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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과연 폭력을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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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3회의 걸쳐 셧다운제의 헌법적 문제점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청소년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본 셧다운제의 위헌성과 셧다운제의 본질적 문제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부모의 교육권과 셧다운제

모든 부모는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가집니다. 부모의 교육권이란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ㆍ사회관ㆍ교육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부모의 교육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모든 인간이 누리는 불가침의 인권으로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및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1항에서 나오는 중요한 기본권입니다.

2000.4.27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과외를 금지하고 있던 "학원의설립ㆍ운영에관한법률" 제3조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립니다. 헌재는 판결이유에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원칙적으로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해서는 부모의 교육권이 우선순위를 가진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일률적으로 특정시간에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자녀의 활동에 대해 부모 대신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부모의 교육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교육권 침해를 언급하는 것과 관련하여, 자녀들이 심야에 게임을 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자녀가 심야에 게임하는 것을 허용할지 여부는 부모가 스스로, 또는 아이와의 합의를 통하여 결정하여야 할 사항입니다.

게임은 과연 폭력을 부르는가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 위치한 콜럼바인(Colombine) 고등학교에서 에릭과 딜란이라는 학생이 교내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목숨을 잃고, 이들도 총기 난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미국사회는 콜럼바인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이고, 이런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을 찾기위해 노력합니다. 가장 먼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폭력적인 애니메이션, 헤비메탈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와 같은 주류 언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사건의 진짜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데, 이렇게 탄생한 다큐멘터리가 "볼링 포 콜럼바인"입니다.


▲마이클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

마이클 무어는 범죄율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미디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3국에서 밤낮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패권주의, 생계문제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가정환경, 총기에 대한 지나치게 쉬운 접근 등을 컬럼바인 사건의 진짜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콜럼바인 사건의 원인을 날카롭게 분석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2003년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합니다.

최근들어 게임이 원인으로 지목된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 젊은 부부가 유아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 등. 물론 게임이 이와 같은 사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과연 게임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펜실베니아대학교의 범죄학자 로런스 셔먼에 따르면 PC 열풍을 타고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미국 가정 속으로 막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에 오히려 청소년 범죄도 곤두박질 쳤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청소년 살인사건은 1993년에서 1990년대 말 사이에 3분의 2로 줄었고 이후 다시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그렇게 치명적인 존재라면 비디오 게임이 보급되자 살인사건의 발생 회수가 오히려 줄어든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놀이문화가 바뀌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미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쟁시스템은 학교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청소년들이 학업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 말고는 성취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학교라는 좁은 틀 안에서, 청소년들은 잠시라도 괴로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게임이라는 오락수단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없이, 많은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원인은 단순히 게임의 중독성 때문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셧다운제가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절대 게임중독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셧다운제 도입과 관련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사이의 오랜 힘겨루기가 있었다는 점은 모두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셧다운제로 인한 게임산업의 위축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면 여성가족부는 주로 청소년 보호를 주장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셧다운제는 "게임업체의 수익을 중시할 것이냐, 게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것이냐"의 단순한 문제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틀로 사건을 바라보면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쪽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업체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을 희생시키겠다는 주장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임셧다운제도는 게임업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의 일반적인 행동자유권, 부모의 교육권과 관련된 문제이며,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규정하는 문제입니다. 게임 셧다운제도는 게임은 원래 유해하며, 법률적 제한외에 다른 방식으로 그 폐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게임을 '마약'에 비유한 여성부 최영희 위원장의 발언

그러나, 이미 게임은 우리 사회에 깊숙히 들어와있는 중요한 놀이문화입니다. 또한, 단순한 오락의 수준을 넘어 게임을 의료나 교육 등에 게임을 응용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안전하게 비행기의 운전방법을 습득하고, 높은 장소를 시뮬레이션해서 고소공포증을 치료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락실에서 하던 갤러그를 바라보던 시선으로 게임산업을 계속 규제하려 한다면 게임산업의 미래도, 게임이 가져다줄 부가적인 혜택도 모두 포기할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법적 규제는 최후의 수단

필자에게는 4살짜리 딸아이가 있습니다. 사탕은 영양가는 없고 열량만 높은데다가 치아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저는 되도록 딸아이에게 사탕을 사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갈때면 어김없이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죠. 사탕이 인체에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지만, 국가에서 법으로 사탕판매를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암벽등반이나 패러글라이딩처럼 위험을 동반하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될 수 있는데도 역시 이러한 스포츠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심야시간에 16세 이하 청소년들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청소년들이 음주나 흡연 등의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도 떨어지고, 범죄율도 현저히 낮아지고, 청소년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낮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청소년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법률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헌법의 기본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셧다운제를 통과시키기 전에 우리는 "셧다운제가 도입되면 게임중독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될 것인지", "청소년들을 게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없는지", "청소년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적인 범죄의 원인이 과연 게임인지", "청소년들의 게임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병찬 변호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7기, 현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
2008.2 ~ 2011. 1. SK텔레콤 법무실 근무
정신신체전문가과정 의료소송 강의
트위터 ID: @gerrard76
E-Mail: gerrardgogo@gmail.com
블로그:
collectiveintelligence.tistory.com
셧다운제 관련 카페:
cafe.naver.com/noshut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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