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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열전] 거대한 전장을 내 손으로 쥐락펴락, 실시간 전략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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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한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게임을 해봤을 것이다. PC방 열풍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가 그 주인공이다. 그만큼 실시간 전략게임(RTS, Real-time strategy)은 RPG, FPS와 같이 한국인에게 익숙한 장르로 통한다.

RTS의 가장 큰 묘미는 다른 사람과 실시간으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턴 한 턴 신중하게 진행하는 턴제 전략게임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속도감과 박진감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영역에 미친 파급력도 상당하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발판 삼아 시작된 ‘스타리그’는 신 영역 e스포츠를 열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중 하나인 ‘이온 오브 스트라이프(Aeon of Strife)’는 현재 대세 장르로 손꼽히는 AOS의 시초로 기록됐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보드게임에서 실시간 대전으로 넘어가기까지 - RTS의 시작

블리자드 랍 팔도 전 부사장은 실시간 전략게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실시간을 기본으로 삼는 전략게임’, 한 마디로 정리되는 개념이 완성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정해진 룰에 따라 두뇌싸움을 벌인다’는 개념은 게임을 넘어 바둑, 장기, 체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는 전쟁을 보드게임이나 카드 게임으로 모사한 ‘워게임’이 등장했다. 2인 이상이 모여 주사위를 굴려 나온 값을 토대로 직접 말을 옮기며 하는 ‘워게임’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시간이다. 한 게임을 마치려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PC용 턴제 전략 게임이 등장하며 플레이 시간은 눈에 뜨이게 줄었다. 또한 플레이어가 한 곳에 모이지 않아도 집에서 PC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편의성도 붙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은 끝이 없었다. 턴이 넘어오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색다른 전략 게임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열망이 모여 실시간 전략게임은 턴제 전략게임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실시간 전략 게임의 씨앗은 1982년에 애플 II로 출시된 '싸이트론 마스터(1982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령관 역을 맡은 플레이어가 발전기에서 축적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병력을 구축하고, 올바른 지령을 내려 승리해야 한다는 개념을 세웠다. 이듬해에 출시된 '스톤커스(1983년)'는 목적지를 지정하는 ‘웨이포인트’ 개념을 도입해 유저를 즉시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전술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에이션트 아트 오브 워(1984년)'는 가위바위보로 압축되는 유닛 상성을 도입한 첫 RTS다.


▲ RTS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론 마스터(좌)’와 ‘스톤커스(우)’ '(사진출처: rtsguru.com, gamenbrain.com)

바다 건너 일본에도 RTS의 새싹이 돋았다. '헤르초크 쯔바이(Herzog Zwei, 1989년)'가 그 주인공이다. '헤르초크 쯔바이'는 RTS의 기본요소를 마련했다. 각 진영의 중심을 이루는 ‘본진’이 있으며, 병력 구입과 전투 명령을 모두 담당하는 메인 기체가 존재한다. 제자리를 지키는 ‘홀드’나 이동하면서 공격하는 ‘어택 무브’와 같은 커맨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 ‘2인 플레이’다. '헤르초크 쯔바이'는 화면을 2개로 나눠 다른 유저와 즉석에서 승부를 겨룰 수 있었다.


 2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헤르초크 쯔바이’ '사진출처: gamefaqs.com)

PC 게임의 아이콘 RTS가 뜨다 - 웨스트우드 ‘듄 2’

RTS의 시작은 콘솔이었으나 그 꽃은 PC에서 피어났다. 그 중심에는 웨스트우드의 '듄 2'가 있다.웨스트우드는 전략게임이 아니라 '주시자의 눈'이라는 RPG로 성공을 거둔 개발사였다.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 '듄 1'도 본래 어드벤처 장르였다. 전략게임을 만들어본 적 없는 개발사와 전략게임이 아니었던 IP가 만나 '듄 2'라는 걸출한 RTS가 된 것이다.

'듄 2'가 실시간 전략게임의 ‘대부’로 불리는 이유는 RTS란 무엇인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단 '듄 2'는 각기 다른 유닛과 진영을 사용하는 진영 간 대결을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에 수집, 건설, 전투로 이어지는 RTS의 기본 운영을 완성했다.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다음 단계 건물을 올릴 수 있는 테크트리, 유저가 원하는 곳에 진지를 갖출 수 있는 건설 시스템도 탑재됐다. 즉, 각기 다른 타이틀에 흩어져 있던 요소를 한데 모아 RTS의 기본 구조를 완성했다. 이후에 등장한 '워크래프트'나 '커맨드 앤 컨커', '스타크래프트' 역시 '듄 2'가 만들어놓은 공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현대 RTS의 기본틀을 정립한 ‘듄 2’ (사진출처: rtsguru.com)

'듄 2' 리드 프로그래머 조 보스틱은 이러한 말을 남겼다. “'듄 2'가 '헤르초크 쯔바이'보다 유리했던 이유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라고.

마우스 컨트롤은 RTS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른손으로 커서를 움직이며 원하는 유닛과 건물을 클릭하는 직관적인 방식은 플레이어에게 유닛 하나하나를 찍어 명령을 내리는 조작을 가능케 했다. 다시 말해 ‘컨트롤 싸움’이라는 새로운 경쟁 요소가 붙은 것이다. 조작 편의를 위해 마우스를 도입한 웨스트우드의 선견지명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1992년 PC로 출시된 '듄 2'는 RTS 팬덤을 형성했다. 기지 건설부터 전투까지 전쟁의 모든 것을 게임 하나로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게임성은 업계에 있던 개발자의 창작욕도 자극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토대로 '듄 2' 출시 후 RTS 신작 붐이 불었다. ‘농노의 도시’라는 의미의 ‘서프 시티(Serf Cit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틀러(1993년)'는 전투를 줄이고, 채집이나 생산과 같은 경제 시스템에 비중을 두어 차별화를 꾀했다. 같은 해에 출시된 '스트롱홀드(1993년)'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공성’과 ‘수성’을 테마로 내세웠다.


 생산에 집중한 ‘세틀러’와 공성을 주로 다룬 ‘스트롱홀드’ 
(사진출처: mujsoubor.cz, gamepressure.com)

그 중에는 훗날 웨스트우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하는 블리자드도 있었다. 블리자드 제국의 시작을 알린 '워크래프트: 오크 & 휴먼(1994년)'이 등장한 것이다. 거창한 소개와 달리 '워크래프트'의 시작은 초라했다.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게임성에서 '듄 2'와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워크래프트'는 '듄 2' 아류작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워크래프트' 역시 강점이 있었다. 바로 멀티플레이다. RTS의 궁극적인 목표는 두뇌싸움이다. 다른 사람을 나만의 전략으로 누를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맛볼 수 있다. 즉, '워크레프트'는 안정적인 멀티플레이로 RTS의 핵심 중 하나를 찌르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워크래프트’ 시리즈 시작을 알린 ‘워크래프트: 오크 & 휴먼’ (사진출처: us.blizzard.com)

RTS 대전 시작 – ‘커맨드 앤 컨커’ VS ‘워크래프트 2’

'듄 2'로 RTS의 시작을 알린 웨스트우드는 '커맨드 앤 컨커(1995년)'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듄’ 세계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작품을 만들자고 결심한 웨스트우드는 ‘최고의 RTS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커맨드 앤 컨커'는 ‘듄’을 벗어나 테러단체 NoD와 지구방위군(GDI) 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진영이 우주에서 떨어진 광물 ‘타이베리움’을 놓고 충돌한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선악구도에 생생함을 불어넣은 존재는 ‘비디오’다. '커맨드 앤 컨커'는 배우를 동원해 촬영한 실사영상을 컷 신으로 사용해 이야기 전달력을 높였다.

보기 좋아진 부분은 외모만이 아니다. '커맨드 앤 컨커'는 각 진영에 특색을 넣어 전략적인 재미를 강화했다. GDI는 좀 더 화력이 세고, 튼튼하지만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반면 NoD는 GDI보다 유닛 가격이 싸고, 빠르지만 방어력이 낮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진영 특색은 RTS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폭을 크게 넓혔다. 생산과 전투, 두 가지로 귀결되는 전투에서 벗어나 내가 가장 강력한 때를 잡아야 되는 ‘타이밍’이라는 개념이 붙은 것이다.


 RTS를 인기 장르로 올려놓은 ‘커맨드 앤 컨커’ (사진출처: gamecloud.net)

'커맨드 앤 컨커'는 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에 웨스트우드는 난이도 높은 싱글 플레이 미션과 신규 멀티플레이 맵 10종 등을 수록한 확장팩 '코버트 오퍼레이션(1995년)'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듬해에 등장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1996년)'은 ‘커맨드 앤 컨커’ 열풍에 불을 붙였다. 더욱 정교해진 유닛 상성과 빠른 진행으로 전투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또한 각 부대를 숫자키로 지정할 수 있는 ‘부대지정’은 많은 유닛을 보다 손쉽게 다루도록 도왔다. 즉, 다수의 탱크를 동원한 진정한 화력전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블리자드도 절치부심해 다시 RTS 전선에 나섰다. '워크래프트: 오크 & 휴먼'의 게임성을 계승, 발전시킨 '워크래프트 2(1995년)'가 등장한 것이다. '워크래프트 2'에서 혁신적이라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장의 안개’다. 각 유닛에 시야를 붙이고, 유닛이 없는 곳은 전에 지나갔던 자리라도 어둡게 처리되는 요소다.

이러한 ‘전장의 안개’는 기습을 가능케 했다. 상대가 방심한 사이 시야가 없는 곳으로 유닛을 보내 덮치는 전술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정찰을 보내 적의 동태를 계속 살펴야 한다. 즉, RTS의 또 다른 대결 요소인 시야 싸움과 정찰이 붙은 것이다.

여기에 IPX를 통해 근거리 네트워크로 다른 사람과 대전할 수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안정적인 멀티플레이 환경 제공에 힘을 기울였다. 여기에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쉬운 기능을 탑재한 맵 에디터를 제공해 커스텀 맵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커맨드 앤 컨커'보다 뜨지는 못했으나 '워크래프트 2' 역시 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주목해야 할 RTS 시리즈로 떠올랐다.


▲ 날개를 펴기 시작한 ‘워크래프트 2’ (사진출처: us.blizzard.com)

1997년에는 ‘커맨드 앤 컨커’의 뒤를 잇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한 수많은 RTS 신작이 등장했다. 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 ‘문명’의 게임성에 속도감 있는 전투를 붙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1997년), ‘워크래프트 3’에 앞서 먼저 4종족 구조를 갖춘 ‘워 윈드(1997년)’, AI를 동원한 자동공격과 방어 개념을 넣은 ‘어스 2104(1997년)’, 6명이 참여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를 지원한 KKnD(1997년)’, RTS와 FPS의 접목을 시도한 ‘배틀존(1998년)’ 등이 유저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한국에도 RTS 열풍이 밀려왔다. 첫 국산 RTS로 손꼽히는'광개토대왕(1995년)'을 필두로 재기발랄한 타이틀이 줄을 이었다. 무려 8개 종족이 등장한 '쥬라기 원시전(1996년)',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충무공전(1996년)'과 '임진록(1997년)', 소프트맥스가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RTS '판타랏사(1997년)' 등 한국형 RTS의 싹이 보이던 시기였다. 특히 '임진록 2: 조선의 반격(2000년)'은 누적 판매량 30만 장을 달성하며 국산 RTS의 대표작으로 손꼽혔다.

동서양을 동시에 정복하다 - RTS 거물 ‘스타크래프트’ 등장

그러나 아직도 RTS계의 최종보스는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커맨드 앤 컨커'를 잡는 것을 목표로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아 진행한 '스타크래프트'는 RTS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테스트 시절 ‘괴랄한 워크래프트 2 우주버전’이라는 혹평을 피하지 못한 '스타크래프트'가 출시와 함께 RTS 시장을 점령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특징은 완벽하게 분리된 종족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진영만 다를 뿐 핵심을 이루는 유닛은 비슷한 기존 RTS와 달리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프로토스, 저그는 외모부터 전술까지 완전히 다른 독립된 3인방이었다. 여기에 각 유닛에 독자적인 기술과 스킬을 붙여 물고, 물리는 치열한 두뇌싸움이 가능케 했다. 12기 이하의 유닛을 한 부대로 묶을 수 있는 부대지정은 한 번에 많은 유닛을 동원하는 러쉬 전술을 가능케 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이러한 콘셉은 RTS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의 폭을 대폭 넓혔다.



 RTS 최대 흥행작으로 기록된 ‘스타크래프트’ (사진출처: wired.com)

'워크래프트' 이후 '디아블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RTS에도 쐐기를 박는다. 확장팩 ‘브루드워(1998년)’를 포함해 전세계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50만 장이 한국에서 팔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와,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탄생시킨 토대를 제공한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이후 '스타크래프트'로 연타석을 치며 승승장구하던 블리자드와 달리 웨스트우드는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창 차기작 제작에 몰두해 있던 웨스트우드에 갑자기 빅뉴스가 터진다. EA가 웨스트우드를 1억 2,200만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인수 자체는 부정적인 이슈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피인수를 용납하지 못한 개발진들이 우수수 빠져나간 것이다. 여기에 인수 직후에 출시한 인텔리전스 게임즈와의 합작 '듄 2000(1998년)'이 혁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임성에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에 밀려 참패를 기록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난관에 부딪친 웨스트우드는 마지막 남은 희망은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1999년)'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신기술로 분류된 복셀 기법을 동원해 공격에 따라 지형지물이 변화하는 사실적인 전장을 구현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나 앞서간 탓일까? 이 복셀 기법으로 인해 요구 사양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이 결정적인 참패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닛이 많아지거나, 다른 유저와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경우 여지 없이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사진출처: cnc.wikia.com)

큰 실패를 경험한 웨스트우드는 코믹한 분위기를 강조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2000년)'을 내놓으며 조금 살아나나 싶었으나 이후에 출시된 ‘커맨트 앤 컨커’ 기반 FPS 'C&C 레니게이트(2002년)'가 대실패를 기록하며 스튜디오 폐쇄라는 쓸쓸한 말로를 걷게 된다.

웨스트우드에서 EA로 넘어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현대전에 가벼운 게임성을 붙인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2003년)'과 시리즈의 정통 후계자를 자청한 '커맨드 앤 컨커 3: 타이베리움 워(2007년)'로 명맥을 이어갔으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타까운 사실은 시리즈의 마지막을 알린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움 트와일라잇(2010년)'이 온라인도, 패키지도, C&C도 아닌 애매한 게임성 때문에 ‘희대의 졸작’으로 기록된 것이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종말을 알린 ‘타이베리움 트와일라잇’ (사진출처: 게임메카)

차세대 RTS 시대 열리다 – ‘토탈 어나이얼레이션’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커맨드 앤 컨커'와 '스타크래프트'를 거치며 성숙기에 접어든 실시간 전략게임 시장에도 ‘혁신’이 과제로 떠올랐다. 자원 수급, 빌드, 생산을 축소하고 분대전투에 집중한 RTT(Real-Time Tactic)는 새로운 전략 게임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소수 유닛 전투에 집중한 '미쓰 (1997년)'를 시작으로 '토탈 워(2000년)', '그라운드 컨트롤(2000년)', '월드 인 컴플릭트(2007년)' 등이 RTT의 명맥을 이었다.

RTS에서 떠오른 부분은 3D다. 기술혁신이야말로 게임업계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 것이다. 첫 3D RTS로 기록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1997년)'을 만든 크리스 테일러의 생각도 그러했다. 평소 '커맨드 앤 컨커'를 즐겨 했던 그는 기존까지 2D에 머물러 있던 RTS에 3D 시대를 열어보자고 결심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겼다. 여기에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린 메탈과 에너지, 2가지 자원을 사용하는 ‘듀얼 자원 시스템’으로 ‘많이 모으고, 많이 생산하기’로 한정된 RTS에 색다른 경제관념을 제시했다. 묵직한 기계병기와 압도적인 그래픽 무장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차세대 RTS’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작품으로 기록됐다.



 3D RTS 시대를 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사진출처: portingteam.com)

동시대에 출시된 '다크 레인(1997년)'은 정교한 AI로 눈길을 끌었다. 적의 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은 유닛이 스스로 수리점에 가서 체력을 회복하거나, 적을 추격하다가 놓친 경우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등, 매 상황에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유닛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3D로 지형을 구축해 고저차가 있는 전장을 구축하고, 한층 정교해진 웨이포인트 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1세대 RTS가 가진 단점을 보완해냈다.



 정교한 AI로 눈길을 끈 ‘다크 레인’ (사진출처: uvlist.net)

그로부터 2년 후, 신생 개발사 렐릭이 드디어 일을 낸다. 우주를 무대로 풀 3D 그래픽을 보여준 '홈월드(1999년)'가 등장한 것이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과 '다크 레인'으로부터 촉발된 ‘3D RTS’ 시대를 렐릭이 활짝 열어 제친 것이다. 풀 3D를 기반으로 구현된 우주공간에서 거대한 함선을 이끌고 적과 맞서 싸우는 전투를 앞세운 '홈월드'는 '은하영웅전설'과 같은 턴제 게임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겨진 ‘우주전쟁’을 3D에서, RTS로 충분히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



 풀 3D를 기반으로 우주전쟁을 보여준 '홈월드’ (사진출처: .ign.com)

여기에 불을 당긴 것이 바로 렐릭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006년)'이다. '홈월드' 이후 소규모 전투에 특정 지역을 점령하면 자동으로 자원을 얻는 ‘거점점령’을 붙인 '워해머 40K: 던 오브 워(2004년)'로 대성공을 거둔 렐릭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를 통해 색다른 RTS 공식을 제시했다. 분대 단위로 움직이는 유닛과 맵 안에 있는 건물이나 구덩이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전술,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거점을 점령해 다양한 자원을 채취하는 것 등, 매끄러운 운영과 사실적인 전투 2가지 요소를 꽉 잡으며 차세대 RTS 대표 주자로 떠오른다.


 색다른 전술을 제시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사진출처: hookedgamers.com)

RTS가 해결해야 할 2가지 숙제 - 콘솔과 MMO

RTS 시장은 사실상 2000년대에 접어들며 긴 침체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웨스트우드와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제작사 케이프독이 파산에 이르며 선두 개발사가 사라지고, '스타크래프트' 이후 기존 방식에 ‘더 많은 유닛, 더 넓은 전장, 더 다양한 유닛 타입’만 붙인 카피캣 게임이 우수수 쏟아지며 한 단계 더 나아갈 원동력을 잃은 것이다.

4개 종족에 영웅을 육성한다는 RPG 요소를 붙인 '워크래프트 3(2002년)'과 풀 3D 엔진을 탑재한 '에이지 오브 미솔로지(2002년)',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 '스타크래프트 2(2010년)' 등 유명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만 살아남았다. 1990년대부터 함께 해온 '새틀러', '스트롱홀드', '어스', '슈퍼머시' 시리즈도 명맥을 이었으나 시장을 환기할 색다른 IP의 출연은 없었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만든 크리스 테일러가 광활한 맵을 필두로 내세운 '슈프림 커맨더(2007년)'를 들고 나왔으나 당대 상용화 PC로는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랙이 심해 흥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워크래프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스타크래프트 등 유명 IP만 살아남았다 (사진출처: softonic.com, 게임메카)

RTS에는 고질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콘솔’이다. RTS만큼 고도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장르는 없다. 유저 혼자 자원도 캐고, 건물을 지어 유닛도 생산하면서 싸움이 일어나면 전투도 해야 된다. 이 모든 것을 패드로 하라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PC라는 특정 플랫폼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RTS 시장에도 아쉬운 점으로 다가온다. 콘솔 RTS는 현재도 개발자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한 답이 명확히 제시되는 날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RTS 시장에도 또 한 번 대격변이 일어나리라 예상한다.

RPG 이후 대세로 떠오른 MMO에 대한 고민도 이어진다. 수십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격돌하며, 각 유저의 행동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MMO는 한정된 지역과 자원을 두고 싸우는 정통 RTS 방식으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분야다.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는 15명에서 최대 500명이 대결하는 MMORTS '소버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2003년에 전면 중단했다. RTS와 온라인 RPG의 결합으로 주목을 받았던 '택티컬 커맨더스(2001년)' 역시 높은 진입장벽과 낮은 완성도 등으로 한계를 보이며 서비스 중단에 이르렀다.

콘솔과 MMO, 큰 벽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RTS는 가능한 범위부터 조금씩 색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와 같이 분대전투를 기반으로 한 것 외에도 ‘수집, 건설, 전투’로 이어지는 정통 RTS에도 변화의 물결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RTS에 육성 및 탐험 요소를 접목한 '신스 오브 더 솔라 엠파이어(2009년)'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접목한 '아크론(2011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침체된 RTS계를 다시 한 번 뒤흔들어줄 신작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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