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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메카] 문어발 연애에 경고, 소름 돋는 '그와 그녀와 그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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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아래 기사에는 게임 진행에 <스포일링>이 될 수 있는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미소녀게임을 ‘예쁜 캐릭터가 많이 나오면 된다'로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지만, 의외로 많은 요소들을 충족시켜야 유저들이 만족하는 복잡다단한 장르다. 게임으로써 재미를 갖추려면 시나리오와 원화는 물론, 시스템에서도 차별화를 주어야 하고, 뭐니뭐니해도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히로인의 등장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는 원하는 히로인과 맺어져 첫 캐릭터를 공략하더라도, 유저들은 더 많은 히로인과의 핑크빛 분위기를 즐기며 게임을 섭렵해 나가기 때문이다. 마치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듯이 천천히 모든 히로인을 공략하며 그들의 다양한 반응과 전개를 곱씹는 것이다. 

이렇듯 주어진 시나리오와 시스템 안에서 문어발식(!) 연애를 즐기는 것이 지금까지의 미소녀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그런 ‘당연스러운’ 방식으로 포장을 했지만, 제작사의 명성에 걸맞는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주인공은 니트로플러스가 2013년 선보인 ‘그와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하 토토노)이다.


▲ 상큼상큼 부드러운 게임 표지에 왜 야구 방망이가..? (사진출처: 니트로플러스 공식 사이트)

미소녀게임 시장의 이단아, 니트로플러스

‘토토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제작사인 니트로플러스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할 필요가 있다. 자못 평범해 보이는 게임이었던 ‘토토노’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제작사가 니트로플러스였기 때문이다. 니트로플러스는 플레이어의 멘탈을 부수는 잔혹한 설정과 시나리오로 유명한 미소녀게임 개발사다. 사실상 ‘미소녀게임’이라는 장르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출시작이 어둡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대표작은 ‘사야의 노래’다. 이 게임은 세상의 모든 것이 괴물로 보이는 정신병에 걸린 주인공에게 유일하게 평범한 인간으로 비춰지는 ‘사야’라는 소녀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타이틀로,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서 수없이 오르내린 전력이 있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로 잘 알려진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 전문’ 시나리오 작가 우로부치 겐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 외에는 애니메이션, 소설로도 존재하는 ‘참마대성 데몬베인’이 잘 알려져 있으며, ‘귀곡가’, ‘팬텀 오브 인페르노’, ‘진해마경’, ‘스마가’ 등의 작품을 시장에 내놨다. 이들 역시 ‘사야의 노래’ 못지않은 음울함으로 무장했다. 꿈과 희망, 그리고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내세운 게임은 거의 없다 보니, 업계에서도 니트로플러스는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성향이 강한 회사로 불린다. 

그런데 ‘토토노’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게임들과는 외견부터 다르다. 기본적으로 느와르와 열혈을 우선시하는 니트로플러스의 성향과는 달리 판타지가 없는 아주 ‘평범’한 학원물의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인데, 세부적인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 간단한 줄거리와 캐릭터를 소개한다.

주인공은 평범한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학생 1’과 같은 존재, 신이치다. 신이치는 어느 날 학교 옥상에서 신과 통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녀 ‘무코우 아오이’를 만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소꿉친구이지만 평소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지내던 ‘소네 미유키’의 고백을 받게 된다. 뜬금없이 함께 어울리게 된 세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주로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아오이에게 신이치와 미유키가 사람과 사귀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점점 친밀해진다. 모두가 예상하듯,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 소네 미유키. 상냥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연극부 소속의 학교 아이돌
주인공의 소꿉친구이지만 학교에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알레르기가 심하다


▲ 무코우 아오이. 학교 옥상에서 언제나 핸드폰으로 신과 통신하는 것이 일상

기본적으로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학교 내에서도 붕 뜬 존재다

니트로플러스 게임인지라 삼각관계가 다소 불길해 보이는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매우 소소하고도 평범한 학생들의 연애 이야기가 이어진다. 평범한 남학생이었던 주인공은 사소한 계기로 두 히로인과 친해지게 되고, 끝에 가서는 둘 중 한 명과 연인이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히로인과도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유행이 지난 지 오래되었지만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으로서 정석적인 구도임에는 틀림없다.




▲ 공식 일러스트만 보면 정말 평범한 연애의 표본이다


▲ 뭐 이런 서비스 컷도 있고...

하지만 니트로플러스가 어떤 회사인가. 앞서 설명했듯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 유저들이 치를 떨 정도로 잔혹한 설정과 시나리오를 선보인 회사다. 그렇다면 ‘토토노’에는 어떤 기믹이 숨어있을까?

‘메타게’와 ‘얀데레’가 남긴 강렬한 인상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많은 유저들의 예상대로 '토토노'는 결코 평범한 학원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보기 드문 ‘메타게’라는 장르를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여기서 메타게란 ‘메타픽션(metafiction)’이라는 단어가 기원이 되는 장르다. 소설이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이것은 소설이다’라고 말하거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소녀게임에서는 게임 내부의 캐릭터가 게임 밖의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메타게'를 표현하곤 한다. 

보통 미소녀게임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과, 수많은 여성 캐릭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애초부터 메타게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게임 속 캐릭터들은 철저히 주인공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플레이어를 인식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게임 속 캐릭터가 플레이어를 인식하는 순간 ‘환상’이 깨지기 때문에, 메타게를 도입하는 미소녀게임은 그리 많지 않다. 몇 없는 작품 중 대표 타이틀을 꼽자면 ‘취작’과 ‘Ever17’ 정도다.

다시 ‘토토노’ 이야기로 돌아가면, 니트로플러스는 이 메타게라는 장르를 이용해 충격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캐릭터가 ‘토토노’가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한 후 마음대로 게임의 내용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 풋풋하게 연애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게임을 바꾸는 주체는 소꿉친구 캐릭터인 소네 미유키다. ‘토토노’를 시작하면 1주차에 바로 소네 미유키를 공략할 수 있는데, 2주차부터 무코우 아오이 공략 루트가 열린다. 일반적인 미소녀게임이라면 둘 다 공략해도 별 큰 문제가 없을 테니, 플레이어들은 안심하고 무코우 아오이와도 시간을 함께 보냈을 것이다. 어차피 중요한 분기가 왔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무코우 아오이를 공략한 후 2주차가 끝나는 시점에서 소네 미유키가 갑작스레 주인공을 찾아와 ‘1주차에는 날 선택했는데, 왜 지금은 아오이를 골랐어?’라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는 이건 주인공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지를 고른 플레이어의 잘못이라며 야구방망이로 주인공과 무코우 아오이를 살해한다.


▲ 버젓이 게임하다가 이런 화면을 볼줄은

더 충격적인 연출은 그 이후다. 소네 미유키가 플레이어가 정말 자기만 바라볼 수 있도록 게임을 바꿔버리겠다고 외친 후, 게임은 갑자기 강제 종료된다. 뒤이어 자동으로 재실행되면서 도스 화면이 등장하는데, 그 시점에서 무코우 아오이와 관련된 세이브 데이터가 모두 지워진다.

그리고 게임은 3주차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플레이어는 거의 모든 권한을 상실한다. 게임을 저장하고 불러오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게임을 켜는 순간 강제로 시나리오 모드에 진입되어 갤러리를 통한 CG, 음악 감상도 불가능하다. 소네 미유키는 끊임없이 주인공에게 선택지를 강요하며 선택이 바뀌면 플레이어를 향해 ‘저번과는 말이 다르네?’라고 반응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를 고를 때까지 같은 질문을 무한 반복하기도 한다.


▲ 상단은 정상적인 UI, 하단은 소네 미유키가 게임을 바꿔버린 후 변한 화면

'토토노' 플레이 내내 소네 미유키는 플레이어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여준다. 무코오 아오이가 게임 속으로 복귀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소네 미유키는 플레이어를 놓아줄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에 ‘얀데레(사랑하는 사람을 해할 정도로 집착하는 스타일의 캐릭터를 일컫는 말)’ 타입의 캐릭터가 유행하던 때라 이런 설정을 넣은 것 같은데, 겪어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


▲ 순애보가 주제라더니... 왜 혈흔이 낭자하는가

선택의 무게를 느끼는 게임을 만들었다

니트로플러스는 어째서 이러한 연출과 시스템을 만든 것일까? 이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우선 ‘토토노’의 장르인 ‘Alternative ADV’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번역하자면 ‘대안 ADV’인데, 삼각관계와 메타게가 공존하는 미소녀게임에서 ‘대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시나리오 라이터 ‘시모쿠라 바이오’
[Alternative]에는 [양자택일]이나 [대체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어떤 히로인을 선택하는가, 플레이어가 진심으로 고민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의미로 이러한 장르명을 붙였습니다. (중략) 어느 히로인을 선택할지 고민 끝에 [이 결과로 좋아]라고 플레이어가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되고 싶습니다.

위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토토노’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좀 더 무겁게 만드는 게임이다. 여느 미소녀게임하듯 여러 캐릭터를 동시에 공략하고, 분기점에 다다랐을 때만 고민한다면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소네 미유키와 무코우 아오이를 공략하려 한다면 둘 중 하나는 사라져버린다. 즉, 무조건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토노’도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충격적인 연출도 어디까지나 게임의 주제인 ‘순애보’를 부각시키고 유저에게 감정이입을 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다만, 연출은 연출대로 즐기고 제작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면 ‘토토노’라는 게임을 150%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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