클리어 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포탈 2’ 를 직접 플레이 해 보면 오히려 전작보다 수월하게 스테이지를 진행할 수 있다.

이유는 놀라우리만치 향상된 직관성에 있다. ‘포탈 2’ 의 스테이지들은 매우 디테일하면서도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어 헤매게 되는 부분이 매우 적다. 예를 들면 출구가 저 멀리 보이는데 그 것을 해결할 요소들이 이상한 곳에 숨겨져 있거나, 혹은 길이 배배 꼬아져 있어 맵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짜증나는 순간’ 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테이지가 출구로 다가가기 위한 요소들을 꽤나 친절하게 제시해주며, 그것들을 이리저리 활용해 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어느 새 저절로 감이 오게 된다. 다양한 스테이지를 해결해가며 ‘와!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내가 이걸 풀었어!’. 세상에 여길 날아오다니’ 등의 쾌감에 익숙해지다 보면 결국 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 애피쳐 사이언스가 얼마나 거대하고 독특한 시설인지 확인하는 재미는 덤이다.


▲ 스케일 하나는 정말 크다!


▲ 그래도 풀 수 있는 도구는 죄다 가져다 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 수 있다

한마디로 ‘포탈 2’ 는 상식의 허를 찌른 어려운 퍼즐을 가져다 놓고 유저로 하여금 ‘자, 풀어봐라!’ 라며 도전하게끔 하는 게임이 아닌, 주어진 조건을 이리 저리 조합해보며 퍼즐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스타일의 친절한 게임이다.

밸브 특유의 시니컬한 센스도 업그레이드

‘포탈 2’ 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빅재미는 게임 곳곳에 숨어있는 밸브 특유의 센스다. ‘하프 라이프’ 에 나오는 기업 블랙메사를 맹비난하는 애퍼처 사이언스 대표라던가, 실용주의적 기업의 현실을 백분 반영한 게임 내 대사들이나 중간중간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행동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전작에서도 꾸준히 등장했던 ‘글라도스’ 의 비꼬는 말투는 ‘포탈 2’ 에서 극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전작부터 ‘포탈 2’ 엔딩에 이르기까지 대사 하나, 비명 한 번 없는 주인공을 비꼬는 ‘글라도스’ 의 명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 결론은_쓰레기.jpeg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거라고


▲ 블루스크린 으鸚빱빱

전작에서 약간 부족했던 세계관 설명과 캐릭터성의 완성도 눈여겨볼 만 하다. ‘포탈’ 시리즈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터렛들도 잔뜩 나오고, 대사도 한층 다양해져 괜히 예뻐 보인다. 뒤에 언급할 협동플레이 용 로봇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인데다 업적 달성과 캐쉬질(;;)을 통해 각종 스킨이나 모션, 액세서리 등을 장착할 수도 있다. 죽이 척척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하면서 티격태격 대는 귀여운 로봇들은 ‘포탈’ 시리즈를 대표하는 또 다른 마스코트로 확실히 자리잡은 듯 하다. 특히, 게임 중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사들을 통해 애퍼처 사이언스의 각종 프로젝트와 쇠퇴 과정 등 ‘포탈’ 의 세계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전작에서 풀리지 않고 어물쩡 넘어간 각종 의문들이 속 시원히 해결된다. 실로 ‘포탈’ 세계관의 완성이라 부를 만 하다.


▲ 터렛도 자기 개성이 뚜렷하다


▲ 아이고 귀여운 터렛들이 잔뜩~ ♡


▲ 협동 모드 로봇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캐쉬질로 꾸밀 수도 있고...

친구가 없어 불행한 협동 플레이

‘포탈 2’ 의 하이라이트는 2명이 힘을 합쳐 퍼즐을 풀어나가는 협동 플레이 모드이다. 협동 플레이는 전작에 없던 새로운 모드로, 주인공이 아닌 글라도스의 테스트용 로봇 ‘Atlas’ 와 ‘P-Body’ 의 이야기를 다룬다.

협동 모드에서는 말 그대로 두 명의 플레이어가 있어야만 풀어갈 수 있는 새로운 퍼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날아가다가 중간 부분에서 부딪혀 가운데에 착지하는 등이다. 당연히 싱글 플레이보다 약간 더 복잡하기 때문에 친구와 함께 각종 상황을 의논해 가며 퍼즐을 해결해야 하며, 그만큼 퍼즐을 해결할 때의 액션과 쾌감도 더 크다. 거기에 협동 모드 나름대로의 스토리도 있기 때문에 싱글 플레이만으로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 하다.


▲ 협동 모드의 두 주인공 로봇들


▲ 가만 보면 쿵짝이 잘 맞는 듯도 한데...


▲ 이럴 때 보면 그냥 코믹한 콤비 같기도 하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라면 파트너의 실력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혹은 통신이 가능한 친구가 ‘포탈 2’ 를 한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랜덤으로 정해진 상대방과 함께 게임을 즐겨야 한다. ‘포탈 2’ 에서는 제스쳐와 타겟 지정, 그리고 약간의 채팅만으로 상대방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그것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반대로 내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다. 직접 겪어 보면 알겠지만 전자의 경우 답답해서, 후자의 경우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비슷한 수준의 유저가 아니라면 아무리 의사 소통을 해 가며 진행하더라도 게임이 답답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둘 중 하나가 게임을 나가게 된다. 밸브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는지 협동 모드 시작 시 ‘이 게임 모드는 친구와 함께 플레이하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랜덤 온라인 파트너와 플레이 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로 경고 비슷한 메시지를 남겨 주지만, 친구가 없는 필자는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게임이 이리도 사람을 슬프게 하다니! 뭐, 그래도 몇 번의 실패를 거치다 보면 수준에 맞는 상대방을 찾게 될 테고 협동 모드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것보다 먼저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빌어먹을 밸브XX야


▲ 맞아, 믿지 않았을거야


▲ 제발 저기로 좀 들어가라고! 좀!


▲ 이자식이 정말 말 안들을래?


▲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클리어...

‘포탈 2’ 는 멋진 아이디어와 훌륭한 센스의 환상적인 결합이자 퍼즐에 대한 퀘퀘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최고의 퍼즐 게임이다. 두뇌 유희와 액션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은데, 그것을 해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혹시 퍼즐이나 머리 쓰는 게임을 싫어하더라도, ‘포탈’ 시리즈는 예외로 두는 것이 게임인생의 빅재미를 놓치지 않는 길임을 말해두고 싶다.


▲ 악연으로 만난 이 둘의 관계는 계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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