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리그오브레전드’ 성희롱 고소 사건
얼마 전,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플레이어가 게임 채팅창에서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유저에게 법적 대응을 한 것이다. 이 주인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유저들을 위해 성희롱 및 악플러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인 방법을 자세히 기술해 놓는 용감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아, 물론 피해자는 여성 게이머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LOL’의 숨은 그림자가 있다. 바로 욕설이 난무하는 게임환경이다. 유저 대항이라는 AOS 게임 시스템상 유저들의 의사소통이 타 게임보다 더 경쟁적인 것은 물론, 가끔은 일반 사용자들이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 음란한 채팅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플레이어들도 공개 채팅방에는 일절 발을 들여놓지 않거나, 악성 유저 차단, 혹은 지인들과 게임을 즐기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번에 피해를 본 여성(이하 닉네임 반지양) 역시 평상시에는 선을 넘지 않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언사는 눈감아 넘기고는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악성 유저 2명을 만난 이후 대응 방법을 변경하게 됐다.
반지양이 경찰에 제출한 범죄일람표에는 모욕적인 비속어로 가득 차 있다. 게임 시스템상 충분히 필터링에 걸릴 법한 일반적인 욕설, 여성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단어, 강간 위협 등이 여과 없이 나타났다. 특히 피해자가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고 거친 언어 사용에 당부를 요청하자 가해자는 더욱 노골적인 문구를 사용했다.
2. 아니타 사키시안 테러리즘
반지양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지난봄 미국에서 있었던 아니타 사키시안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대표적인 소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에 게이머이자 여성인권 블로거인 아니타 사키시안의 프로젝트가 소개됐다. 아니타의 프로젝트 ‘비디오게임의 비유 vs. 여성(Tropes vs. Women in Video Games)’는 유명 게임 타이틀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여 게임 전방위적으로 산재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에 대한 편견을 구체화한다는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여성인권 단체, 게임 미디어는 물론 유명 게임 회사에서 후원을 받았다.

▲ '페미니스트 프리컨시'의 아니타 사키시안
문제는 이후에 시작됐다. 아니타는 일부 남성연대로부터 무자비한 사이버 폭력의 대상이 됐다. 그의 메일, 사이트, 관련 뉴스, 혹은 아니타를 강사로 초청하는 회사에는 음담패설 메시지가 쏟아졌고, 수많은 SNS는 아니타에 대한 강간, 성폭력, 살해 위협으로 들끓었다.
살해위협에서 아니타가 선택한 것은 맞대응이다. 이들의 주요 타겟이 자신의 성별임을 찾아내고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프로젝트를 더 확대하고, 자신에게 보내진 외설적인 메시지와 혐오스러운 합성 사진 등 모든 자료를 공개했다.

▲ 아니타가 받은 테러 사진들 중 가장 수위가 낮은 합성 사진

▲ 아니타가 받은 테러 사진들 중 가장 수위가 낮은 사진
3. 팍스 이스트
미국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팍스 이스트(PAX EAST)에서 게임 축제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 게임 관련 세션을 듣기 위해 찾아온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정하자. 우리들은 지금도 유치하고 모욕적인 일을 당하고 있다고”라는 문구로 소개된 세션의 제목은 ‘N00dz or GTFO! Harassment in Online Gaming’(벗고 꺼져, 온라인게임 속 폭력). 이날 세션에 참가한 여성 게이머들은 3명의 강연자와 함께 지금까지 자신이 당해온 온라인 성희롱, 모욕, 더 나아가서 실제 범죄의 대상이 될 뻔했던 과거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리고 게임을 향유하는 독자적인 층으로서 여성이 온라인게임문화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토론을 나누었다.

▲ 세션 강연자 모습

▲ 강연자들에게 상담을 요청하거나 경험담을 공유하는 참가자들
▲ 세션 영상 (출처: 유투브)
4. 남녀 비율 1:1, 게임은 더 이상 특정 성별이 주도하는 공간이 아니다
과거 여성 유저들은 일부 못된 남성 유저들의 성희롱에 대해 무시와 차단 등 모로쇠로 일관했다. 악의적인 메시지나 메일에 대꾸하기보다 차단하거나 게임사에 신고하는 방법을 택했다. 가해자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내버려 둔다는 취지다.

▲ 반지양이 자료로 제출한 스크린샷 중 일부 (심한 욕설은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LOL’ 사건의 주인공인 반지양도 과거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온라인 성희롱에 대처해왔다고 한다. 반지양은 온라인게임 초기 시절부터 즐겨온 골수 유저로, 여성 유저들에게 행해지는 성희롱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간편하고 쉬운지 이골이 날 정도로 경험했다.
하지만 반지양은 쉽고 간단한 길 말고 비용은 물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이들에게 법적인 철퇴를 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고소하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막상 범인을 잡았는데 10대면 어쩌지. 내가 괜히 두 사람의 인생에 이상한 딱지 하나 붙여주는 게 아닌가.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고소하고 나서 한 달 뒤, 가해자 1명을 게임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고소한 것도 알고 있고 여자인지도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욕을 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아, 이 사람들은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 이들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욕하는 아이들을 바꿀 수 없다면, 희롱당하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변화시켜야 하겠다. 그때부터 자세하게 후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게이머가 경찰에 법적인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 방법, 범죄일람을 작성하는 방법, 게임사에 요청할 것들 9월부터 진행된 사건의 모든 것을 후기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모두 게임 내 성희롱 피해를 받는 여성 게이머는 물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용기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제가 개인의 만족을 위해 법의 힘을 빌렸다면 가해자의 기소가 결정되고 나서 그들에게 물릴 얼마의 벌금, 그리고 지도 감찰 정도의 교육에서 만족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인터넷에 제 신상이 공개될 각오를 하고 여러 대형 커뮤니티에 장문의 후기라며 올리지도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경고예요. 얼굴 안 보인다고, 익명성에 기대서 게임에서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언제까지나 묵인될 거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죠.”
여성 게이머의 성희롱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웹사이트 ‘(여성 게이머인가요? 그렇다면 당신은…)뚱뚱하거나, 못생기거나, 상스럽거나’의 운영진은 여성 게이머가 성희롱 문제에 부딪혔을 때 공개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 여성들이 실제 자신의 닉네임을 중성적으로 사용하거나 게임 캐릭터를 남성이나 동물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별을 숨기고 있다며, 여성 게이머임을 여과없이 공개하라고 권고한다. 게임 사회는 서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여성 게이머가 당연한 구성원의 자격으로 커뮤니티에 존재하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솔직히 여성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성적인 모욕을 들으면 여성인 것을 밝혔어도 굉장히 수치스럽고 여성인 것을 밝히지 않았어도 속으로 끙끙 앓아야 하는 답답한 경우가 생겨요. 특히 최근에는 제가 여성 게이머인 것을 알고 더 심각하게 욕을 퍼붓거나 조롱하고, 성적인 욕설을 던지는 악질 유저들도 증가한 게 사실이에요. 단순 욕설뿐만 아니라 닉네임이 여성스러운 유저에 대한 강간을 연상시키는 말, 특성 생식기를 언급하는 언어폭력 행위를 가하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게임회사도 심각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봐요. 게임회사 필터링은 여전히 조악스럽고 성희롱 단어에 대해 제대로 필터 되지도 않고 있잖아요? 제 고소 사건에서 등장한 ‘처녀막’ 같은 단어는 게임하면서 나올 필요도 없고 악의적으로 쓰이고 있는데도 대부분 게임에서 필터링 되고 있지 않아요. 이 부분은 분명 게임사에서 자체 제재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국내 온라인게임 역사 10년 이상.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비슷한 진통을 겪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사 대부분은 성희롱 신고를 비매너 행위로 모두 묶어서 취급한다. 필터링 시스템 또한 게임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본 단어 외에는 유저 신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신고하더라도 가해자가 어떤 처벌받는지 알 수 없다. 또, 제재가 이루어져도 짧게는 3일이나 3개월이며, 실제 계정 정지까지 이루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게다가 경찰에 고소하기 위해 요청을 해도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로 협조를 받기 어렵다.
“저는 게임 산업에 종사하지 않지만, 게임 산업을 아끼는 사람이예요. 지금 게임 산업이 청소년 보호법 등에 의해서 마치 사회 속의 유해 매체인 양 규제를 받아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어요. 분명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제가 가해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런 제제로 인해 힘들다면, 어째서 게임 회사들은 욕설이 난무하고 반사회적 언사가 남발되는 게임판 정화를 위해 나서지 않는 거죠? 커뮤니티 정화 노력 또한 게임이 유해 매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개선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텐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라이엇 게임즈에 대한 고소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한다고 하는 부분은 무모한 생각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일이 알려져 일부 못된 유저들의 범죄적 행동에 대해서도 '기술의 한계' 라든가 '개인의 자유의 침해'라는 이유를 들며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게임사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싶어요.”
5. 결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12년 게임백서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이미 국내 게임 인구 49%가 여성이다. 그리고 이들 중 63% 여성 게이머가 온라인 게임 속에서 가해지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한다. 과거 100명 중 1명이 당하던 피해는 이제 5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피해를 막을 방법은 제도와 규제책 마련일까? 우리는 흔히 온라인게임을 또 다른 사회라고 표현한다. 규제가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유저들의 적극적인 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플레이어 간의 언사를 정화하고, 게임사에서는 적절한 규제 정책을 마련하고 가해자 또한 적법한 절차대로 처벌을 받게 한다면 사실 남자고 여자고 인격 모독을 받아서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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