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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피크(PEAK)'의 성공에 힘입어 여러 등산 시뮬레이션 게임이 출시됐다. 돈노드 '쥬상트(Jusant)' 등 비교적 서정적이고 스토리 중심의 등반 어드벤처게임뿐만 아니라 '고난도'에 특히 방점을 둔 신작도 있다. 지난 1월 30일 출시된 '케언(Cairn)'이 그 대표주자다. 케언은 고난도 등반과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웠다
▲ 케언 시작 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인디게임 '피크(PEAK)'의 성공에 힘입어 여러 등산 시뮬레이션 게임이 출시됐다. 돈노드 '쥬상트(Jusant)' 등 비교적 서정적이고 스토리 중심의 등반 어드벤처게임뿐만 아니라 '고난도'에 특히 방점을 둔 신작도 있다. 지난 1월 30일 출시된 '케언(Cairn)'이 그 대표주자다. 케언은 고난도 등반과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자는 평소 운동을 싫어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산에 오른다는 점과 특유의 그래픽에 홀린 듯 게임을 시작했다. 무려 3일 동안 숨도 쉬지 않고 산만 타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지만.
▲ 케언 출시 영상 (영상출처: 더 게임 베이커스 공식 유튜브 채널)
주인공 '아바'의 '카미산' 등반기
게임의 주인공은 '아바', 여성 산악인이다. 세계관 속 등산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지, 게임 시작 부분과 플레이 도중 그녀에 대한 무용담을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튜토리얼의 일환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이 준비됐다. 쉬운 코스부터 고난도 코스까지 시도할 수 있으며, 특히 8번 코스는 인공 암석이 상당히 불규칙해 도무지 오르기 어려웠다. 이후 훈련장 앞 동산을 오르며 튜토리얼을 마무리 한 뒤, 본격적으로 '카미산'이라는 미지의 고산에 도전하게 된다.
아바는 매력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그녀는 타인과 감정적인 교류에 능하지 않고, 쉽게 분노하거나 타인을 탓한다. '전설적인 산악인'이라면 응당 가졌을 법한 튼튼한 정신력도 특히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새롭게 만난 사람에게는 까칠하게 굴고, 소중한 인연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
▲ 주인공 '아바'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성격이 좋지는 않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특히 그녀에게 산은 마치 추구의 공간이자 도피의 공간으로도 느껴진다. 연락을 보낼 방법을 모두 차단하고, 외부에서 오는 연락도 사실상 무시한다. 중반에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아바를 책망하는 듯한 연락이 오고, 이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 아바는 유일한 수신기를 부숴버리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그녀의 어딘가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행보는 이어진다.
이와 대비되는 그녀의 클라이밍 실력은 플레이어의 힘을 빌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바위가 살짝만 튀어나와 있어도 손과 발을 얹을 수 있고,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버텨낼 수 있다. 팔 다리의 움직임은 인간 보다는 문어에 가까울 정도로 유연하고 강인하다. 이런 독특한 지점은 아바의 캐릭터성을 입체적으로 가꾼다.
▲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바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산을 오르는 것 만큼은 초인적인 능력 (사진: 게임메카 촬영)
팔, 다리를 활용한 초현실적인 등반 시뮬레이터
케언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등반 시뮬레이션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아바의 두 팔과 다리를 조작하며 산을 오른다. 상당히 비직관적이고 마치 'CLOP(통칭 '미친 말 게임')'이 연상되는 조작법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면 익숙해지기 쉽다. 사지 중 하나를 움직여 바위를 붙잡은 다음, 다음 팔 다리 중 하나를 움직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음에 움직일 팔 다리는 시스템의 계산에 따라 자동으로 선택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고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 현실적인 무게 및 스태미너 시스템이 더해진다. 지지력이 약한 바위를 붙잡고 오르려면 충분한 스태미너가 필요하고, 간혹 미끄러지기도 한다. 때문에 더 좋은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 차근차근 오를지 등을 철저하게 계산해야 한다.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는 곡괭이와 아이젠을 활용해 얼음에 발을 박아 넣는 섬세한 조작도 요구된다. 과정에서 어딘가 뒤틀린 듯 움직이는 아바의 신묘한 등반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케언의 초회차 엔딩 플레이타임은 짧게 잡아도 6시간이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등반을 돕는 시스템도 준비됐다. 돌 탑에서 게임을 저장하고(등반가 이하 난이도 기준), 바위에 박아 넣을 수 있는 '피톤'이 대표적이다. 특히 피톤은 대부분의 표면에 고정할 수 있으며, 잠시 스태미너를 회복하고 간이 쉼터나 보조 생존 수단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피톤의 개수는 한정됐고, 타이밍 미니게임에 실패하거나 무작위 확률로 부서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 피톤, 생존 구간을 만들어준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팔을 높이 들어 찍는다, 곡괭이도 마찬가지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약간의 실수도 치명적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특유의 움직임이 발군 (사진: 게임메카 촬영)
난도를 높이는 생존과 탐험
케언의 고난도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주기적으로 '목마름', '체온', '허기'를 관리해야 살아 남는다. 목마름은 각종 음료를 마셔 해결할 수 있다. 산 에서는 깨끗한 물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물통에 저장한 후 주기적으로 마시며 유지해야 한다.
허기는 음식을 먹어 채운다. 탐험 도중 유명을 달리한 동료 산악가들의 가방, 곰 대피소, 유적, 길가 들풀 등에서 소모품을 얻는다. 그냥 섭취해도 영양분을 얻을 수 있지만, 텐트에서 물에 끓이는 등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외에도 텐트에서는 다친 손에 붕대를 감고, 체력과 체온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신 잠을 자거나 기다리며 체력을 채우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허기와 목마름은 증가한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한계에 내몰린다. 가방 크기는 제한되어 일정 이상의 소모품을 담을 수는 없다. 미끄러져 떨어질 때마다 체력, 허기, 목마름은 주기적으로 감소한다. 탐험도 좋지만 그만큼 마음은 조급해진다. 시간을 소모하지만, 필요한 소모품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의 순간에도, 스태미나, 발 디딜 작은 공간을 신경 쓰며 산을 올라야 한다. 이때 실수는 필연이 되고, 분노와 좌절로 이어진다.
▲ 가방 공간이 부족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탐험은 늘 재미있지만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손에 끊임없이 상처가 생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생존의 위협, 잘못하면 기절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왜 산을 오르는가? 게임으로 되돌아보기
산 정상에 도달한다면 성취감이 있으리라는 것은 게임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비단 케언뿐만 아니라 어려운 게임을 클리어한다면, 그만큼의 성취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꼭 '케언'을 플레이해야 할까? 애초에 왜 산을 오를까? 케언은 '아바'를 통해 여러 통찰을 전한다.
게임은 아바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전하지 않지만, 날선 태도와 대사, '마르코'라는 다른 등장인물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바는 비협조적이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과거를 지녔다. 예를 들어 마르코가 아바의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며 '전설적인 클라이머'라고 말하자, 아바는 "그렇다더라"라는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반면 마르코는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인간적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포기할 때를 안다. 뭔가에 씌인 것처럼 산을 오르는 아바와는 정반대다.
▲ 마르코, 비교적 밝은 성격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후 산을 오르며, 플레이어는 아바라는 인물에 점점 동화된다. 아바가 산을 오르는 이유를 모르는 만큼이나, 플레이어 스스로도 이 게임을 왜 플레이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불안과 고통을 주는 고난도 게임이며, 조작은 재미있지만 떨어질 때의 절망은 그 이상이다. 간혹 아름다운 풍경이 등장하며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는 잠깐이다. 결국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 엔딩을 보고자 하는 게이머로서의 본성, 아바의 결말을 보고자 하는 플레이어로서의 본성, 그 욕망들이 플레이를 이끌어 나간다.
이는 아바에게도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이다. 카미산은 사람을 잡아먹는 산으로, 상상 이상의 위험에 산의 정상에는 아무도 도달한 적 없다. 정상에 도달하는 마지막 근거지에서 만난 마르코의 할아버지는 목숨이 위험하니 더 나아가지 말 것을 권한다. 선택의 순간은 항상 주어진다. 산을 내려갈 수도 있고, 정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게임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는 아바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주어진 선택지고, 본 기자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 멈출 것을 권하는 다마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산을 타는 것은 위험하다, 왜 멈추지 않나? (사진: 게임메카 촬영)
케언은 산을 오르는 게임이면서, 명상의 시간을 제공했다. 산을 오르는 조작의 순간, 생존을 위한 집중과 계산, 저 먼 목표와 아름다운 풍경은 잡념을 털어낸다. 새하얀 눈 산, 홀로 지내는 텐트 속, 어둡고 고요한 동굴, 탁 트인 전경, 현실에서 유리된 카미산은 고민의 시간을 제공한다. 실패의 순간에는 자책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공에 순간에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과 더불어 언젠가는 도달할 게임의 끝을 희망하게 한다.
그렇게 길의 끝에서 느낀 것은 성취감이기 보다는 허무함이었다. 아바에 동질감을 느낀 점, 결말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성취감을 예상한 점 등 이유는 많았다. 다만 그만큼 스스로 케언을 플레이 한 방식을 되돌아 보며, 지난 삶을 반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항상 급했고,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과정은 내팽개쳤고, 주변은 전혀 둘러보지 못했던 삶의 궤적이 산 정상으로 이어졌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한 철학자의 말과 반대로, '산을 오른다'는 목적에 스스로를 내맡긴 삶에 대한 의문도 얻었다. 물론 플레이 과정과 엔딩에 대한 감상은 개인의 몫이며, 각자 얻어가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이 또한 케언이라는 게임의 강점이다.
케언은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좋은 예시다. 고난도 게임이 주는 성취감, 독특한 조작감이 주는 재미, 아름다운 풍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 삶의 다른 모습에 따른 깨달음, 스스로에 대한 명상 등을 시스템, 콘텐츠, 플레이로 녹여냈다. 최근 삶에 고민이 많았거나, 게임을 정말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