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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혈액형은 무엇이냐! 게임으로 보는 피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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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독일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크레취머라는 이름의 17세 소년이 15명을 살해한 이 사건에 전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어째서 그가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을 벌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소년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파 크라이2’라는 FPS 게임을 즐겼음이 알려졌다. 이로인해 다시 게임의 폭력성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게임이 문제였는지 의구심이 든다.

주된 문제가 되는 것은 게임 속에서 붉게 튀는 피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번 기획에서는 심의에 걸려 뜻하지 않게 변신해야만 했던 피의 수난에 대해서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피가 많아서 고생도 심했다 ‘다크에덴’

먼저, 피라고 하면 할 말 많은 ‘다크에덴’을 보자. ‘다크에덴’은 뱀파이어, 슬레이어, 아우스터즈의 3종족이 싸우는 MMORPG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음침하면서도 잔혹하기 때문에 당연히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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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8세인가라는 질문이 필요없다

‘소프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용가를 낮추고 싶었고, 피가 난무하는 게임속 배경을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가 흡혈 스킬을 썼을 때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와 좀비를 죽이고 루팅을 하면 피로 가득한 좀비 머리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15세 서버를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만큼은 피가 녹색으로 나오게끔 했으며, 좀비를 죽이고 루팅을 하면 머리 대신 보석이 떨어지게끔 수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호응을 얻었는지  또 이렇게 플레이하는 유저가 얼마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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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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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 어디갔어!!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역시 피를 녹색으로 바꾸고 튀지 않게끔 조정했지만, 게이머들의 반응은 싸늘했기 때문이다. 녹색 피를 볼때마다 구역질이 난다고 투덜거리는 게이머도 있을 정도였으니, ‘다크에덴’이라고 반응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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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붉은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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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아니라 바퀴벌레냐?

또, ‘다크에덴’만의 독특한 매력은 피의 이미지다. 슬레이어와 아우스터즈도 있지만, 게임 전체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뱀파이어’의 분위기인 것이다.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의 배경도 검은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한 뱀파이어 분위기를 내며, 런처에서 나오는 캐릭터도 뱀파이어 종족이다.

이것이 사라지면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즐길 이유가 사라진다. 피가 사라진 ‘다크에덴’은 앙금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정성들여 틴버전을 만들었다 해도, 실제 이 버전을 사용하는 유저가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된다.

피라면 나도 만만치 않아 ‘디아블로 2’

피 이야기가 빠지면 정말 섭섭한 게임 중 하나가 ‘디아블로’ 시리즈다. 타이틀에서부터 악마를 소재로 삼아 게이머가 이를 물리쳐서 세계를 구하는 게임인 ‘디아블로’는 피가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디아블로 2’의 경우 피와 시체가 강을 이루는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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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배경. 하다못해 카펫까지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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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간만 보이면 있는 시체

당연히, 이것이 심의에 걸렸고, 수정이 가해졌다. 틴버전에서 모든 몬스터들의 피는 검은색으로 나오게끔 조치한 것이다. 심의는 틴버전으로 통과가 되었지만 유저들에게까지 틴버전이 통과되진 않았다. 피 잘 흘리며 쓰러지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전부 오징어 먹물을 뿜어내는 모습은 우습지도 않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붉은색보다 검은색이 덜 자극적인 색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성은 녹색피보다 덜하다. 녹색피는 그래도 외계인을 통해 익숙해져 있지만, 검은색 피는 먹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색깔까지 게임 전반에 걸쳐 계속 보이는 검은색인지라 생기도 없어보이고 흥미도 반감됐다.

때문에, 틴버전을 구입한 게이머들이나 PC방에서 틴버전으로 플레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게이머들은 18세 이용가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주위 지인들에게 애원이나 협박을 하여 빌려 하거나, 어둠의 경로를 이용한 것이다.

결국, 붉은피가 나오는 ‘디아블로2’를 플레이할 수 있게 된 게이머들은 즐거워했으며, 틴버전은 그렇게 소외되어 점차 사라져갔다.

우유를 좋아하는 검사 ‘사무라이 스피리츠’

순교를 시키면 우유피를 흘리는 이차돈 사무라이들이 죽어라고 싸우는 대전격투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다. 원판인 일본 버전에서는 토막나며 흘러나오는 피는 붉은색이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버전에선 잔인성을 이유로 피 색을 하얀색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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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마루의 똥폼은 호두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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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클릭하면 우유가 나오지~

녹색,검은색에 이어 이젠 하얀피까지 나왔다. 물론 붉은색이 자극적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15세 등급을 받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사실 눈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다. 피가 문제시 되는 것은 그 색깔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이다. 토마토 주스를 마신 아이들 입가가 붉어진다 해서 문제시 하는 사람이 있는가.

더구나, 색이 다른 피는 도리어 상상력과 흥미를 자극해, ‘디아블로 2’의 경우처럼 자극적인 일본 원판을 플레이하기 위해 에뮬을 돌리거나 오락실을 일부러 찾아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뿐인가, 굳이 일본 원판을 찾아서 오락실에 온 학생들에 대한 단속도 미비했다.

즉, 피 색만 바꾸는 것은 게임의 등급을 낮추는 데에만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15세 등급가를 받았으니 게임을 깔아도 걸릴 위험이 없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폭력 게임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회사를 보호해주게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너희는 그래도 피라도 있지 나는 뭐냐 ‘던전 앤 파이터’

대전격투 온라인 게임인 ‘던전 앤 파이터’ 역시도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피가 그리 심하게 튀는 것이 아니라 애교로 볼 수도 있었지만,코피도 피는 피다보니  18세 등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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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코피수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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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이용가 등급에서는 아예 피가 삭제 되었다. 때문에, 검을 죽어라고 쑤셔 넣어도 피 한 방울 안 난다. 다만, 18세 등급이라 하더라도 피가 적은데다, 대전격투게임 중 피가 나오는 게임은 꽤 많으므로 피 삭제와 관련해서 별다른 파장은 없는 것 같다.

FPS였다면 피 삭제 패치로 인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피가 없는 ‘레프트4데드’나 ‘솔저 오브 포춘’ 시리즈를 상상해보라. 아마, 게임 속 수류탄 대신 현실 마우스가 벽으로 날아가 박살이 났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심의가 짜증나! 해외 게이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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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이나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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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 폭탄 (유저 제작 어린이 버전 카운터 스트라이크)

국내가 이런데 해외라고 다를리 없다. 해외 역시도 폭력 게임이라 하여 피 색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으며, 사건이 터지면 게임 탓부터 해보는 것도 비슷하다. 실제로,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의 총기난사 사건 일어났을 때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거의 범죄 양성 게임 마냥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세세한 조사 결과 실제로 조승희는 폭력 게임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현실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게임 중독까지 가더라도, 범죄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의 범인 조승희는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타입이었고, 독일 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크레취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학생이었던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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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의 정신 세계가 궁금하다

물론 ‘맨헌트’나 ‘포스탈’ 시리즈처럼 만든 사람의 정신 세계가 궁금할 지경이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조차도 정식 발매를 꺼려하는 게임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누구나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게임이며, 이는 애초부터 제작 자체를 제제시켜야 할 수준이지 발매시키고 나서 왈가왈부하는 건 흥행을 도와주는 것 밖에 안 된다.

중요한 건 피가 아닌 다른 부분에 있다

진정 해결책을 원한다면 피 이외의 것을 보아야 한다. 피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진짜 문제인 것은 사회와 그 사람 자신, 그리고 사람을 계속 죽이고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행위의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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