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PC 기종으로 발매된 RTS, ‘스타크래프트’는 현재에도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일명 ‘국민게임’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현재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많은 성공 요소들이 게임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성공 요소가 바로 e스포츠가 아닐까 싶습니다. 99 코리아오픈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팬들 곁을 지키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선수들과 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죠.
▲ 대중적인 e스포츠 종목으로 성장한 '스타리그', 과연 어떠한 길을 걸어왔을까? |
또한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열정 하나로 e스포츠판을 일궈낸 선수들 및 관계자들의 행보는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회자될 만큼 팬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게임메카에서는 ‘스타리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e스포츠의 역사적인 순간과 함께한 선수들의 행보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해봤습니다. 올드 팬들께는 옛날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어린 팬들께는 자신이 몰랐던 ‘스타리그’의 역사를 알아가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해설위원 김태형이 세계 랭킹 1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국내 e스포츠계를 대표하는 해설진으로 손꼽히는 김태형 해설위원, 유독 ‘프로토스’ 종족 특히 ‘캐리어’만 등장하면 평소의 차분한 모습은 버리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김캐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태형’ 해설은 사실 한국인 최초 배틀넷 레더토너먼트 우승자라는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확장팩 ‘브루드워’ 출시 이후부터 배틀넷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한국 게이머들은 이후, 연속으로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며 국내 게이머들의 출중한 실력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 김태형 해설(좌)은 한국인 최초 배틀넷 레더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본명 박창준) 역시 배틀넷 레더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최초 우승자 김태형을 제치고 신주영이 최초 프로게이머라는 수식을 가져간 이유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성공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주영의 가장 큰 업적은 초창기 저그 종족의 전략 및 전술을 정립시켰다는 것이죠. 그러나 99년 6월 군입대 이후, 선수로써의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점이 안타까운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 신주영은 선수 활동 외에도 전략/전술 팁을 전수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
그러나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프로게이머는 바로 쌈장 이기석입니다. 1999년, ‘쌈장’이 등장하는 TV광고를 잊어버린 유저들은 아마 없으리라 예상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전혀 모르는 중장년층들도 ‘쌈장’이라는 별명 하나는 알고 있을 정도로 그 인지도는 상당했습니다. 비록 추후 어뷰징(한 유저에게 점수를 몰아주기 위해 일부러 많은 지인들이 져주는 편법)으로 레더토너먼트의 참가 자격을 따냈다는 불미스러운 이슈에 시달리는 동시에, 게임 외의 방송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스타크래프트 계에서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 이기석은 TV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
이후 많은 국내 프로게이머들의 등장과 PC방을 중심으로 한 폭발적인 파급력으로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유저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PC방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대회 개최도 점차 활성화되었죠.
▲ 스타크래프트의 콘셉이 최대한 반영된 세트와 경기복...; |
그리고 드디어 1999년 10월 2일, 최초의 방송 대회라 할 수 있는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이하 99 PKO)이 개최됩니다. 지금 보면 웃지 못할 우주적 분위기의 방송 세트 및 우주복 슈트의 전설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죠. 당시 선수들은 지켜보는 관중 하나 없는 쓸쓸한 세트장에서 둘만의 혈전을 펼쳤습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전신인 99 PKO의 우승자는 당시에 깜짝 신인으로 등장한 최진우가 차지했습니다.
‘스타리그’ 명칭의 탄생과 푸른 눈의 전사 기욤의 등장
2000년 2월 개최된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는 방송 리그 사상 최초로 ‘스타리그’라는 명칭을 사용한 대회입니다. 또한 지난 대회에서 4강 이상 진출한 선수들에 대한 시드권 배정 원칙이 확립된 리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99 PKO에서 4위 이상을 차지한 선수들은 시드를 받아 별도의 예선 없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자체 제작된 대회용 맵들이 최초로 경기에 상용되었습니다. 현재 ‘스타리그’의 기본 틀이 이 대회를 통해 정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에 사용된 '정글 스토리'는 완성도를 인정받아 추후 네오 버전이 제작됐다 |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인 선수가 우승자로 기록된 대회라는 것이죠.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는 당시 블리자드가 개최한 유일무이한 스타크래프트 세계 대회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유명인사였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그가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북미 및 유럽 등지의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사양세에 접어들 무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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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99 PKO와 다르지 않은 우주적 분위기 물씬 풍기는 경기장... |
▲ 위의 현장에서 우승을 거머쥔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 |
국내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스타일을 소유한 기욤은 단순 빌드싸움에 집중된 국내 선수들의 딱딱한 플레이 방식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매 경기마다 다양한 필살기성 전략을 들고 나와 ‘스타크래프트’의 또 다른 면모를 국내 선수 및 팬들에게 맛 보여줬죠. 또한 맵 및 상대 종족에 연연하지 않고 ‘랜덤’을 선택하는 자신감과 세 종족을 모두 커버하는 출중한 실력으로 ‘제 4의 종족’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탄생시켰죠.
▲ 세 종족 모두 고른 실력을 소유한 기욤은 '랜덤' 종족으로 이름을 떨쳤다 |
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관련 리그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각자의 프로게임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선수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출전을 준비해왔을까요? 물론 이 때 당시에도 선수들의 관리를 담당하는 프로게임단이 창단되어 있었습니다. 1999년 창단된 ‘하나로통신 에이스팀’은 국내 최초로 기업 스폰을 받는 프로게임단으로 기록되어 있죠.
▲ 많은 선수 및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프로게임단이 꾸려질 수 있었다 |
그러나 기업 스폰을 잡지 못한 다수의 팀들은 선수들의 대회 상금과 감독들의 자비를 통해 팀을 이끌어갔습니다. 또 몇몇 선수들은 소속팀 없이 무소속으로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죠. 소위 PC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습을 진행하는 힘겨운 시절이 존재했습니다. 스폰서 없이 혹은 아무런 지원 없이 경기에 매달린 선배 선수들의 공으로 현재 선수로 활동 중인 후배 선수들은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안정적인 연습 환경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죠.
저그 VS 프로토스, 그리고 가을의 전설!
‘프로토스는 가을만 되면 강해진다!’, e스포츠계의 속담처럼 내려오는 이 짧은 격언을 남긴 ‘2000 프리챌배 스타리그’는 국내 최초 게임 전문 방송사 온게임넷에서 최초로 방영한 대회입니다. 해당 대회에서 ‘가림토’ 김동수는 우승을 차지하며 ‘가을’ 자체를 ‘프로토스의 계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김동수가 일궈놓은 ‘가을의 전설’은 추후 박정석, 박용욱, 오영종, 송병구 등의 프로토스 선수들이 가을 시즌에 우승을 차지하며 전설의 계보를 이었습니다.
▲ 게임 전문 채널, 온게임넷에서 첫 방영된 '2000 프리챌배 스타리그' |
▲ 가림토 김동수는 해당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가을의 전설의 서막을 열었다 |
이 ‘가을의 전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임요환입니다. 임요환은 2000년, 한 방 러쉬의 대가 임성춘에게 무너지며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01년 SKY 스타리그에서는 김동수에게 덜미를 잡히고 맙니다. 또한 그 다음 년도인 2002년 SKY 스타리그에서는 박정석에게 또 다시 무릎을 꿇고, 우승을 통해 부활을 노렸던 So1 스타리그에서도 오영종에게 패배했습니다. 프로토스한테 그것도 가을 시즌에만 총 4번의 패배를 경험한 임요환이야말로 ‘가을의 전설’을 이어가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유독 가을만 오면 세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이야기라는 게 좀 서글프다 |
2000년 당시, 스타리그의 판도는 저그와 프로토스, 두 종족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테란 종족은 유일무이한 암흑기 속에서 훗날의 영광을 도모하고 있었죠. 당시 프로토스는 저그의 러커 조이기 후, 무한확장이라는 사우론 전술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보틱스, 템플러, 스타게이트로 나뉘는 다수의 테크는 유연한 테크 변화가 가능한 ‘저그’의 변화무쌍한 유닛 활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낳았죠.
▲ 버로우한 자국이 연탄 구멍을 연상시켜 '연탄 조이기'라는 별칭이 붙은 '러커 조이기' |
이러한 저그들을 상대로 김동수가 제시한 해법은 ‘우직함’이었습니다. 김동수는 초반부터 꾸준히 질럿을 생산해 한정된 라바에서 드론과 병력을 동시에 생산해야 하는 저그의 약점을 공략했습니다. ‘하드코어 질럿러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전략에 김동수는 다소 부족한 노업 질럿의 공격력을 프로브로 보충하며 그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맵 전체를 활보하는 김동수의 질럿들은 그 부지런함 덕분에 ‘농사꾼 질럿’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바 있습니다.
▲ 김동수의 2게이트 하드코어 질럿 러쉬는 최근에도 깜짝 전략으로 활용된다 |
초창기 무한확장 및 병력 생산에만 집중한 ‘사우론 빌드’에서 시작된 저그의 빌드는 추후 병력을 중시한 ‘가난한 저그’와 충분한 드론 수 확보에 집중한 ‘부자 저그’로 나뉘게 됩니다. 드론과 병력을 하나의 건물에서 동시에 생산해야 한다는 종족의 특이성이 빌드의 변화를 불러왔죠. 또한 저그 종족과 역상성 관계에 놓인 바이오닉 빌드가 정착되고 프로토스 선수들의 컨트롤 능력이 날이 갈수록 발달함에 따라 ‘생산’과 ‘확장’에 올인하던 저그 종족에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 가난한 저그의 대명사 '변성철(좌)'와 부자 저그를 지향한 '강도경(우)' |
‘가난한 저그’의 대명사인 변성철은 극단적인 전술을 주로 사용해 상대가 다수의 유닛을 확보하기 이전에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빌드 자체가 도박성이 짙은 탓에 다소 안정적인 ‘부자 저그’ 빌드가 다수 선수들의 지지를 받았죠. 현재 KT 롤스터의 코치로 활동 중인, 강도경은 1가지 유닛만을 생산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유닛들을 조합해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살리는 효율적인 전술을 고안해냅니다. 또한 ‘쌈싸먹기(다수의 병력으로 상대 병력의 사방을 덮쳐 한꺼번에 제압하는 전술)’ 등의 저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전술을 정립시켰죠.
테란의 암흑기를 잠재울 ‘그 분’이 오신다!
2000년도만 해도 ‘스타리그’에 ‘테란’이 머물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리그가 진행되며 차츰 저그를 상대로 한 마린/메딕/베슬 중심의 바이오닉 조합이 자리를 잡으며 영광을 차지할 희망의 빛만 살짝 비치는 정도의 수준이었죠. 그러나 조합 가능한 유닛의 수를 확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다른 종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병력 전진 속도가 느린 테란은 초창기 유저들의 숱한 외면을 받고 말았습니다.
▲ 저그에게 물리고 프로토스에게 치여 설 자리가 마땅치 않던 테란 |
그 사이에서도 ‘우주방어테란’으로 유명한 유병준은 테란의 장점인 강력한 방어력을 앞세워 선 방어 후 공격 방식의 ‘우주방어’ 테크를 완성시킵니다. 또한 김대건은 당시 약체 유닛으로 평가받던 ‘벌처’를 초반 게릴라 전술을 통해 재조명하며 테란의 메카닉 체제를 완성시키는 데에 큰 공을 세웁니다. 여기에 김대기는 초반 서플라이디팟과 배럭스를 활용해 입구를 막아 상대의 초반 공세를 봉쇄하는 효율적인 방어 전술을 선보입니다.
▲ 적절한 입구막기는 초반에 기습 전략에 무너지기 쉬운 테란의 약점을 보완해줬다 |
그러나 ‘테란’의 진정한 전성기는 이 선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됩니다. 앞서 ‘가을의 전설’의 최대 피해자로 소개된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죠. 2001년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임요환은 2001년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장진남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며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의 우승에 주목한 것은 단순히 암울한 종족인 ‘테란’으로 우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결승까지 올라오는 12경기 동안 단 1경기만을 상대에게 내준 경이로운 승률 때문이죠.
▲ 그리고 드디어 2001년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그 분이 오신다 |
또한 임요환의 등장으로 ‘스타리그’는 단순한 게임 대회에서 대중이 함께 즐기는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한층 성장하게 되죠. 임요환은 게임을 좋아하는 소수 유저들의 전유물에 머물렀던 ‘스타리그’를 모든 사람이 관람하며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 장르라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장본인이죠. 임요환의 등장으로 ‘스타리그’는 다수의 팬들과 긍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확보하며 전성기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 임요환을 상징하는 유닛 '드랍쉽', 임요환의 공식 팬까페 별칭 역시 '드랍동'이다 |
특히 저그를 상대로 극강의 실력을 자랑하던 임요환의 승리 전략은 크게 2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다소 느린 속도 때문에 외면 받던 ‘드랍쉽’을 저그의 멀티를 견제하는 데에 활용한 점이죠. 최대 8기의 바이오닉 병력을 탑승시킬 수 있는 ‘드랍쉽’은 강력한 화력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저그의 멀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파괴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 컨트롤 하나에 전투 양상이 변화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
여기에 강력한 컨트롤 능력은 소수 유닛으로도 저그의 다수 병력을 큰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죠. 임요환이 마린 1기로 러커 1기를 상대하는 컨트롤은 당시 블리자들 관계자들까지도 예상치 못한 플레이라고 하는군요.
본격적인 전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스타리그’의 태동기와 임요환의 등장으로 시작된 초기 전성기까지를 기사를 통해 다뤄봤습니다. 주요 내용 및 선수들만 추렸는데도 매우 양이 많아 작성한 필자도 매우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에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대회 및 선수들의 힘으로 ‘스타리그’는 단순한 게임 리그에서 새로운 스포츠 문화로 발전할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습니다. 과연 ‘스타리그’가 앞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오게 될 지, 쓰는 저도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다음 시간에는 ‘임진록’의 주인공들 임요환과 홍진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임이최마로 이어지는 ‘본좌라인’의 형성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2001년 코카콜라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시작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임요환과 홍진호는 결승 이후 시작된 홍진호의 무한 ‘준우승 징크스’, 3년 뒤 다시 펼쳐진 대결에서 벌어진 ‘3연속 벙커링’ 사건 등 주목할만한 이슈를 많이 낳았죠.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한 4명 선수들의 무용담 역시 하나씩 살펴보면 그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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