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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상가 탐방기 '아키하바라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손에서 쇼핑백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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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 반드시 찾아가는 곳으로 3군데가 꼽힌다. 오사카성과 도쿄타워, 그리고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다. 아키하바라는
카메라와 가전제품으로 무한한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한편 우리나라 보따리 장수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라디오 회관과 사토무센, 이시마루 전기 등으로 시작해 지금은 거대한 상점가로 발전한 아키하바라. 이곳은 지금 수십 년
동안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덴덴타운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아키하바라를 찾는 사람의 수가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많은 체인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중고품 매장이나 오타쿠 매장이 들어서는 형편이다. 아키하바라의 고통은 우리나라의 용산이 겪고 있는 문제와 닮은꼴이다.
불황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오사카의 덴텐타운과 마찬가지로 경기불황과 미국 9.11테러, 은행의 천문학적인 적자 등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발길을 결정적으로 집으로 되돌리게 한 것은 ADSL과 양판점, 대형 체인점 등이다. ADSL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호황을
맞은 인터넷 쇼핑몰은 값과 상품의 다양성에서 아키하바라를 압도하며,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배달까지 해주어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게다가 많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등장해 매장마다 고유한 특징이 사라진 대신 대형 매장이나 싼값으로 승부하는 매장만이 살아남았다.
제품 하나 하나의 물건값을 보고 흥정할 수 있도록 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아키하바라는 용산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말에 아키하바라
상점가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서 쇼핑백을 발견하기란 여간해서 어렵다.
JR 아키바하라 역 앞 광장. 주말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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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불티나게 팔리던 핸드폰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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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윈도우 XP 홍보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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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도 덴덴타운과 마찬가지로 가전제품 매장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오타쿠 상점이 들어서고 있다. 대형 체인점이던 '토미히사무센'이
문을 닫았는가 하면 가장 큰 가전제품 체인점이던 '로켓트'가 본점을 제외한 나머지 매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하지만 동인지, 캐릭터
상품, DVD, 성인만화 등을 파는 매장은 갈수록 늘고 있다. 아키하바라에서 3년 째 일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K씨(이름 밝히면
안될까?)는 "이곳은 살아남기 위해 덩치가 큰 매장이 작은 매장을 흡수하고 있다. 장사가 너무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매장
수를 더 늘리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지난 1년 동안 직원은 그대로 둔 채 매장만 2배로 늘렸다"라고 밝힌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무조건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가전제품이나 완성형 PC 매장은 설자리를 잃었지만 PC 부품 전문매장과
DVD 매장, 디지털 카메라, 홈시어터 매장은 큰 호황을 맞고 있다. 새로운 유행이 아키하바라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곳도
주인이 바뀔 뿐,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낙후된 가전제품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재개발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아키하바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인 '라디오 회관'.
가전제품의 종합 전시장이었지만 지금은 3층을 통째로 만화전문점
K북스에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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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발매한 성인용 게임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몇 분만에 매진되자 허탈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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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가전제품 체인점이었던 LAOX 소프트관 봄점의 입구.
이곳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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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최초의 전문 오타쿠 상점이었던 게이머즈.
지금은 경쟁상대가 많아져 입지가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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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2의 기대작이었던 '메탈기어 솔리드 2'의
데모를 상영하고 있는 매장.
한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와는 조금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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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로켓트 센터 간판.
아래 부분에 보이는 회색 지붕이 이 간판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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