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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가상세계의 힘 얼마면 돼! 이제 돈으로 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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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란 말이 새해 덕담의 일부로 들어온 시대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돈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그야말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에 앞선다는 시류를 타고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돈으로 바뀐 지는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돈이라는 것을 전면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품위 떨어지고 격조 없는 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오히려 솔직하다고 칭찬받는 시대로 변했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상위 1% 부자들이 얼마나 비싼 요리를 먹고 어떤 외제차를 타는지, 어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는지, 거기에 가격까지 자세히 보도해주며 그들의 ‘엣지’있고 ‘럭셔리’한 삶을 매우 멋진 것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필자 같은 서민들이야 그럴 돈은 없고 애써 외면하긴 하지만 배 아플 뿐이다. 누구 말대로 조금 불행한 것 뿐이다. 하긴 무엇이든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게임도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게임 속 목표는 돈이 아니다. 게임의 목표는 즐거움의 추구인 것이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임 속에서 돈은 게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돈이 게임의 목표가 된 시대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게임 속에서 돈이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존재로 우리에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게임 하면서 현질 못하면 쪼끔 불행거에요?

과거로 돌아가보자. 여러분은 게임샵에서 게임을 사온다. 그 장소는 아마도 용산이었을 확률이 50% 이상이다. 주인아저씨와의 실랑이, 혹은 설득 내지는 강압적 분위기 안에서 꼬꼬마였던 여러분은 겨우겨우 원하는 게임을 말했을 것이다. 그랬더니 주인아저씨는 “역시 어린 애라 게임 볼 줄 모른다.”며 다른 게임을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어찌 속을 쏘냐.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게임을 골라서 흥정을 시도한다. 아저씨가 부르는 가격은 말도 안되고 모아온 돈은 적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 원하는 게임팩을 사서 용산 던전을 탈출하지만 차비와 밥값까지 몽땅 털렸기 때문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발걸음은 가볍고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오랜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도착해서는 재빨리 게임팩을 게임기에 꽂고 전원을 올린다. 흡사 RPG게임 주인공의 모험 같은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게임을 접했을 것이다.

▲ 얼마까지 알아봤니? 신공이 난무하는 용던으로 향하는 입구

게임 주인공의 모험도 순탄하지 않다. 초창기 저렙 주인공에게는 체력회복을 위한 아이템 하나사기도 모자란 돈이 있거나 그마저도 없다. 따라서 모험의 초기에는 근처 마을을 베이스캠프 삼고 사냥을 실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 마을 밖에서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벌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마을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패턴으로 진행하는데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무기점이나 방어구점에 가서 첫 장비를 마련한다. 그러면서 어느덧 레벨이 오르고 스토리도 진행하게 되지만 항상 상점에는 비싸서 사지 못하는 도구들이 즐비하다. 동료 캐릭터가 들어오면 좋기도 하지만 그 친구에게 착용시킬 방어구와 무기를 마련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게 된다.

▲ 로맨싱사가2는 돈이 너무도 부족한 유저들을 위해 초반에 지붕을 뛰어다니며 돈을 벌 수 있는 비기를 마련해두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게임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고 돈 걱정은 어느 새 사라지게 된다. 이미 잔고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할 일이라곤 마왕을 쳐 부순다든지 지구를 구하던지, 공주를 구하는 일 뿐이다. 초반에는 당장 아이템 하나 살 돈, 장비 하나 맞출 돈 가지고 끙끙대지만 어느 새 돈 걱정은 없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게 된다. 만약 처음부터 용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좋은 장비를 차고 상대가 되지 않는 적들을 처리하며 나아간다면 제대로 된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RPG 게임 말고도 돈이 등장하는 게임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슈퍼마리오’ 인데 이 게임에서는 돈이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닌 보너스의 개념이다. 동전 100개를 모으면 한 개의 목숨이 추가로 부여되는 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은 동전을 모음으로 1개의 목숨이 추가되는 것을 즐긴다. 반대로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동전을 먹으려다가 죽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동전이 있는 위치가 죽기 딱 좋은 위치라 욕심을 부리면 딱 죽기 좋은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슈팅게임(흔히 하는 말로 비행기게임)에서는 돈을 먹으면 보통 점수로 환산될 뿐인데 역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적들의 총알 속으로 몸을 날리며 돈을 먹는 게이머들이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어쩌랴, 눈 앞에 있는 돈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이 경우들에 있어서 돈이란 단지 양념 정도로 게임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 ‘1945’ 돈이나 아이템 먹으러 가다 죽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게임

그러나 요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요즘 게임에선 돈이란 곧 힘이다. 혹은 게임의 목적이 재미가 아닌 돈으로 변질된 경우도 있다. 시쳇말로 이거 씁쓸할 뿐이다. 과거 온라인 게임의 초창기에 ‘리니지’란 게임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기존의 게임들과는 차별화된 재미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리니지’는 성공신화를 써 내려갔다. 그 덕택에 엔씨소프트는 사옥 으리으리하게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이 강할 수록 강한 그림자도 생겨나는 법. 캐릭터와 아이템의 매매를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 한국 게임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리니지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들은 흔히 말하는 ‘아이템빨’이 잘 받는 게임이다 보니 음성적인 아이템의 현금매매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도 생겨났다. 조금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아예 ‘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 사업자가 생겨났다. 이 ‘작업장’에서는 게임 속의 화폐를 모아서 현실의 게이머에게 팔기도 하고 아이템을 팔기도 한다. 때로는 캐릭터 대리육성을 해서 넘기는 작업도 한다. 이 ‘작업장’들은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건비가 싼 중국에다 ‘작업장’을 차리고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장들은 수동으로 하는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흔히 말하는 ‘오토(자동사냥)’ 프로그램을 돌리기 때문에 건전한 게임질서를 파괴하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 대리육성가격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기준 중  하나는 “이 게임 돈 되나?”이다. 본래의 목적은 잊고 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게임이 된 셈이다. 한 마디로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수익을 위해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별별 거래를 다 시도하는데 신서버가 오픈하면 어감이 좋거나 보기 좋은 닉네임을 선점하고 닉네임을 팔기도 한다. 지루한 레벨업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오토프로그램을 돌리거나 ‘부주’를 고용하여 대신 레벨업을 시키기도 한다.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게임 속 각종 이익이 날만한 것을 찾아서 돈 벌기에만 혈안이 된다. 이런 식으로 온라인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자 조직폭력배들이 아이템을 달라고 게임사로 찾아가 횡포를 부린 일도 생길 정도였다. 어떤 게임은 게임 내 각 종족의 족장이 되면 월급을 지급한다는 것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 RF온라인 족장월급제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게임의 재미를 처음부터 느끼기 위해 레벨 1부터 키워온 사람과 레벨 50짜리 캐릭터를 100만원을 주고 구입한 사람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 사냥을 하고 제작을 해서 좋은 아이템을 착용한 사람과 현질을 해서 좋은 아이템을 찬 사람과의 차이도 있다. 문제는 차이점이 돈을 많이 들인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좀 심하게 말해서 프로 야구팀과 동네야구팀과의 대결과도 같다. 프로야구팀은 필요한 선수를 현금을 주고 사옴으로써 전력의 강화를 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네야구팀은 돈으로 선수를 사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 삼아 취미로 즐기는 마당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당연하다. 동네야구선수들에게는 야구가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온라인 게임 유저들도 사실 계정비 이외에 많은 돈을 들여가며 게임을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게임으로 먹고 사는 프로게이머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만 현질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만든 게임환경은 본의 아니게 게이머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 캐시아이템도 유저의 지갑을 유혹한다

현실의 내가 축구를 지지리도 못하는 개발이라 할지라도 게임 속에서는 메시, 호날두, 카카가 될 수 있는 것이 게임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지금은 현실의 재력이나 능력이 게임 상에서도 그대로 구현되는 체계가 되어가고 있다. 게임 속 세상은 현세와 다른 환상과 꿈의 세계다. 그런 환상과 꿈의 세계에 정정당당한 실력이 아닌 현실의 돈이 개입한다는 건 게임의 원래 취지와 다른 게 아닌가? 현질 할 능력이 안 되는 게이머는 단지 조금 불행하고 만 것인가? 필자가 프로들이 사는 세상에서 아마추어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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