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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폴 공개서비스, 선빵이 미덕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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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PK를 적극 권장하는 그 게임 '다크폴'

그리스 개발사 어벤추린의 하드코어 MMORPG ‘다크폴: 잔혹한 전쟁’이 지난 10월 30일(수)부터 국내 공개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09년에 런칭된 ‘다크폴 온라인’을 이은 신작으로, 레벨 시스템이 없고 채집과 제작, 사냥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유롭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요소를 한 가지 꼽자면, 바로 무한 PK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실 ‘다크폴: 잔혹한 전쟁(이하 다크폴)’의 첫 인상은 매력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현실 못지않은 극 사실주의 그래픽 혹은 만화적인 느낌을 한껏 살린 카툰 렌더링이 주류로 떠오른 지금, ‘다크폴’의 전체적인 그래픽은 굉장히 어정쩡하다. 거기에 캐릭터 모션은 ‘이건 뭔가’ 싶을 정도로 우습고, 전반적인 모델링도 투박하지 그지없다.

하지만 이런 첫인상과 달리 ‘다크폴’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게임이다. 다소 가혹해 보이는 필드 PvP에서 오는 짜릿한 긴장감, 이와 반대로 정적인 채집과 제작 활동으로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자유로움에 투박한 시스템이 더해져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장비 풀세트에 특별 퀘스트까지 줘가며 캐릭터를 육성시켜주는 매우 친절한 근래 MMORPG들과 달리, 어떤 혜택도 없이 유저를 덩그러니 오픈월드에 던져놓는 패기까지. 오랜만에 개척자 정신을 요동시키는 게임임에 틀림없다.

요행은 없다, 노력한 만큼 강해질 뿐

‘다크폴’에서는 게임을 갓 시작한 유저에게 PK 보호 장치나 사망시 패널티를 줄여주는 등의 혜택을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마을 근처로 설정되어 있는 안전구역만이 무작위 공격으로부터 플레이어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결계다. 굳이 마을 주변을 벗어나 전투를 하지 않아도 채집과 제작만으로 캐릭터를 육성시킬 수 있지만, 마음의 안식을 찾는 대다수의 유저들이 안전구역으로 몰리다 보니 수풀이나 나무, 철광석 등의 자원이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 하면 PK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위험구역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에서 불굴의 PK 전사들이 푸릇푸릇한 신입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이쯤 되면 ‘초보는 어쩌라는 건가!’ 하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 섣불리 나갔다간 이런 꼬락서니가 되니


▲ 열심히 채집하며 미래를 도모합시다
정답은 채집이죠 채집

그 해답은 노가다에 있다. ‘다크폴’은 레벨 대신 ‘기량’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사냥과 채집, 제작 등의 활동을 통해 경험치를 쌓을 수 있으며, 이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능력치를 올리는 데 사용된다. 특히 기량은 무한정 쌓을 수 있어서 시간과 노력만 충분하다면 최고 아이템을 장착하고 모든 기술을 마스터한 이른바 먼치킨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무조건 많이 채집하고 사냥하며, 제작하는 사람이 먼저 강해진다. 선수필승의 진리가 여기에서도 통하는 셈이다. 

더불어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따른 퀘스트가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인 퀘스트 시스템은 할 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게임을 지속할 만한 동기를 부여하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스토리와의 개연성이 없을 경우 되려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령, 너무 퀘스트가 많아서 유저가 지쳐버리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 마을의 텃밭만 캐던 배스킨씨는 척박한 위험구역으로 향하는데…


▲ 그곳에는 보물상자도 있고


▲ 골드를 품은 오래된 통도 있네요! 
위험구역은 생각보다 살만한 곳이었다능

반면 ‘다크폴’은 기본 튜토리얼이 끝난 후 드넓은 오픈월드에 유저를 내려놓고 별다른 지시가 없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면서도, 신선하다.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할 지 몰라 우왕좌왕 하다가도 작은 업적을 하나 둘씩 채워가며 게임에 익숙해지고, 끝내는 자발적으로 자원을 모으고 위험구역에 덥석 발을 디디는 용기도 발휘한다. 


▲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하는 업적 리스트


▲ 쌓은 기량은 스킬, 능력치, 부스터 등을 얻는데 사용한다

퀘스트와 레벨을 삭제한 것은 어찌 보면 과감한 도전이었는데, 강제성은 없고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업적 시스템’으로 그 부재를 적절히 메꿨다. 업적은 전투와 채집, 제작 분야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즉, 자유롭게 필드를 돌아다니며 재미로 좀비를 잡거나 사냥과 PK가 무서워 채집만 해도 추가 기량이 지급되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게 진짜 하드코어 PvP지

‘다크폴’의 생명이자 핵심인 PvP 시스템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선수필승(先手必勝). 먼저 손을 쓰는 사람이 무조건 이긴다는 말로, ‘다크폴’에서도 먼저 공격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고 대체로 결투에서 승리한다. 싸움에서 진 것도 속상한데, 바리바리 모아놓은 아이템까지 모두 죽은 장소에 떨어지니 멀쩡히 채집하다 습격당한 유저로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영혼까지 털린다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더 가혹한 점은 단일 서버에 캐릭터도 하나밖에 못 만든다는 것. 시작한지 10분만에 죽어서 빈털터리가 된 캐릭터는 지우고 다시 생성하면 그만이지만, 애지중지 자원 모아 모든 장비를 맞추고 어느 정도 성장까지 시킨 상황에서 습격당해 모든 아이템을 잃으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특히 ‘다크폴’의 PvP는 내가 상대보다 아이템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승리하는 구조가 아니라, 주도권을 뺏겨버리면 순식간에 기세가 말리기 때문에 필드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급격히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저 녀석이 과연 나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칠 사람인가를 가늠하기 위한 신경전 말이다.


▲ 이런 화려한 대전을 기대했는데!


▲ 현실은 차가운 바닥에 누운 캐릭터만…
가끔 죽이고 부활시켜주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두번 당합니다 진짜에요

심지어 PK를 통해 많은 플레이어를 죽여도 돌아오는 패널티가 전혀 없어, 선량한 유저를 습격하면서 느끼는 일말의 가책(!)조차 희석된다. ‘리니지’에 비유하자면, 성 밖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카오’가 성 안의 다른 주민과 똑같이 경비병의 호위를 받으며 마을을 활보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 PK범을 통제하지 않아(?) 마을 밑 용암에서도 죽는 이런 현실
으아아아 떨어진다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가혹함은 ‘다크폴’만의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위험구역을 횡단할 때는 최대한 다른 유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이동하게 되며, 아무도 모를 법한 으슥한 장소를 찾아 자원을 채집하고 있어도 모니터와 스피커에서 신경을 놓을 수가 없다. 습관처럼 쉬운 사냥과 채집을 하며 반사적으로 플레이해도 충분했던 ‘편안한’ 게임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팽팽한 긴장감이다. 사망시에도 사냥을 통해 쌓은 경험치만 소폭 하락(‘다크폴’의 경우에는 기량)하거나 랜덤한 아이템만 떨어진다면 이토록 처절하지 못했을 텐데, ‘다크폴’의 PK 시스템은 ‘하드코어’ 그 자체다.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 바로 그런 가혹함 말이다.

논타겟팅 선택은 OK, 근데 타격감은 어디로?

‘다크폴’은 마우스 커서가 향한 방향으로 공격을 시전하는 논타겟팅 방식을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다크폴’의 개성을 한층 살린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논타겟팅 시스템으로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높인 덕에 하드코어한 PvP의 매력이 더욱 증폭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술 캐스팅 중에도 이동이 가능해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 공격을 가하는 판단력이 요구되어 오로지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즉, 상황에 알맞은 기술을 사용하고 상대의 공격을 잘 피하기만 한다면 기량이 2000인 캐릭터가 8000짜리 유저를 이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타격감을 주는 액션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게 아쉽다. 무기로 적을 때리거나 범위 공격 기술을 사용해도 특별한 효과가 없다. 눈 앞으로 8비트 핏덩이와 대상 잔여 체력이 표시되긴 하지만 과장된 액션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공격을 받을 때에도 화면이 간헐적으로 빨갛게 빛나는 것 외에 타격음과 같은 부가 요소도 없다. 뭇 게임들이 타격감을 표현하기 위해 기술 시전 도중 맞으면 캐스팅이 끊기거나 캐릭터가 뒤로 밀려나는 등 다양한 장치를 도입했듯, 그런 부분은 개선이 필요할 듯 보인다.

시대에 뒤처지는 그래픽과 인터페이스

유저에게 드넓은 놀이터를 주고 자유롭게 뛰놀 수 있도록(심지어 무자비한 PvP까지도) 했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인터페이스나 그래픽은 아직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이다.


▲ 아.. 많다..

우선 인터페이스 창에 나타나는 기능 아이콘들이 너무 작고 많아 식별이 어렵고 답답하다. 모든 기능은 단축키가 지정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키를 다 기억하기보다 인터페이스창을 켜고 필요한 시스템을 실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크폴’의 인터페이스는 마치 ‘내 컴퓨터’를 키고 C 드라이브에 들어가서, 내 문서 폴더를 열고 거기에 들어있는 세부 폴더를 또 실행시키고…를 반복하는 기분이다. 바탕화면에 바로가기 아이콘을 만들어 두면 정말 간단한 일을 괜히 복잡하게 설계했다고 할까. 실제로 캐릭터를 마을로 귀환시키려면 ‘M’키를 눌러 지도 인터페이스를 열고 하단에 작게 자리잡은 ‘결속석 귀환’ 아이콘을 눌러야 하는데 버튼 자체가 작고 가독성도 떨어진다.

▲ 나름 예쁜 엘프 캐릭터라고 한건데 ㅜ_ㅜ

그래픽 역시 ‘다크폴’의 어두운 느낌은 잘 살렸으나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특히 자유도나 게임성에 있어 비교 작품으로 꼽히는 ‘아키에이지’나 ‘검은 사막’의 유려한 그래픽에는 한참 뒤처지는 모습이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다크폴’은 정체성이 확실한 게임이다. 자유롭다 못해 스스로 할 거리를 찾아나서야 하는 불편함은 ‘울티마 온라인’의 무한한 자유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고, 냉정한 PvP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팽배한 현실과 비슷하다. 이로 인해 다소 투박하고 불편한 게임, 평소엔 툴툴거리지만 가끔 잘해주는 괴팍한 사촌오빠 같은 작품이 되었다. 

누구나 사촌오빠(혹은 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남보다 못하다며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관심이 없기에 쿨해서 좋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다크폴’도 그렇다. 개성이 확실한 만큼 보편적인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는 없지만, 자비 없는 하드코어함을 갈망하는 일부 매니아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처럼 다가올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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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어벤추린
게임소개
'다크폴: 잔혹한 전쟁'은 '다크폴'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자유도에 보다 잔혹하고 냉정하며 승부욕을 자극하는 게임성을 극대화했다. '울티마'처럼 게임에 특정 클래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스킬 기반으로 이루...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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