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장르열전] 캐릭터를 클릭하면 소설책이 펼쳐진다, 어드벤처 게임

/ 1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과정은 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강조한 다른 장르와 달리 어드벤처 게임은 게이머를 철저히 제 3자인 ‘독자’의 위치에 둔다. 개발자가 짜놓은 치밀한 장치를 따라가 준비된 결말을 보는 것. 어드벤처 게임이 싱글플레이 중심에, 자유도가 낮은 이유 역시 ‘정해진 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이야기를 읽는 것’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확장성은 무한하다. 같은 어드벤처라 해도 소재, 배경, 주인공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라진다. 추리물 '역전재판'과 공포물 '암네시아', 판타지물 '젤다의 전설'은 모두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큰 틀에 묶인다. 즉, 어떤 것을 주제로 만드냐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어드벤처 게임의 초창기, 읽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이 되기까지

역사상 첫 어드벤처 게임은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1979년)'다. 프로그래머이자 동굴 탐험가로 활동한 윌 크라우더는 본인의 동굴탐사기에 엘프나 드워프, 마법과 같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붙였다. 위의 말만 듣고 눈앞에 거대한 동굴이 펼쳐지는 게임을 떠올렸다면 곤란하다. '콜로셜 케이브 어드벤처'는 모든 것이 텍스트인 게임이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주변 풍경과 주인공의 처한 상황, 해야 할 일을 서술하는 ‘글’이 전부다. 플레이어가 할 일은 필요한 명령어를 입력해 다음으로 넘기는 것이다.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는 ‘텍스트 어드벤처’ 영역을 발굴한 작품이다.


▲ 모든 진행이 글로 이뤄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사진출처: giantbomb.com)

어드벤처 게임을 향한 열망은 점점 커져갔다. MIT 컴퓨터 과학 연구소에 있던 데이비드 레블링과 마크 블랭크를 중심으로 설립된 인포콤은 아르파넷을 통해 퍼지며 인기를 끌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조크(1977년)'의 상용화에 나섰다. ‘조크’ 시리즈는 어드벤처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조크 1: 더 그레이트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1980년)'는 스토리를 읽고, 게임 속 세계를 돌아다니며 오브젝트를 찾아 퍼즐을 푸는 현대 ‘텍스트 어드벤처’의 틀을 완성했다.

인포콤은 자사의 게임을 ‘인터랙티브 소설’이라 부를 정도로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사이 한 켠에서는 다른 영역이 화두에 올랐다. 1인 기업 ‘온-라인 시스템(On-Line Systems)’을 창립한 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지내던 켄 윌리암스는 아내 로베르타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게임 제작에 도전한다. 이 때 둔 신의 한 수가 바로 ‘그래픽’이다. 글을 읽는 ‘텍스트 어드벤처’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켄 윌리암스는 플레이어가 직접 볼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출시된 '미스터리 하우스(1980년)'는 그래픽을 사용한 첫 번째 어드벤처 게임이다. 검은 화면에 하얀 선으로 그려진 간단한 디자인이었지만 게이머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글만 읽었던 어드벤처 게임에 눈으로 보는 그래픽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살인자가 모든 사람을 죽이기 전 저택 안의 보물을 찾아라’라는 스토리는 어드벤처 게임의 보편적인 소재 중 하나인 ‘집 탐색’과 ‘보물찾기’로 자리잡았다. 켄 윌리암스는 ‘단서 및 물품을 찾아 퍼즐을 해결하며 스토리를 읽는 게임’을 통틀어 ‘어드벤처 게임’이라 부르며 장르 이름을 확립했다.


▲ 그래픽 어드벤처 시대를 연 ‘미스터리 하우스’ (사진출처: giantbomb.com)

어드벤처 게임의 황금기, 전통강자 시에라 온라인 등장

'미스터리 하우스'는 80,000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어드벤처 게임 중에는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본 켄 윌리암스는 IBM의 투자를 받아 본인의 회사 ‘온-라인 시스템’을 게임 개발사로 바꿨다. 어드벤처 게임의 대표주자, 시에라 온라인이 그 주인공이다.

시에라 온라인은 ‘퀘스트’ 시리즈로 어드벤처 게임 중심에 섰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킹스 퀘스트(1983년)'다. ‘대번트리’ 왕실의 모험을 그린 '킹스 퀘스트'는 윌리암스 부부가 함께 만든 역작이다. 로베르타 윌리암스는 마법이 살아 숨쉬는 세계, 매력적인 캐릭터, 탄탄한 스토리를 엮어냈다. 켄 윌리암스는 컬러 그래픽을 기반으로 3인칭 시점에서 캐릭터를 지켜보며 행동을 지시하는 UI를 구축했다. IBM PC 외에 다양한 기종으로 출시된 '킹스 퀘스트'는 어드벤처 게임을 대중적인 장르로 끌어올렸다.


▲ 탄탄한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던 ‘킹스 퀘스트’ (사진출처: venturebeat.com)

'킹스 퀘스트' 후에도 시에라 온라인은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영원한 루저 ‘로저 윌코’의 코믹한 스토리를 풀어간 '스페이스 퀘스트(1986년)', 성인 어드벤처 게임의 장을 연 '레저 슈트 래리(1987년)' 시리즈, 전직 경찰이 제작진으로 참여해 화제에 오른 '폴리스 퀘스트(1987년)' 등이 있다.

시에라 온라인이 세운 가장 큰 업적은 어드벤처 게임의 정석인 ‘포인트 앤 클릭’을 정립한 것이다. ‘실제로 캐릭터를 움직여 오브젝트를 클릭해 조작한다’는 아이디어는 플레이어의 시야를 넓혀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살렸다. 여기에 성인물, 추리,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를 탄탄한 스토리로 진중하게 풀어가며 ‘애들 공부를 방해하는 장난감’ 수준이었던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180도 뒤바꿔놨다.

앞서 소개한 '미스터리 하우스'는 일본에서만 30,000장이 팔렸다. 즉, 일본에도 ‘어드벤처 게임’에 대한 니즈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8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도 어드벤처 게임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일본은 지역 특성상 ‘텍스트 어드벤처’가 성공하기 어렵다. PC보다 콘솔게임이 강하며, 키보드 사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에 문자입력을 생략하고 준비된 명령 중 원하는 것을 고르며 진행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 '훗카이도 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1984년)'가 이런 조작방식을 채택한 첫 번째 일본 어드벤처 게임이다. 제작자 호리이 유지는 '포트피아 연속 살인 사건(1983년)', '카루이자와 유괴 안내(1985년)'로 이어지는 ‘호러 미스터리 3부작’으로 일본에 어드벤처 게임의 가능성을 알렸다.

그러나 선택지 중 맞는 것을 고르는 방식은 콘텐츠 소모 속도에 불을 붙였다. 즉, 개발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유저들이 재빠르게 게임을 깨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곳을 여행하며 적과 싸우거나, 캐릭터를 키우는 등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요소가 필요했다. 어드벤처와 다른 장르의 융합이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호리이 유지의 '드래곤 퀘스트(1986년)'와 팔콤의 대표작 '이스(1987년)'는 어드벤처와 RPG의 만남을 보여줬다. 닌텐도의 간판 '젤다의 전설(1986년)'은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링크의 모험’이라는 주제 하나로 묶이는 짜임새 있는 게임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어드벤처 흥행신화 루카스아츠, 인디아나 존스와 룸 그리고 원숭이 섬의 비밀

시에라 온라인은 80년대 중반까지 어드벤처 게임의 독보적인 개발사로 자리잡았다. 깊이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는 물론 그래픽, 애니메이션, 배경, 컷신(cut-scene)에 이르기까지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기 위한 기술개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러한 시에라 온라인에 도전장을 내민 초짜가 있었다. 1987년에 혜성같이 등장한 루카스아츠(당시 루카스필름 게임즈)가 그 주인공이다.

시작은 작은 발상이었다. 루카스아츠 개발자, 론 길버트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이 게임이 바로 루카스아츠의 첫 어드벤처 게임 '매니악 맨션(1987년)'이다. '매니악 맨션'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조작이다.

'매니악 맨션'은 어드벤처 게임 최초로 마우스를 사용했다. 단어를 일일이 입력하지 않고 마우스로 찍기만 해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눈으로만 보던 게임 속 장치를 만져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포인트로 손꼽혔다. 루카스아츠는 ‘마우스’를 사용한 직관적인 조작으로 손맛과 편의성, 2마리 토끼를 잡았다.


▲ 손맛과 편의성을 동시에 잡은 ‘매니악 맨션’ (사진출처: lucasstyle.com)

루카스아츠가 제작한 어드벤처 게임은 기존에 없던 2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앞서 말했던 ‘마우스 조작’ 다른 하나는 ‘멀티 엔딩’이다 '매니악 맨션'은 어드벤처 게임 중 처음으로 여러 캐릭터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주인공 ‘데이브’는 물론 악기를 다루는 ‘시드’, 읽기 능력을 가진 ‘웬디’ 등 캐릭터 7종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캐릭터를 바꿔가며 퍼즐을 푸는 것이 ‘매니악 맨션’의 진행 방식이다. ‘1인 캐릭터가 한 가지 엔딩을 본다’에 그쳤던 어드벤처 게임의 볼륨을 확장한 것이다.

시에라 온라인이 뼈대를 만들었다면 루카스아츠는 여기에 살을 붙여 현대 어드벤처 게임을 완성했다. '매니악 맨션'으로 어드벤처 시장을 강타한 루카스아츠는 히트작을 연이어 출시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년)'은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한 만큼 탄탄한 스토리가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부분은 ‘IQ 스코어’다. 퍼즐 풀기 등 게임 내 행동을 점수로 환산한 ‘IQ 스코어’는 엔딩을 본 뒤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축적된 점수가 높을수록 다음 회차 때 풀 수 있는 퍼즐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에는 적과 맞서 싸웠던 구간을 2회차 때는 퍼즐을 풀어 넘어가는 방식은 ‘리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높였다.

'원숭이 섬의 비밀(1990년)'은 ‘날카로운 유머’로 어드벤처 팬들을 휘어잡았다. 유령해적 ‘리척’에게 잡혀간 여자친구 ‘일레인’을 구하기 위한 주인공 ‘가이브러시 스립우드’의 여정을 그린 '원숭이 섬의 비밀'은 유쾌한 퍼즐로 어드벤처 팬을 사로잡았다.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입냄새가 심한 죄수에게 ‘박하사탕’을 먹이고 대화를 진행한다는 식이다.

이 '원숭이 섬의 비밀'의 압권은 ‘칼싸움’이다. ‘칼’이 아닌 ‘욕’으로 싸우는 ‘해적들만의 칼싸움 비법’을 단서 없이 여러 욕을 던지며 혼자 풀어야 한다. 이 외에도 잔인하지만 사람가죽을 벗겨 땅에 있는 구덩이 위에 덧씌우고, 그 위를 점프해 절벽에 오른다는 기괴한 상상력이 동원됐다.




▲ 루카스아츠를 인기덤에 올려놓은 ‘인디아나 존스(상)’과 ‘원숭이 섬의 비밀’

정통 어드벤처 여러 갈래로 진화하다

다른 장르에 없는 어드벤처 게임의 강점은 강력한 스토티텔링이었다. 대사 하나하나를 읽어가며 독서하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초기 어드벤처 게임 개발자가 ‘developed’보다 ‘Written’을 사용한 것 역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스토리’는 어드벤처 장르만의 강점으로 머물지 않았다. 그래픽과 연출력이 발달하며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것이다. 이에 RPG, 슈팅 등 다른 장르에서도 스토리텔링이 강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90년대 중반부터 액션이 주류로 떠오르며 상대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의 위상은 낮아졌다.

따라서 어드벤처 게임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장르와 차별화된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야 했다. 트릴로바이트의 '7번째 손님(1993년)'은 인터랙티브에서 답을 찾았다. CD가 플로피디스크보다 뛰어났던 부분은 단지 ‘용량’만이 아니다. ‘프리 렌더링’을 통해 특정 행동을 하면 전에는 볼 수 없던 이미지나 짧은 영상이 나타나는 효과를 사용할 수 있었다. 화목한 노부부의 사진이 해골을 촬영한 섬뜩한 모습으로 바뀌는 식이다. 기술혁신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 '7번째 손님'은 2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 인터랙티브 시대를 연 ‘7번째 손님’ (사진출처: thealmightyguru.com)

시안 월드의 '미스트(1993년)'는 스토리 비중을 줄이고 퍼즐을 크게 늘리며 어드벤처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기존 어드벤처의 주는 스토리였으며 퍼즐은 다음을 보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미스트'는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는 머리를 싸매가며 각종 퍼즐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어 공략하는 재미를 살렸다. 여기에 3D 그래픽에 1인칭 시점을 토대로 게임을 제작해 플레이어를 순식간에 게임 속 세계로 끌어들였다. '미스트'는 약 9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심즈(2000년)'가 등장하기 전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로 손꼽혔다.


▲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스트’ (사진출처: giantbomb.com)

일본에서도 어드벤처 게임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 중심은 공포다. 호러 어드벤처의 시작을 알린 '어둠 속의 나홀로(1992년)'을 토대로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강렬한 캐릭터 ‘시저맨’을 앞세운 '클락 타워(1995년)' 살인자 아버지와 그를 막는 딸의 심리전을 그린 'D의 식탁(1995년)', 좀비 호러의 시작을 알린 '바이오 하자드(1996년)', 심리공포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일런트 힐(1999년)'은 모두 호러 어드벤처를 표방하고 등장한 게임이다.

한국에서도 공포 어드벤처 게임이 등장했다. 1997년 문화부가 선정한 ‘이달의 우수게임’으로 선정된 '모비드'는 한국에서 제작된 첫 번째 3D 어드벤처 게임이다. '제피(1999년)'는 엑소시즘과 같은 초자연현상을 표현한 역동적인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일부 작품을 토대로 태동된 국산 호러 어드벤처는 '화이트데이(2001년)'에서 정점을 찍는다. '화이트데이'는 ‘머리귀신’으로 대표되는 충격적인 비주얼과 국악을 테마로 제작된 배경음악으로 극도의 공포심을 조성했다.

이처럼 어드벤처 게임은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문제는 '미스트' 성공 이후 수많은 카피캣 게임이 등장하며 퍼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즉 ‘스토리를 즐긴다’는 정통 어드벤처 게임의 개념이 흐릿해졌다. 여기에 시에라 온라인과 루카스아츠 모두 어드벤처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손을 뻗치며 장르를 이끌어갈 리딩 기업으로서의 영향력이 줄었다. 루카스아츠 최고명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림 판당고(1998년)', 과학문명과 마법세계, 완전히 다른 두 공간을 치밀하게 표현한 '더 롱기스트 저니(1999년)' 등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으나 잠시 반짝할 뿐, 예전과 같은 황금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 ‘더 롱기스트 저니’(좌)과 ‘그림 판당고(우)’ (사진출처: gamespot.com, moddb.com)

이에 어드벤처는 다른 장르로의 파생을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FPS와 함께 대세를 이룬 ‘액션 어드벤처’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액션 어드벤처의 서막을 연 주인공은 섹시한 여전사 ‘라라’를 앞세운 '툼 레이더(1996년)'다.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매 단계마다 진행하는 퀘스트, 문제를 해결하는 퍼즐 등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요소에 적과의 전투를 더해 박진감을 더한 것이다.


▲ 여전사 ‘라라’를 앞세운 ‘툼 레이더’ (사진출처: tombraiders.net)

어드벤처 게임이 가진 매력,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

어드벤처 게임의 위상은 낮아졌지만, 이를 추구하는 게임과 게이머는 여전히 존재한다. 어드벤처만큼 플레이어를 사색에 잠기게 하는 장르는 없다. 스토리가 좋은 RPG나 FPS도 있지만 어드벤처는 진행과 동시에 이야기를 즐기며 그 자체에 빠져든다. 퍼즐을 풀기 위해 몇 시간을 붙잡고 앉아 있는 이유 역시 ‘스토리 안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러한 속성은 ‘추리’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이의 있소’로 유명한 '역전재판(2001년)'은 법정과 영매라는 서로 동떨어진 소재를 엮은 독특한 콘셉과 무고한 피고인의 누명을 벗기고 진짜 범인을 잡는다는 진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추리 어드벤처 게임은 물건을 직접 만지는 터치 스크린이 장착된 NDS와 환상의 호흡을 이뤘다. 수수께끼를 풀며 사건의 해답을 찾는 '레이튼 교수(2007년)'과 NDS를 세로로 세워 좌우 화면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인터페이스로 눈길을 끈 '호텔 더스크의 비밀(2007년)' 등이 자리했다.


▲ 이의 있소! 추리 어드벤처의 대명사 ‘역전재판’ (사진출처: blogs.yahoo.co.jp)

서양에서도 추리 어드벤처 수작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수십 가지로 갈라지는 스토리와 섬세한 그래픽으로 호평을 받은 '헤비 레인(2010년)', 페이셜 캡처로 잡아낸 캐릭터의 미묘한 표정변화까지도 단서로 사용하는 치밀한 게임성을 갖춘 락스타 게임즈의 범죄 수사극 'L.A.느와르(2011년)' 명탐정 셜록 홈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실적인 탐사가 돋보이는 '셜록 홈즈: 크라임 앤 퍼니시먼트(2014년)' 등이 추리 어드벤처 게임의 명맥을 잇고 있다.


▲ 락스타 게임즈의 범죄 수사극 ‘L.A. 느와르’ (사진출처: 게임메카)

그러나 시장은 어드벤처 게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게임산업이 발달하며 장르의 구분은 점점 모호해졌다. 앞서 말한 액션 어드벤처 외에도 RPG나 FPS에도 어드벤처 요소를 가미한 게임이 늘어났다. 여기에 빠른 진행에 익숙한 게이머들이 많아지면서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인기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타 장르에 비해 시장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됐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어드벤처 게임은 대형업체보다는 중소 개발사 위주로 흘러갔다.

그 와중 기대 이상의 수작이 등장해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플래시게임으로 시작해 PC, 스마트폰까지 진출한 '머쉬나리움(2009년)', 흑백으로 구현된 몽환적인 그래픽으로 눈길을 끈 '림보(2011년)', 다른 유저를 불러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는 멀티플레이로 잔잔한 감동을 준 '저니(2012년)'는 모두 인디 개발사가 빚어낸 작품이다. 더 새롭고, 기발한 스토리와 퍼즐을 발굴하려는 개발자들의 노력으로 어드벤처 게임은 작지만, 독자적인 영역을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GDC 2013 어워드에서 6관왕에 올랐던 ‘저니’ (사진출처: 게임메카)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