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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탈컴뱃2` 는 12세, 탈의 땅따먹기 게임은 전체이용가?

옛날 이야기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푸줏간 주인에게 “김가야, 고기 한 근 다오.” 와 “김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라고 한 선비의 고기 양이 서로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수준 높은 게임메카 유저들은 이 이야기의 교훈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고기도 곱다’ 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는 훈훈하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널리 통용될 수 있을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공직에서는 오는 말이 곱다고 원래 줘야 하는 고기보다 더 많은 고기를 주거나, 오는 말이 곱지 않다고 푸대접을 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박스 좋아하는 몇몇 분들은 대놓고 욕 좀 먹어도 싸다. 하지만 사과박스라도 받았으면 차라리 낫지, 받은 것도 없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비난을 받는다면? 그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력의 방향이나 제도가 잘못된 경우이다.

게임계에서는 바로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그 케이스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은 의무적으로 게임심의를 받아야만 하며, 그 심의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게임위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정한 입장에 서야 한다. 사실, 2006년 말 출범 이후 올해 초까지 게임위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최근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이전에 심의등급을 주관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비해 게임위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었고, 고압적인 이미지가 아닌 열린 기관의 느낌을 주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게임위에 반감을 갖는 유저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발단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뤄진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의 테스트 버전과 정식 버전이 내용면에서 거의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급물살을 탄 게임위 비방론은 이어진 ‘아마추어 인디 게임도 게임위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라는 게임위의 발언과 겹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게임위는 게임 심의 과정을 오픈하고 등급 판정 내용을 공개하는 등 여러 모로 이미지 쇄신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지난 4월, 게임위는 게임물등급분류 과정의 공정성을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유저들의 게임위에 대한 모든 불신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인디 게임 심의문제는 일단 넘어가더라도, 과연 게임위가 등급 심의 기준으로 삼는 심의규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사전심의제도는 정당한가? 등급 결정과 게임 분석 과정은 정말로 공정하고 문제가 없을까? 과거 게임들의 등급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게임위가 플랫폼 간 심의규정 적용에 차별을 두는 이유는 뭘까? 마치 댐이 무너지듯 각종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게임물 등급규정과 심의 제도를 되짚어보도록 하자.

게임위는 없으면 안 된다

국내 게임업계의 역사는 몇 년일까? 이 같은 질문에 일부 박식한 게임메카 유저들은 필자도 알지 못하는 고전게임 얘기 등으로 댓글잔치를 벌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국내 게임업계가 적어도 하나의 ‘업계’ 로서 자리를 잡은 시기는 약 20년 정도이다. 아, ‘인베이더’ 나 ‘갤러그’ 등의 게임기 수입 역사까지 치면 20년이 훌쩍 넘어간다.

이처럼 국내 게임업계는 단순히 신생 산업이라고 부르기에는 의외로 역사가 깊은 편이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게임 역사에서 제대로 된 심의제도가 적용된 것은 9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그 전에는 그저 애들 장난감 정도로 취급받았을 뿐이다. 그것도 불과 4년 전까지는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공연예술진흥협의회,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등 심의와는 관계가 없는 비전문기관에서 게임 등급을 심의, 결정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애초에 게임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었다. 게임 산업이 점차 커져가자 여차저차해서 게임물 등급 심의를 맡게 되긴 했지만, 전문성 부족과 업무 태만, 각종 비리 등으로 인해 국내 게임업계를 무법지대로 만들어놨다. 현재 일부 정부부처에서 게임을 마치 유해매채 취급하는 것도 이 시기에 굳어진 이미지이다. 결국 해이한 게임등급관리의 문제는 점점 쌓여만 가다가 ‘바다이야기’ 사건을 통해 폭발했고, 결국 전문성을 갖춘 게임위가 출범하면서 국내 게임계에도 이전에 비해 질서가 잡히게 된다. 이것이 불과 4년 전, 2006년 12월의 일이다.

비전문기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사건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 중 잔인한 대전액션의 대명사이자 미국에서도 수 많은 논란을 일으킨 ‘모탈 컴뱃 2’ 의 국내 심의를 살펴보자. ‘모탈 컴뱃 2’ 는 ‘페이탈리티’ 시스템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대결에서 진 상대편의 목을 자르거나 상체를 뜯어버릴 수 있고, 산 채로 몸을 세로로 쪼개기까지 하는 등 잔혹한 액션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모든 것이 실제 사진으로 묘사되어 있어 더욱 끔찍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이후 수 없는 ‘모탈 컴뱃’ 시리즈가 출시되었지만 2편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게임물 등급 제도 ESRB가 생긴 원인이 ‘모탈 컴뱃 2’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 상대방의 상체를 뽑아버리는 '모탈 컴뱃 2' 의 페이탈리티
단, 이것을 사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게임 실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모탈 컴뱃 2’ 는 국내에서 어떠한 등급을 받았을까? 정답은 ‘12세 이상 이용가’ 이다. 믿겨지지 않지만 분명 12세 이용가를 받았다. 무개념, 뇌물, 직무유기… 각종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결론은 하나, ‘말이 필요없다’ 이다. 그 때의 상황을 최대한 부드럽게 상상해 봤다.

“자, 다음 심사자분 들어오세요. 어디 보자… ‘모탈 콤배트 2’ 라구요?”

“네, 대전격투게임입니다.”

“음, 난 게임은 별로 안 좋아해서.. 게임 보여주세요.”

“네. 여기...”

1분 후.......

“(아이쿠 이거 뭐 이리 어려워? 도저히 못해먹겠네) 캐릭터를 때릴 때 피가 약간 튀는군요. 좀 폭력적이긴 하네요. 이게 전부인가요?”

“네? 아, 네. 그렇죠.”

“그렇군요. 제 등급은요, 12세 드리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물론 이 상황은 100% 픽션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 때의 등급 결정자는 ‘페이탈리티’ 시스템의 존재 유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리 폭력에 관대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페이탈리티’ 시스템을 직접 목격했다면 절대 12세 등급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페이탈리티’ 를 알고도 12세를 줬다면 그건……. 할 말이 없어진다.


▲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

다행히 게임위는 정상적인 기관이었다. 2007년 SCEK는 과거 등급을 기준삼아 ‘모탈 컴뱃 2’ PSN 버전의 등급을 12세로 신청했지만, 게임위는 게임의 ‘페이탈리티’ 시스템을 정확히 파악했고,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내렸다.

다행히 ‘모탈 컴뱃 2’ 의 경우는 재발매를 위해 다시 심사를 받았고, 그에 걸맞는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 게임들이 받은 등급을 살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상당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게임위는 이런 방식으로 등급이 잘못 내려진 게임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현재 기준으로는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 12세, 혹은 15세 판정을 받았다면 청소년오락실 등에 게임을 설치해도 괜찮을까?

이에 대해 게임위 관계자는 “과거 영등위 등에서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물 등급은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다만, 업데이트 등이 있었다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반드시 내용수정신고를 해야 합니다. 반면,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의 경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2006.4.28 제정)의 부칙 제5조(게임물의 등급분류에 관한 경과조치)에 따라 법 시행 후 6개월이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재등급분류를 받도록 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유통 중인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게임물은 모두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을 받은 게임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조치는 현재 상황에서 게임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일 것이다. 과거 10년간 등급을 받은 게임들을 처음부터 죄다 재검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 당시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힘들게 판정을 해 봐야 효율이 떨어진다. 물론 소수의 게임이 재평가를 받지 않은 채 아직도 아케이드 등에서 유통되고 있긴 하지만(유통사가 없어졌거나 하는 이유 등), 어쨌든 과거의 무분별한 등급분류는 게임위의 책임이 아니고, 적어도 게임위 출범 이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심사기준이 그때그때 다르면 못쓰지

현재 게임위는 ‘게임 등급분류 심의규정’ 을 바탕으로 게임의 등급을 심사하고 있다. 등급이 신청된 게임은 크게 두 단계에 걸친 등급심사를 받는다. 먼저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위원이 게임을 분석하고, 이후 심사위원들의 투표를 거쳐 게임의 최종적인 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 게임위의 게임 분석은 단순한 특징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오류까지 잡아내는 섬세함을 보였다

이 등급 결정 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전문위원의 게임 분석이다. 분석 브리핑의 내용이 심사위원들의 게임 이해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게임의 경우 게임 콘텐츠를 전부 경험하려면 몇 주씩 걸리는 경우도 많으며, 숨겨진 요소나 고급 과정, 응용 기능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플레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게임도 있다. 그렇다면 게임위의 전문위원은 게임을 어떠한 방법으로 분석할까?

게임위는 이에 대해 “전문위원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 등 일정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로 선발합니다. 분석은 일반 유저처럼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설명서와 동영상, 게임구조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고려하여 유해성 여부를 검토합니다. 업무메뉴얼을 갖추고 있으며 판단의 신중함을 기하기 위해 정부 검토자 토론과 분과논의를 하고 의견이 다양한 경우 전체 전문위원이 참여하는 포럼을 주2회 개최하는 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 동안의 게임위 게임 분석은 꽤나 정밀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실제로 일부 게임의 경우 일반 유저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 할 만한 허점을 꼬집어내 등급 평가에 반영하는 등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는 2005년 미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GTA: 산 안드레아스’ 의 ‘핫 커피 모드’ 사건처럼 게임 내에 숨겨진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는 잡아내기 어렵긴 하다. 숨겨진 모드 등은 단순히 일반 유저처럼 게임을 플레이해서는 발견해내기 어렵고 프로그램적 분석이 필요하다.


▲ 미국에서도 논란이 된 'GTA: 산안드레아스' 의 핫 커피 모드
이런 건 프로그램 분석을 통해 알아내야 하지만, 사실상 모든 게임을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특별한 몇몇 케이스 때문에 심의를 받는 모든 게임을 프로그램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게임위가 수 백, 수 천명의 조사위원과 프로그램 분석 전문가로 이루어져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인력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일단은 현재 방법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등급을 심사하고, 차후 문제가 발견될 시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100% 적발은 불가능하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 이란 있을 수 없으니...

그렇다면, 전문위원을 거쳐 분석된 게임을 최종 판단하는 심사위원 투표 방법에는 문제가 없을까? 투표는 15명의 심사위원이 진행하게 되며, 대상 업체와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은 심사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영등위 시절의 부정 심의 같은 문제는 일어날 확률이 적다. 기본적으로 심의위원들은 분석된 자료와 게임 브리핑을 받은 후, 심의규정을 바탕으로 각각 등급을 제시하고, 다수결에 따라 최종 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일단 시스템적으로는 공정해 보인다.

문제는 심의규정의 애매모호함이다. 예를 들면 심의규정 11조의 폭력성에 따른 15세/청소년이용불가 구분법은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 게임분류 심의규정 11조의 15세 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 구분법

이 조항 중 대결 요소 항목을 제외하면 그 요소가 과도한가 혹은 경미한가(줄 친 부분)를 가지고 등급을 판단하며, 그 기준이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심사장의 분위기, 심사 당시의 사회적 화제 등에 따라 같은 장면이라도 정도가 경미하거나,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스타2’ 테스트 버전과 정식버전의 등급 차이 논란에서도 절실히 드러났다. 심사위원 다수가 생각하는 기준이 반드시 국민 정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 한 심사위원이 바뀔 때 마다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을 등급에 반영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요점은 현재 등급심사에서 사용되는 각종 세부사항과 명확한 기준을 심의규정에 정확히 명시함으로써 현재의 등급 결정이 일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다이야기 보고 놀란 가슴, 철권 봐도 놀란다?

온라인이나 콘솔, PC게임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은 독특한 심의규정을 적용받는다. 온라인, PC, 콘솔, 모바일 게임이 전체이용가, 12세, 15세, 청소년이용불가로 나뉘어져 있는 반면, 아케이드 게임은 오직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 둘 중 하나, 즉 ‘모 아니면 도’ 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콘솔에서는 15세 등급을 받은 게임이 아케이드에서는 전체이용가로 서비스되거나, 혹은 성인 등급을 받고 관련 내용을 수정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상당히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케이드용 ‘철권 6: BR’ 의 경우 신 캐릭터인 ‘알리사’ 가 손에 톱날을 장착한 채 그것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머리를 뽑고 팔을 발사해 적을 공격하는 신체훼손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바가 있다. 신체훼손은 없지만, 톱날이 몸을 통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이 주 이유이다. 이후, 톱날을 레이저로 바꾸고 머리를 뽑는 부분을 수정한 뒤에야 전체이용가 판정을 받았다. 참고로, 톱날과 머리 뽑기가 묘사된 콘솔 버전은 15세 이용가이다.


▲ 이 장면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 것은, 전작인 ‘철권 6’ 에는 그런 장면이 없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철권 1’ 부터 쭉 등장하는 캐릭터 ‘요시미츠’ 는 일본도를 들고 나와 상대방을 찌르거나 스스로 할복(배를 찌르는)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잭-6’ 는 주먹을 짧게나마 발사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심지어 아이템을 장착하면 샷건이나 권총, 못 박힌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철권 6’ 은 아무 문제 없이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철권 5’ 에 없고 ‘철권 6: BR’ 에만 추가된 부분이라면 ‘알리사’ 의 머리뽑기 기술인데, 이것을 신체훼손으로 봐야하는지도 의문이다. ‘훼손’ 이란 ‘헐거나 깨뜨려 못 쓰게 만듦’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로봇이 머리를 뽑은 후 재장착하는 것을 ‘훼손’ 이라고 보는 것은 과장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가 이것 하나만으로 전체이용가에서 청소년이용불가로 상향이라…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아케이드 게임 업체들이 이 같이 이분화된 심의분류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게임위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게임제공업소의 경우 청소년게임제공업(전연령이용)과 일반게임제공업(성인)으로 이원화 되어있어 아케이드게임의 경우 두 개의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출입 대상별로 두 개의 등급기준만을 가지고 등급분류를 하다보니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가중 어느 쪽에 더 타당한지에 대한 결정을 하게됩니다. 그러다 보니 12~15세 수준의게임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오히려 온라인에 비해 등급이 훨씬 높게 상향된 사례도 있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업장의 특징이 단순히 아케이드 게임장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러한 규정 때문에 청소년오락실에서는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12세, 15세 게임을 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오락실은 해로운 장소’ 라는 인식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이미 만연해있긴 하지만). 또한, PC방의 경우에도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을 하고 있는 성인과 12세 미만의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필자는 여태까지 PC방에서 연령에 따라 자리를 구분짓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또한, 땅따먹기를 통해 여성의 옷을 벗기고, 누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갈스패닉 SU’ 가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고 떡하니 청소년오락실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기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고로 ‘갈스 패닉 SU’ 는 아직도 청소년오락실 세 곳 중 한 곳에는 설치되어 있을 만큼 현역으로 가동되는 게임이기도 하다(필자는 중학교 1학년 때 이 게임을 오락실에서 처음 접했는데, 사실 그 땐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이 등급은 게임위 설립 이전에 생긴 것이지만, 아케이드 게임 등급의 후속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오락실에서 다들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문제의 게임 '갈스패닉 SU'
왠지 게임 소개서만 보면 건전해 보인다, 전체이용가를 줘도 될 듯 하고..


▲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면 이러한 누드 이미지와 동영상이 나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업체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렵고, 어린이들은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12세, 혹은 15세 등급(가끔은 갈스패닉 SU 같은 청소년이용불가 급의 게임까지)의 게임에 노출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기다리던 게임을 청소년오락실에서 만나볼 수 없거나, 혹은 대폭 수정된 버전을 즐겨야 한다. 뭔가 불합리한 현실이다.

스팀, 앱스토어… 글로벌 게임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케이드 등급 문제가 그냥 커피라면, 글로벌 게임 서비스 등급 문제는 티오…… 어쨌든 현행법상 국내에서 유통/서비스되는 모든 게임은 게임위로부터 등급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등급표시가 없는 게임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사전심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전심의제의 적용 대상인 ‘국내에서 유통/서비스되는 게임’ 의 범위가 점점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글로벌 게임 서비스 때문이다.

글로벌 게임 서비스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뽑아보면 PC게임 다운로드 플랫폼 ‘스팀’ 과 모바일 오픈마켓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 을 들 수 있다. 밸브의 ‘스팀’ 은 다양한 PC게임들을 다운로드 형태로 구매하여 어느 컴퓨터에서든 ‘스팀’ 만 설치하면 보유한 게임을 다운받아 즐길 수 있는 서비스이다. ‘스팀’ 을 통해 서비스되는 게임은 국내에 정식 발매된 게임도 있지만, 국내에 소개조차 되지 않거나, 혹은 정식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임이 훨씬 많다.

문제는 ‘스팀’ 이 정식으로 국내 서비스를 실시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유저들이 ‘스팀’ 을 이용하고 있으며, 밸브 측에서도 한국 이용자를 위해 한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게임위는 지난 9월, ‘스팀’ 이 국내 유저들을 ‘상용 시장’ 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밸브 측에 심의 위반 통보를 보냈다.


▲ 국내 지사는 없지만 한글 서비스는 합니다

게임위 관계자는 “현재 ‘스팀’ 에 대한 뚜렷한 조치경과는 없습니다. 벨브사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고 국내 등급분류제도 및 절차에 대한 영문자료 등을 지원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벨브사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라며 현재까지는 별 진척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스팀’ 의 한국어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게임위는 “2011년부터 등급을 받지 않은 ‘불법게임물’ 의 유통을 사전고지 없이 수사의뢰, 또는 행정조치를 취하겠다” 는 입장을 밝혔지만, ‘스팀’ 이 한국어 서비스를 중지한다면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만약 한국어 서비스를 중지했는데도 ‘스팀’ 의 접속을 차단하거나 한다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

한편, 모바일 오픈마켓인 애플의 ‘앱스토어’ 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 등은 아예 국내 버전에 게임 카테고리를 만들지 않았다. 게임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게임을 판매할 경우 사전 심의를 통해 일일히 등급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는 ‘앱스토어’ 의 자유분방한 창작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 ‘앱스토어’ 와 ‘안드로이드 마켓’ 에는 지금도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때문에 최근 발매된 언리얼3 엔진 게임 ‘인피니티 블레이드’ 등 인기 게임들의 경우 외국 계정을 따로 만들어 구입한 후 한글로 플레이하는 기형적 방식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 한글 버전이 나왔지만 국내 앱스토어에서는 살 수 없는 '인피니티 블레이드'

게임위는 이 같은 오픈마켓 심의에 대해 “게임 오픈마켓을 대상으로 ‘자율심의제’ 와 ‘사후심의’ 등을 도입해 탄력적인 심의 제도를 운영하는 취지의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며, 청소년보호법과 함께 이달 정기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라고 밝혔다. 새로운 게임플랫폼으로 떠오른 오픈마켓의 특수성이 고려된 조치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속 청소년 ‘셧다운제’ 가 모바일과 콘솔 게임에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셧다운제’ 가 모바일 게임에 적용될 경우 오픈마켓의 일부 게임(네트워크 기능이 있는)들은 의무적으로 청소년 ‘셧다운’ 기능을 추가로 구현해야 한다. 오픈마켓의 자율심의제가 가결될 만 하니 이번엔 셧다운제가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플이나 구글이 ‘셧다운제’ 시스템을 적용하는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을까?

이쯤 되면 게임위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스팀’ 이나 ‘앱스토어’ 나 ‘안드로이드 마켓’ 모두 한국 유저들에게 어떻게든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거기에, 게임위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은 죄다 뜻 대로 되지 않거나 각계각층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게임위는 ‘스팀’ 의 국내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거나 한국 유저의 외국 앱스토어 계정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입장을을 취하기도 애매하고, 마냥 이대로 방치해 둘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여 있다.


▲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심야 셧다운제가 모바일 게임에까지 적용될 전망이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게임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 하고 있는 꽉 막힌 정부 부처, 그리고 이러한 법률을 입법시키는 국회의원들이다. 이 사이에서 게임위는 꽤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많은데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로 쏘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최전방에서 받아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심의사항들을 직접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게임위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와 관련 행정부처에 있다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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