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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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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게임의 역사 ①
태동기

PC게임의 역사 - ① 태동기

우리는 지금 풀 폴리곤으로 제작되어 이제는 가상현실의 경지에 이른 게임을 하면서 살고 있다. 또한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온가족이 함께 게임방송을 시청하고 게임방에가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왔다. 게임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작들이 한시대를 풍미하며 게이머들의 머리에 각인되어왔으며 어떤 작품은 지금까지 시리즈로 이어져 새로운 기술로 당시 보여주지 못한 많은 표현을 게이머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까지 어떤 PC들이 존재했었고 어떤 게임들이 있었는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IBM이전의 PC, 애플과 MSX

PC게임이 나오기전 게임은 지금 들으면 당연한 듯 들리겠지만 세계최초의 가정용게임기인 아타리에서 만들어졌다. 70년대에는 컴퓨터라는 것이 일반 가정용이 아닌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장부정리를 위한 고가의 기계였기 때문에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던 시기이다.
70년대 중반을 지나 80년대에 들어서 애플 컴퓨터가 개인용 컴퓨터로 보급되고 80년대 아타리 파동이라는 게임계의 대 변혁을 맞이하면서 아타리의 자리를 MSX와 패미컴이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PC게임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컴퓨터 게임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초반은 미국 애플사가 개발한 APPLE ][ 기종과 일본식 PC인 MSX가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 소프트웨어도 미국, 유럽의 제작사는 주로 APPLE ][를, 일본의 제작사는 MSX용 게임을 개발하여 게임 시장을 양분했다.




PC게임의 역사 ①
태동기

초기 PC게임의 태동은 애플에서

애플플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때는 게임을 돌린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애플][기종이 나오고 애플][+,애플//e, 애플IIgs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시스템 용량의 확장과 저장매체의 발전으로 오늘날 롤플레잉게임의 양대산맥이 된 울티마 시리즈와 위저드리 시리즈가 시작하였다. 그러나 애플의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진 보조기억장치의 저속, 저용량이 게임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었고 90년대 들어오면서 애플사는 매킨토시 기종으로 전환되면서 IBM기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애플][e 기본세트



옆 에서본 애플 ][e 화면에는 로드런너 실행중




PC게임의 역사 ①
태동기

애플시리즈의 게임들

APPLE ][용으로 나온 게임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게임들이 고스란히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게임에 장르의 구분 즉 아케이드,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어드벤처라는 4개의 장르가 이때부터 구분뒤기 시작한다. 특히 애플시대에 최고의 장르로 부각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룬 장르가 롤플레잉인데 오늘날 3대 롤플레잉 시리즈라 일컬어지는 울티마, 위저드리, 마이트 앤 매직이 전부 APPLE ][에서 시작된 게임이다. 특히 울티마 시리즈는 최고의 롤플레잉게임으로 뽑히며 롤플레잉의 개념을 확립한 게임으로 울티마 시리즈를 만든 리차드 개리엇은 롤플레잉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칭송 받고 있다(지금은 리니지로 유명한 NC소프트 소속인 것을 보면 세상은 참 재미있다).



울티마1 초기화면


울티마1 게임화면



당시의 리차드 개리엇,
로드브리티쉬의 모습


요즘의 리차드 개리엇,
울타마의 상징인 목걸이는 여전하다

아케이드 부분에서는 이후 페르시아의 왕자의 모태가 되는 ‘가라데카‘가 제작되었으며 영원한 아케이드게임의 명작인 로드런너도 애플시대에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요즘은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는 스포츠도 애플시대에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올림픽을 주제로한 섬머 게임즈(Summer Games)가 바로 그것이다.

올드게이머라면 한번쯤 해봤을 가라데카

시뮬레이션의 탄생은 당시 게이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없이 모자라는 애플의 성능으로는 오늘날까지 고성능을 요하는 시뮬레이션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상상도못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제작사가 있었으니 바로 ‘서브 로직’사이다. 서브로직은 오늘날 비행시뮬레이션의 바이블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선보여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후 오늘날 비행시뮬레이션으로 잘 알려진 마이크로프로즈에서 민항기가 아닌 F-15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일반 게이머를 노리고 만들어진 F-15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서브로직사에서도 F-16,F-18을 게임으로 만들어 내면서 시뮬레이션 장르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애플용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계기판


생각보다 멋진 당시
F-15 정식 패키지

어드벤처는 오늘날 게임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은 모든 조작을 아이콘과 마우스로 해결하지만 당시에는 모든 명령을 모두 타이핑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야 할때 “PUSH BUTTON'을 입력해야 하는 조금은 귀찮은 장르였다. 어드벤처를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회사가 시에라 온라인이다. 역시 어드벤처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킹스 퀘스트, 히어로 퀘스트등의 시리즈를 만들어 내면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국내에서는 언어의 장벽에 막혀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PC게임의 역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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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과 편의성으로 압도한 MSX

1983년 일본에서 컴퓨터 MSX가 첫 선을 보였다. MSX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소프트웨어를 테이프가 아닌 롬 카트리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구동 속도가 느리고 데이터 손실이 쉬운 테이프에 비해 안정성이나 속도 면에서 월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MSX를 마치 게임기와 비슷하게 인식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APPLE 보다 게임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극악의 애플용 플로피드라이브

간편한 MSX의 롬팩시스템

MSX 규격은 가장 기본적인 것과 BIOS만을 공통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다. 즉, 최종적으로 생산되는 기기의 성능과 스펙은 생산업체의 재량에 달린 것이고 소프트웨어 레벨에서의 호환은 BIOS에 준한다는 것 등으로 실제로는 호환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며, 제안된 기본스펙 또한 성능상에 문제가 있었다. 당시 일본의 퍼스널 컴퓨터는 640*200의 해상도가 기본이었다. 그런 와중에 40*24의 텍스트와 256*192의 해상도를 제공하는 MSX의 발표는 그 성공에 의심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이때 채용된 슬롯 개념은 이후 MSX의 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MSX1 기종으로 대우에서 만든 기종

MSX2로 변화되면서 바뀐 것은 MSX 그래픽의 핵심인 VDP가 TMS-9918에서 V9938로 바뀐 것이다. 이로인하여 강력한 VDP커맨드, 512*212(256*212, 512*424)의 고해상도, 동시 256컬러 혹은 512중 16컬러 발색의 그래픽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세세한 기능 향상은 여기서는 제외하겠다. 1988년 MSX2+의 발표. MSX3가 되지 못한 MSX2+로부터 MSX는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MSX와 MSX2의 차이와는 달리 MSX2와 MSX2+의 차이는 새로운 기종에 대한 구매욕을 부추기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소프트업체들 까지도 MSX2+ 전용보다는 기존의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MSX2, 2+ 겸용 소프트웨어 발매에 치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MSX2+ 전용 게임으로서 상품화된 것은 F1 SPIRIT 3D SPECIAL과 LAYDOCK 2 LAST ATTACK 이 두 작품뿐이었다.



MSX의 전성기 MSX 2


MSX의 쇠퇴기 MSX R 터보

당시의 소문으로, MSX를 받쳐주던 든든한 업체중 하나인 코나미는 신 MSX 개발때 아스키에 여러가지 성능향상에 대한 제안을 하였지만 이를 묵살 당했다고 한다. 코나미가 MSX 소프트 개발에서 물러난 것은 이것이 원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MSX덕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룬 코나미가 콘솔게임계로 나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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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의 게임들

초기 MSX의 게임들은 주로 갤러그, 팩맨 같은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이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회사는 지금도 철권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남코사이다.
당시에 아타리 파동이 생기고 가정용 게임기라는 개념이 없어 제비우스 등, 오락실 게임이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남코는 오락실 기판용 게임과 MSX를 병행하면서 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MSX는 APPLE 보다 월등히 높은 스프라이트 기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속도감 있는 비행기 슈팅 같은 아케이드 게임 제작에 용이했다. MSX가 팩맨, 갤러그 등의 성공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자, 후발 주자로 뛰어든 것이 코나미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갤러그


MSX로 성공한 코나미

코나미는 펭귄의 모험을 그린 명작 게임 몽대륙, 하이퍼 올림픽 등을 개발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1985년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쿵푸라는 게임이 최고의 판매량을 올리는 등 큰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코나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뒤이은 1986년 마성전설, 트윈비 등 굵직한 명작 아케이드 게임을 연이어 히트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명 게임제작사로서 자리 매김을 한다.
코나미의 활약상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7월, 유래없는 대용량의 롬팩으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그라디우스를 발매한다.
서사적인 스토리와 획기적인 무기 시스템 등은 이후 슈팅 게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본격적인 대용량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엔 이미 MSX 1의 성능을 대폭 개선한 MSX 2가 발매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게임 제작사가 이를 외면한 채, MSX1 게임을 내놓던 추세였다. 하지만 그라디우스 발매를 기점으로 점차 게임이 고용량, 고급화됨에 따라 MSX2 게임 개발 숫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MSX2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를 띈 1987년 이후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의 대두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고전게임 소개를 하면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첫 메가롬팩 게임 그라디우스


코나미의 명작 쿵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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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성을 무기로한 IMB호환기종의 등장

중대형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성장하며 비즈니스업계을 주 대상으로 삼아왔던 IMB이 애플의 가정용컴퓨터의 성공을 보면서 80년대 처음으로 16비트 컴퓨터를 개인용컴퓨터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MSX나 애플기종이 8비트였음을 생각한다면 단순수치만으로도 2배의성능을 가진 컴퓨터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80년대는 이미 애플기종의 전성기였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고가의 IBM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90년대에 들어와서 폐쇄적인 컴퓨터의 확장성과 구식이 되어버린 8비트의 한계에 다다르면서 IBM은 개방적인 확장성과 16비트라는 이점을 보이면서 빠르게 애플이 가지고 있던 시장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한다.
MSX와 애플이 하나의 회사에서 나오는 고유모델이라는것에 비해서 IBM은 자사의 모든 스펙을 공개해서 IBM호환기종이라는 값싼 컴퓨터를 보급하면서 이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차지하게 된다.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이 주변기기들인데 일반 PC스피커에서 들리던 ‘삑삑’ 소리와는 달리 사운드 카드의 개발로 화음을 들려주면서 게임이 그래픽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신경써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초의 사운드 카드 애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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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시대의 게임들

이때의 게임들은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 보다는 당시에 인기있었던 애플용 게임을 컨버전하는 수준이었다. 이때 나온 게임들이 페르시아의 왕자, YS 1, 라스턴 사가등의 액션게임과 시에라의 퀘스트 시리즈로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이때부터 게임을 접했을 시기라고 생각한다.

IBM기종의 엄청난 성능에 힘입어 단순한 컨버전이 아닌 업그레이드된 방식을 취하게 되는데 90년대 외국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어드벤처 장르가 가장 두두러지는 시대였다.
영문 텍스트를 입력해야 플레이 할 수 있어서 언어의 장벽에 막혀있던 어드벤처가 명령어를 아이콘처리하고 그래픽을 강화하면서 손쉽게 유저들에게 다가왔고 인기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어내어 일반 게이머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수효과로 더욱 잘 알려져있는 루카스 필름의 인디아나존스 3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어드벤쳐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여담이지만 게임잡지라는 것이 존재 하지 않던 시대라서 공략도 부록으로 간단히 되어있는 수준이었다. 필자는 인디아나존스 3를 6개월 동안 사전 찾아가며 플레이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막힌적이 있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컴퓨터 활용지 마이컴에 공략을 편지로 문의한 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답장이 3개월 지나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필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인디 3


루카스 필름의 탄생

이후 애플에서 만들어지던 시리즈들이 IBM으로 제작되면서 게임의 질을 한단계 올리는데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오리진이라는 제작사이다. 오리진에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그래픽과 용량을 선보이면서 게임의 고용량화를 선도하게 된다. 윙커맨더시리즈와 애플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울티마의 최신작인 울티마6가 그 주범(?)인데 이 두 작품은 286 CPU와 640Kb의 기본메모리를 탑재하던 시스템을 가볍게 거부하며 386시스템과 메모리 4M라는 엄청난 용량을 요구하면서 게이머를 울상짓게 만들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때부터 컴퓨터에서 게임이 얼마나 잘 실행되는가에 따라서 업그레이드를 하는 풍조가 시작된 듯 하다.

찬사와 원망(?)을 동시에 들은 울티마 6



펜티엄3와 셀러론은 불과 10년 만에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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